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부조리(不條理)’ 란 단어가 있다. 주로 철학적 용어로 쓰이는 단어다. 일반인에게 친숙한 단어는 아니다. ‘조리에 맞지 않는’ 즉, ‘합리적으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정도로 간단하게 풀어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부조리한 상황을 자주 접한다.(돈으로 법치를 흐리는 대표 기업의 이야기, 부유한 자식을 위장 취업 시키는 대선 후보의 이야기 등등.) 때문에 어른들은 부조리에 익숙하다. 가끔은 부조리와 조리(條理)의 경계가 흐려지기도 한다. 어느 지역에서는 넘쳐나는 음식 쓰레기에 몸부림칠 때, 또 다른 곳에서는 기아로 한 해 수천 명의 아이가 죽어가는 상황에 무덤덤해질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던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는 기본적인 상식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아직 사회의 부조리를 모르는 아이의 눈으로 세계의 기아에 접근한다. ‘왜 부자나라의 남는 음식을 가난한 나라에게 제공하지 못하는가?’ ‘왜 힘 있는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의 내분을 막지 못하는 것일까?’ ‘왜 국제기구는 가난한 모든 나라를 충분히 돕지 못하는 것일까?’ ‘왜 기업들은 가난한 아이들의 생명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 것일까?’ ‘왜 부자 나라들은 가난한 나라들이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일까?’ 사실 아프리카의 굶어 죽는 아이들의 모습은 퇴근길 집 앞의 가로등만큼이나 익숙한 정경이다. 익숙하기에 그들의 고통은 철저히 남의 일이다. 하지만 아이의 천진난만한 질문이 부조리를 보지 못하는 어른들의 무기력함을 흔들어 깨운다. 15,000km 밖에서 일어나는 아수라 지옥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만든다는 의미다.


현재 기아인구는 8억 3천명. 평균 700만 명의 아이들이 매년 비타민A 부족으로 실명한다. 어마어마한 수치가 숫자개념을 마비시킨다. 하지만 1984년 당시 농업생산량으로 120억 명의 인구에게 2,400-2,700 칼로리를 제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앙골라 아이들은 미국의 소 보다도 더 적은 양의 옥수수로 연명한다. 필리핀에서는 30만 명의 주민들이 스모키마운틴이라 불리는 쓰레기 산더미 주변에서 산다. 음식 쓰레기를 먹기 위해서다. 쓰레기를 먹는 빈민층은 쉽게 병에 걸린다. 그들이 낳은 아이들 역시 병에 걸린 채 태어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브라질 빈민층 마을에는 ‘이름도 없는 작은이들의 묘’ 가 있다.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의 위력 때문이다. 기업은 때론 더 많은 이윤을 위해 곡물을 큰 저장고에 보관해놓고 풀지 않는다. 그 대가로 이들은 곡물가격 상승으로 인한 돈을 얻고, 구호단체들은 재정 부족으로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제공할 곡물을 충분히 사지 못한다. 선진국들도 아프리카 국가들의 가난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막기도 한다. 이들은 스스로 배를 채우는 국가보다는 자신들의 말에 고분고분한 가난뱅이 국가를 선호한다. 브루나키파소의 상카라가 실패했고, 칠레의 아옌데도 실패했다.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큰 산 앞에 막혀버린 것이다.


사실 굶는 아이들은 유럽에도 미국에도 있다. 한국에도 아직까지 방학 때면 급식을 먹지 못해 굶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시장에 지배당한 세상이 이들을 도울 방법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자유로운 무역’ 이란 미명아래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굶는 아이들은 더 배를 곯게 된다. 장지그러는 자유로운 무역의 미명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라고 썼다. 시장의 완전한 자유는 억압과 착취와 죽음을 의미한다.’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세네갈 사람들은 르라이으(Le Rail)라는 거주지에서 언제 쫓겨날까 매일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신자유주의의 망령을 생각할 때, 이들의 고민은 당분간 계속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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