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 성격 급한 뉴요커, 고대 철학의 지혜를 만나다
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석기용 옮김 / 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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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6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인문

How To Be A Stoic: Using Ancient Philosophy to Live a Modern Life

성격 급한 뉴요커, 고대 철학의 지혜를 만나다

 

이 책은 스토아철학을 소개하는 책이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윤리시간에 스토아학파로 공부한 스토아철학이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를 비교하면서 배웠던 기억이 난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주의이고 아타락시아가 목적이고, 스토아학파는 금욕주의이고 아파테이아가 목적이라고 배웠던 기억.

문자가 주는 인상으로 육체적 쾌락을 중시하는 에피쿠로스보다 금욕주의를 강조한 스토아가 보다 철학적이라는 오해가 생기던 시절이었다.

이 책을 스토아 = 금욕주의라는 고정관념을 고칠 수 있어서 좋았다.

디지털 기술의 폭발적 발전으로 내면의 깊이를 상실하고 거짓된 행복을 쫓아가는 지금에 꼭 맞는 철학이 바로 스토아철학이다.

외부세계와의 연결 속에서 상실하게 되는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자존감, 마음의 평정을 확인하는 철학이 바로 스토아철학이다.

    

저자는 젊은 시절 다리를 다쳐서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았던 노예 출신의 에픽테토스와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를 통해 스토아철학의 기본 골격과 현대사회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붙잡을 수 있는 기준들을 설명한다.

기존의 스토아철학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던 나에게 긴 문장으로 번역된 글들은 쉽지 않았다. 철학책 특유의 문체들과 편집이 책을 쉽게 읽도록 편하게 내버려두지 않았지만, 손가락 끝으로 짚어가면서 한줄 한줄 읽어나갔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가면서 전직 노예였던 에픽테토스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이전에 읽었던 윌리엄 어빈 교수의 직언을 떠올리면서 인생공부를 하였다.

 

전체 우주의 질서 속에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을 인정하는 것,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을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스토아철학은 출발한다.

결국에는 사라질 우리이기에 지금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환경에 집중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 나의 통제범위 밖의 일들은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 그럼으로 나의 삶의 주인공이자 주권자가 되는 것. 그것이 스토아주의의 최고의 매력일 것이다.

 

스토아주의의 핵심 신조 중 하나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과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에틱테토스는 우리의 의견, 충동, 욕망, 반감 등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며, 우리 몸의 상태, 소유물, 우리의 평판과 공직 등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고 목록을 제시한다.

우리가 힘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에 주의와 노력을 집중하되, 그런 다음에는 우주가 원래 하던 대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이것이 많은 에너지 소모와 많은 걱정을 덜어줄 것이다.

 

온갖 수단을 다 써서 삶에서 고통을 피하고 기쁨을 경험하라. 그러나 그렇게 하는 일이 자신의 고결성을 위험에 빠뜨릴 때는 아니다. 수치스런 방식으로 기쁨을 추구하느니 존경스런 방식으로 고통을 감내하는 편이 더 낫다.

스토아주의자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근본적인 덕들, 즉 어려운 상황에서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는 용기, 과도함의 고삐를 죄는 절제, 자신의 결정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고려하는 정의감, 그리고 당연히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리는 불확실한 바다를 항해할 수 있게 해주는 실천적인 지혜가 될 것이다.

 

스토아주의의 기본 원리

덕이 최고의 선이며, 다른 모든 것은 하찮다. - 덕과 대립하지 않는 한에서 선호할 만한 무관심의 대상들을 추구할 수 있고 선호할 만하지 않은 무관심의 대상들로부터는 멀어지려고 노력한다.

본성을 따르라. - 사회생활에 이성을 적용하라.

통제의 이분법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라. 우리는 나의 통제 하에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나머지 모든 것들은 평정심을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

 

스토아의 네 가지 덕

(실천적) 지혜: 활용 가능한 최선의 방식으로 복잡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용기: 모든 상황에서 육체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올바른 일을 하기.

정의: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건 상관없이 모든 인간을 공정하고 친절하게 대우하기.

절제: 삶의 모든 영역에서 겸손과 자제력을 발휘하기.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에서 뽑아낸 열두 가지 과제들

당신의 인상들을 검사하라. - 한 걸음 물러나서 이성적인 숙고의 여지를 만들고, 경솔한 감정적 반응을 피하고, 이것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묻는 것이다.

