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25
서머셋 몸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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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릭랜드는, 보통의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분명히 악인이다. 아내와 가정을 무책임하게 버렸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친절하게 대할줄을 모르며, 은인의 아내를 빼앗아 자살에까지 이르게 했다. 하긴, 마지막 문장은 조금 더 고려해보아야겠다. 빼앗으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여하튼 분명히 그는 좋은 사람의 범주에는 들기 힘들며,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있는 화자에게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그에게 매료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기이한 행적들이 이해되거나 매력적으로 비친 것도 아닌데도 스트릭랜드, 그에게 빠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감정은 나만이 느낀 것은 아닐성싶다.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화자 역시도 기이한 인간성의 탐구라는 단순한 흥미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애정(이라고 표현하기엔 조금 낯간지럽지만)으로 변모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런 화자의 자연스러운 감정 변화에 나도 편승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단순한 고갱의 일대기가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책을 덮은 지금 내 머릿속에서는 스트릭랜드와 고갱이 다른 인물이라고 나뉘어지질 않는다. 욕망이 배제된 순수한 열정이 느껴지는 고갱의 작품들이 책을 읽는 내내 눈 앞에 전개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스트릭랜드의 마지막 작품, 오두막의 벽화도 마치 본듯이 그려낼 수 있을 것 같다. 강렬한, 기이한 생명력으로 가득찬 그림. 스트릭랜드의 도움을 받아 고갱을 바탕으로 창조된 나만의 그림. 그 뿌듯한 감동이 책의 재미를 더욱 배가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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