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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 포스트 AI 시대, 문화물리학자의 창의성 특강
박주용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6월
평점 :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성선설과 성악설로 나뉘듯,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대칭적이며 선형적이었다. ‘유물론이냐 관념론이냐?’처럼. 과거에는 분석적이었고 대칭적이었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면 문과와 이과는 구분되는 것이 당연했고, 사회를 연구하는 것과 과학을 연구하는 것은 그 방식이나 목적에서도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모든 강물은 바다에서 만나는 것처럼, 인간에 관한 탐구이건 물질에 관한 탐구이건 모든 진리는 하나로 모일 수 있다는 생각들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기술의 융합으로 새로운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그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기술적 융합에 그치지 않고, 인문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인 통섭의 시대에 도달한 것이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물리학자이며 문화를 연구하는 문화물리학자다. 인류의 삶의 방식과 이를 통해 만들어 낸 것들의 총체인 ‘문화’와 물체들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인 ‘물리학’의 결합이 생소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문화, 문학과 예술이 모두 시공간 속에 자리하며 물리학의 법칙을 따라야 하는 물체일 뿐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는 과학과 문화의 진정한 연결고리는 그것들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깨닫고, 이로부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즉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 조각의 시공간을 끊임없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모습으로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롤로그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 중에서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과학 공부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을 위해 무조건 쉬운 과학 이야기를 쓴 것도 아니고,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소에서 일했고 KAIST 포스트 AI 연구소장을 역임한 과학자라고 어깨에 힘 빡 주는 어려운 과학 이야기도 없다.
우리는 인류 역사를 바꿔놓은 놀라운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을 이룬 위대한 과학자나,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 버린 위대한 예술가들의 업적에 감탄한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만물의 영장으로 풍요의 시대를 누리고 있다. 원시, 고대, 중세, 근대의 발전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저자는 단 한 사람의 꿈과 소망이 씨앗이 되어 인류의 문명이라는 거대한 숲이 다시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미래란 저절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열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열쇠는 과학과 문화에 있다.
과학은 과학자든 아니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으로써, 사람이 존재하는 한 사라질 수 없다. 과학자의 길에 들어서면 10년도 넘는 세월을 들여 그 질문에 답을 찾아나간다.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학자들의 원동력은 결국 탐구와 발견의 과정에서 오는 만족감과 희열이라는 극히 인간적인 욕망일 것이다. 인문학이나 예술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고 자연 그리고 스스로의 행위로부터 만들어진 끝없는 변화를 인류가 받아들이고 적응해 온 기록이고 산물이다. 경계를 흐리고 부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모네와 케이지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듯이 미래는 지금의 우리가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경계에서 발견해야 할 새로운 길 위에 존재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혼돈의 모서리에 기꺼이 올라타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능동적인 운전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지속될 수 없는 정상상태의 허상을 부여잡고 마지못해 끌려가는 수동적인 승객이 될 것인가? -<혼돈의 모서리라는 가능성 / 엔트로피와 창의성> 중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 인간은 미래를 과학으로 내다본다. 지금 존재하는 것들이 양적·질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과학으로 상상한다.
전화, 자동차, TV, 비행기를 넘어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과 SNS의 시대에서 내다보는 미래의 주인공으로 AI를 꼽는 사람이 많다.
단순한 기계학습을 통한 인간 모방이라는 현재의 AI를 뛰어넘는 100배, 1000배 똑똑한 AI의 시대. 그때 인간은 어떤 모습이고 세상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인간을 AI와 본질적으로 다르게 하는 ‘인간다움’이란 것이 있는지, 또 있다면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최종적인 답을 안다고 자신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와 관련해 우리가 되새겨 볼 만한 이야기가 소설 《듄》 초반에 나온다. 《듄》 의 세계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인류가 있다.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human’, 그리고 사고능력을 상실한 ‘사람들people’. 인류가 그렇게 둘로 나뉘게 된 계기는 사람의 사고를 대신해 줄 수 있는 AI의 출현이었다고 한다.
귀찮고 머리를 아프게 하는 힘든 생각 따위는 AI에게 맡겨버리는 편리한 길을 택한 ‘사람들’은 삶의 굴레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AI를 조종하는 ‘인간’들에게 조종당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저자는 다양한 예술작품(문학, 미술, 음악 등)과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통해 미래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 미래의 모습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도들이 모인 KAIST에서 우수 강의로 뽑힌 것이 전혀 이상할 리 없다.
온전한 공부를 위해서는 인문학과 함께 과학 공부를 해야 한다는 유시민 작가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에 대한 문화물리학자인 저자의 답가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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