사물의 덧없음을 상기하라. -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실로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지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곧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류 조항을 명심하라. - 시합을 이기거나 승진을 따낼 자격이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때로는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경우에조차 우리가 기대한 방식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수 있는 지혜를 잘 활용하라. 결과들은 우리의 통제하에 있지 않다.

지금 여기서 덕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늘 유념하라. - 인생의 모든 도전은 자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더없이 훌륭한 기회라는 스토아의 개념을 전개하면서, 그가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덕을 이용해 유혹이나 난관에 각각 어떻게 대응하는지 주목해보라.

잠깐 멈춰서 숨을 깊게 들이마셔라. - 우리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잇는 상황들에 즉각적이고 본능적으로 반응하려 하는 충동에 저항할 필요가 있다. 대신 우리는 잠깐 멈춰서 깊게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타자화하라. - 타인의 불행에 대한 내 자신의 반응을 바로잡고 내게 생긴 문제들이 더 많은 인류가 흔히 겪는 일임을 기억함으로써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습관이 평정심을 갖고 바라보게 되는데 도움을 준다.

말은 조금만 하되 제대로 하라. -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칭송하거나, 비난하거나, 비교하거나 하지 말고, 어쨌든 그들에 관해서 수군거리지 마십시오.

친구를 잘 골라라. - 최소한 우리는 내 친구들이 내 영혼을 비춰줄 거울을 들고 있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기를 원한다.

모욕에 유머로 응수하라. - 모욕은 그것을 내뱉은 사람이 그런 의도로 했기 때문에 먹혀드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그것이 모욕이 되도록 허용하기 때문에 먹혀드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지 말라.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말하라. - 사실은 관찰을 통해 정당화된다고 생각할 때 승인할 수 있으나, 판단은 우리가 대개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삼가야 한다.

당신의 하루를 반성하라. - 그날에 벌어진 중요한 일들, 특히 윤리적인 의의가 담긴 일들에 주의를 집중하라는 것.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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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2019-05-1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속도에서 깊이로 (리커버 에디션) - 철학자가 스마트폰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간 이유
윌리엄 파워스 지음, 임현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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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5 <속도에서 깊이로(윌리엄 파워스 지음/21세기북스)> #인문

철학자가 스마트폰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간 이유

 

지난 세기말 발전하기 시작한 디지털 기술은 이번 세기 초에 폭발적으로 발달하여 인류의 모든 영역을 변화시키고 있다.

혁명적인 변화 속에서 인간은 주체적인 삶의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변화의 속도에 휩쓸려 내면의 깊이를 상실해가고 있다.

바깥세상의 .인질이 되어 쫓기는 분주한 마음으로는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고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이에 저자는 디지털 세상의 변화를 우선 성찰하고, 그 변화 속에서 군중과 자아, 외적인 삶과 내적인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인간은 정신적으로 분주해질 뿐만 아니라 사고방식 자체도 새로워지고 있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내적인 측면과 외적인 측면으로 나누었을 때 디지털 세상에서는 외적인 측면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외부 세계와 촘촘히 연결될수록 외부 세계에 의지하게 되고 결국 외부 세계가 인간의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을 규정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외부로 향하는 인간의 사회적 욕구와 내면을 들여다보는 개인적 욕구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그 두 가지를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이는 철학, 문학, 예술의 위대한 주제였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의 삶은 한쪽으로 몹시 치우쳐 있다. 이제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라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에 따라 움직인다.

 

인간은 외부와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 혹은 군중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망과 함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추구하는 정반대의 욕망을 동시에 갖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욕망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이 책에 쓰인 스크린이란 단어는 모든 디지털 네트워크 장치를 통틀어 지칭한다.

Digital Maximalism(디지털 맥시멀리즘): 디지털 세상에서 스크린을 통한 네트워크는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는 의미

Digital Maximalist(디지털 맥시멀리스트): 디지털 맥시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들

 

우리를 둘러싼 디지털 세계의 분주함 속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건들이나 환경의 변화를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삶의 본질을 이해하고 도달하려고 하는 목표가 있다.

내적으로 행복하고 충만한 삶, 혹은 이게 바로 삶이야!”라고 느끼게 만드는 뇌 안의 영상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깊이.

