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리언셀러 클럽 한국편 001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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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집 화장실 세면대가 물이 잘 안 빠졌던 적이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워낙 살림에는 무지한지라 어머니께 이유를 물었더니 막힌 것 같다며 파이프를 열고 청소하라고 하셨다. 파이프를 열었을 때 나는 보고야 말았다. 마치 뱀처럼 구불구불한 수백 개의 긴 머리카락이 공처럼 뭉쳐져 있었던 것을. 때를 비롯한 오래된 이물질들이 온통 머리카락에 붙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그것을 보고 나는 구토를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범인은 여동생이었는데, 그 아이의 긴 머리카락이 파이프에 걸려 물이 내려가지 않았던 것이다. 여성의 검고 긴 머리가 햇빛에 찬란하게 빛날 때는 아름답다. 하지만 긴 머리가 빠져 바닥에 꾸물꾸물 뒹굴고 있을 때는 어딘지 징그럽고 불쾌한 느낌이 든다. 신의 조화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되는 너무도 완벽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몸에서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조금만 돌려보면 이처럼 낯설고 불쾌한 감정이 드는 것이다.

 

김종일 작가의 공포소설 <몸>은 바로 이런 류의 공포를 추구하고 있다. 아예 제목을 <몸>으로 붙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몸이라는 인상적인 소재를 선보이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일종의 연작 단편집이라 할 수 있는데, 영화감독 양정모 씨를 찾아온 정체불명의 남자가 던지고 간 <몸>이라는 원고에 담긴 내용을 액자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양정모 씨는 우리 독자와 같은 입장에 서 있다. 원고를 읽으며 양정모 씨가 느낀 공포를 독자도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몸>은 눈, 입, 얼굴, 귀, 머리카락 등으로 나뉘어진 10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편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각각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가장 마지막 단편인 '공포'에서 모든 단편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다. 각 단편마다 정글같이 냉엄한 현대사회 속에서 소외당한 등장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예컨대 '눈'에서는 한쪽 눈을 잃은 소년이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멸시에 눈을 뜨게 된다. '입'과 '얼굴'에서는 능력은 있지만 뚱뚱하거나 외모가 못난 여자가 등장해 사회를 이루는 주류세력들과 갈등을 겪는다. 잘못이 주인공들에게 있는 것이 아닌 경우지만 세상의 가혹한 시선은 여지없다. 결국 <몸>의 주인공들은 세상과의 갈등 속에서 점점 정신과 신체의 균형이 무너지며 이른바 파멸을 맞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지옥같이 끔찍한 신체 변형과 훼손이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지는데,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말을 하면 실례겠지만 작가분의 뇌를 해부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길래 이토록 엽기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상상을 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이 작품에 쓰인 공포 코드는 날카로운 칼에 손가락이 베이듯 직접적이고 예리하며 불쾌하다. 물론 일상에서 전혀 맛볼 수 없는 이런 불쾌감을 즐기기 위해 이 작품을 집어들 독자가 많겠지만. 작품마다 한 인간의 몸이 산산이 조각나고 파괴된다. 어떤 장면들은 구토가 나올 듯 잔인하고 징그럽지만 오체분시를 일삼는 헐리웃 공포영화의 그것처럼 뻔하거나 익숙하지는 않다. 상상을 해보라. 왜소한 체격으로 인한 세상의 냉대를 견디다 못해 유일한 위안거리인 컴퓨터에 심취한 남자를. 그는 날이면 날마다 컴퓨터를 끼고 살다, 마침내 컴퓨터와 한 몸이 되어버린다. 달팽이 눈처럼 튀어나온 눈이 모니터에 들러붙고, 시뻘건 실핏줄들은 모니터와 엉겨붙어 있다. 컴퓨터의 케이블은 남자의 몸에 가닥가닥 꽂혀 있고. '몸'이라는 단편의 내용이다. <몸>의 공포는 이처럼 우리의 오감을 강하게 자극한다. 상상하면 할수록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10편의 단편이 모두 특색이 있고 각각 다른 내용들을 다루고 있어 쉽게 질리지 않는다. 신인작가로 알고 있는데 데뷔작부터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능력이 남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완전히 비인기 장르인(그래서 참조할 만한 선배들의 걸작이 거의 전무한 상황인) 공포소설 분야에서 이정도 수준의 처녀작을 내놓았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몇몇 문장이나 대사에서는 쉽사리 읽히지 않고 툭툭 걸리는 부분이 있긴 하다. 이런 점은 신인 작가임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서술 면에서 반복 기법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 눈에 띈다. 이 작품에서 나온 문장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찬란한 아침햇살이 빛나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마주오고 있는 여인의 미소 또한 눈부시다. 출근길, 용진의 마음은 더없이 좋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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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아침햇살이 빛나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마주오고 있는 여인의 미소 또한 눈부시다. 그러나 출근길, 용진의 마음은 더없이 무겁기만 하다. 어제밤 아내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반복법이 도처에 사용되는데 반복의 묘랄까, 기법 면에서 돋보이지만 너무 남발되는 것같다. 같은 문장을 너무 자주 보면 누구나 당연히 질리게 마련인 것이다. 처녀작을 내는데 있어 이것저것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건 당연한 심사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과도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법이다. 앞으로의 작품에서는 화려함 보다는 안정감을, 테크닉보다는 진실성을 더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드리며 부족한 독후감을 끝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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