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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무라카미 류 지음 / 예문 / 1996년 4월
평점 :
절판
69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던 나는, 무라카미 류라는 이름과 제목을 보고 '이 사람, 또 시작이군' 하며 뜻모를 미소를 띄웠다. 토파즈로 그를 처음 접한 나에게는 무리가 아니었다. 또 적나라한 성 이야기가 판을 치겠거니 생각을 하자 책을 판매대로 들고 가는 것이 왠지 부끄럽기까지 했다.
헌데 이것이 다 오해였다. 이제껏 읽어본 류의 책중 가장 상쾌한 작품이었다. 음란한 상징인 69가 아니라, 69년을 얘기한 거라니...^^;;;(에구에구 부끄러워라)경쾌하게 전개되는 류의 학창시절을 넘보면서, 나는 왠지 '친구'의 달리기 장면이 떠올랐다. 폭력으로 물든 영화 한 가운데의 그 달리기는 얼마나 기분 좋고 유쾌했던가. 69의 느낌이 꼭 그렇다. '~한 것은 아니고' 하며 끊임 없이 궤변을 늘어 놓는 살짝 뒤틀린 특이한 주인공을 통해서는 류와 어린 시절을 공유하고 사적으로 친해진듯한 즐거운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
69를 류의 대표작이나 역작으로 꼽기에는 무리수가 있다. 하지만, 내가 토파즈가 아니라 69로 그를 처음 만났다면 거부감과 선입견을 해소하는데 걸린 시간을 아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류를 아직 접하지 못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할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