깊이는 우리가 체험하는 삶의 단면들과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 느끼는 자각, 감정, 이해의 폭이다.

깊이는 본질적으로 시간이나 수치화할 수 있는 다른 속성의 산물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흡수하는 의미’, 즉 내적인 삶에 관한 것이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인류는 스스로를 더 바쁘게 만드는 새롭고 강력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바로 디지털 기술이다. 사람들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그것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든 우리가 선택한 일이든 가치 있는 일이든 무의미한 일이든 상관없이 우리를 바쁘게 만드는 모든 일들과 우리를 더 촘촘하게 연결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깊이 있는 경험의 가능성과 기회는 점점 멀어진다.

 

21세기 디지털 기술에 관한 철학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커넥팅connecting은 좋으며 디스커넥팅disconnecting은 나쁘다.

이 문장에서 도출할 수 있는 두 가지 명제

첫째, 더 오래 커넥팅되면 커넥팅될수록 좋다.

둘째, 더 오래 디스커넥팅되면 디스커넥팅될수록 나쁘다.

이러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디지털 멕시멀리스트Digital Maximalist들이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디지털 세상은 우리를 멀티태스킹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흔들어놓는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업무를 다루게 되면 시간과 집중력을 계속해서 쪼개놓고 매 순간 분주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그 속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된다.

난파된 배에서 목이 말라 바닷물을 먹는 사람들처럼 악순환이 계속된다.

기업들마저 디지털 중독으로 손해가 발생하게 된다.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다보니 생산성이 감소하게 된다. 그래서 디지털기기에서 멀어지는 시간을 정해놓는 회사도 있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경우에도 디지털 멕시멀리스트들은 옆의 가족보다 디지털 세계의 군중과의 연대를 우선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개인들의 내적인 삶이 무너져 내리고 정신적, 정서적 장애가 확산된다.

 

우리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면서 업무처리의 신속성을 확보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디지털 도구의 속도와 우리 사고의 속도를 혼동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빠른 업무 전환을 한 가지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업무 자체에 대한 우리의 수행 능력은 그만큼 느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빨리빨리 생각하는 버릇이 생기게 되고, 재빨리 생각하는 버릇 때문에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의 창조성은 오직 시간과 정신적인 여유가 있을 때에만 발휘된다.

 

이에 저자는 일곱 명의 철학자를 통해 다양한 해답과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

첫 번째 철학자 / 플라톤의 물리적 거리

두 번째 철학자 / 세네카의 내적 거리

세 번째 철학자 / 구텐베르크의 자기 성찰의 기술

네 번째 철학자 / 셰익스피어의 오래된 도구

다섯 번째 철학자 / 프랭클린의 긍정 습관

여섯 번째 철학자 / 소로의 월든 숲

일곱 번째 철학자 / 매클루언의 행복의 온도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의 가족이 경험하는 디스커넥토피아Disconnectopia가 소개된다.

외부세계와의 접속을 자발적으로 차단하고 생활하며 가족의 결속과 내면의 충만함을 지향하는 방법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는 시간을 정하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시행하기도 한다.

급속하게 발달하는 기술 속에서 우리는 외부와 점점 더 연결되어질 것이고 그 속에서 내면의 소리와는 멀어지는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그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제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보자.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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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보며 빵을 굽다 - 빵을 만드는 일 그리고 삶, 그 조화로움에 관한 이야기
쓰카모토 쿠미 지음, 서현주 옮김 / 더숲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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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4 <달을 보며 빵을 굽다(쓰카모토 쿠미 지음/더숲)>

빵을 만드는 일 그리고 삶, 그 조화로움에 관한 이야기

달의 움직임에 따라 20일간 빵을 굽고, 10일은 여행을 떠나는 어느 빵집주인에게서 일과 삶의 의미를 찾다

 

나는 빵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빵을 만드는 이야기의 책이 손에 잡혔다. 빵을 만드는 사람의 독특한 삶과 철학에 끌렸다.

치열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빵집을 운영하며 자신의 철학을 지키고 확장시켜나가는 저자의 삶이 궁금했다.

 

일본 효고현의 작은 마을인 단바에서 여행하는 빵집 히요리 브롯HIYORI BROT’. 이곳은 저자의 빵을 만드는 빵집이 아니라 작업실이다.

