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김형경 지음 / 문이당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직업상 학교 다닐 때는 교육 심리학을 배웠고, 요즘 들어서는 미술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있던 터라 정신분석이 주가 되는 이 책을 접하자 자꾸 분석하고 어의를 따져보는 학구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하겠더군요. 2권의 중반 이후부터서야 그런 불편한 힘을 빼고 편안하게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세진에게서, 인혜에게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해내고 그녀들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더라구요.

결국은 다른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두 사람이지만, 중간 단계까지의 세진과 인혜를 양 극단에 놓고 굳이 하나를 골라내라면, 저는 인혜쪽에 더 가깝습니다. 인혜가 사랑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 다 겪고 다 초월해서 개념정리까지 완료된 듯 한 차분함,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합리적인 결론으로 사랑을 끌어다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스스로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는 어리숙한 구석...표면은 조용하고 차분한데, 그 내면 무의식은 드글드글 끓고 있는 인혜의 행동거지들을 보며 이 여자는 참 나와 비슷하구나 하고 자주 떠올렸습니다.

세진은...나라면 그렇게는 살지 않겠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착한 여자 컴플렉스에는 많은 부분 공감했습니다. '친절한 사람을 주의하라...'는 구절에 가슴이 뜨끔하더군요. 친절이 저의 모토거든요. 티 타임에 차를 타거나, 다른 사람이 귀찮아하는 심부름을 맡아하는 등 사소한 친절을 내세울 수 있는 일. 그런 일들을 언제나 진심으로 즐겁게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술자리에서 술을 따르는 것이 왜 여성들에게 치욕스러운지를 마음에서 느껴본 적이 없고, 대학 초년생때는 심지어 담배를 집어드는 선배들에게 담배불을 대주려고 하다가 '정숙한 여자는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질책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진의 상담과정을 따라가며 그런 것들이 다, 과잉친절을 베풀고 그만큼의 보상으로 사랑받기를 원하는 내밀한 욕망, 자기연민에서 비롯된 것임이 느껴졌습니다. 또한 세진이 경호에게만은 잔인했던 것처럼,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가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밖에서는 아무리 자잘한 심부름도 기꺼이 나서서 처리하면서, 집에서는 꼼짝 않고 알게모르게 남편을 부릴 기회만 호시탐탐 노립니다. 어떤 가부장적인 집에선 남편이 누워서 '재털이, 리모콘' 한다던데, 저희집에선 도리어 제가 앉은 자리에서 '오빠~ 휴지 한 장만, 오빠~ 나도 물~'하고는 하죠.

가장 믿는 이,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사랑해줄거라는 오만이 그런 사소한 상황 뒤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스스로 놀랐습니다. 계속 인혜를 동일시하고, 그녀의 시각에서 세진을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결국 세진과 함께 정신분석의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싸우지 않는 부부가 건강치 못한 부부라는 말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는 진지하게 고민해봅니다. '한 번 본격적으로 싸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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