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의 피크닉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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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 아서 C. 클라크 '과학 3법칙'中


'노변의 피크닉'은 우리의 과학기술과 상식을 월등히 뛰어넘은 외계로부터의 방문자가 남긴 폐기물 혹은 유실물로 추정되는 잔재물을 찾아 불법 유통시키는 것을 업으로 삼은 일명 '스토커'의 이야기이다. 외계 문명과의 첫 접촉을 뜻하는 '퍼스트 컨택트'를 다룬 대부분의 소설 속 주인공은 보통 천문학자이거나 최소한 과학자와 그에 준하는 지적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우연히 외계와의 조우에 노출된 지역의 평범한 일반인이며 그의 활약도 그저 생계나 일확천금을 노린 도굴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외계의 잔재물은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인간에게 이해불가한 악영향을 끼치는 위험물이며, 이 잔재물에 의해 영향을 받아 적대적으로 변한 환경 또한 스토커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다양한 명칭이 붙은 몇몇 외계의 잔재물은 기술의 발전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동화 속 '거지 왕자'가 옥쇄의 상징을 이해 못하고 옥쇄를 호두까기 도구로 사용했던 것처럼 외계의 잔재물로부터 습득한 기술조차 몰이해 속에서 얻어낸 우연의 산물일 뿐이므로 제대로 맞게 이용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러한 잔재물들이 우리 인류와의 소통을 원하는 외계 문명의 접촉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인가라는 질문에 이르면, 과연 우리 인류의 문명이 외계 문명의 관심을 끌만한 수준인가하는 자조적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접촉 대상인 두 문명의 차이가 인간과 개미 정도라면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거나 존재 여부조차 인지할 수 없을 정도 아닌가하는 다소 자학적인 의문마저 제시하게 되는데 피크닉을 나온 외계인의 부주의함에 의한 부수적 피해일 수도 있겠다는 가정을 하기에 이른다.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이 우리 인류 문명의 과오로 인해 아무 것도 모르는 동식물들이 피해를 입은 것과 마찬가지로 '노변의 피크닉'을 즐긴 외계 상위 문명의 우연한 방문으로 인해 피해입은 하위 문명의 설움일지도 모른다는 자조적 스토리는 우주에 대한 겸허를 갖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오늘날 '6번째 대멸종'의 주범인 인류 문명의 오만함을 풍자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외계의 잔재물 중 가장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 '금색 구체'를 목표로 탐사하는 과정은 마치 원전사고로 인해 피해입은 방사선 위험 지역을 탐사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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