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로 쫓겨난 사우론이 힘을 되찾을 무렵, 서쪽에서 이스타리라 불리는 다섯 마법사가 나타났다. 그들은 사우론을 견제하기 위해 서쪽 나라 영주들이 보내온 전령. 노인의 모습을 한 이들은 지혜와 마력을 지녔고 동물과도 대화할 수 있었다. 누구도 그들의 진정한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인간은 그중 가장 뛰어난 두 마법사를 간달프와 사루만이라고 불렀다.

간달프 회색의 마법사 간달프는 심연의 괴물 발록과 싸우면서 죽음과 부활을 거쳐 흰색의 마법사로 다시 태어났다. 빌보의 모험에도 동참했던 그는 빌보가 소유한 반지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그 정체를 캐내 신성회의를 소집한다. 발록을 만나기 전까지는 원정대를 지휘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반지의 악령 나즈굴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호빗들처럼 연초 피우기를 좋아하고 독창적인 불꽃놀이로 아이들을 즐겁게 해준다. 평생 방랑한 그는 훗날 오랜 친구 빌보와 프로도와 함께 서쪽으로 돌아간다.

사루만 간달프보다도 뛰어났던 백색의 마법사. 지나치게 강력했기 때문에 오히려 절대반지의 힘과 사우론의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는 로한의 영토 아이센가드에 무너지지 않는 탑 오르상크를 건설하고, 오크 변종인 우르크하이 군대를 양성했다. 사우론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사우론의 충복이 되어버렸고, 숲을 불태우는 데 분노한 나무수염 무리 앞에 쓰러지고 말았다.
사루만은 갑자기 어디로 갔지?
원작 vs 영화
크리스토퍼 리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 한 장면도 나오지 못했다. 피터 잭슨이 “내러티브에 긴장을 주기 위해서” 사루만이 등장하는 7분가량의 필름을 삭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원작대로라면 사루만은 긴 원정담의 에필로그에도 다시 한번 등장했어야 했다. 아이센가드에서 탈출한 사루만은 조금 남아 있는 힘을 이용해 호빗들의 고향 샤이어를 장악하고, 돌아온 원정대와 전투를 벌인다. ‘샤이어 전투’라고 기록되는 이 싸움의 끝에서 사루만은 심복 웜통에게 살해당하게 된다.
이 밖에도 <반지의 제왕>은 원작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영화에서 아웬은 반지의 힘과 연결되어 있다. 그녀는 반지가 강해질수록 생명이 사그라지지만, 이것은 원작에는 없는, 아라곤에게 로맨틱한 필연을 부여하는 설정이다. 세오덴 왕이 죽어가면서 조카 에오윈에게 유언을 남기는 장면도 창작이다. 소설에서 세오덴은 조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쳤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눈을 감았다.
더해진 것이 있다면 사라진 것도 있어야 한다. 아라곤이 곤도르의 왕만이 지닌 치유력을 발휘하는 대목, 파라미르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에오윈에게 부드럽게 다가가 마음을 얻는 사연, 아라곤의 동료 순찰자들과 아웬의 형제들이 아라곤을 돕기 위해 달려오는 감동적인 해후 등은 모두 생략됐다.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가 톰 봄바딜을 버렸다는 사실은 모든 이들이 아쉬워하는 선택. “최초의 도토리와 최초의 빗방울을 기억하는” 늙은 톰 봄바딜은 유쾌하고 선량하고 지혜로운, 태초의 존재다. 그는 프로도와 친구들을 최초의 위기에서 구해냈지만, “반지의 행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잭슨의 기준에 미달하여 사라진 여러 비운의 존재 중 하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