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 매우 <깜찍한 상상력>의 소유자이다. 필립 K 딕처럼 질리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상상력도 아니고, 너무 완벽해서 허구인지 실제인지 구별할 수 없는 베르베르의 상상력도 아니다. 허점투성이에 엽기적이지만 읽다보면 그 매력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상력이 책 속에 가득하다. 그 상상력의 근간에는 패러디가 있다. 모방은 제 2의 창조라는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제대로 한 패러디는 그 어떤 순수 창작보다도 멋진 결과물을 낳을 수 있다. 터미네이터에서 유머의 정수만 뽑아 쓴 것 같은 <신찬섭을 죽여라>는 이 책의 압권이다.

사실, 나 역시 우연찮게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서점에서 골라 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제목과 목차를 들여다보면, 그 질을 짐작할 수 없는 B급의 화장실 유머가 난무하는 책으로만 보였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화장실 유머가 난무하는 것은 사실이다.(소재가 기생충이기에, 화장실 자체가 책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B급은 아니다. 굳이 점수를 주자면 특A급 정도?

전문 작가 수업을 한 사람이 아니기에 유려한 문장이 펼쳐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읽다보면 이 작가, 글 쓰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자신의 머리 속 기지들을 활자화 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즐기는 사람. 그러기에 독자들도 그 즐거움에 덩달아 올라탈 수 있는 것 아닐까?

진부한 표현 같지만 <재미와 교훈을 겸비한 책>이다. 기생충 탐정 마태수의 엽기 행각에 낄낄거리는 재미, 그리고 생소하던 기생충에 대한 알짜 정보가 주는 교훈. 세상 모든 자연과학 책이 이런 스타일로 저술된다면, 나도 지금보다 훨씬 '과학적인'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2004-03-06]

----------애마태우스(가명)님이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예전에는 Y 인터넷 서점과 알라딘에 모두 리뷰를 올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왠지 찝찝한 관계로^^ 안 그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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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09 10: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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