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다의 환상 - 하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절판


이해할 수 없다. 노래를 못하면 가수가 될 수 있을 리가 없고, 성적이 나쁘면 갈 수 있는 대학의 범위가 좁아지는 것은 누구나 당연한 일이라고 이해한다. 일을 하기 시작하면, 자기가 어느 정도 출세할 수 있을지 자기 기량을 알게 된다. 그런데 어째서 사랑에 관해서만은 자기에게도 언젠가 근사한 사랑이 찾아올 것이라고 천진하게 믿어 의심치 않는가. -14쪽

자기혐오는 하지 않기로 하고 있다.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지도 않고, 시간 낭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년에 몇 번은 자기혐오 쪽에서 제멋대로 나를 찾아온다.
그쪽에서 안 올 거면 이쪽에서 가주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거침없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내 안에 털썩 주저앉는다.
-88쪽

리에코는 전부터 어딘가 크게 '일렁이는' 부분을 가진 여자였다. 야무지고, 머리도 좋고, 냉정하면서도 부드럽다. 그런데 늘 그녀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비 내리기 직전의 숲처럼 뭔가가 일렁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히고 차분하게 정돈된 가운데 터진 부분이 단 한 군데 있는데, 다른 부분이 완벽한 탓에 그 터진 곳이 눈에 더 띈다. 오히려 그 터진 곳 너머에 망망한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 그것이 일종의 신비스러운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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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7-01-08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80p,「리에코는 전부터 어딘가 크게 '일렁이는' 부분을 가진 여자였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든다. 일본어도 번역도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서, '일렁인다'는 표현이 작가의 탁월한 선택인지 권영주라는 옮긴이의 기막힌 센스인지를 알 바가 없어 안타까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