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습관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여자가 쓴 성 이야기라 하면, 자신을 모두 까발린 선정적인 체험수기이거나 갖은 폭력과 억압속에 뒤틀린 성이 위협하는 삶을 고발하는 페미니즘 소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열정의 습관은 좀 다르다. 선정적이기 위해서 아무것도 까발린 것이 없고 외견상으로는 누구의 삶도 망가지지 않았다. 도리어 미홍, 인교, 가현은 현실의 여느 여자들에 비하면 더 자유롭고 편안한 부류들이다.

이야기의 주축은 미홍이 끌고 간다. 마음의 사랑과 몸의 사랑이 하나되는 희열과 진실을 발견하는 것은 그녀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공감하기가 어렵다. 과연 마흔에 가까운 여자와 남자의 성이 그렇게 현란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 마음은 아직 선홍빛도는 젊음이라 해도, 과연 몇 퍼센트의 여자가 그런 환상적인 사랑을 마흔에 경험해볼 수 있을까?

도리어 나는 가현이 더 미덥다. 늘어진 뱃살과 젊음이 몇 퍼센트인가 빠져나간 가슴을 가지고 이십대 초반의 사랑이 아직도 선연한 사람에게 안길 수 없는, 그 마음에 더 수긍할 수 있었다.

여자들의 성을 이야기한다 하기에, 좀 더 높은 수위를 기대했던 것 같다. 힘과 시간이 섹스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마초들이 뜨끔할만한, 여자 자신도 모르는 여자들의 몸과 성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봇물터지듯 쏟아지기를 바랬다.

하지만 전경린은 형이상학적인 수사와 문체들을 위해서 형이하학적인 육체와 현실은 그냥 덮은 듯하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수식어들로 꾸며진 오르가즘에 대한 환상들은 지나치게 눈부셔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섹스에 대한 이야기들 중 일부는 별 새로울것도 없이 기존의 남성작가들의 표현을 답습하는 듯 느껴졌다.

그녀의 매력적인 문장은 여전하다. 하지만, 내걸린 모토에 비해서는 얻는 것이 빈약한 편이다. 여자인 내가봐도 모호한 여자의 성. 이 책을 읽는 남자들은 '역시 여자의 사랑과 성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야...'하는 애매한 확신만을 굳히게 되지 않을까.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여자들의 성은 복잡미묘하고 모호하다'는 결론은 아니었을 성 싶은데.

사실은 별 세 개가 적합한 소설이다. 마지막 별 하나는, '전경린이기에' 찍은 개인적인 호감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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