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존 업다이크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 1995년 1월
평점 :
절판


존 업다이크. 그 거대한 이름이 가진 아우라였을까. 책을 읽는 동안 그 속에 들어앉은 고갱이 하나가 질기게 느껴졌다. 아니, 고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하다. 브라질 어느 정글 속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을 거대한 둥치를 가진 나무 하나가, 책을 덮은 지금도 내 가슴 속에 박혀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나무는 존재감만이 느껴질 뿐, 그 껍질을 만져볼 수도 이름을 알아볼 수도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줄곧, 그리고 읽고 난 후 지금까지 계속, 이 묵직한 책의 줄거리만을 겨우 따라잡았다는, 그 속내를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옅은 죄책감이 따라다닌다. 그런, 죄책감을 남길 정도로 근사한 책인 것이다.

<브라질>이라는 제목을 능가할 수 있는 단어가 과연 있을까? 이 자그마한 책은 그 속에 거대하고 뜨거운 브라질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자벨과 트리스탕의 격렬한 사랑의 여정을 따라다니며 나는, 브라질이라는 나라의 냄새까지 맡아본 듯 하다. 그래, 나는 그 둘의 사랑에 지나치게 몰입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하얀 이자벨과 검은 트리스탕, 그 둘의 사랑이 품고 있는 무수한 함의들을 읽어내는 데에 소홀했다. 하지만 어떠랴. 사랑이 줄거리에 지나지 않다고 해도, 그 줄거리 자체만 따라간 것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것을.

트리스탕이 그녀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 보노라면, 이자벨은 그가 자신의 뱃속에서 걸어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뱃속에서 힘이 쑥 빠지면서 두려움과 고통이 가득해지고 황홀하게 늘어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p230

어젯 밤 내내 두 사람은 나의 뱃속을 걸어다녔고, 그 사랑을 함께 치르느라 나는 몹시 나른하게 지쳤다. 필히, 재독해야 할 책이다. 그것이 몇 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는 뜨거운 사랑의 정열 속에 숨은 무거운 함의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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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4-07-2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소리)
헉, 진/우맘님은 책 한 권을 가지고도 페이퍼 하나, 리뷰 하나를 쓰셨다.
서재달인 상위권에 있는 분의 이 진지하고도 성실한 자세를 꼭 벤치마킹해야할 일이다.

점점 더 소재는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 진/우맘님 덕분에 읽을 책없던 가난한 제 젊음이 조금 더 윤택해지는 군요..(__)
옷홋홋.

진/우맘 2004-07-25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그러게, 마태님이랑 놀지 말래니까.-.-
마태님하고 점점 똑같은 소리만 하고 있잖아요!!!

미완성 2004-07-25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은 진실을 외면하고 계신다..!!
제게도 소재를 나눠달란 말씀입니다아~~랄라~ *^^*
저 귀엽죠?

진/우맘 2004-07-25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방금 댕겨왔는데, 소재 없이도 잘만 쓰더만 뭘.^^

미완성 2004-07-25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립금은 우리에게 휴지 없이도 볼 일을 보게 만드는 초능력을 주지요-_-V

그래도, 소재를 좀 빌려달란 말씀입니다아~~~~~
그리고, 저 귀엽죠? ^^*

진/우맘 2004-07-25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엽다 귀엽다 멍든사과 귀엽다 만세이~~~~

마냐 2004-07-25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멍든사과님의 날카로움...저도 동참해야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