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각의 시대 -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김용규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019-053 <생각의 시대(김용규 지음/살림)>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기원전 8세기. 서양을 중심으로 하는 인류 문명의 기틀이 되었던 그리스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헤매고 있었다.
이집트인들, 바빌로니아인들, 수메르인들에게 한참이나 뒤처져있던 그리스인들은 그 시기에 갑자기 달라졌다.
이 책에서 생각의 도구라고 부르는 생각들을 하나씩 개발해 부지런히 갈고 닦기 시작했다.
메타포라metaphora, 아르케arché, 로고스logos, 아리스모스arithmos, 레토리케 rhétoriké 등이 그것이다.
우리말로는 각각 은유, 원리, 문장, 수, 수사로 번역되는데,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의미가 달랐다. 그리고 이것들이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사유능력을 제공했다.
그러자 곧바로 놀라운 일들이 시작되었다. 생각의 도구들은 먼저 그리스에서 합리적인 지식, 창조적인 예술, 그리고 민주적인 사회제도를 생산해 오늘날에도 누구나 경탄하는 그리스의 황금기(기원전 450~322)를 일구었다.
이후 그것이 헬레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로마로 들어가 다시 로마를 번성케 했고, 마침내 서양 문명이라는 구조물을 구축해냈다. 그리고 그 문명이 근대 이후부터는 차츰 인류 보편 문명으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렀다.
꽃을 보고는 씨앗을 알 수 없듯이, 건물만 보고는 그것을 지어낸 도구(설계도, 공구 등)들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그 꽃을 다시 피우고 싶다면, 또는 어떤 구조물을 수리하거나 새로 짓고 싶다면 반드시 그것의 씨앗이나 설계도와 공구가 다시 필요한데, 저자의 생각은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정보혁명은 우선 지식의 폭증을 불러왔다. 정보혁명은 또한 지식의 소재와 성격을 바꾸어놓았다. 지식의 네트워크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정보혁명은 지식의 수명을 단축했다.
이제 학습을 통해 자신의 시대까지 누적된 지식을 습득하여 그것에 의존하여 살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누가 어떤 지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는 관건이 아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격변하는 환경을 꿰뚫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을 획득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그에 합당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고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쏠려 있다.
한마디로, 지식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생각의 시대다!
제1부 지식의 기원
지식의 발생은 프로메테우스 신화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추운 지방에 사는 들소들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 털을 기르는 방향으로 진화했듯이, 인간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 불의 사용법을 알아냈다. 생존의 방법으로 들소는 생물학적 방법인 진화를, 인간은 문화적 방법인 지식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이 그들을 서로 다른 역사의 길로 안내했다.
제1장 지식의 탄생
아리스토텔레스의 말과는 달리, 지식의 탐구는 경이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욕망에서 시작됐다. 보편성이란, ‘모든 것에 두루 통하거나 미치는 성질’을 뜻한다. 많게는 2,800년, 적어도 2,300년 전에 살았던 고대인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보편성을 그리도 열렬히 추구했을까? 여기에 문명의 비밀이 숨어 있다.
제2장 생각의 도구의 탄생
보편성의 추구가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과 같은 동양에서는 종교와 도덕의 발달을 촉진했다. 이에 반해 서양에서는 학문과 예술의 발달을 이루었다. 왜 그랬을까? 또 왜 하필 서양 문명을 일군 생각의 도구들이 탄생했을까?
그리스의 자연적, 역사적 환경이 폴리스라는 정치적 제도를 낳았다. 그것이 토론과 논쟁에 몰두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조성해, 생각의 도구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 도구들이 경이로운 고대 그리스의 학문과 예술, 그리고 민주주의를 일구어냈다.
제2부 생각의 기원
지식에 있어서 개체발생이 계통발생을 반복한다. 왜 그런지 알아보기 위해 생각이 개인의 정신뿐 아니라 역사 안에서 어떻게 생겨나, 어떻게 발달했는가를 살펴본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범주화와 개념적 혼성이 생각의 시원이라는 것을 인지과학, 심리학을 통해 밝힌다. 그리고 역사적 차원에서는 보편화와 범주화가 이성의 기원이라는 것을 호메로스의 작품을 통해 확인한다. 또한 범주화, 개념적 혼성, 보편화가 각각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밝힌다.
제1장 생각 이전의 생각
범주화에 의해 우리에게 세계와 정신이 동시에 태어나 함께 진화한다. 그리고 개념적 혼성에 의해 생각이 탄생한다. 이 두 정신적 기능이 가장 원초적이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는 뜻에서 ‘생각 이전의 생각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범주화와 개념적 혼성은 우리의 뇌에서 어떻게 일어날까? 그리고 무슨 일을 할까? 뇌신경과학, 인지과학과 심리학을 통해 이 질문들에 답한다.
제2장 생각의 은밀한 욕망
역사적으로는 호메로스의 작품들이 보편적 사고의 기원이다. 호메로스는 작품에서 오직 인물들의 ‘본질’과 ‘탁월함’만을 노래하고 그 밖의 것은 모두 제거했다. 이것이 호메로스 스타일이다. 그럼으로써 호메로스의 인물들은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본받거나 또는 물리쳐야 할 보편적 인간의 원형이 되었다.
제3부 생각을 만든 생각들
생각의 도구들은 호메로스가 씨앗을 뿌리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키워 얻은 열매다.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스모스(수), 레토리케(수사)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그 자신이 생각인 동시에 다른 생각들을 만드는 도구다.
