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알렉상드라 라피에르 지음, 함정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만나 읽기도 전에, 나는 굉장히 뿌듯해졌다. 큼지막한 사이즈와 500p를 훌쩍 넘는 두툼함...비록, 누워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는 내 팔뚝을 홀로페르네스 목 내리치는 유디트의 그것처럼 튼실하게 만들 우려는 있을지언정, 얄팍한 상술로 두 권이 되지 않고 나왔음이 어찌나 대견(?)하던지.^^

근래에 읽었던 가뿐한 양장본들에 비하면 글씨도 작은 편이라 다 읽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소설, 처음부터 재미는 담보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자들이 지참금을 가져야 결혼하는 것이 당연하던 그 시절, 천부적인 재능으로 여류화가라 인정받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빼어난 미모에(토실토실한 그녀의 얼굴과 몸을 보면, 미의 기준이 요즘과는 또 달랐을 것 같긴 하다.^^) 강간 소송까지, 갖은 스캔들의 중심에 있던 그녀의 삶 자체가 한편의 흥미로운 '소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덮은 지금...나는 젠틸레스키를 소재로 한 소설을 읽었다기보다는, 젠틸레스키 그녀가 실존 인물이 아닌 소설 속의 주인공인 듯한 환상에 젖어 있다.
몇 년간을 꼼꼼히 자료를 수집했다는 저자의 노력도 일조했겠지. 책 속에 펼쳐지는 17C의 문화와 생활 묘사는 섬세하고도 생동감이 있어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눈 앞에 선했다. 당시의 법 집행 과정, 역사, 문화생활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그녀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여성의 사회생활과 권리에 많은 제약이 있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진취적인 선구자로만 해석하지 않고, 여성, 어머니, 딸,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가로서의 그녀를 균형 있게 묘사하려는 노력도 돋보였다. 그렇기에 소설 속 젠틸레스키를 마냥 존경스러운 위인이 아닌 시대를 뛰어 넘어 내 곁에 선 한 사람의 여인, 나아가서 친구로 느낄 수 있었다.

번역상의 문제인지 아니면 저자의 문장이 원래 그러한지, 중간중간 어순이 맞지 않고 난삽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책 속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도판을 작은 크기나마 컬러로 권두에 실어 주는 배려 등으로 인해 책 읽기는 내내 편안하고 즐거웠다.
소설을 읽고 나니 그녀의 그림이 더욱 좋아진다. 이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소설 속의 모습 그대로 내 머리 속에 자리잡았다. 부디, 저자의 자료가 객관적이고 확실한 것임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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