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성의 사내 필립 K. 딕 걸작선 4
필립 K. 딕 지음, 남명성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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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전 그동안 재미있게 봤던 상당 수 영화들의 원작자가 필립 K. 딕이라는 걸 알고 원작소설을 읽기위해 찾아보던 중 필립 K. 딕의 소설들이 시리즈로 엮어 출간된다는 소식에 구입해서 읽었던 소설이다. 원래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읽어보려고 마음 먹었지만 시리즈가 차례로 출간 중이었고 전집은 이가 빠지는걸 못 참는 성격이라 첫 권부터 차례대로 읽어나갔었다.


2015년도에 아마존 스튜디오에서 'The man in the high castle'이라는 동명의 드라마를 시작했지만 원작소설의 기본 구조와 등장인물 몇을 불러와 전혀 다른 이야기로 각색되어 원작과는 다른 스토리로 엮어가고 있다. 최근에 시즌 1과 2를 구해서 보고 있는데 비교할 겸 다시 꺼내 읽어봤다.


필립 K. 딕의 '높은 성의 사내'는 독일과 일본이 전승국이 되어 전세계를 양분하여 점령하고 있는 대체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과거 일본의 지배하에 놓였던 우리에게는 어쩌면 친숙한(?) 소재였다. 하지만 미국인들 특히 이 소설이 쓰여진 1960년대에는 미.소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세계를 양분하다시피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대이니만큼 엄청나게 신선하게 다가 왔을 것 같다. 하긴 2015년 제작된 드라마 역시 신선하다 못 해 충격적이었으라. 독일과 일본의 2등 국민으로 전락한 미국의 모습을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냈으니. 게다가 뉴욕 한복판에 휘날리는 나치문양이 들어간 국기들이란!


소설로 돌아가서 그 때도 그랬지만 이 소설이 쉽지 않았던건 소설 속에 주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라는 제목의 또다른 대체역사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 갖는 의미와 그로 인한 결말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읽어봐도 이 소설을 SF물로 봐야하는건지 대체역사가 배경인 스릴러물로 봐야하는 건지 알송달송하다. 우리의 '이상'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주역'이라는 전통적인 동양의 소재를 자연스럽게 엮어서 대체역사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상업적 흥미로만 치우치지 않고 피지배민으로서 갖는 지배층을 향한 동경과 열등감을 주인공들을 통해 세심하게 그려낸 점은 수많은 상을 수상한 훌륭한 작가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젊은 일본인 부부와 사교를 맺을 기회였다. 그것도 그를 양키 또는 잘해 봐야 공예품을 파는 장사치로만 알아주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걸 기본으로 하는 관계다. 그래, 이런 젊은 사람들, 떠오르는 세대, 전쟁이 일어나기 전 시절 또는 아예 전쟁 차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이 세계의 희망이다. 그들에게 신분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언젠가는 사라질 거야. 칠던은 생각했다. 언젠가. 사회적 신분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배받는 자와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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