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느낌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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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30대에 접어들면서 그.. 말로만 듣던 "대화의 단절"이란 것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서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상태, 즉.. 동문서답

각종 토론프로그램을 보면.. 일정한 주제를 놓고 대립하는 양측이 열심히 갑론을박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대방의 얘기를 듣지 않고, 지 얘기만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흠.. 일부러 그러는지도 몰라...

어쩌면.. 그런 방식이 더 편하고, 오히려 대화가 통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아이러니한 생각도 들기도 하고...

학창시절에 도스토예프스키(Ф.М. Достоевский)의 3대 소설이라 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죄와 벌", "백치"를 모두 읽었었지만.. 솔직히.. "백치"는.. 도저히 이해가 안갔다. "백치"읽다가.. 혹시 내가 "백치"가 될 것만 같은 "분노"마저 느낄 정도였으니....

그래서.. 난 러시아 작가 중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러시아 문법은 다른 외국어에 비해서 문법구조가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원서 역시 문장이 산만해서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런데.. "악어(КРОКОДИЛ)"는..

어쩜..!! 역시 도스토예프스키를 "대문호"라고 하는 이유가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악어를 읽고난 후의 나의 느낌은 순전히 주관적인 것이다.

악어"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그런데, 악어 속의 얘기는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한... 그래서 섬뜩한 느낌마저.. 마치 도스토예프스키가 "악어"를 통해 내게 꾸중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통나무처럼 누워서도 인류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증명해 보일거야. 우리나라 신문과 잡지에 실리는 대부분의 기사도 통나무처럼 누워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이야. 아무도 없는 외진 구석이나 악어 뱃속으로 들어가서 눈을 감고 있으면 그만이야. 그렇게 하면 즉시 인류릍 위한 완벽한 천년 시대를 구상해낼 수 있어…』

『Но я докажу, что и лежа на боку, - мало того, - что только лежа на боку и можно перевернуть судьбу человечества. Все великие идеи и направления наших газет и журналов, очевидно, произведены лежебоками; вот почему и называют их идеями кабинетными, но наплевать, что так называют! Я изобрету теперь целую социальную систему, и - ты не поверишь - как это легко! Стоит только уединиться куда-нибудь подальше в угол или хоть попасть в крокодила, закрыть глаза, и тотчас же изобретешь целый рай для всего человечества. Давеча, как вы ушли, я тотчас же принялся изобретать и изобрел уже три системы, теперь изготовляю четвертую.』

그런데.. 희안하게 번역자가 강주헌 씨인데, 이 분은 불어과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노어과 출신들의 번역체하고는 좀 다르다. 불어번역체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솔직히 우리나라 노문과 또는 노어과 교수들의 번역문체는.. 나로서는 읽기가 너무 힘들다. 대학원생들만 뼈빠지게 고생시키지 말고, 당신들도 좀 노력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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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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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잘 모르는 작가인 <아니 에르노>

사실, 무슨 기대를 걸고 읽으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첫 장을 열었을 때..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때리는 이 몇 줄의 문장....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던데.. 가만히 살펴보면... 불륜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애시당초 인간의 삶에 원래부터 <불륜>이란 것이 있었을까....

어쩌면 집착처럼 느껴지는 작가의 "사랑"이야기..

그러나... 솔직히 읽고 나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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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경제기적 - 프란츠 알트의
프란츠 알트 지음, 박진희 옮김 / 양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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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에서 프란츠 알트는 성장을 얘기했다. 마치 경제발전론자가 신주단지 모시듯 말하는 경제성장을 열변했다. 프란츠 알트는 성장하지 않는 미래를 두려워했다. 이 책을 읽고난 후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그가 여느 경제성장론자와 다르다면 환경파괴적인 경제성장이 아닌 자연과 조화를 이룬 경제성장을 논한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의 환경단체의 확신적인 주장과는 달리 그는 기술과 환경은 조화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매우 희망적이다. 과격한 환경운동론자의 전형적인 운동방식인 All or Nothing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생태’와 ‘경제기적’이라는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에 프란츠 알트는 ‘생태’에 ‘적’이라는 연결단어를 하나 첨가해서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경제성장론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 또한 희망적이다. 

