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던이 우리들의 작문교실 2
이미륵 지음, 정규화 옮김, 윤문영 그림 / 계수나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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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그 때는 국민학교) 5학년에 들어서면서 부모님께서 사주신 문학전집에서 '압록강은 흐른다'를 처음 읽었다. 그 당시에는 깊은 감명을 받고도 자라면서 까마득히 잊었었는데, 대학생이 되어 박완서님의 '그 많던 싱아는...'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기시감에 젖어들었다. 박적골을 묘사하는 부분에서의 느낌이 '압록강은...'과 꼭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생용 문학 전집에 속한 작품이었기에 그렇게나 유명한 분의 수작이라고는 미처 짐작을 못하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무던이'가 나오면서 신문 몇 곳에 실린 기사를 보고야 이미륵이라는 작가가 어떠한 분인지 알게 되었다.

서점에서 신간 틈에 끼어 슬프기도하고, 그립기도한 아득한 표정으로 나를 건네보는 무던이의 표정을 보고 호기심에 책을 펼쳤다가 꼬박 서서 절반 가량이나 읽고 결국은 사들고 들어왔다. 너무도 순수하고 맑아서 미욱하기까지 한 사람들. 그 시절 여인네들은 '시'자가 들어가면 시금치마저도 싫어했다는데 어쩌면 이 책에서는 시댁 식구들까지도 착하기가 한량이 없다. 아무도 나쁜 사람이 없는데도 구슬프게 끝나버리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꾸 눈물이 흘렀다.

압록강은 흐른다와는 느낌이 좀 다른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촉촉한 눈물 냄새가 나는 것이 옛 여인들이 규방에 앉아 그려내던 한 폭의 수묵화 같다. 그런 눈물 냄새에는 삽화도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생생하게 녹아있고 한적한 옛 마을의 아름다움을 한껏 살린 삽화는 이미륵님이 미처 쓰지 못한 이야기의 일부분을 든든하게 채워주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표지에 그려진 무던이의 얼굴은 책의 줄거리와 느낌을 함축한 듯한 깊은 표정으로 보는 사람을 끌어들인다.

선하고 악한 편이 확연히 나뉘고 권선징악의 뻔한 결말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우리의 옛 풍습에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별다른 설명을 듣지 않고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압록강...'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

하지만 이 책을 정말로 권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이 아닌 그 엄마 아빠, 성인들이다. 듬성듬성 그림을 넣고 적은 분량을 휑하게 엮어 '어른들을 위한 동화'니 어쩌니 하는 숱한 책과는 달리 '무던이'야말로 진정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것이다. 결 고은 무던이의 심성을 따라가다 보면 살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느낌을 하나쯤은 꼭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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