인터넷으로 받은 주문을 하루 14건 배송처리를 한다. 혼자 하는 작업이고 한 달에 20일만 빵을 굽다보니 5년 이상 주문이 밀려있는 상태이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고 싶은 빵을 만들며 이따금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운 작업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제철 식재료를 때에 맞춰 빵으로 만들어 고객에게 전달한다. 때문에 레시피와 재료 배합은 매일 달라진다.

 

저자는 달의 주기에 맞춰 빵을 굽는다. 월령 0일에서 20일 사이가 빵을 만드는 시간이다. 달이 찰수록 발효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자연의 힘에 따르면서 그것에 맞춰 빵을 굽는다.

월령 21일에서 28일 사이는 여행을 떠난다. 그 다음 빵을 만들기 위해 식재료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빵을 만들게 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히요리 브롯이 선보이는 빵은 7종류(36,000), 11종류(60,000), 14종류(80,000)로 구성된 세트 메뉴로 이루어진다. 바게트나 식빵 같은 기본 메뉴 외에도 제철에 주문한 신선한 재료를 넣고 만든 빵을 급속 냉동해 고객에게 배송한다.

히요리 브롯은 단바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식재료에 전국의 생산자들이 직접 보내는 밀가루와 체소, 과일, 달걀, 우유를 더해 그 시기에만 맛볼 수 있는 재료로 맛있는 빵들을 선보인다.

 

대학을 졸업하고 리쿠르트에 입사한 저자는 다양한 직업을 알아가면서 인생에 있어 일이란 무엇이고 일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제대로 고민해볼 수 있었다.

리쿠르트에서 퇴사를 하고 7년 동안 시니피앙 시니피에서 빵의 거장인 시가 셰프로부터 트레이닝을 받게 된다.

빵 만들기의 기본은 해야 할 일을 거르지 않고 꼼꼼히 하는 것이다. 청소도 빵 만들기의 한 과정이다.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

 

히요리 브롯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 가치가 있다.

함께 빵을 만드는 생산자들과의 인연, 자신이 일하고 머무는 단바에 대한 애정, 그리고 빵을 만든다는 것의 의미.

 

저자의 철학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돈 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더라도 일을 지속할 수 있으려면 일정 수준의 수입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주문을 받은 후 빵을 만드는 방식으로 재고를 없앴고, 빵에 본인이 생각하는 적정 가격을 책정했는데, 평균적인 빵 가격보다 비싸다.

이것은 정성을 다해 만든 맛있고 몸에 좋은 빵을 싸게 대충 팔지는 않겠다는 자신의 가치관을 실현시킨 것이다.

나는 나답게, 작지만 매일의 행복을 만들어 나가가는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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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대 -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김용규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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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 <생각의 시대(김용규 지음/살림)>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기원전 8세기. 서양을 중심으로 하는 인류 문명의 기틀이 되었던 그리스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헤매고 있었다.

이집트인들, 바빌로니아인들, 수메르인들에게 한참이나 뒤처져있던 그리스인들은 그 시기에 갑자기 달라졌다.

이 책에서 생각의 도구라고 부르는 생각들을 하나씩 개발해 부지런히 갈고 닦기 시작했다.

메타포라metaphora, 아르케arché, 로고스logos, 아리스모스arithmos, 레토리케 rhétoriké 등이 그것이다.

우리말로는 각각 은유, 원리, 문장, , 수사로 번역되는데,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의미가 달랐다. 그리고 이것들이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사유능력을 제공했다.

 

그러자 곧바로 놀라운 일들이 시작되었다. 생각의 도구들은 먼저 그리스에서 합리적인 지식, 창조적인 예술, 그리고 민주적인 사회제도를 생산해 오늘날에도 누구나 경탄하는 그리스의 황금기(기원전 450~322)를 일구었다.

이후 그것이 헬레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로마로 들어가 다시 로마를 번성케 했고, 마침내 서양 문명이라는 구조물을 구축해냈다. 그리고 그 문명이 근대 이후부터는 차츰 인류 보편 문명으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렀다.

