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년으로 가득한 세상을 꿈꾸며..

미친년 -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
이명희 지음 / 열림원 / 2007년 3월

책 전반에 흐르는 그 긍정적 에너지로 인해서 나는 가슴이 벅차고 피가 뜨거워졌다. 절망과 고통, 상처와 분노를 이겨낸 그 강렬한 희망과 낙관, 치유와 용서의 에너지. 그것이 나를 울고 웃게 했다. 인터뷰한 인물들 하나하나가 뜨거운 입김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뜨거운 입김에 차가운 냉소주의나 회의주의, 미지근한 피해의식이나 열등감 따위는 낄 자리가 없다.

이명희는 9명에게 대동소이한 질문을 하고 있다. 각 개인의 직업과 관련한 가치관(예술관, 종교관, 학문관 등), 여성의 정체성과 엄마와 딸의 관계, 결혼과 가정, 그리고 이혼. 여자로 늙어간다는 것의 개인적 사회적 의미, ‘미친년’ 소리를 듣게 된 에피소드, 페미니즘과 사회 등이다.

모두가 각기 다른 길을 가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같은 목소리로 같은 길을 답하는 부분이 있다. ‘자신을 사랑하라. 그러려면 자신을 알고, 자신의 욕망과 꿈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다음 희망과 열정을 가지고 그 길을 홀연히 가라. 내가 사는 길이 남도 살리는 길이다.’ 또한 남성 여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무엇이 가장 인간적인 삶인가’를 고민하는 모습이 일치한다.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여자라는 것이, 그리고 늙어가는 것이 더 이상 억울하지 않다. (어떤 이에겐 어쩌면 그동안 여자라는 것이 ‘억울한 것’인지도 몰랐다가, 돌연 억울할 필요가 없다고 깨닫는 과정일 수도 있다. 또는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여전히 ‘억울하지’ 않은 그녀들도 존재할 것이다. 물론 억울하지 않은 그녀들의 이유들은 그녀들의 수만큼 천차만별일 것이다.)

이 책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관한 글이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 정치적 ‘불구’일 수밖에 없었던 여자들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남녀 모두에게 희망이다. 한쪽 성이 ‘불구’인 사회에 다른 한쪽 성도 ‘불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애에만 연민과 피해의식을 갖는 한 우리는 영원히 불구다. 특히 내면의 장애는 더욱 심각하다. 때문에 나는 이 땅의 모든 남녀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화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으로 이 글을 열독해보길 권하는 바이다. 특히 여성들은 이 글을 통해 자기 내면의 장애를 직면하는 진짜 뜨거운 싸움부터 치러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태연과의 인터뷰가 가장 좋았다.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삶의 에너지가 가장 뜨겁게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세상과 화해한 방식이 찬란하다.

반면 글로리아 스타이넘과의 인터뷰는 질문자와 답변자 간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경직되어 있고, 매끄럽지 못하다. 실제 인터뷰 내용도 빈약했는지, 억지로 구색을 맞춘 느낌이다. 한마디로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하고 싶은 질문만 하고 있군.’과 같은 인상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가려운 곳은 긁어주지 못하고, 엉뚱한 곳만 집적거린 느낌이다. 물론 이러한 인상은 다른 8개의 인터뷰 중에서도 종종 받았는데, 글 전체의 분위기를 헤칠 만큼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글 읽기에 방해가 되었던 점을 하나 더 언급해야겠다. 전반적으로 인터뷰의 가장 기본인 ‘한 번에 한 가지 핵심을 담은 질문’이라는 원칙을 깨고 모든 인터뷰의 질문이 난삽하다. 독자도 질문 내용을 다 기억하거나 정리하지 못한 채 답변을 읽어야 한다. 인터뷰 한 긴 내용을 줄이고 편집하면서 비슷한 답변을 정리하다 그런게 아닌가 싶다. (설마 실제 인터뷰에서도 저렇게 질문을 했을 리는 없겠지. 그랬다면 그것은 정말 ‘기본이 안 된 인터뷰’다.)

그러나 역시 답의 핵심이 같았다면, 질문의 핵심도 추렸어야 했다.  특히 질문은 핵심이 다른 4-5문장인데 답변은 그 질문 중 한 두 개만 겨우 충족하는 경우, 그 질문은 아예 없으나 마나하다. 지면만 낭비하고, 독자가 핵심을 파악하는데 방해가 되며, 인터뷰 상황에 몰입하고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자신이 담고자 했던, 묻고자 했던 의도와 의욕을 살리느라 과유불급 했다. 독자를 배려하지 못하고, 인터뷰 메시지에 더욱 힘을 실어주지 못한 저자의 상식과 센스, 겸손이 아쉽다.

2007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