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탄생 200주년 기념 컬렉션 [5CD]
쇼팽 (Frederic Chopin) 작곡, 루빈스타인 (Arthur Rubinstein) / 소니뮤직(SonyMusic)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출퇴근시간을 이용해 꽤 열심히 들었던 5장짜리 음반. 이제서야 리뷰를 올린다. 탁월한 네명의 연주자, 나같은 초보입문자에게는 참 고맙고, 풍성한 기념 앨범이었다.  

가장 손이 많이 갔던 것은 키신의 연주가 담긴 씨디, 그리고 루빈스타인의 녹턴 씨디였는데, 어떤 고마운분의 베품으로 처음 들었던(언젠가 이미 들어보았을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24 Preludes를 키신의 연주로도 부지런히 들었다.(키신,솔직히 말하면 외모로 보이는 어떤 선입견때문에 별로 기대를 안했던것 같다.오해해서 미안합니다! 좋아졌어요.좋아할거에요.) 처음 듣던 때에도 장마였나? 며칠째 비가왔던 것 같은데, 다시 떠올리고 들어보는 요즘도 계속해서 비가 내린다. 아,그리고 오랫만에 토요일 조조영화를 보러나갔던 곳에서도 이 곡을 들었다. 여러 소음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것 같았지만, 나는 문득 정지한채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좋은 것은 어디에서 만나도, 어느때에 만나도 항상 반갑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한가지 더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나는 그동안 단지 모르는 채로,눈치채치 못한채로...지금껏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클래식 음악들을 들으며 살아왔겠구나 하는 사실. 아무튼 진작에 주의를 기울여 들어보지 않았었다면, 조금 혼란했던 그곳에서 나는 이곡이 쇼팽의 음악이라는 걸, 24개의 전주곡이란 타이틀을 갖고있다는 걸 몰랐을것 같다. 우연한 기회들이 필연적인 감사가 되는 순간.   

그리고, 좀더 명확하게 반가운 마음으로, 또 친근한 기분으로 자주 들었던 루빈스타인의 녹턴. 가끔 피아노 연주자들이 건반과 끈끈하게 이어져있을때 무심코 들려지는 소리들이 있는것 같다. 꼭 굴드가 아니어도, 옅은 허밍들, 신중한 숨소리 같은 것들, 그리고 손가락이 건반에 가닿는 소리들, 그런 소리들은 나를 무척 행복하게 해준다. 왠지 연주가들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습관들을 나누어 갖는 기분이 드는 것 같다. 그런 사소하고 작은 소리들이 모여서 개인의 음악을 이루고, 나는 그 사적인 음악들에 참여하거나 초청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실제적으로 마음과 시간을 나누고 공유하는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도, 가끔씩 어떤 피상의 한계에 부딪히는 때가 오는데...이렇게 한 곡의 음악과 만나고, 살아있는 관계를 맺어가는 경험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런 고마운것들을 채워주니 별수없이 이번 음반도 별 다섯개. 어짜피 내가 별 두세개를 준다해도, 그것은 검증된 평가가 아닐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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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9-03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루빈스타인의 녹턴 찌찌봉이네요~^^
맞아요~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모여,공감과 교감,나아가서는 살아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hina 2010-09-03 21:16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께서 [교감]이라는 단어를 말씀해주시니,
음악감상이라는 건 그저 '듣는' 수동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함께 '따라가고','느끼는' 능동의 행위라는걸,
다시금 생각하게 되네요.
루빈스타인의 녹턴 좋죠? 오랫동안 들어도 안질릴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당^^

라로 2010-09-0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예전에 아는 분이 쇼팽의 전곡 CD를 선물로 주셨는데 첨엔 열심히 듣다가 요즘은 거의 안듣고 있어요.
사는데 바빠서 그런지,,,,팍팍한 일상에 숨이 막힐 것 같으면서도 말이지요,,,좋은 글이에요.^^

hina 2010-09-03 21:4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님!(혹은 침묵님으로 불러드려야할지...)
어떤 연주자의 전집을 갖고 계신지는 알수없지만, 저 기념반의 구성도 개인적으로는 좋았습니다.일단 저렴하고 또 고루고루 들어볼수 있었던것 같아요.
저는 머릿속의 생각들이 지나쳐서 소음 수준이 되어가면,음악을 찾아 듣게 되는듯 합니다.악기들의 목소리(저는 주로 피아노)를 가만히 따라가고있다보면,그제서야 머릿속이 좀 조용해지는것 같아서요.
이제 휴일인데,되도록 여유도 찾으시고 숨통을 틔워주는 좋은 음악도 많이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글이라는 넘치는 칭찬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10-09-03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님은 원래는 Nabee 님이었죵. (나비로 오해했는지 좀 바꾸시려는 듯^^) 저렇게 표시를 해 놓으니 하니 뭔가 동물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흠. 그나저나..