 

꽃을 보고는 씨앗을 알 수 없듯이, 건물만 보고는 그것을 지어낸 도구(설계도, 공구 등)들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그 꽃을 다시 피우고 싶다면, 또는 어떤 구조물을 수리하거나 새로 짓고 싶다면 반드시 그것의 씨앗이나 설계도와 공구가 다시 필요한데, 저자의 생각은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정보혁명은 우선 지식의 폭증을 불러왔다. 정보혁명은 또한 지식의 소재와 성격을 바꾸어놓았다. 지식의 네트워크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정보혁명은 지식의 수명을 단축했다.

이제 학습을 통해 자신의 시대까지 누적된 지식을 습득하여 그것에 의존하여 살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누가 어떤 지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는 관건이 아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격변하는 환경을 꿰뚫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을 획득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그에 합당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고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쏠려 있다.

한마디로, 지식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생각의 시대다!

 

1부 지식의 기원

지식의 발생은 프로메테우스 신화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추운 지방에 사는 들소들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 털을 기르는 방향으로 진화했듯이, 인간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 불의 사용법을 알아냈다. 생존의 방법으로 들소는 생물학적 방법인 진화를, 인간은 문화적 방법인 지식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이 그들을 서로 다른 역사의 길로 안내했다.

1장 지식의 탄생

아리스토텔레스의 말과는 달리, 지식의 탐구는 경이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욕망에서 시작됐다. 보편성이란, ‘모든 것에 두루 통하거나 미치는 성질을 뜻한다. 많게는 2,800, 적어도 2,300년 전에 살았던 고대인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보편성을 그리도 열렬히 추구했을까? 여기에 문명의 비밀이 숨어 있다.

2장 생각의 도구의 탄생

보편성의 추구가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과 같은 동양에서는 종교와 도덕의 발달을 촉진했다. 이에 반해 서양에서는 학문과 예술의 발달을 이루었다. 왜 그랬을까? 또 왜 하필 서양 문명을 일군 생각의 도구들이 탄생했을까?

그리스의 자연적, 역사적 환경이 폴리스라는 정치적 제도를 낳았다. 그것이 토론과 논쟁에 몰두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조성해, 생각의 도구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 도구들이 경이로운 고대 그리스의 학문과 예술, 그리고 민주주의를 일구어냈다.

 

 

2부 생각의 기원

지식에 있어서 개체발생이 계통발생을 반복한다. 왜 그런지 알아보기 위해 생각이 개인의 정신뿐 아니라 역사 안에서 어떻게 생겨나, 어떻게 발달했는가를 살펴본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범주화와 개념적 혼성이 생각의 시원이라는 것을 인지과학, 심리학을 통해 밝힌다. 그리고 역사적 차원에서는 보편화와 범주화가 이성의 기원이라는 것을 호메로스의 작품을 통해 확인한다. 또한 범주화, 개념적 혼성, 보편화가 각각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밝힌다.

1장 생각 이전의 생각

범주화에 의해 우리에게 세계와 정신이 동시에 태어나 함께 진화한다. 그리고 개념적 혼성에 의해 생각이 탄생한다. 이 두 정신적 기능이 가장 원초적이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는 뜻에서 생각 이전의 생각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범주화와 개념적 혼성은 우리의 뇌에서 어떻게 일어날까? 그리고 무슨 일을 할까? 뇌신경과학, 인지과학과 심리학을 통해 이 질문들에 답한다.

2장 생각의 은밀한 욕망

역사적으로는 호메로스의 작품들이 보편적 사고의 기원이다. 호메로스는 작품에서 오직 인물들의 본질탁월함만을 노래하고 그 밖의 것은 모두 제거했다. 이것이 호메로스 스타일이다. 그럼으로써 호메로스의 인물들은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본받거나 또는 물리쳐야 할 보편적 인간의 원형이 되었다.

 

 

3부 생각을 만든 생각들

생각의 도구들은 호메로스가 씨앗을 뿌리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키워 얻은 열매다.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스모스(), 레토리케(수사)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그 자신이 생각인 동시에 다른 생각들을 만드는 도구다.

은유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모든 곳에 사용된다. 원리와 수는 주로 자연을 이해하여 조종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이에 비해 문장과 수사는 애초부터 사람들을 설득하여 움직이는 데 사용되었다.

1장 메타포라metaphora, 은유

은유는 우리의 사고와 언어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도구다. 그것이 역사적으로는 호메로스 이전부터 등장했고, 인간 개인으로는 학령기 이전부터 나타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 원관념의 본질을 드러내고, 비유사성을 통해 의미의 변환 내지 확장을 창조해낸다. 유사성과 비유사성이 은유를 떠받치는 2개의 기둥이다.

