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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 - 많이 바를수록 노화를 부르는
구희연.이은주 지음 / 거름 / 2009년 4월
평점 :
모든 직업에는 지켜야할 직업윤리가 있다. 언론인은 반드시 사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고, 법조인은 법을 공정히 집행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통해 환자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다짐하고, 군인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선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유지한다. 물론 현실에서 모든 직업윤리가 지켜지는 건 아니다. 과장과 왜곡을 일삼는 기자도 있고, 자본의 논리를 쫒아 법을 곡해하는 법조인도 있다. 또한 모든 군인과 의사들이 목숨을 바쳐, 각각 나라와 환자를 지키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직업윤리는 어둠 속 망망대해 위의 작은 등대 같은 존재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직업윤리는 각 직업 종사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때로 그 방향과 정반대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비판의 화살을 날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시대의 핵심주역인 상인의 직업윤리는 무엇일까? 영국의 저명한 작가이자 화가, 예술비평가이자 사회개혁가인 존 러스킨은 불후의 저작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에서 상인의 윤리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상인은 자기가 파는 물건의 품질과 그것을 획득하거나 생산하는 수단을 철저히 이해하고, 물건을 완벽한 상태로 생산하거나 획득하여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가장 싼 가격으로 분배하기 위해 모든 지혜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결국 양질의 상품을 가장 저렴하게 소비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여기에 상인의 존재 이유가 있다. 때문에 러스킨은 폭리를 취하는 상인은 법률을 곡해하는 법조인이나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인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사회의 상인들은 자신들의 윤리를 얼마나 잘 ‘인식’하고 있을까.(절대 ‘지키고 있을까’가 아니다.)
애석하게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상인들은 점점 더 복잡한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첨단 마케팅 기법으로 제품의 강점만을 강조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인과 소비자가 얻는 정보의 양은 점점 차이가 난다. 수 만개가 넘는 복잡한 상품 앞에서 오늘날의 소비자는 눈 뜬 장님과 다름없으며, 그 앞에서 상인들은 마치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처방전을 써주던 의사처럼 정체가 불분명한 제품을 자유자재로 판매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선 신뢰가 생명이다. 정보의 격차가 워낙 큰 상황에서 소비자가 생산자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게 된다. 의심을 해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제품이 정말 도움이 되는지, 유기농 제품은 정말 유기농 재료로 만든 것인지, 소비자들은 일일이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소비자들이 생산자들을 마냥 믿고 제품을 구입하기엔, 상인들의 직업윤리를 의심케 하는 사건들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얼마 전에도 <소비자고발>을 통해 고가의 기능성 과자에 대한 방송을 봤다. 기능성 과자엔 몸에 좋은 성분은 참새 눈물만큼 들어있었다. 하지만 과자 업체들은 그 성분의 효과를 강조하며 비싼 가격을 받아왔다. 기가 막혔다.
하지만 화장품 업체의 불편한 진실을 접하고 더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전직 화장품 회사 직원 두 사람이 쓴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을 읽고 과연 상인들에게 직업윤리란 존재할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책은 그동안 이야기로만 떠돌던 화장품과 제조업체의 문제점들을 전문적인 사실에 근거해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우선 화장품 가격이 책정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5만 원짜리 화장품의 제조 원가는 약 10,500원, 공급가는 19,500원이다. 이 중 원료는 3,000원, 오히려 용기나 라벨 가격은 원료 가격보다 비싼 4,300원이다. 