키신의 외모에 의한 선입견은 몰까요? 궁금.

hina 2010-09-05 13:08   좋아요 0 | URL
아! 원래는 Nabee님이시군요. '...' 동물같다니..ㅎㅎㅎ
말씀듣고보니 그렇게도 보이네요.
키신의 외모에 대한 선입견은...이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라 밝히기 좀 민망하지만, 어쩐지 헤어스타일? 젊다는 것? 이런것들때문에 팝아티스트의 느낌이 나서요.ㅎㅎㅎ
뭔가 퓨전,크로스 오버...적인 연주를 할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양철나무꾼 2010-09-10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깃들님.
키신의 외모에 대한 선입견도 저랑 찌찌봉이군요~

웃음소리를 깃들님을 따라 해봤어요.
저는 저렇게 자음만으로 이루어진 웃음소리는 잘 안 쓰거든요.
따라붙는 모음이 너무 궁금해서리~^^

hina 2010-09-15 23:58   좋아요 0 | URL
앗.그런가요?
아마 음악이라면 나무꾼님께서 저보다 훨씬 많이 들으셨고 또 알고계실텐데, 무지랭이(^^;)인 저와 비슷하게 느끼시는 부분들이 있다는게 반갑고 신기하네요.
전 나름 인터넷채팅붐..의 세대였어서..오랜 습관이랄지,자꾸 자음으로만 이루어진 웃음소리들을 쓰게 되네요. 완전히 안쓰게 되는 때가 오겠지만요. 흐.

참, 댓글이 너무 늦어 죄송해요.흑..

2010-09-19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0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0-09-2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마음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귀기울여 듣고 싶어지네요.
음악 이야기, 책 이야기와 더불어.
한가위가 가까와졌어요.
어떻게 한가위를 보내시는지 모르지만
가족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길 바랄꼐요~.^^

hina 2010-09-20 14:13   좋아요 0 | URL
...님^^
어제 저녁, 사람들이 점점 입을 다물게되는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들을 나누었던게 떠오르네요. 제 마음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을 귀기울여 듣고싶다는 말씀,진심을 담아 감사합니다.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나름의 풍성한 추석연휴를 보낼까 합니다~
...님께서도 여러모로 풍성한,즐거운,뿌듯한 연휴 보내셨으면 해요~
 

이건 벌써 열흘 전쯤의 생각이다. 일순 나의 기분을 멜랑콜리하게 만들었던 어떤 대화로부터 불뚝 솟아난, 남들은 아마 굳이 이해해주고 싶지 않을, 그런 사소하고 사적인 생각.

나는 책들을 잘 버리지 못하는 편인데, 추억이 서려있다며 집안의 사소한 것까지도 버리지 못해 끌어안고 사시는 할머니들 같은 심정이라고 할수도 있겠고, 아니면 뭐랄까 생명...하나를 외면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렇기도 하다. 책 버리는 얘기를 하다가 '생명'이라니. 거창도 하다고 비웃음을 살 수있는 표현이지만 (물론 진정성이 없다면 그것엔 생명도 없겠고 그것을 책 다운 책이라고도 할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은 글과 음악 등의 작품,소위 예술이라고 불리우는 '창조의 결과물'들을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으로 여기는 나의 인식으로부터 나오는 생각이다. 나는 글이 잘 쓰여진 것, 그렇지 않은 것과는 관련없이 글쓴이가 자신의 일부를 떼어 써낸 글이라는 게 기실 맞다면 그 책을 함부로이 대할 수는 없다고 여긴다. 꼭 공감하고 좋아할 수는 없어도 말이다. 그것은 내가 대학생때부터 줄곧, 글이라는 것은 글 쓰는 이 자신의 따뜻하고 검은 피를 찍어서 써내는 무엇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꿔말하면 작가의 피를 먹고 사는 것이 바로 '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 글은 작가 본인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도 하기에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해를 끼치는 기생의 존재라기보다 공생하고 공존하는,서로에게 일단은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 더 맞을것 같다. 또한 혐오스러운 표현일지 모르나 완성된 원고,만들어진 도서는 글쓴이의 살점이라고도 생각해왔다. 그리고 글을 완성해나가는 것은 펜도 아니고 타자치는 손가락도 아니며 깎이고 조각난 글쓴이 자신일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여기까지의 글을 불편하게 읽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라는 인칭대명사가 4번이나 사용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어야 한다.)