이 책은 예사롭지 않다.

노동에 대해서 묻는다. 노동이 무엇이냐. 일하기 위해서 사느냐 아니면 살기위해서 일하느냐를 묻는다. 자칫 배부른 부르주아지가 하루하루 연명하기에 급급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에 대해서 경멸하며 묻는 듯한 오만방자한 물음일 수도 있다.

태양과 갈대, 바람은 인간의 모든 에너지 생활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차고속이나 도로위에서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를 혐오한다. 더 나아가 농부는 사업자로서 미래 에너지 생산주체로서 격상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게다가 자연은 완전고용을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절대신이라 한다. 

그가 열변하는 것은 어느 하나 틀린 말은 없는 듯하다. 다양한 실전모델을 제시하면서 비교적 설득력있게 논변한다. 가슴속 답답한 것을 속 시원하게 긁어준다. 이 책에 쓰여 있는 대로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공해없는 에너지, 재생가능한 에너지, 완전고용이 가능한 생태에너지산업.... 

하지만 너무 이상적이기 때문에 독일 또는 유럽에서는 몰라도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적용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 아마도 나의 의식 속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제기했던 토마스 홉스의 성악설이 자리잡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당위가 현실에 항상 저만치 앞서 있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일까..? 현재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이 사회에서나 또 과거의 역사 어느 사회에서도 그러했다. 그래서 현실은 당위를 쫓아다니다가도 늘 지쳐버리곤 하지 않았는가? 

석유와 같은 화석에너지는 틀림없이 고갈된다. 중국과 일본이 역사문제로 포장된 석유가스광구쟁탈전을 벌이든, 구소련의 아르메니아공화국이나 체첸공화국 석유를 가지고 서방세계와 러시아가 치고 박고 싸우든, 동아시아 어떤 나라에 석유가 얼마 매장되어 있든 확실한 것은 화석에너지의 생명은 이제 풍전등화라는 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개발하여야 한다. 이것은 당위다. 

하지만, 현실은...? 얼마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세녹스'라는 유사휘발유의 사례와 같이 기존의 석유유통시장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이유로 판매금지를 당했다. 이것은 대체에너지측에는 끼지도 못하는 세녹스가 휘발유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 사례를 비추어 봤을 때 기존의 이해관계인들은 아무리 바람직한 에너지정책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과 그 친족의 미래외 다른 사람들의 미래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천민자본주의의 본모습이 아닐까..? 

프란츠 알트의 말대로 바이오매스 에너지, 태양에너지로 자동차를 굴리든 전기를 공급하든 이러한 대체에너지개발에 대해 과연 기존의 이해관계인들, 즉 정유회사, 석유관련제품판매회사, 막대한 세금을 거두고 있는 정부부처들은 과연 이러한 사태(?)를 방관만 하고 있을까? 아마도 추측컨대 별 해괴한 논리를 들이대며 방해작전을 펼칠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닐까..? 

당위와 역방향으로 주행하는 현실은 결국은 모든 사람을 파멸시킬 것이다. 선각자인 우리나라의 환경단체들은 투철하게 원자력발전소 신설을 반대하고 저지하기 위해 투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에게 에너지문제의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다. 환경단체의 운동은 분명 당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환경단체들은 문제는 제기하지만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은 제시하지 않는 것 같다. 않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노련한 프란츠 알트도 분명 이 점을 의식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현재 절정기를 맞고 있는 환경운동은 사람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거나 단념과 포기를 설교하기보다는 좀 더 긍정적인 주장을 하고, 좀 더 나은 생활을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 아닐까...? 자동차배기가스가 환경을 파괴하므로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 말자라는 과격한 구호를 내세우기 전에 산소를 발생시키는 연료를 개발하라는 구호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환경단체와 경제단체가 대립각을 세우면서 서로 앙숙이 되기보다는 서로를 격려해주는 공생과 협력관계를 설정시켜야 하지 않을까..? 환경단체물품을 경제단체가 사줄 것을 구걸하는 관계가 아닌..... 

