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쓸쓸한 당신
박완서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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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찾았다! 어디서 읽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도 못할만큼 설렁설렁 넘겼음에도 가슴에 비수같이 와 박힌 한 줄의 문장. '짐승스러운 시간'이라는 문구 하나와 어렴풋한 '박완서'만으로 그 원전을 얼마나 찾아헤맸는데!(넘 오버가 심했나^^) 박완서님은 정말 '글귀신'이다. 그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무서워질정도로 그를 존경하지만, 그렇기에 좋아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비범한 귀기가 조금은 흐려진 듯한 '그 많던 싱아...'를 박완서님의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기분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닌 것 같네...

'마른 꽃'을 읽으면서, 아니 사실은 이 한 문장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온 몸을 울리던 전율이었다. 그 느낌이 너무 강해서 다른 것들은 머리 속에서 하얗게 지워졌는지도 모른다. 평생 사랑할 수는 없는건지, 결혼이라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인지, 내 나이가 60, 70이 되면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지...한결같이 머리 한 구석을 짓누르고 있던 잡다한 고민들이 그 문장 하나에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었다. 더불어 곁에 누운지 5년이 되어가는 남편에게 자꾸 '권태'라는 단어를 갖다대던 뒤틀린 심사도 어느정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겉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제야 알것 같았다'라고 당당히 얘기해준 이 노회한 작가의 손을 덥썩 잡고 고맙다고 하고 싶었다.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짐승스러운 시간...그 시간들을 토끼같이, 노루같이 예쁘게 살아낼 힘을 준 '마른 꽃'. 내가 꼽는 최고의 단편, 최고의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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