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벌판
응웬옥뜨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끝없는 벌판>은 동명의 소설집에서 한글로 번역되어 단행본으로 출간된 베트남 소설이다. 

헝가리나 포루투갈 등의 비영어권 국가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신선한 충격.
내가 우물안 개구리처럼 영미문학(또는 일본과 한국문학)에만 심취해 있었던 것이 부끄럽기도 했었다. 

그리고 여기 또 한 권의 신선한 충격이 있다.
(신선한 충격...이 얼마나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표현인가. 그래서 이 표현은 이 책에 더욱 잘 어울린다)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의 눈과 귀, 개인의 경험만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다'는 자신의 결론과 믿음에 정말 많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한국 독자들에게 쓴 저자의 말 중에서)


책을 읽는 내내 한국 시골길마다 펄럭이던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현수막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어떤 광고에는 '말 잘듣고 도망 안갑니다'라는 수식어까지 붙어 있었다)


내가 읽고 보아 온 세상은 어쩌면 고작 내가 최대한 펼칠 수 있는 고작 '한 뼘' 정도의 세상은 아닐까.
(어쩌면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담담하게 써내려간 이 짧은 소설은 생각만큼 '쉽게' '금방' 읽혀지지는 않는다.
그림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베트남 빈민가와 메콩 강가의 비린내와 물때가 책 읽는 속도를 자꾸 떨어뜨렸다.
그렇다고 책을 내려 놓을 수도 없어서 결국은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고 만다. 


번역글이지만 작가의 섬세하고 시적인 문체가 그대로 느껴졌다.
작가가 전하는 말처럼 '지독한 남부 베트남 사투리'를 이처럼 매끄럽게 옮겨놓은 번역가의 노고를 치하한다.

 
다만 마지막 페이지에서 갑자기 시점을 바꿔, 아니 시점을 혼용하여
'녀석'과 '딸'이라는 3인칭 명사를 '혼동'한 것이 매우 아쉽고 실망스럽다. 
작가의 문체적 의도를 파악해보려고 몇 번을 읽어보았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조잡하다. 

젖은 눈물 없이 가슴으로 마른 눈물을 흘리며 읽었던 글인데,
마지막 몇 문단에서 갑자기 길을 잃고 헤매게 되어 짜증스럽고 서운했다. 


아무튼, 짧지만 강렬하고, 담담하지만 치명적인, 여운이 크게 남는 글이다. 


 

2008년 7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위스 예술 기행 - 뉴욕보다 강렬하고 파리보다 매혹적인 매혹의 예술여행 4
이수영 지음 / 시공사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언젠가 스위스에 살면서 스위스 미술관들에 관한 책을 써야지....했다.

그래서 지난 겨울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반가움과 실망이 반반이었다.

(젠장, 선수를 놓쳤다 ㅋ)

 

남한의 반 정도, 인구는 800만(고작 부산 경남 인구 정도?)이 안되는 이 조그만 나라에

크고 작은 미술관(박물관도)이 엄청 많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크고 작은 미술관의 소장품이나 기획 전시 내용이 정말 알차다는 것이다.

(눈이 휘동그레지다 못해 괜히 트집 잡고 싶을 만큼, 배가 아플 만큼 많고 좋다) 

 

스위스가 중립국이 된 것은 

열강(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 휩싸인 가난한 소국에서 '생존 전략'이었다. 

한국에서 이완용 등이 '현실'과 '대세'를 핑계삼아 나라를 팔아 먹을 때도,

스위스의 지도부는 나치제국이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 때 조차 '현실 실용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을 꾸짖으며

'중립은 곧 독립국가로서의 존속을 의미한다'며 꿋꿋하게 버텼다.

 

힘 좀 쓴다는 조폭들이 내 집을 빙 둘러싸고 서로 지나가겠다고, 서로 자기 편 안들면 죽인다고 협박인데...

어디 왠만한 강심장이나 굳은 의지 없이 밤에 두 발 뻗고 잠이나 잘 수 있겠는가. 

밥도 목구멍으로 안 넘어 갈 것 같다.

 

실제로도 스위스는 그렇게 두 발 뻗고 잘 수 없었으며, 심지어 목구멍으로 넘어갈 '밥'도 없을 만큼 가난했다.

오늘날 1인당 GDP가 5만불에 육박하고 있는 부자나라 '스위스'는 결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있으므로 각설하고..^^::)

 

암튼, 그런 맥락에서 스위스의 예술환경을 해석해야 한다.

열강의 아귀다툼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위스가 수많은 지성인과 예술가들의 '게토'가 되었던 것도 그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서문에 밝히듯이 외국인으로서

"미술관을 관람하는 것이 스위스가 가진 부를 조금이라도 누릴 수 있는 방법이다"

"스위스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적은 돈으로 값진 보물을 마음속에 담아 가는 것이다."