그런데, 한가지 의문점이 생기는 것은 불과 200년만에 지구의 환경이 엉망이 되었는데, 이에 대한 책임의 소재에 대해서 프란츠 알트는 왜 언급이 없었을까? 미래에 대한 비전은 과거를 되돌아 봄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잠시 잊은 것은 아닐까?

그 책임에 대해 그의 모국 독일이나 유럽을 포함해서 선진공업국들은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을까? 선진국들은 여태까지 전세계의 공통자산인 환경소비에 대한 대가를 후진국들에게 톡톡히 치러야 한다. 무엇보다도 선진국들의 환경단체는 이 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반성을 자국에 대해서 촉구해야 하지 않을까? 오존구멍이 커진 것이 아프리카의 저개발국들의 잘못인가? 아시아 저개발국들에게 북극해의 빙하를 녹인 책임이 있는가?

대체에너지 기술의 선진국 독점현상이 생길 것이라는 것은 뻔할 것이고,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가지 않을까? 그의 말처럼 태양은 청구서를 우리에게 보내지는 않겠지만, 선진국은 후진국에게 청구서를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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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여행기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이동진 옮김 / 해누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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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인생(?)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었던 시절은 초등학생시절 때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랑 동갑인데다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던 외사촌의 집에는 책이 엄청나게 많았었는데,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어린이 백과사전류 였던거 같다. 한 100권쯤 되는.... 학교 끝나면 외사촌네 집으로 가서 그 책들을 읽는 게 당시 나의 낙이었다.

그리고 교육용 만화도 많았는데, 유독 걸리버 여행기를 좋아했었다. 아마도 어린 아이의 관점에서 만화속 걸리버 여행기의 이야기들은 요즈음의 해리포터 시리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완역이라고 하는 글로 된(?) 걸리버여행기는 단순한 환타지 동화가 아닌 엄청난 사회비판서였다.

인간을 빗댄 야후에 관한 묘사는 충격적이었다.

"전체적으로 말해 내 여행 동안 이처럼 기분 나쁘고 또 본능적으로 적의를 느낀 동물은 본 적이 없다."

가톨릭 신부였던 스위프트는 인간을 무지 싫어했었는지 그의 묘사력이 너무 뛰어나다.

그리고, 라푸타 부분은 생각만해도 섬뜩했다. 아마도 나같은 몽상가 내지 이상주의자 내지 현학자들을 비꼬는 듯한 날카로우면서도 시니컬한 서술은 名文이라 칭할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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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나이프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뉴엘 베른하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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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굉장히 건조하다...

머랄까.. 비가 올듯말듯 한 저녁 10시쯤... 서울 광화문 4거리.. 아니면.... 분당 아파트 단지를 혼자 걸으면서 바라본 잔뜩 흐린 하늘이랄까...

프랑스와 프랑스인들을 좋아한다... 대학교 다닐 때 힐끔 보았던 프랑스인 교수들에게 풍기던 그 느낌이 좋았고.. 헌법을 공부할 때 다가오던 프랑스 역사는... 내겐 너무나도 감동이었다....

프랑스어의 그 달콤한 느낌이 너무 좋다.. 그리고 자유를 누릴 줄 아는.. 프랑스인들의 삶이 부럽다...

그런 프랑스라 할지라도 고독은 있기 마련일까.. "현대인의 고독"...? 120쪽에 불과한 이 책을.... 무려 10일동안 이나 읽어야 했다...

왜냐면... 그 다음 이야기를 읽기가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문장이 짧고, 간결한 소설은... 무척이나 쓸쓸한 느낌을 전해준다.. 그리고 이런 문장체의 소설은...읽는 사람에게 행간을 읽어내야 하는 상상력과 사색이 뛰어날 것을 요구한다..

나처럼 책을 읽음에 게으른 사람들은 이런 류의 소설을 읽기가 무척 고통스럽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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