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수 없게 단정한 손목을 잡아챘다. 그 손목 만큼이나 단정하고 심플한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손목을 움켜진 손바닥 아래로 째깍째깍 맥박이 울었다. 어.하고 조금 놀란듯한,익숙하고도 설레는 목소리가 가깝게 맴돌았다.따뜻한 느낌과 함께 그는 의외로 힘 없이, 잡아 끈 실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평소엔 맡아보지 못한 시원하고 남자다운 스킨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긴,나와 그는 이렇게 가까이 마주쳐본적이 없었다. 어리둥절한 내색이었다. 또 잔잔한 시선이었지만 그러나 확실하게 당혹스러움과 질책의 마음을 전달하는듯 했다.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 정지한 채 한참을 노려보았다.아니.나만 노려보았다. 가만보니 그는 제법 침착했고, 내쪽이 오히려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전등스위치는 모두 내려가 있었으나, 전원이 켜진 채인 기계들로 인해서 실내가 작은 우주처럼 반짝거렸다.
...
입술이 따뜻해서 온몸이 가득찬듯 풍족한 느낌을 받았다.뺨위에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절묘한 타이밍에 뜨겁고 큰 손이 씻듯이 얼굴을 닦아주었다.만족스러웠다.내가 훗날 어떤 잠자리를 갖게 되더라도 누구와 키스를 하게 되더라도 이런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수 없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상'에 불과했으나 지금 놀랍게도 내 앞에 있고 또 나는 그를 안을수 있었다.
한번으로 만족할수 있을까 여러번 생각해보았는데, 결론적으로는 한번으로 족하겠구나라는 대답이 나왔다. 이걸로 되겠구나 라고.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있어서 내 손에 간지럽게 한가득 쥐어진다. 쓰다듬는다.그러나 여기에서 그만이라고 스스로에게 명령한다. 그의 입술이 잠시 멀어졌다가 숨을 뱉으며 귓가에 바짝 다가왔다. 소름이 끼쳤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나의 두 몸이 이런식으로 엮어진것에 대해 유감,그리고 감사.했다. 격려하듯이 나를 꽈악 안는 그,그리고 그의 몸이 완전하게 느껴졌다. 몹시도 탐나던 그것을 갖게 된 순간, 앞으로 잃어버릴 어떤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하나의 경험으로 인해,나는 살아났다가 그리고 영원히 그 안에서 죽어지기로 결심한다.
-올릴까 말까 고민을 좀 했지만, 지적 재산권 운운하기에 너무 허접한거라,그냥 누가 와서 보고 픽 웃고가라고 결국엔 올려두는 글.
약 3년 전의 판타지,망상되겠다. 나는 그때 무슨 생각으로 이런 유치한걸, 낯뜨거운걸(키스까지만이었으니 19금은 아니다.라고 외치고싶지만)썼을까. 오늘 문득, 내가 여기저기에 저질러놓은...미아가 된 '글'들을 떠올렸다.(그걸 무려 글이라고 할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떠올림이 이런 뻔뻔한 짓을 하게 만들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 이외의 누군가가 볼수있는 이런곳에 꺼내놓게 될줄은... 뭐 어떠랴.나의 정체를 알사람도 없는데.
어렸을적부터 (지나친)상상력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나는, 종종 남들은 모르는 나만 알고 키득댈수있는 어떤 판타지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저때...목소리가 끝내주는, 아주 성실하고 멋진, (마누라가 잘입혀서)늘 단정하고 깨끗한 차림이던 어떤 유부남을 흠모했다. 그는 내게 저런 불건전한 영감을 가져다주었지만... 사실은 실제로 저런 짓을 할사람도, 할수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아마 그런것들이 오히려 흠모의 심지에 불을 붙였을 것이다.) 잘 살아계시나? 본인의 방면에서는 워낙 뛰어나셨으니까 아마 여기저기서 활약하고 계실것 같다. 아무튼 나는 저때 하필,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게 되었었다. 달고 쓰게 읽혔던 책이다. 한줄 한줄 공감하며 외로운 짝사랑을 유난스럽게 위로했었다.푸하.
아.이거 어쩐지 며칠뒤에 후회하고 지워버릴것 같다.아닐수도 있고.어쨌든 확실한건 나중에 나이를 좀 더 먹고 이런걸 다시 발견하게되면,어설픈 고딩때의 사진을 보듯,아마 재미있을것같다.또 쪽팔릴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