 

물론, 미술이나 건축 등 예술분야에 관심과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보람과 감동이 더욱 크리라.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은 정말 '보물지도' 같다.

 

스위스에서 직접 살면서, 또 미술공부를 하면서, 현재도 그쪽으로 생업을 사는 사람으로써 쓴 책이라

그냥 지나칠 데가 없을만큼 책의 내용은 알차다.

배운 것도 많고, 새로운 발견을 많이 해서 무척 보람 있었다.

 

간략한 여행정보와 조언도 확실한 목적 의식을 갖고 여행을 해 본 사람의 노하우가 묻어난다.

가끔 작가의 지나친 '낭만주의적 감성'에 닭살이 돋기기도 했지만, 솔직히 글솜씨가 좋다고 칭찬해야 겠다.

 

방문하고 싶은 미술관이나 흥미로운 여행 정보를 체크하면서 책을 보다보니 다음과 같은 사태가 일어났다.

^^;;;;



 

그만큼 나에게는 커다란 '숙제'를 안겨 준 책이다.

 

다행히 내가 이용하는 은행 직불카드로 대부분의 미술관을 무료 입장할 수 있어서

(국립 미술관은 요일별 시간별로 무료 관람시간대가 따로 있다)

조만간 발품과 기차삯을 팔아 하나하나 둘러 볼 작정이다.

 

이미 둘러 본 곳도 많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꼭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새로운 감성과 지식으로 무장한 나, 갈 길이 멀다.

 

끝으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얻는 것은 단순히 스위스의 값진 미술관 리스트나 예쁜 사진만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은 빛난다.

 

"그렇다. 내가 잠잠하지 않고 내 속의 풍랑과 파도가 거세다면 어느 것도 담아낼 수 없다.

그 어떤 비전도 내 속에 비치지 않으며 그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과의 관계도 예술과의 관계도 먼저 내가 잠잠해야 넉넉히 품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소중한 진리를 깨달은 이 여행을 통해 이제 한층 성숙해진 나를 되돌아본다."

(맺는 글, 317쪽)

 

2008년 5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중문화의 겉과 속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나의 강한 주장을 펴거나 상상의 나래를 펴기 위한 무대가 아니다. 이 책의 주된 목적은 어디까지나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에 대한 이해)' 교육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견해를 소개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수많은 인용과 참고문헌을 귀찮게 여기지 말고 추가적인 공부를 위한 안내로 여겨준다면 좋겠다. (머리말 중에서)"

 

그렇다. 이 글에 대한 나의 총평도... 대중문화 '소사전' 정도.

저자의 의도대로 공부할 게 많았던 책, 숙제를 많이 남겨준 책이다. 

 

2008년 4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에프라임 키숀 지음, 반성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에 두 번 속았다.

 

우선은 보통 단행본 두께에 속았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예사롭지 않은 종이 두께에 놀라게 된다.

게다가 책의 반이 그림인데, 거기다 인덱스 등 빼고나면 읽어야 할 텍스트는 100페이지라도 될까?

혹시나 오해할까봐 그러는데, 이건 칭찬이다.

현대 예술에 대해 아주 가볍게(?) 후딱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니까.

게다가 같은 이야기를 줄창 반복 하고 있는데, 더 길어졌다면 차마 다 읽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책에 대한 언론이나 독자(?) 리뷰에 속았다.

분명 유쾌하고 재미있고, 웃기다고 그랬는데....

'거침없는 풍자'라는 부제에서 내가 너무 많은 걸 기대했나 보다.

밑줄 그으려고 색연필까지 들고 비장하게 <피카소의 달콤한 풍자>를 읽었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딱 한 번인가 피식~하고 웃었다. (너무 비장하게 읽었나?)

 

어쩌면 풍자와 해학을 읽는 나의 지적 수준이 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대 예술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화가(비평가)의 잘못인가, 관람객의 잘못인가?

이 책에서는 물론 전자의 농락이라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또는 번역)의 잘못인가, 독자(나)의 잘못인가?

이 경우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탓이라고 '겸양'을 떨어야 겠다.

(사실, 어느 쪽의 잘못도 아닌 동시에 모두의 잘못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게릴라 걸의 <서양미술사>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이 웃었던가.

http://blog.naver.com/jinirock78/35725524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나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을 읽으면서는 무릎이 후들거릴 정도였다.

(하도 옳거니!하며 무릎을 쳐대서) 

 

풍자와 해학은 '언어유희'와 문체, 은유와 상징으로 어우러진 알레고리가 핵심아닌가?

그냥 간단히 말해 '말장난'이 묘미인데, 이 책은 그런 쫀득함이 없다.

