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린 M의 성생활
카트린 밀레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는동안 줄곧, 내 머리를 지배한 질문은 <왜?>였다. 카트린 밀레, 그녀는 왜 이 책을 냈을까? 왜 그렇게 많은 남자와 섹스를 했을까? 사실, 두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미 책 속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난 읽고도 모르겠다. 그녀가 책을 쓰게 된 계기도, 많은 남자와 섹스를 하는 이유도....분명히 우리 말로 정서되어 쓰여있건만, 내게는 마치 프랑스어인냥, 머리 속에서 해독이 되질 않았다. 카트린 밀레는 보통의 범주를 넘어선 여성이다. 거기에다가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문화와 사고의 차이까지 더해져서, 그녀와 나 사이에는 까마득한 이공간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이해하기 힘들다. 아니,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으나 마음으로 공감은 못하는 것이겠지. 섹스를 통해서 우정을 더욱 돈독히 했다는데, 그 사실을 도대체 어찌 공감한단 말인가? 그 문장에서 내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심장이 덜커덩, 내려 앉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서갑숙씨의 책을 떠올렸을 것이다. 나 역시 잠시 그랬다. 하지만 곧 서갑숙보다는 에너벨 청, 이란 이름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몇 년 전 <섹스, 에너벨 청 스토리>라는 다큐멘터리 비디오가 화제를 뿌렸다. 한 명문대의 여학생이 성에 대해 연구하다가, 직접 포르노 배우가 되어본다고 했던가? 기억을 더듬고자 검색해보니, 300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섹스를 해보겠다고 하다가, 결국 기록은 251명에 그쳤다고 한다. 둘은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다. 우선 상당한 수준의 지적 능력의 소유자라는 점,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점(때로는 여럿을 한꺼번에), 무엇보다도 자신의 섹스에 대해 당당하다는 점. 그런데, 나만이 꼽은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에너벨 청의 비디오도, 카트린 M의 책도 '지루하다'는 것이다. 사실 에너벨 청의 비디오는 직접 보진 못했다. 그런데 봤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끝까지 보기 힘들었다." 혹은 "매우 지루했다."고 평했다. 이유가 뭘까? 사람은 어떤 수위의 자극에 줄곧 노출되면 금방 적응해 버린다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아마도, 두 여인 다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며 <흥분>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 아닐까? 카트린 밀레는 줄곧 자신의 섹스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정작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자기 자신이었던 듯 싶다. 섹스는, 자신의 내면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모티브 였을 뿐. 그런데 나는, 위에서도 밝혔던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모티브 자체도, 모티브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카트린 밀레도, 공감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책의 본질에 다가서질 못하고 언저리에서만 맴돌았으니, 책이 지루할 수 밖에.

책을 덮은 지금, 카트린 밀레 본인이 아닌, 그녀를 거쳐간 남자의 입장에서 서술된 카트린 밀레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책과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 나의, 김빠진 관음증인가? 리뷰를 쓰러 검색해보니, <카트린M의 전설>이라는 책이 나왔다. 그녀의 남편이 쓴 책이란다. 미처 제어할 틈도 없이  '쓸개 빠진 놈...'하는 생각이 밀고 올라왔다. 이런, 이런 낭패가 있나. 리뷰를 쓰기가 무섭다. 성(sex, gender 모두)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가졌다고 생각해 왔건만 글을 쓰는 중간중간에 내가 숨겨왔던, 내 속에 주입되고 각인되어 있는 편견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아마도 편견이란 개념 역시 상대적이라, 너무도 열린 그녀 앞에서 내가 움츠러든 것이겠지. 지금 느낀 이런 민망함이, 내 편견의 틀을 깨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카트린 밀레와 함께 한 일주일이 그리 헛되지는 않겠지. 비록 그녀를 이해하진 못했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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