은유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모든 곳에 사용된다. 원리와 수는 주로 자연을 이해하여 조종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이에 비해 문장과 수사는 애초부터 사람들을 설득하여 움직이는 데 사용되었다.
제1장 메타포라metaphora, 은유
은유는 우리의 사고와 언어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도구다. 그것이 역사적으로는 호메로스 이전부터 등장했고, 인간 개인으로는 학령기 이전부터 나타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 원관념의 본질을 드러내고, 비유사성을 통해 의미의 변환 내지 확장을 창조해낸다. 유사성과 비유사성이 은유를 떠받치는 2개의 기둥이다.
은유는 유사성을 통해 ‘보편성’을, 비유사성을 통해 ‘창의성’을 드러내는 천재적인 생각의 도구다.
제2장 아르케arché, 원리
원리는 그것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구성하고 조종하거나 지배할 수 있게 하는 생각의 도구다. 또한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도구이기도 하다. 탈레스가 처음 개발한 이래, 학자들의 탐구와 일반인들의 문제 해결에 유용하게 쓰여온 이 도구는 관찰, 사고, 검증을 통해 만들어진다.
탈레스는 훗날 소크라테스가 인용해 사용함으로써 유명해진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탈레스는 자연의 뒤에서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변덕스러운 신이 아니라 파악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자연적 원리하고 믿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이 말하는 아르케는 물질로서의 물, 무한자, 공기, 불, 흙이 아니라 그것들이 가진 각각의 어떤 특징적 성질이나 원리, 곧 그것들의 ‘보편성’을 가리킨다.
만물의 근원을 탈레스가 물, 아낙시만드로스가 무한자, 아낙시메네스가 공기, 헤라클레이토스가 불이라고 했을 때, 그것들은 각각 물의 ‘생명력’, 무한자의 ‘포괄성’, 공기의 ‘가변성’, 불의 ‘역동성’ 등과 같이 그것들이 가진 보편적 성질 내지 원리를 의미했다고 이해해야 한다.
제3장 로고스logos, 문장
문장은 ‘뮈토스로부터 로고스로’라는 구호 아래, 신 대신 인간, 신화 대신 철학, 운문 대신 산문, 말 대신 글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탄생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난 2,500년 동안 서양 문명을 깎고 다듬어왔다. 또 서구인들의 정신세계를 만들어왔다. 이 같은 사실들이 정신의 구조를 형성한다는 뇌신경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실험들이 증명한다.
로고스로서의 문장은 사물이나 사건에 관한 정보라는 성격뿐만 아니라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논증적 특성도 함께 갖고 있어야 한다.
진리는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 안에서 산다. 언어가 진리의 집이다. 바로 이것이 헤라클레이토스의 생각이었고, 훗날 아리스토텔레스가 문장을 참과 거짓의 대상으로 삼은 토대가 되었다.
문장은 우리가 생각을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다시 말해 이성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도구다. 우리의 뇌는 언어를 통해 언어의 법칙이 아니라 자연과 사물들의 질서에 합당한 정신의 모형을 형성한다.
문장은 단순한 생각의 도구가 아니다. 우리의 정신 안에 세계와 그의 질서를 구성하게 하는 생각의 도구다. 정신이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정신을 만든다!
제4장 아리스모스arithmos, 수
수는 자연을 합리적인 패턴으로 드러나게 하여, 우리가 자연을 이해하고 조종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피타고라스가 ‘자연의 수학화’를 시도하자 혼돈 속에 놓여 있던 우주가 코스모스로 변했다. 그리고 수가 진리와 윤리와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조화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피보나치 수열과 황금 비율이 그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러나 근대인들이 ‘자연의 수량화’를 감행한 이래, 그 질서와 조화가 파괴되었다.
수학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물리적 세계에서 일어난 혼란스런 사건들에 질서를 부여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스스로 활동하고자 하는 건강한 두뇌의 자연적 성향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으로부터 정확한 사고가 추출해낸 최고 순도의 증류수다. 수학 덕분에 존재하게 된 위대한 업적들로 다른 문명과 구분되는 바로 이 문명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러한 진술의 증인일 것이다.
제5장 레토리케 rhétoriké, 수사
수사는 설득을 위해 개발된 생각의 도구다. 기원전 5세기에 소피스트들이 적극적으로 개발한 이래, 수사학은 중세까지 최고의 실용적 학문으로 군림했다. 근대에 잠시 시들했지만 민주주의의 보편화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와 함께 다시 부활했다. 오늘날에는 옛 명성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
설득의 여신 페이토는 2개의 무기를 갖고 있다. 하나는 꽃이고, 다른 하나는 칼이다. 하나는 문예적 수사이고, 다른 하나는 논증적 수사다. 나중의 것이 더 강하다. 물론 함께 쓰면 무적이다.
9개의 복잡한 설명보다 1개의 적절한 예가 더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래서 예증법은은 고대로부터 뛰어난 웅변가난 설교자, 정치인 그리고 학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왔다.
신문 사설이나 칼럼 안에 들어 있는 예증법이나 대증식을 밝혀내는 훈련, 보고서나 또는 학술 논문의 뼈대가 되는 연쇄삼단논법을 들추어내어 생략된 전제를 찾아내는 훈련, 그리고 각종 연설문을 꾸미는 문예적 수사와 논증적 수사들을 확인하는 훈련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