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와 푹신이 내 친구는 그림책
하야시 아키코 지음 / 한림출판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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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아이,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상당히 냉철한 독자이다. (음...사실은 산만한 독자.TT) 읽던 책이 조금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가차없이 덮고 일어나 버리는 단호함을 보여준다. (하긴, 유아 독자 대부분의 성향이 그렇겠지.^^) 그런데 이 까다로운 독자에게 한번도 퇴짜를 맞지 않은 작가가 하나 있으니, 바로 하야시 아키코이다.

어렸을 적 <달님 안녕>이나 <싹싹싹> 같은 시리즈부터 요즘 보는 <숲 속의 숨바꼭질>까지, 하야시 아키코는 한 번도 딸아이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얼마 전 주문 구입한 <이슬이의 첫 심부름> 역시 아이를 매료시켰다. 사실, <이슬이...>를 살 때 <은지와 푹신이>도 구입하고 싶었다. 하지만 되도록 책 편식은 시키지 말자고 기준을 세워 두었던 터라, <은지와 푹신이>는 다음 기회로 밀리고 말았다. 그런데 어제, 퇴근길에 들른 서점에서 <은지와 푹신이>를 펼쳐 읽다가 호올딱 반해서 그냥 사들고 말았다.(나의 기준을 이렇게 쉽게 무너뜨리다니...TT)

<은지와 푹신이>는 이제껏 본 하야시 아키코의 작품 중 최고이다. 이 책에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 녹아 있다. 아이는 푹신이에게서 친근한 또래친구의 모습을 발견한 모양이지만, 나는 은지를 돌보는 모습에서 어떤 모성의 흔적을 본 것 같다. 은지가 자라면서 푹신이에게 침을 묻히고, 타넘으며 기어다니고, 꼬리를 끌며 첫 발을 떼는 페이지에서는 가슴이 뭉클할 정도였다. 그래서였을까, 책의 말미에 개에게 호되게 당한 푹신이가 은지에게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를 반복하는 장면에서 딸아이와 작은 충돌(?)이 생겼다. 나는 슬퍼서 울먹울먹하며 읽어주는데(푼수 엄마 -.-), 아이는 푹신이가 똑같은 말을 계속 하는게 재미있었는지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다. 아직 내공이 덜 쌓인 나, '그러면 안 돼!'하는 마음 속의 제동을 뿌리치고 말했다. "엄마는 슬픈데, 예진이는 재미있니?" 슬픈가? 하며 눈을 굴리는 딸아이를 보며 아차,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마음대로 재해석하려 하다니...싶었지만, 때는 늦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잠시 생각해보는 듯 하더니 별 말 없이 다음장으로 책을 넘겼다. 그리고 새 것처럼 변한 푹신이의 모습에 둘 다 뿌듯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은지와 푹신이>가 이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아마 좋은 캐릭터가 작품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은지는 정말 우리 집, 혹은 옆집의 또래 아이같은 모습으로 누구나 공감하고 동일시할 수 있는 대상이다. 그리고 푹신이, 곰도 아니고 토끼도 아닌 흔치 않은 이 여우 인형은 어찌나 생동감이 넘치는지! 읽는 이를 금방 울고 웃게 만든다. 시작과 마지막 페이지에 푹신이를 만들기 위한 마름질 본과 남은 천조각을 보면, <구룬파 유치원>의 첫 페이지에 쓰인 비뚤비뚤한 글씨가 떠오른다. '이것은 구룬파가 쓴 글씨입니다'라는 한 줄로 마법을 걸어, 읽는 이로 하여금 구룬파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 있는 코끼리 일 것 같은 믿음을 주던, 바로 그 페이지. 푹신이의 본을 뜬 천조각도, 푹신이는 모래 언덕 마을에서 만들어진 진짜 인형이야! 하고 소리치고 있는 것 같다.^^

<은지와 푹신이> 역시, 딸아이의 앵콜 신청을 받았다. 하야시 아키코...어떻게 그렇게 동심을 꿰뚫어 보는건지, 정말 얄밉도록(?) 고마운 작가이다. 오늘 이후로는 이 작가에게만큼은 '한 번에 한 작가의 책을 두 권 사지 않는다'는 규칙을 적용하지 않겠다. 다음 구입 예정인 <순이와 어린동생>이외에도 궁금한 작품이 있으면 그냥 함께 사련다. 하야시 아키코의 무패 행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가 몹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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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03-18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리 애들두 넘 넘 좋아합니다...편식..따지기엔 히야시 아키코..넘 좋아요...글구...푹신이, 정말 넘 대단하지 않아요?

진/우맘 2004-03-18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생각해보니, 유럽의 충성스러운 집사 같은 모습입니다. 주인에게 절대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