아마, 이런 생각들 때문이었을꺼다. 나랑은 관련이 별로 없는, 또 내가 대면한적도 없을, 최소한의 예의도 요구되지 않는, 나도 모르게 버려지는 책들에 대해 그렇게 서글프게 느꼈던 것은.

버려진다는 것은 곧 잊혀짐이고, 존재가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인데 그런 도서를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도, 그런 도서가 된다는 것도 너무 슬픈게 아닌가 싶었다. 또 그 와중에 사람에게 인격이 있다면, 사람이 잉태한 도서라는 것에도 書격이 있어야 하는건 아닌가...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도 한것 같다. (이거 뭐 당장 書권보호협회라도 추진할 기세) 근데 여기까지 생각을 했다니 혹시 나는 너무 뭐에 미친사람이 아닐까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 이렇게 얘길한다고 내가 도서를 너무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들고다니기 편하자고 반양장이나 얇은책을,싼게 좋다고 문고판 책을 선호하는 면만 보아도...) 그저 서글펐던것 뿐이다. 그냥 나중에.아주 나아아아중에, 마른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 맞을 확률로, 땅파서 현금 나올 확률로 내가 책을 낼수 있게 된다면, 그때에 내 피로 쓴, 내 살점같은 나의 책도 그런 '버려지는 책'이 된다면 무척 슬플것 같다는 생각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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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8-3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주변의 책 만드는 사람들한테 들은 얘길,여기서 비슷하게 접하네여.
목에다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먹듯,
머리에다가 빨대 꽂아 아니 석션기 돌려 마지막 한방울까지 쥐어짜는 것 같대여.
무섭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언젠가 바람에 비에 꽃이 떨어지는 걸 슬퍼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지인이 이런 얘기를 해줬어요.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다고여.
이꽃이 지면 그 자리를 저 꽃이 대신할 거라고여~

'무척' 슬퍼하지는 마시라는~^^

hina 2010-09-01 14:2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꽃이 져야 열매가 맺어지는거네요.
다행히 저때의 우울함은,시간이 제법 지나서 많이 사그라들었어요.
괜한 오지랖이었다싶은 기분도 들고요^^;;
(정작 책을 만드는 사람도 아니면서...)
저는 아마 '버려지다'라는 동사가 좀 서글펐던 것 같아요.
그래도,
나무꾼님 말씀대로 '무척'슬퍼하지는 않을께요!

가을하늘 2010-08-3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깃들님의 글을 읽으니 수년전 즐겨보았던 드라마 주인공 아리영이 생각나네욤ㅋ
자신의 드라마 대본을 고쳐달라는 여주인공에게(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눈을 부라리며 피고름으로 쓴 대본 누구맘대로?! 이런?^^;;;

작가에게 있어 그렇게 글이란 것은 피고름으로 쓸 수도, 살점을 떼어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간혹, 어떤 작가에게 있어서 글이란 것은 그저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거나
독자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글의 장르에 따라 틀려지기도 하지만)
혹은 상업적이나 정치적 용도로 쉽게 쓰여진 글들도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양서들은 쉽게 버려질 수 없는. 것들이라 생각되지만,
어떤책들을 소지하고 있는 것조차 불필요하고 자리를 차지 하는 것들이 때론 있는 거 같아서.
왠지 그건 작가 스스로도 자신가 어떤 글을 쓰고 있는 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고
독자에게도 좋은 글을 선택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 듯 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어떤 책들은 쉽게 버려지는게 맞을 수도 있다는.
그 책을 쓴 작가님들이 들으면 서운하시려나요?^^;;

