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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51
존 버닝햄 지음, 이주령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금님의 <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에 보니 아이들의 특성 중에 물활론, 인공론, 실재론이라는 것이 있더군요. 그 중 물활론은 모든 사물에 생명이 있다고 믿는 것이고, 실재론은 꿈과 상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랍니다. <알도>는 이런 아이들의 심리를 꿰뚫은 수작입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책을 만든다는 것은 아동심리를 많이 공부하는 것만으로 되는 일은 아닐 겁니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동심을 잃어버리지 않은 순수함이 있어야만 하겠지요. 그런 점을 생각해본다면, 존 버닝햄은 정말 뛰어난 작가입니다.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한 것은 모 유아교재사에서 매달 배달해주는 책들 틈에서였습니다. <아기 힘이 세 졌어요>라는 제목이었는데, 원제는 ‘아보카도 베이비’더군요. 존 버닝햄이 영국의 3대 그림책 작가인지도 몰랐던 그 때는 ‘뭐 이런 그림이 다 있어?’하고 생각했습니다. 낙서인 듯 긁적인 선, 사람들의 어색한 자세, 그래서 예쁘지 않은 그림이 성의 없음의 표상 같이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아이는 그 책만 자꾸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하더군요. 알도의 작가 소개란에, 존 버닝햄은 일부러 아이들의 그림처럼 결여된 부분을 남겨서 그들에게 다가간다고 써있는 걸 보고서야 아이가 왜 그 책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림책의 알도는 참 믿음직해 보입니다. 아이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토끼이면서도 그저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 아니라 마치 아버지같이 의지되는 듬직한 모습이지요. 외롭고 약해 보이는 소녀와 아주 잘 어울려요. 알도와 소녀가 상상의 세계에서 펼치는 여행도 어두우면서도 신비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배경으로 처리되어 아이들의 상상력을 200% 자극하구요.
하지만 저희 딸아이는 아직 알도에 푹 빠지지 않았습니다. 한 번 밖에 못 읽어준 탓도 있지만, 아이의 성격에는 그렇게 와 닿지 않나 봐요. 인형과 대화하며 외로움을 타기 보다는 씩씩하게 뛰어노는 것을 더 좋아하거든요. 사실 영국이나 기타 유럽의 나라들에선, 아이들이 최고의 인형친구를 갖는 것이 성장과정에 있어서의 통과의례처럼 보편적인 정서일지 모르지만, 아직 우리나라 아이들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면, 우리 딸아이만 독특한 걸까요? 아직 그 단계에는 이르지 않은 걸까요? (아니... 더 솔직히 얘기하면, 버닝햄의 가치를 알면서도 아직 예쁜 그림을 더 좋아하는 엄마의 소녀취향을 아이가 꿰뚫어 본 듯도 하군요. ^^;)
그래도 일부의 아이들은 소녀에게 완전히 감정이 이입되어, 알도와 함께 상상의 나라로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한 친구들은 알도를 분명 최고의 그림책으로 꼽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