은유는 유사성을 통해 보편성, 비유사성을 통해 창의성을 드러내는 천재적인 생각의 도구다.

2장 아르케arché, 원리

원리는 그것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구성하고 조종하거나 지배할 수 있게 하는 생각의 도구다. 또한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도구이기도 하다. 탈레스가 처음 개발한 이래, 학자들의 탐구와 일반인들의 문제 해결에 유용하게 쓰여온 이 도구는 관찰, 사고, 검증을 통해 만들어진다.

탈레스는 훗날 소크라테스가 인용해 사용함으로써 유명해진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탈레스는 자연의 뒤에서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변덕스러운 신이 아니라 파악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자연적 원리하고 믿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이 말하는 아르케는 물질로서의 물, 무한자, 공기, , 흙이 아니라 그것들이 가진 각각의 어떤 특징적 성질이나 원리, 곧 그것들의 보편성을 가리킨다.

만물의 근원을 탈레스가 물, 아낙시만드로스가 무한자, 아낙시메네스가 공기, 헤라클레이토스가 불이라고 했을 때, 그것들은 각각 물의 생명력’, 무한자의 포괄성’, 공기의 가변성’, 불의 역동성등과 같이 그것들이 가진 보편적 성질 내지 원리를 의미했다고 이해해야 한다.

3장 로고스logos, 문장

문장은 뮈토스로부터 로고스로라는 구호 아래, 신 대신 인간, 신화 대신 철학, 운문 대신 산문, 말 대신 글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탄생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난 2,500년 동안 서양 문명을 깎고 다듬어왔다. 또 서구인들의 정신세계를 만들어왔다. 이 같은 사실들이 정신의 구조를 형성한다는 뇌신경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실험들이 증명한다.

로고스로서의 문장은 사물이나 사건에 관한 정보라는 성격뿐만 아니라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논증적 특성도 함께 갖고 있어야 한다.

진리는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 안에서 산다. 언어가 진리의 집이다. 바로 이것이 헤라클레이토스의 생각이었고, 훗날 아리스토텔레스가 문장을 참과 거짓의 대상으로 삼은 토대가 되었다.

문장은 우리가 생각을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다시 말해 이성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도구다. 우리의 뇌는 언어를 통해 언어의 법칙이 아니라 자연과 사물들의 질서에 합당한 정신의 모형을 형성한다.

문장은 단순한 생각의 도구가 아니다. 우리의 정신 안에 세계와 그의 질서를 구성하게 하는 생각의 도구다. 정신이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정신을 만든다!

4장 아리스모스arithmos,

수는 자연을 합리적인 패턴으로 드러나게 하여, 우리가 자연을 이해하고 조종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피타고라스가 자연의 수학화를 시도하자 혼돈 속에 놓여 있던 우주가 코스모스로 변했다. 그리고 수가 진리와 윤리와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조화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피보나치 수열과 황금 비율이 그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러나 근대인들이 자연의 수량화를 감행한 이래, 그 질서와 조화가 파괴되었다.

수학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물리적 세계에서 일어난 혼란스런 사건들에 질서를 부여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스스로 활동하고자 하는 건강한 두뇌의 자연적 성향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으로부터 정확한 사고가 추출해낸 최고 순도의 증류수다. 수학 덕분에 존재하게 된 위대한 업적들로 다른 문명과 구분되는 바로 이 문명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러한 진술의 증인일 것이다.

5장 레토리케 rhétoriké, 수사

수사는 설득을 위해 개발된 생각의 도구다. 기원전 5세기에 소피스트들이 적극적으로 개발한 이래, 수사학은 중세까지 최고의 실용적 학문으로 군림했다. 근대에 잠시 시들했지만 민주주의의 보편화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와 함께 다시 부활했다. 오늘날에는 옛 명성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

설득의 여신 페이토는 2개의 무기를 갖고 있다. 하나는 꽃이고, 다른 하나는 칼이다. 하나는 문예적 수사이고, 다른 하나는 논증적 수사다. 나중의 것이 더 강하다. 물론 함께 쓰면 무적이다.

9개의 복잡한 설명보다 1개의 적절한 예가 더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래서 예증법은은 고대로부터 뛰어난 웅변가난 설교자, 정치인 그리고 학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왔다.