하지만, 이런 고민을 가지고 계신 깃들님의 책들은.
결코 독자들에 의해 그리 쉽게 여겨지지 않을꺼라 믿어요.
그런 마음들과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거거든요. :)

hina 2010-09-01 14:4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가을하늘님! 아,그 대사 기억이 날랑말랑(말랑?)하네요...
사실 저는 뭐 "아리영~" 만큼 작가적 에고가 강하지두 않아요^^;
그럴 형편도 안되고요.ㅎㅎㅎ
아무튼 '작가 스스로도 자신이 어떤 글을 쓰고 있는 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말씀 동감합니다.아무렴요.
(그걸 독자가 요구할수있는 거다,아니다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을 모르겠지만요.)
말씀하신 '성찰이 충분한 글쓰기'의 도서들이 많아질때,글 자체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일단은 독자 자신이 '좋은 선택-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할수있는 기회들도 더 많아질거 같구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근데 과연...책.제가요? 그저 꿈꾸고 있는게 더 즐겁잖을까.
그렇게도 생각해봅니다. 제가 뭐라고요.히힛.
 

참을수 없게 단정한 손목을 잡아챘다. 그 손목 만큼이나 단정하고 심플한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손목을 움켜진 손바닥 아래로 째깍째깍 맥박이 울었다. 어.하고 조금 놀란듯한,익숙하고도 설레는 목소리가 가깝게 맴돌았다.따뜻한 느낌과 함께 그는 의외로 힘 없이, 잡아 끈 실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평소엔 맡아보지 못한 시원하고 남자다운 스킨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긴,나와 그는 이렇게 가까이 마주쳐본적이 없었다. 어리둥절한 내색이었다. 또 잔잔한 시선이었지만 그러나 확실하게 당혹스러움과 질책의 마음을 전달하는듯 했다.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 정지한 채 한참을 노려보았다.아니.나만 노려보았다. 가만보니 그는 제법 침착했고, 내쪽이 오히려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전등스위치는 모두 내려가 있었으나, 전원이 켜진 채인 기계들로 인해서 실내가 작은 우주처럼 반짝거렸다.
...

입술이 따뜻해서 온몸이 가득찬듯 풍족한 느낌을 받았다.뺨위에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절묘한 타이밍에 뜨겁고 큰 손이 씻듯이 얼굴을 닦아주었다.만족스러웠다.내가 훗날 어떤 잠자리를 갖게 되더라도 누구와 키스를 하게 되더라도 이런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수 없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상'에 불과했으나 지금 놀랍게도 내 앞에 있고 또 나는 그를 안을수 있었다.
한번으로 만족할수 있을까 여러번 생각해보았는데, 결론적으로는 한번으로 족하겠구나라는 대답이 나왔다. 이걸로 되겠구나 라고.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있어서 내 손에 간지럽게 한가득 쥐어진다. 쓰다듬는다.그러나 여기에서 그만이라고 스스로에게 명령한다. 그의 입술이 잠시 멀어졌다가 숨을 뱉으며 귓가에 바짝 다가왔다. 소름이 끼쳤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나의 두 몸이 이런식으로 엮어진것에 대해 유감,그리고 감사.했다. 격려하듯이 나를 꽈악 안는 그,그리고 그의 몸이 완전하게 느껴졌다. 몹시도 탐나던 그것을 갖게 된 순간, 앞으로 잃어버릴 어떤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하나의 경험으로 인해,나는 살아났다가 그리고 영원히 그 안에서 죽어지기로 결심한다.

    

-올릴까 말까 고민을 좀 했지만, 지적 재산권 운운하기에 너무 허접한거라,그냥 누가 와서 보고 픽 웃고가라고 결국엔 올려두는 글.

약 3년 전의 판타지,망상되겠다. 나는 그때 무슨 생각으로 이런 유치한걸, 낯뜨거운걸(키스까지만이었으니 19금은 아니다.라고 외치고싶지만)썼을까. 오늘 문득, 내가 여기저기에 저질러놓은...미아가 된 '글'들을 떠올렸다.(그걸 무려 글이라고 할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떠올림이 이런 뻔뻔한 짓을 하게 만들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 이외의 누군가가 볼수있는 이런곳에 꺼내놓게 될줄은... 뭐 어떠랴.나의 정체를 알사람도 없는데.

