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ephistopheles > 전설의 지붕장인

오늘도 그녀는 그 옛날 고려청자를 구웠던 고려의 도공들처럼 모니터앞에서 열심히
지붕을 작업중이였다. 마지막 색을 입히고 글씨를 세심하게 다듬어 박아 넣은 후,
전체적인 틀이 완성되어 갔을 때 갑자기 그녀는 외치기 시작했다.

"아.....이건 아니야....함량 미달이라구..!!! 델리트~!"

그렇다 그 옛날 가마에서 나온 도자기를 살펴보며 일반인의 눈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미세한 결함을 발견하고 비교적 깨끗한 도자기를 망치로 사정없이 깨부시는 그 모습
과도 너무나 흡사했다.

"지극정성으로 목욕재계까지 하고 세상의 물질적인 욕심까지 버리면서 작업했는데..."

자정을 넘어간 제법 늦은 시간 그녀는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 모니터에 이마를 콩콩 박으
면서 자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바람이라도 쐬면 좀 나아질지도 몰라...."

제법 추워진 11월 말...그녀는 어둠컴컴한 골목길을 따라 목적지도 없이 차가운 밤공기
를 폐속에 불어넣으며 복잡한 머리속을 깨끗하게 비우기라도 하듯 정처없이 이골목
저골목을 방황하기 시작했다..그러던 중 저 멀리 반짝반짝 간판에 불을 밝히고 있는
편의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출출한데 요기라도 해야겠군.."

일반적인 편의점이라고 생각하고 그녀는  반짝반짝 분홍색 간판이 밤하늘을 밝히는
편의점 출입문을 조용히 열어 재꼈다..

손님은 한사람도 안보였고 편의점 직원으로 보이는 묘하게 생간 소녀 하나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분홍머리에 계절에 안맞는 어깨가 다 드러난 옷을 입은 그 소녀는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을 5초정도 지켜보더니 바로 시선을 돌리고 저멀리 무엇이 있을지도
모를 허공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묘한 분위기의 편의점..범상치 않는 기운을 풍기는 편의점 직원까지...잠깐 멈칫한
그녀는 이내 출출한 뱃속사정으로 인해 이러한 평범치 않는 분위기를 애써 무시하면서
그녀가 겨울이면 즐겨찾는 간식거리 호빵 가판대 속에서 따뜻한 호빵 하나를 꺼내기에
이르렀다.

카운터에 와 계산을 하려는 그녀를 바라보는 분홍색 머리카락의 그 점원은 억양없는
목소리로 갑자기 외치기 시작했다.

"사은기간입니다...호빵하나 사시면 4개를 덤으로 드립니다."

순간 당황하던 그녀는 그렇게 많은 호빵은 필요없는데....라고 말할려고 했으나 점원인
그 분홍머리소녀의 엽기적인 행동에 말문이 막혀버리게 되었다.



그 분홍머리 소녀는 입을 크게 벌리고 입속에서 금방 쪄냈을 법한 따끈따끈한 호빵4개를
꺼내 비닐 봉지에 담기 시작한 것이였다. 머리를 식히겠다고 나온 전설의 지붕장인 진우
맘...출출한 속을 달래기 위해 생소한 편의점에 들려 이런 공포스럽고 엽기적인 상황을
마주치게 되자 재빨리 자리를 피해야 겠다는 생각만 들어 버렸다.

분홍머리 소녀에게서 재빨리 호빵 봉지를 낚아챈 진우맘은 호빵값을 계산하고 출입문쪽으로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때...억양이 없는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카운터에 등을 지고 출입문을 향하던 그녀...순간 발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공포감에 휩싸이
기 시작했다..아..아직 작업할 지붕이 많이 남아 있는데... 아직도 나의 예술혼을 계속 태워야..
하는데..이대로..끝인가....오만가지 생각이 주마등처럼 머리속을 뱅뱅 돌고 있을 때...또다시
등뒤에서 들리는 억양없는 분홍머리 소녀의 목소리....

 

 

 

 

 

 

 

 

 

 

 

 

"봉투값은 주시고 가셔야......"



다리의 힘이 풀려버리는 진우맘은 재빨리 봉투값을 카운터에 던져놓고 한손엔 호빵봉지를
이소룡의 쌍절곤마냥 돌리면서 거의 날다시피 집으로 달려왔다. 바람이나 쐬자고 나간 밤외출에
그녀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놀라운 상황을 부딪쳤으니 그건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그녀는 대략 이런 표정으로 집까지 뛰어갔다고 함..

집에 도착한 그녀는 지붕작업이고 뭐고 그 분홍머리 소녀 입에서 나온 호빵 4개와 자신이 직접
구입한 호빵 1개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책상에 던져 놓고 곧바로 이불속으로 몸을 숨겼다.

안식처에 무사히 돌아왔다고 긴장이 풀리는 순간...그동안의 밤샘작업으로 인한 피곤은 한꺼번에
몰려왔고 이내 그녀는 깊은 잠에 들어버리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눈을 비비면서 일어난 그녀는 그날 새벽에 경험한 그 기괴한 편의점의 공포를 떨쳐버
리기라도 하듯 새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수면이 부족하고 영양상태가 부족해 헛것이 보인걸지도 몰라.."

다시 지붕작업을 위해 의자에 앉은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가 새벽에 들어오자마자 책상에
던지다시피한 그 호빵봉투는 텅 비어 있었던 것... 더 놀라운 사실은...그녀가 작업을 하다 지워버린
그 하얀 모니터 화면엔 따끈한 김을 모락모락 피우면서 5개의 호빵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였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그 호빵 다섯개로 채워진 지붕의 가운데에는

"서재는 무슨~ 그냥 책방"

이라는 글씨가 찬란하게 박혀 있었다.



뱀꼬리 : 지붕의 호빵 다섯개 중 세개가 반쪽이 난 이유는 평소 야채호빵을 좋아하는 진우맘이
그 분홍머리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편의점에서 도망쳐 나오면서 그러니까 그 밤길을 달려가면서
베어 물었던 흔적이라고 한다. 하필 베어 물은 호빵이 죄다 팥이 들은 호빵이라는 슬픈 사연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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