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아이들 중에 '백설공주' 이야기를 모르는 아이가 더 많을까, '팥죽할멈과 호랑이' 이야기를 모르는 아이가 더 많을까?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박힌 우리 나라보다 도리어 서양의 동화들이 더 성차별이 심하다. 나역시도 전래동화집보다 세계명작전집을 읽고 커서인지 아직도 신데렐라 컴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나질 못한걸...끙. 내 딸래미는 절/대 그렇게 만들진 않겠다! 하는 분연한 결심(?)과 함께 두리번거리다가 구입한 책이 바로 팥죽할멈과 호랑이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결심이고 뭐고 다 소용없어졌다. 의의와 상관 없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우선 큼직해서 좋다. 책꽂이에 잘 안 꽂히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난 그림책은 크면 클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책이 크기에 '집채만한 호랑이'도 정말 집채만하게 그릴 수 있지 않은가?그리고 그림이 멋지다. 할머니 주름살은 어찌 그리 정겨운지. 무르익는 감과 널어 말린 고추의 정경에는 마음이 푸근해지고, 지게며 맷돌이며 아궁이며...모든 그림이 사실적이면서도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우리야 그렇다치고, 우리 아이들은 언제 이런 옛 살림을 엿볼 수 있겠느냐 말이다.또 생경하지만 곧 익숙하게 다가오는 구수~한 구어체를 읽어내려가다 보면 뜨끈한 온돌방에 화로에 밤 묻어놓고 아이에게 옛 이야기를 하나 해주고 있는, 그런 분위기가 절로 무르익는다. 각종 동식물과 사물 친구들이 호랑이를 물리치는 상황의 묘사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나마저도 킥킥 거리게 만들만큼 익살스럽다. 아무때나 좋지만 겨울이 제격일 듯한 그림책이다. 신나게 한바탕 읽고 아이랑 팥죽 한 사발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