어렸을적부터 (지나친)상상력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나는, 종종 남들은 모르는 나만 알고 키득댈수있는 어떤 판타지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저때...목소리가 끝내주는, 아주 성실하고 멋진, (마누라가 잘입혀서)늘 단정하고 깨끗한 차림이던 어떤 유부남을 흠모했다. 그는 내게 저런 불건전한 영감을 가져다주었지만... 사실은 실제로 저런 짓을 할사람도, 할수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아마 그런것들이 오히려 흠모의 심지에 불을 붙였을 것이다.) 잘 살아계시나? 본인의 방면에서는 워낙 뛰어나셨으니까 아마 여기저기서 활약하고 계실것 같다. 아무튼 나는 저때 하필,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게 되었었다. 달고 쓰게 읽혔던 책이다. 한줄 한줄 공감하며 외로운 짝사랑을 유난스럽게 위로했었다.푸하. 

아.이거 어쩐지 며칠뒤에 후회하고 지워버릴것 같다.아닐수도 있고.어쨌든 확실한건 나중에 나이를 좀 더 먹고 이런걸 다시 발견하게되면,어설픈 고딩때의 사진을 보듯,아마 재미있을것같다.또 쪽팔릴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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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8-27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저희 남편이 아니었을까요?^^

전여,내 남자가 바깥에 나가서도,
다른 사람들을 설레이게 하는 반짝반짝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꿈꾸는 건 '자~유~'잖아여~

hina 2010-08-27 12:54   좋아요 0 | URL
앗...그랬을수도 있었을까요?

어떤 유명하신 분의 동생의 남편님...이셨는데 그분은...
'내 남자'라고 호칭하시니,깊은 신뢰의 당당함이 부럽습니다^^
웃긴게 저는 정조없는 유부남은 또 매력이 없더라고요.
암튼...세상에 자유가 아닌게 그렇게 많은데,
꿈꾸는 것,상상하는 것은 자유라 정말 다행입니다~

비로그인 2010-08-28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픽션일까요? 팩션일까요?
후후..

hina 2010-08-29 21:15   좋아요 0 | URL
저 글과 당시 상황만을 놓고 대답을 해드리면 확실히 픽션이지요.
하지만,누군가를 동의없이 덮쳤(...)던 적이 딱 한번 있기는 합니다.
그건 저 글을 썼을 당시(2007년 6월)에서 또 3년전의 일이고요...
그러니까...어떤 기억과 경험의 소산물이랄수는 있겠습니다.
아무튼 뭘로 봐도,다분히 즉흥적이라는 것이 여실하네요-.-
 

써야 할것은 산더미,해야할것도 산더미,하고 싶은 얘기도 산더미같지만, 한가하게 늘어져서 아쉬케나쥐의 라흐마니노프 피협 2번을 듣는다. 리히터의 연주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쉬케나쥐의 것이 별로라는게 아니라,암튼) 이것만으로도 너무 좋으니까 아.좋다.라는 것 말고는 내뱉을 신음이 없다. 나로서는 라흐마니노프가 아니었다면(그의 입장에서는 니콜라이달 박사가 아니었다면,암시요법이 아니었다면^^;;), 리히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의욕적으로는 클래식을 듣지 않았을것 같다. 이런 [...가 아니었다면]이라는 우연과 필연이 모이고 모여서 꾸준히 한사람의 인생이 쌓여가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그때가 아니었다면, 그사람이 아니었다면 

다행히 지금껏 겪어온 무엇에든 후회보다는 감사가 남는다. 긍정적이거나 겸손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쌓여가는 모양의 '나'에 만족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해서는 어떤 결과이든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려고 애를 쓰기 때문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그저 내가 나로 존재할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 또 지금 내 곁에 존재해주는 것들에 대한 감사(아마 이것의 감사가 훨씬 크다!)로 충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좀 욕심이 없어보일수도 있지만 그게 또 그렇지는 않다는 거...아마 감사라는 것이 나를 더 '있는(받은)'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감사함만큼 내게 돌아오는 것들을 오히려 욕심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그.퍼질러져서 음악을 듣다가 별 생각을 다 한다...나는 또. 

