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발견 - 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고명섭 지음 / 그린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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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설명한다는 것은 능력이다. 설명한다는 행위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설명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갈등은 부정확한 설명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해내는 일은 훨씬 어려운 작업이다. 우선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내기 위해선 어려운 내용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필요하다. 어려운 내용을 일단 분해하여 나만의 쉬운 방식으로 재조합을 하기 위해선 완전한 이해가 필수불가결한 선결조건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용어도 그에 상응하는 쉬운 단어로 바꿔야 할 것이며 개념이 모호한 내용은 핵심을 뽑아 깔끔하게 정리해야 할 것이다. 가끔 어려운 기사나 해설서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은 이해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기존의 텍스트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발생한 결과다. 결국 대상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서 명료함이 도출되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의 <지식의 발견>을 보며 명료하게 설명해내는 능력의 가치를 새삼 생각했다. 쉽지만은 않은 동서양의 철학과 정치/사회 사상 등을 고명섭은 상당히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 난해한 내용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자 출신 필자들이 보여주는 쉽고 깔끔한 글쓰기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지식의 발견>은 고명섭 기자의 지식체험기다. 특정 주제를 정해놓고 저자는 그 주제에 대한 다양한 서적을 탐독하고 기록한다. 제목 그대로 그 과정에서 ‘발견’ 한 ‘지식’ 들을 풀어놓은 책이다. <지식의 발견>을 관통하는 커다란 줄기는 광의의 ‘근대성’ 이다. 근대성에는 민족주의와 이성, 서구주의, 민주주의 등이 모두 포함된다. 내가 해석한 저자의 화두는 ‘과연 근대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이다. 그 근대성에 대한 저자의 고민은 서문에 김수영의 시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밭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고명섭 기자는 이 시를 통해 자기 민족의 역사에 대한 시인의 딜레마를 발견하고 있다. “제국주의의 압도적 시선 아래서 자기 역사를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 형편없는 역사를 통째로 긍정할 수도 없는 딜레마(7)” 근대성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 역시 김수영시인이 느낀 딜레마와 비슷했다. 근대성에 내재한 이성의 폭력이 분명 20세기의 비극을 가져왔지만, 그렇다고 근대성 자체를 부정하고 탈근대의 가치를 새롭게 부상시키는 것이 비극의 해결책인가에 대한 회의. 이러한 딜레마에서 고명섭 기자의 지적 탐구가 시작된다.


       탈근대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는 환상이자 억압적 이데올로기였다. 하지만 고명섭 기자는 민족주의에 대한 변호와 함께 책을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 민족주의는 “분명히 탈식민주의였고 탈냉전주의였으며, 평화주의였고, 진보적이었다. 반면에 그 이념과 운동을 압살한 국가주의는 일제 부역자들을 옹호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로 분단을 고착시킨 반민족주의”였다. 때문에 그는 주장한다. “민족주의의 억압적 폐해, 이른바 근대성의 억압적 성격을 과장해 철폐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짓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가 민족주의에 내재한 근대성의 억압적 성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그는 분명 서구에 기반을 둔 근대주의는 세계 역사에 비극을 가져왔다고 인정한다. 권용선의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무능력한 계몽(이성)을 반성하고 계몽(이성)을 계몽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고 말하며 김수용의 <괴퇴, 파우스트, 휴머니즘>을 통해 서구 근대성의 원류, 맹목적으로 추구되는 이성의 폭력성을 언급한다. 근대성의 폐해를 이야기하는데 니체가 빠질 리가 없으며, 권보드래의 <연애의 시대>를 통해 계보학적으로 근대성의 신화를 해체한다.


       그럼에도 고명섭은 근대성과 이성을 철저히 배제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엔 동의하지 않는다. 칼 포퍼나 하버마스의 주장처럼 근대성의 폐해를 가져 온 것도 이성이지만 이를 바로 잡는 것 역시 이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성의 폐해를 바로잡는 대안적 이성은 무엇인가? 내 독해가 맞다면, 고명섭 기자는 대안으로 ‘서구주의의 극복’ 을 내놓는다. 근대성에 내재한 문제점도 서구에서 전파됐으며, 우리가 이를 고스란히 수용하면서 근대성의 한계까지 한국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민족주의에 대한 옹호를 하면서, 그가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에 등장한 민족의 개념이 한국의 상황과 다름을 주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저자가 근대성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에 이어 소개하는 책은 박노자의 <하얀 가면의 제국>과 김용옥의 <독기학설>이다. 모두 서구주의 극복을 고민한 저작들이다. 결국 저자는 근대성에 내재한 억압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근대성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억압성을 극복하려 않는다. 오히려 서구 근대성에 대한 반성을 통해 근대성의 재도약을 시도한다. 다양한 지식의 발견을 통해 고명섭 기자가 도달한 핵심이 아닐까 싶다.


       책 제목답게 <지식의 발견> 하나면 누구나 지식이 풍부해짐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하룻밤 시리즈’나 다양한 교양 시리즈가 유행하고 있는데, 난 <지식의 발견>이야말로 하룻밤에 교양인이 되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적절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책에 대한 본인의 의견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 김명인의 <조연현, 비극적 세계관과 파시즘 사이>에 대해 고명섭 기자는 파시즘에 대한 비판적 해설을 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저자의 비판적 해설이 다른 책에서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실제로 근대성이란 딜레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라면 충분히 비판적인 요소를 지적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참고로 이 글들은 인물과 사상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이다. 때문에 분량제한이란 제약에 부딪혔을 가능성이 높다. 내용 설명만으로도 분량이 부족했을 수도 있으니) 이 같은 옥의 티에도 불구하고 <지식의 발견>에 담겨있는 ‘알맹이를 깔끔하게 정리해낸 내용’과 (적절한 본문 인용) ‘깔끔한 문장’ 은 다시 봐도 놀랍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해 낸 고명섭 기자의 내공이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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