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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절판
전쟁에 관한 이야기라면 꽤 많이 들어왔다. 어린시절 반공교육을 받으면서 들었던 공산당의 만행부터, 육이오 특집극으로 구성되던 피난민들의 신산한 삶이야기까지. 누구나 전쟁이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무서운 것이라고 했지만 겪지 않은 내가 실감하기에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이 소설은 성인이 된 박완서가 전쟁을 겪고 결혼을 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소강상태가 된 서울에 남고, 아이를 들춰업은 올케와 피난을 가고, 전쟁이 끝난 후 미군 부대에 취직을 하는 일련의 과정은 힘겨워 보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운이 좋았다고 보일만큼 담담하다.
하지만, 그 담담한 이야기 속에서 나는 '전쟁'이라는 것의 실체를 넘본듯 섬뜩해졌다. 피와 살이 튀고, 폭격을 맞으며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은 전쟁이라는 것의 단면에 불과하다. 그러한 단상을 벗어나서, 전쟁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많이 비틀고 주무르는가 하는 것을 얼결에 들여다본 것이다. 오빠의 다리에 난 총알 구멍에 심으로 밖은 붕대, 서리서리 끔찍하게도 많이 나오더라는 박완서의 회상. 눈 앞에 들이밀어 보여주었더라면 몰랐을 상처의 깊이를 풀려 나오는 붕대로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맺힌데 없이 술술 전해주는 박완서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쟁이 윗세대 모두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였는지를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