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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평점 :

- 역사의 틈을 꿰매는 소녀 다모의 단단한 발걸음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은 1800년 정조가 승하한 이후 수렴청정이 시작된 조선의 불안한 권력 지형 위에서, 한양 포도청 소속 열여섯 살 다모 ‘설’이 연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에드거 상을 수상한 한국계 작가 허주은은 이 소설을 통해 미스터리 장르와 역사 서사를 절묘하게 결합하면서 ‘이름 없이 사라진 존재들’의 복원을 본격적으로 문학 안에 끌어올린다.

"내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요? 활을 제대로 들 줄 아는 여자요."
노비 출신이자 여성, 그리고 열여섯 소녀.
주인공 설은 이 사회에서 가장 약자의 위치에 있지만, “본인이 표적을 맞힐 능력이 없다고 나를 탓하지 마세요.”(p119)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포도청 수사관 한도현과 함께 권력의 냄새가 짙게 밴 한양을 누비며 사건의 진실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 나간다.
설은 단지 사건을 추리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매 장면마다 옳고 그름, 침묵과 용기 사이에서 고민하고 행동하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변화를 만들었다”(p154)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이 서사는 한 소녀가 ‘피의 흔적을 좇는 다모’에서 ‘침묵당한 이름들의 대변자’가 되어가는 과정이자,
그 자신조차도 몰랐던 내면의 단단함을 발견하는 성장 이야기다.

미스터리의 외피, 기억의 복원 서사
이 소설은 강한 미스터리 플롯 위에 정치적 음모, 권력 갈등, 여성과 약자들의 목소리를 켜켜이 쌓아간다.
"사람들의 목표는 오로지 권력이야. 권력을 쥐거나 지키거나."(p18)
이 대사는 소설 전반의 동인을 함축한 명문으로, 이 작품이 단순한 범죄 추리 그 이상임을 암시한다.
작가는 소설 곳곳에 강완숙(여성 천주교 지도자), 정순왕후, 주문모 신부 등의 실존 인물을 교차 배치하며 역사와 픽션 사이의 문턱을 허물고, 독자로 하여금 ‘기록되지 못한 진실’에 대해 성찰하도록 이끈다.
‘설’과 그녀의 주변 인물들-오 소저, 강씨 부인, 소이, 우림-은 모두 시대가 지우려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묵묵히,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눈물겹게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타인의 이름을 불러낸다.

"차가운 뼈로 뒤덮인 이 땅에 낙원을 만들어주렴"
“한양은 나를 용감하고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p468)
이 마지막 장면의 독백은 설이 단지 누군가의 명령을 따르던 하급 수사관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거대한 장막 안에서 자신을 증명해낸 한 인간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강씨 부인의 말처럼,
“용감하게 옳은 길을 가도록 해. 힘을 잃고 겁에 질린 사람들을 위해 차가운 뼈로 뒤덮인 이 땅에 낙원을 만들어주렴.”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은 누군가에게는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름을 되찾아주는 문학적 제례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역사의 그늘 속에서 사라진 이들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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