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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 열차
헤미 발거시 지음, 크리스 K. 순피트 그림, 신상호 옮김 / 동산사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과묵하지만 보수적인 우리 아버님은, 뉴스를 보다가 가끔 혀를 끌끌 차신다.
"다, 전쟁을 안 겪어봐서 그래."
촛불시위, 반미집회, 파업 등의 뉴스와 전쟁. 그 심한 간격에 조금 어리둥절해 지긴 하지만, 그렇다. 한 사람의 머리 속에 뿌리내리고 평생을 버티는 아픈 기억, 전쟁.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부분도 많겠지. 나만 해도 초등학교 시절의 반공교육을 까마득히 잊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럼,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은, 그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까.
확실한 답은 못 내겠지만, <피난 열차>와 같이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낯선 외국 이름을 가진 지은이와 그린이는, 둘 다 한국계인가 보다. 하지만 선입견인가? 상당히 객관화된, 정돈된 시각으로 전쟁을 이야기 한다. 독일에서 활동했지만 뼛속까지 한국인임이 느껴지는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무던이> 등의 느낌과는 한결 다른, 타자의 시선이다.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어느새, 그 전쟁에 대해, 전후세대인 우리도 타자로서의 시선을 갖게 되었으니까.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흘러 신파가 되는 것 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더 나은 관점이다.
게다가, 짧은 소견으로 궁시렁거린 미심쩍음을 모두 덮을만큼 좋은 그림이다. 다양하고 현란한 그림이 넘쳐나는 요즘이기에, 전통적이고 사실적인, 옛날 같았으면 진부하다고 했을 이 그림이 도리어 빼어나게 돋보인다. 그림 속의 사람들 모두,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말로는 전달 못할 많은 감정들이 저절로 전해져 온다. 그 속에서 무엇을 읽어내는가는, 어쩌면 일정 부분 아이와 나의 몫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