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이 쓰는 말이 줄어들면 그만큼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도 줄어들 거라는 게 할아버지의 지론이셨다. 어느 땐가는 나한테만 몰래, 세상에는 으레 돼먹지 못한 멍청이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말고는 아무 쓸모도 없는 말들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그 멍청이들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일리 있는 말씀이었다. 할아버지는 말의 뜻보다는 소리, 즉 말투를 더 마음에 새겨들으셨다. 할아버지는 언어가 서로 다른 민족이라도 음악을 들을 때는 같은 것을 느낀다고 주장하셨다. 할머니도 할아버지와 같은 생각이셨다. 또 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야기를 나누는 게 바로 이런 식이었다.

 할머니의 이름은 보니 비(bonnie bee), '예쁜 벌' 이었다. 어느 늦은 밤, 할아버지가 "I kin ye, Bonnie Bee."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할아버지가 "I love ye."(당신을 사랑해 - 옮긴이)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랬던 것이다. 또 할머니가 이야기를 하다가 "Do ye kin me, Wales?"라고 물으실 때가 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I kin ye."라고 대답하신다. 이해한다는 뜻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신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이해하고 계셨다. 그래서 두 분은 서로 사랑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세월이 흐를수록 이해는 더 깊어진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보시기에 그것은 유한한 인간이 생각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들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 두 분은 그것을 'kin'이라고 불렀다.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中 -

I kin ye, 보니 비.... I kin ye, 웨일즈.... I kin ye, 윌로 존.... I kin ye, 와인씨.... I kin ye, 작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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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우유 2004-02-20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니비라는 이름 정말 특이했습니다. 키다리웨일즈 할아버지는 정말 지혜로운것 같구요;;

즐거운 편지 2004-02-24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도 울었다구요.. 지금 가서 리뷰 다시 보고 이 글을 씁니다. 챙피해서 말하지 않으려다..^^ 어느 서재에서 봤었는지 보관함에 담아두었던 책이거든요. 차고 넘친 보관함 정리하다 도서관에서 빌려 볼 목록으로 분류해 놓고 밀리고 있었지요. 그러다 여기서 다시 보고 찜!! 좀 전에 다 봤습니다. 근데 눈물이 왜 그리도 흐르는지.. 지난번 '완전한 사랑' 때만큼이나 꺼이꺼이...^___^
많이 울었지만 덕분에 가슴 따뜻하고 행복했답니다.^^
책보면서 이런 느낌으로 그림책이 있다면 좋을 텐데 생각이 들더군요. <시애틀 추장>은 아직 어렵고 인디언 이야기로 본 책 중 이거다 할 만한 책을 지금 까진 만나지 못해서요..
조금 다르지만 영어그림책으로 본 이누크 이야기로 'Mama, Do You Love Me?'가 오랜만에 생각나더군요. 푸근하고 따뜻한 이야기에 그림도 독특하고 엄마와 딸아이의 대화에 사랑이 넘칩니다. 울 아들과 저도 마냥 행복해지던 책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