연구 개발비도 전체 가격의 1.8% 수준인 900원이지만, 광고비와 기타 판촉 홍보비는 12,000원으로 전체 제조비용의 24%를 차지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목수가 500원에 나무를 사와서 의자를 만들고, 의자 홍보에 2,000원을 들인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도대체 그놈의 홍보라는 것이 무엇인 데 그렇게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간단하다. 화장품 회사들이 기적의 원료를 개발한 것처럼 떠드는 것들도 대부분 사실은 업계 사이에선 다 알고 있었던 그 나물의 그 밥인 원료들이다.(기존에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성분이 뜨면 새로 만든 성분일 거라 생각하겠지만, 기실 그 성분들은 이미 화장품 성분 사전에 거의 100% 다 나와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 성분’의 정체는 대부분 화장품 원료 명단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발탁된 재료일 뿐이다.) 결국 원료 차이로는 승부를 낼 수 없다. 오히려 그 원료를 얼마나 대단하고 기발한 원료인 것처럼 보이게 하느냐에 따라 경쟁의 승부가 갈린다. 자연히 원료비나 연구 개발비보다 홍보 마케팅에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심지어 같은 회사에서 고가 브랜드 A와 저가 브랜드 B를 갖고 있다고 한다면, 주요 성분은 같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가 저가의 구분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렇다. 브랜드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제품의 실제 효능 여부다. 최근 줄기 세포 화장품 등 다양한 기능성 화장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광고만 보면 전부 임수정의 뽀얀 피부와 전인화의 젊은 피부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화장품 기능이 워낙 다양해져, 마치 의약품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화장품 업체들이 기능성 화장품을 식약청에 등록하면서 하는 말을 한 번 들어보면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식약청에 화장품을 등록할 때는 줄기 세포 또는 그 배양액이 미미해 의약품 같은 효과는 낼 수 없으며, 그에 따라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도 매우 적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돌아서서 소비자에게 광고를 할 때는 그 제품 하나면 주름이 쫙 펴질 듯한 각종 문구로 유혹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기능이 없는 제품을 있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나쁜 건, 피부에 해로운 제품을 좋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다. 대부분의 화장품엔 피부에 해로운 방부제가 들어있으며, 눈가 주름을 없애준다는 아이크림은 눈가에 과도한 영양을 공급해 오히려 눈가 주름을 더 빨리 생기게 한다. 립스틱과 색조화장은 말할 필요도 없다. 화장품에 들어가는 타르 색소 90종 중 79종은 식품첨가물로 금지된 것들로 대부분 암이나 간장 부종을 유발한다. 책의 결론은 간단하다. 우리의 피부는 노화할 수밖에 없다. 의학으로 피부의 젊음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는 있다. 하지만 화장품은 결코 의약품이 아닌, 그저 화장품일 뿐이다. 때문에 화장품이 당신의 피부를 한 순간에 임수정의 피부로 바꿔줄 것 같은 착각은 버려야 한다. 더 나아가 오히려 과도한 화장품은 노화를 촉진한다. 클렌징-화장수-크림-자외선 차단제 정도의 기본 화장품만으로도 충분하다. 제품 판매를 위해 화장품 회사가 만들어놓은 논리에 절대 빠져들어선 안 된다.
다행이 얼마 전부터 화장품의 모든 성분을 공개해야 하는 전성분 표시제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성분의 이름은 복잡하기만 하다. 디부틸하드록시톨루엔, 부틸하이드록시아니솔, 소르빈산...등등. 때문에 성분만 보고는 화장품의 유해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결국 소비자가 공부해야만 한다. 소비자의 노력으로 생산자와의 정보 격차를 줄여야 한다. 생산자의 도덕에 모든 것을 맡기기엔, 이미 자본주의의 핵심인 신뢰가 깨진지 오래다. 깨진 신뢰는 자본주의 사회의 토대를 뒤흔든다. 결국 자본주의를 진정 좀먹는 벌레는 규제와 관리가 아닌, 상인들의 부도덕이다. 물론 모든 직업이 윤리대로 깨끗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인의 영역에서처럼, 일정부분의 과장과 누락이 공공연하게 허용되는 직업은 없다. 사실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신경 쓰는 것만큼이나 상인은 제품의 생명에 신경을 써야함에도 말이다. 모공 관리 화장품은 알코올 함량이 높아 피부를 부어오르게 만들어, 일시적으로 모공의 크기를 줄여주지만, 모공 자체의 크기를 줄여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모공 관리 화장품을 팔며, ‘이건 모공을 줄여줍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 지역 땅값 금방 오른다'며 투자자 모아놓고, 황무지 팔아버리는 사기꾼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행위다. 부디 모든 소비자들이 아보벤젠과 폴리에틸렌글리콜을 암기하며 화학자들이 되기 전에, 상인들의 분명한 직업윤리가 강조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