신문 사설이나 칼럼 안에 들어 있는 예증법이나 대증식을 밝혀내는 훈련, 보고서나 또는 학술 논문의 뼈대가 되는 연쇄삼단논법을 들추어내어 생략된 전제를 찾아내는 훈련, 그리고 각종 연설문을 꾸미는 문예적 수사와 논증적 수사들을 확인하는 훈련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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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a True Story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1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 / 갤리온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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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지음/갤리온)>

베를린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저자가 형사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 11편을 한 권에 담았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만나게 되는 형사 사건에 대해 헌법이나 형법이 보장하는 인권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기자들의 기사나 전문가들의 주장들을 마치 우리의 생각인 냥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들이 침해되는 경우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바탕에는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편견들이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형사 사건의 기준으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가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가 유죄 여부를 판단하는 데 충분한가의 문제이다. 이 기준은 도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기준이다.

둘째는 피의자가 범인이라는 게 확정되었다면, ‘형량을 얼마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범인의 범죄가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 그에 알맞은 형량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는 일에는 언제나 도덕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저자는 피의자가 인생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문제를 갖고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엽기적인 사건들이 소개되어서 놀라기도 했다.

책을 읽다보니 독일의 사회적·문화적 환경을 느낄 수 있었다. 난민 문제, 극우 세력의 등장, 가족 해체, 인간 소외 등.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범죄들의 배경과 다른 것들이 몇몇 있었지만 물질중심의 자본주의에서 인간이 수단화되어지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비슷한 모양을 보이고 있었다.

인간이 목적이 아니라 대상이 되고, 수단이 되며, 가족이 정서적으로 따뜻한 지지를 상실한 새로운 감옥이 되는 세상이라면 책 속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이 전혀 비정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첫눈에 반해 결혼한 아내와의 신혼여행에서의 맹세. 그 맹세 하나로 존경받고 유능한 의사의 일생은 지워지고 집 안에 갇힌 죄수로 살게 된 노의사는 아내를 도끼로 토막 살인을 한다.

 

막대한 부를 쌓은 아버지로부터 학대 아닌 학대를 받으며 자라난 남매. 서로 의지하는 남매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자신들이 꿈꾸는 음악 인생을 살아가려던 순간. 불의의 사고로 남동생은 회복될 수 없는 장애를 갖게 되고. 누나는 동생을 살해하고 만다.

 

레바논에서 독일로 이주한 카림의 가족. 마약이나 범죄의 구덩이 속에서 생활하는 가족들의 문화. 그 속에서 자신을 지켜나가며 가족을 지키려는 카림의 이야기.

 

전쟁이 벌어지던 고향에서 오빠를 잃고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꿈과 희망을 모두 잃어버린 이리나. 독일로의 밀입국 이후 살아남기 위해 성매매를 하고 노숙자인 칼레를 만나고. 이제 막 희망이 보이려던 순간 발생한 성매수남의 사망. 그리고 사체의 훼손과 유기.

 

팔레스타인 난민 아바스. 범죄와 마약 거래에 손을 대고. 그의 애인 슈테파니. 마지막 구렁텅이에 빠진 아바스를 구하기 위해 몸을 파는 슈테파니. 그녀는 최고급 호텔방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성매수남인 보하임이 살인범으로 지목된다.

 

갓난아기 때 버려져 입양된 미하카는 가정과 학교에서 학대를 받고 사회 부적응자로 살아가다가 은행 강도로 12천 마르크를 훔친다. 그리고 도망친 곳이 아디스아바바. 그곳에서 티푸스에 걸려 죽음에 가까이 가게 되고. 스스로 인생을 마감하기 위해 무작정 기차를 타고 아프리카를 기차 타고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정신을 잃게 된다. 그런 미할타를 구해준 부족과 여자에 정을 붙이고 그 마을을 살기 좋은 곳으로 탈바꿈시킨다. 유명세를 타게된 미할타는 아내와 딸을 두고 독일로 강제소환 당한다. 독일에서 이전에 저질렀던 범죄에 대한 형기를 마치고 아내와 딸에게 돌아가기 위해 다시 은행을 털게 되고....

 

하나 하나의 사건들을 흥미진진한 소설과 같은 이야기로 이끌어내는 저자의 재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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