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다. 노래를 못하면 가수가 될 수 있을 리가 없고, 성적이 나쁘면 갈 수 있는 대학의 범위가 좁아지는 것은 누구나 당연한 일이라고 이해한다. 일을 하기 시작하면, 자기가 어느 정도 출세할 수 있을지 자기 기량을 알게 된다. 그런데 어째서 사랑에 관해서만은 자기에게도 언젠가 근사한 사랑이 찾아올 것이라고 천진하게 믿어 의심치 않는가. -14쪽
리에코는 전부터 어딘가 크게 '일렁이는' 부분을 가진 여자였다. 야무지고, 머리도 좋고, 냉정하면서도 부드럽다. 그런데 늘 그녀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비 내리기 직전의 숲처럼 뭔가가 일렁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히고 차분하게 정돈된 가운데 터진 부분이 단 한 군데 있는데, 다른 부분이 완벽한 탓에 그 터진 곳이 눈에 더 띈다. 오히려 그 터진 곳 너머에 망망한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 그것이 일종의 신비스러운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1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