  

 

 

 

  

리뷰...왠지 써낼 엄두가 안생겨난다. 특히 별점을 매겨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압박... 객관적인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 같다. 내 스스로 그 별점에 영향을 받을 것 같아서,또 그 영향이 다른사람에게 끼칠것 같아서...어렵다.이런 부분에서 유난스럽게 발휘되는 나의 소심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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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8-27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아쉬케나지 저 내려앉은 눈꼬리와 살짝 올라간 입꼬리의 조화 넘 매력적이지 않아여?^^

hina 2010-08-27 12:57   좋아요 0 | URL
네.한번 보고 금방 잊혀질 인상은 아닌것 같아요^^
근데 저도 눈꼬리가 내려앉은 인상이라,
좀 쭉 찢어진 눈매나 동그란 눈매가 더 좋습니다.ㅎㅎ
 
[수입] 그리그 : 서정모음곡 - DG Originals
그리그 (Edvard Hagerup Grieg) 작곡, 에밀 길렐스 (Emil Gilels / DG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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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흔히 강철 타건이라 불리우는, 시원시원한 터치를 선호하는 것 같다. (듣기 시작한게 얼마 안돼 확신은 할 수 없는,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의 취향을 이렇게 '추측'해야하는 이 답답함...크) 아마 클래식을 계속 들어야겠다.라는 결심을 준 연주자가 '리히터'라는 것에 영향을 꽤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길렐스도 이런 강철 타건의 연주자로 알고있는데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연주하는것을 듣게 된 이후로, 이 사람 좀 극단적인 서정성- 어울리지 않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긍정적인 의미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닐까? 생각(기대)해서 구매하게 되었다.
음반을 구매해서 처음 포장을 뜯을 때 (추천을 받아 사게 되는 것일지라도)늘상, 내용물을 모르는 선물 포장을 뜯는 두근두근하는 기분을 가지게 되는데 그 음반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아무래도 첫트랙에 영향을 받게되지 않나 싶어진다.(사실 나의 경우 그렇다.) 처음 CD를 돌린 순간부터 예상한만큼의,아니 그보다 기대한만큼의 서정이라 기분이 꽤 괜찮았던 것 같다. (내가 뭐라고 이런 거장의 능력을 예상하고 말고 기대하고 말고 하나 모르겠지만) 그러다가 아마도 만년 미뤄두려고 했을것 같은(...)음반리뷰를 쓰도록 나를 이끈 것은 6번트랙인 [Melodie op.47 no.3]  

배를 깔고 엎드려 누워서 넷북을 두드리며 음반을 듣고 있었는데,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이 늦여름에, 선풍기가 돌아가는 축축한 방안에서 '무려' 메마른 바람이 이는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폭풍의 언덕, 황량한 들판에서 맞는 바람 같은...

누군가 나에게 좋아하는 책이 뭐냐고 물어보면 나도 모르게 폭풍의 언덕이라고 대답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아마 어렸을때 책을 읽으며 느꼈던 (그 나이에는 어울리지도 않을) 적막한 분위기를 이유도 없이 동경했기 때문인것 같다. 아마 사춘기였나보다. 아니면 실제로 그 떄에는 좀 삶이 우울했을지도 모른다. 내 기억이 맞다면 IMF가 시잘될 즈음이었으니까. 아무튼, 그쯤부터 나는 가끔씩 낭떠러지 같은 기분들을 즐겼던것 같다. 아슬아슬하지만, 그래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더 명확해지는 복잡미묘한 기분. 또 가만보면 나는 삭막함 고독함 적적함 쓸쓸함 이런것들도 좀 작정하고 즐기는것 같을 때가 있다. 이런,분명히 피학적 (악)취미가 있는가보다.
 
아무튼 내가 참 좋아하는 Wuthering Heights의 정서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나는 사적인 이유로 이 음반을 아끼기로 했다.
아휴...아는게 없어 늘 이런 피상적인 감상이 될것 같다. 이런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수 있을까? 그냥 일기장에 적어야할것들을 여기에 적는게 아닌가 싶어지네.


(그건 그렇고, 어쩔수 없이 별점은 죄다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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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8-1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깃들님.
제가 댓글을 남기는 곳 위나 아래에서 님의 댓글들을 발견하게 되네요.
주의 깊게 봤었어요.

제가 '그리그'를 들었던 날,쓰신 페이퍼네요~
잘 읽고(잘 듣고)갑니다,꾸벅~^^

hina 2010-08-20 00:15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양철나무꾼님^^
아...먼저 인사드리지 못한 소심무심함을 탓하면서,
여기까지 찾아와주신 것에 무척 감사드립니다~
주의 깊게 보셨다니...그런 시선이 있을줄 알았다면
더 많이 신경써서 댓글들을 남길껄 그랬네요~
리뷰랄게 없는 리뷰였는데,
잘 읽고 들어주셨다고 하니 그것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