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기행 - 삶과 죽음을 넘어서
법정(法頂) 지음, 김홍희 사진 / 샘터사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나 지루한 책이었다.

기대하고 꿈꾸며 펼쳐 든 책이었으나, 내 기대와 꿈은 아끼던 와인잔이 깨진 듯 아프게 깨어졌다.

인도에 가고 싶었다. 인도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러나 법정이 전해 준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인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이 글을 통해 법정을 새로 알게 되었다.

결과는 혼돈과 실망이다. 기행문으로서도, 법정의 글로서도 실패다.

그저 여기저기서 인용한 글들과, 법정의 눈을 통해 보여진 사물과 사건의 나열일 뿐이다. 진지한 고찰이나 사색의 흔적은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왜곡되어 전달된다.

오히려 '무소유'나 '산에는 꽃이 피네'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과 외경심을 우습게 만들어 버렸다. 그만큼 인도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일관성 없이 어처구니 없고 씁쓸했다.

조선일보의 후원을 받고 인도에 간 것 부터가 그랬다. 종교인으로서, 평생 덕을 쌓으며, 인간사의 고통과 슬픔을 고행과 수행으로 수련해 온 법정이 아니던가. 강원도 산골에 오두막을 짓고, 한 겨울에 목 마른 짐승을 위해 얼어 붙은 강에 물 구덩을 깨던 그가 아닌가?

그런 그가 지성과 종교인의 탈을 쓰고, 역사 의식 없이 조선 일보의 후원을 받았다는 것 부터가 우습다. 평생 남에게 빚을 지지 않고, 소유하지 않는 것을 덕으로 알던 그가 차라리 무전여행으로 두 발로 걸어서 인도에 갔기를 바란건 내가 너무 순진한 것인가, 잔혹한 것인가?

그렇다면 적어도 에어컨이 너무 세서 감기에 걸렸다는니, 낡은 호텔에 따뜻한 물이 안 나와 샤워를 못한다느니, 법당 앞에서 염치 없이 시주돈을 걷는 관리인 들을 '거지떼 같은 녀석들'이라고 표현하지도 않아야 했다.

물건을 사려고 흥정을 하는 법 정의 모습은 오히려 인간다웠다. 하지만 성지 순례를 하러 갔으면 성지 순례와 함께 인도인의 일상을 돌아보며 그 즐거움과 슬픔을 담아다 줄 것이지, 인도 최고급 지역 호텔에서 열린 전토연주회에는 왜 가는가? 언제부터 그런 인위적인 화려한 귀족들의 쇼에서 인도의 민생의 삶을 본단 말인가?

하물며, 그곳에서 고작 하는 말이, 인도에는 미인들이 많은데 하나같이 발은 갈퀴발이다... 라고 하니. 예쁜 무희들 발이 하나 같이 못생겼다고 한탄하는 그의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

미는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거늘, 발이 못생겼다는 묘사가 아니라, 그 못생긴 발에서 맨발 또는 조잡한 샌들로 거리를 누비는 가난의 흔적과 생에의 의지를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이 책은 읽는 내내 내 심경을 건드렸다. 끝까지 겨우 읽었을 때는 책을 던져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책 속에 담겨진 김홍희 씨의 사진 때문에 그만 참았다. 오히려 인도의 에너지와 희망,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의 사진은 조용하지만 더욱 많은 말들을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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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mankona 2012-04-30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던져버리고 싶었던 인도기행'
저에게 던져 주시면 안될까요?

가을향기 2019-07-1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대의 편협한 마음이 아쉽네요..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다시 읽어도 그 맘일까요?

몸냥 2024-05-25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식 없어서 오히려 더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