오히려 읽는 동안 눈에 거슬리는 비문과 부적절한 단어 선택 때문에 저자의 진의를 가려 읽기가 어려웠다. 

나의 알레고리 해석력이 딸리는 것인지, 예의 번역문체가 갖는 고질적 한계인지...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것은 즐거웠다.

특히 키숀의 예술 취향은 나와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피카소의 블루시대를 높이 평가하거나, 달리나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를 좋아하는 것,

그리고 잭슨 폴락이나 앤디 워홀 등을 '우습게' 보는 것도 같다. ㅎㅎ

그러면서도 스스로 자신을 현대미술의 팬이라고 하는 것 역시.

 

따라서 이 글은 내가 별로 '웃지' 못한 점만 제외하면, 많은 부분에서 공감가는 글이었다.

특히 그의 '예술관'은 나의 '예술관'과도 일맥상통한다.

나 역시 소수의 엘리트나 비평가만을 위한 예술,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따위는 믿지 않는다.

 

 

자신의 작품이나 자신의 예술을 감상하는 관객에 대한 사랑 없이 진정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을 위하는 배려나 애정이 빠지게 되면 이기주의나 오만, 허영심, 아니면 효과만을 노리는 마음만이 중요하게 된다. 예술은 관객이 작품에 접근할 수 있고,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 호소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할 수 있다. 예술은 그림을 보는 관객에 의해 비로소 생겨가는 것이다. 168쪽

 

 

현대미술과 그 추종자들(비평가와 수집가)을 안데르센 동화의 '벌거 벗은 임금님과 아첨꾼'들에 비유한 것도 정말 탁월했다. 현대미술은 일반 대중들이 '벌거 벗은 임금' 진실을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고, 대신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사실, 그것이 문제의 발달인 것이다. 도대체 '예술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말이다.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터무니없는 예술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천문학적인 가격에 있다. 97쪽

 

그림 한 장에 수백만 마르크를 지불하는 것은 예술과 문화의 본질적인 가치평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무 가치도 없는 작품 하나하나에 터무니없이 돈을 처바르고, 그 작가들을 신격화하며 그들을 알 수도 없는 말로 칭송하는 것은 돈에 대한 탐욕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후략) - 장크 갈렌에서 보낸 독자 편지 중,  97쪽

 

 

그럼에도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자면 이 문제 역시 그리 간단치가 않다.

현대 예술을 '쓰레기 더미'로 전락시킨 일부 현대예술가와 비평가들도 문제지만, 

반면 무엇을 '쓰레기 더미'로 볼 것인가하는 기준에 있어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자도 '인정'하고 있듯이 그의 예술 관점은 다분히 '보수적'이다.

그러나 누구나 자기의 '취향'과 '관점'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만약 시장이나 담당 관리가 그런 일(엉터리 현대미술을 구입하는 일)을 하기 위해 내 돈 지갑에 손만 대지 않느다면, 나로서는 누구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엉터리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엉터리 조각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발 저 높으신 비평가 양반들만은 그 하찮은 물건들을 가지고 내 신경을 건드리지 말기 바란다. 특히 건강상의 이유에서. 118쪽

 

 

결국 '취향'의 문제나 '관점'의 문제로 상대성과 다양성 철학에 빠져버리면 이도저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 그런점에서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 자기 뜻을 주장한 그의 용기가 가상하고 멋지다.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그림을 그릴 권리가 있는 화가나, 그것을 원하는대로 비평할 권리가 있는 비평가나,

그것을 자기 돈 주고 얼마든지 살 권리가 있는 수집가들처럼

저자 키숀 역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암튼,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는 여러모로 공감과 아쉬움, '애증'이 교차하는 씁쓸한 글이었다.

 

 

2008년 4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하촌 범우문고 258
강경애 지음 / 범우사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희망이 없는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소설가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강경애는 현실의 절망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스스로 절망 속을 헤집고 나가게 한다.

그 안에서 희망을 읽어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읽어내지 못한다고 해서 놀랄 것도 없다.

그녀의 글에는 '희망'에 대한 거짓 희망 따윈 없다.

 

<인간문제>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나게 된 강경애의 단편 소설.

그녀의 글을 읽는 것은 고통이다.

오만 인상을 쓰면서, 입을 틀어막으면서, 혀를 끌끌차면서도 

차마 눈을 떼지 못하고, 귀를 닫지 못하고 목도하는 끔찍한 사건사고 소식이나, 전쟁 사진, 또는 영화처럼 말이다.

 

<지하촌>은 식민지 시대의 가난한 농가를 배경으로

장애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식민지 가난한 농민들의 연정과 폭력, 분노와 연민, 절망적인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2008년 5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