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벌써 열흘 전쯤의 생각이다. 일순 나의 기분을 멜랑콜리하게 만들었던 어떤 대화로부터 불뚝 솟아난, 남들은 아마 굳이 이해해주고 싶지 않을, 그런 사소하고 사적인 생각.
나는 책들을 잘 버리지 못하는 편인데, 추억이 서려있다며 집안의 사소한 것까지도 버리지 못해 끌어안고 사시는 할머니들 같은 심정이라고 할수도 있겠고, 아니면 뭐랄까 생명...하나를 외면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렇기도 하다. 책 버리는 얘기를 하다가 '생명'이라니. 거창도 하다고 비웃음을 살 수있는 표현이지만 (물론 진정성이 없다면 그것엔 생명도 없겠고 그것을 책 다운 책이라고도 할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은 글과 음악 등의 작품,소위 예술이라고 불리우는 '창조의 결과물'들을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으로 여기는 나의 인식으로부터 나오는 생각이다. 나는 글이 잘 쓰여진 것, 그렇지 않은 것과는 관련없이 글쓴이가 자신의 일부를 떼어 써낸 글이라는 게 기실 맞다면 그 책을 함부로이 대할 수는 없다고 여긴다. 꼭 공감하고 좋아할 수는 없어도 말이다. 그것은 내가 대학생때부터 줄곧, 글이라는 것은 글 쓰는 이 자신의 따뜻하고 검은 피를 찍어서 써내는 무엇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꿔말하면 작가의 피를 먹고 사는 것이 바로 '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 글은 작가 본인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도 하기에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해를 끼치는 기생의 존재라기보다 공생하고 공존하는,서로에게 일단은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 더 맞을것 같다. 또한 혐오스러운 표현일지 모르나 완성된 원고,만들어진 도서는 글쓴이의 살점이라고도 생각해왔다. 그리고 글을 완성해나가는 것은 펜도 아니고 타자치는 손가락도 아니며 깎이고 조각난 글쓴이 자신일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여기까지의 글을 불편하게 읽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라는 인칭대명사가 4번이나 사용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어야 한다.)
아마, 이런 생각들 때문이었을꺼다. 나랑은 관련이 별로 없는, 또 내가 대면한적도 없을, 최소한의 예의도 요구되지 않는, 나도 모르게 버려지는 책들에 대해 그렇게 서글프게 느꼈던 것은.
버려진다는 것은 곧 잊혀짐이고, 존재가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인데 그런 도서를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도, 그런 도서가 된다는 것도 너무 슬픈게 아닌가 싶었다. 또 그 와중에 사람에게 인격이 있다면, 사람이 잉태한 도서라는 것에도 書격이 있어야 하는건 아닌가...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도 한것 같다. (이거 뭐 당장 書권보호협회라도 추진할 기세) 근데 여기까지 생각을 했다니 혹시 나는 너무 뭐에 미친사람이 아닐까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 이렇게 얘길한다고 내가 도서를 너무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들고다니기 편하자고 반양장이나 얇은책을,싼게 좋다고 문고판 책을 선호하는 면만 보아도...) 그저 서글펐던것 뿐이다. 그냥 나중에.아주 나아아아중에, 마른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 맞을 확률로, 땅파서 현금 나올 확률로 내가 책을 낼수 있게 된다면, 그때에 내 피로 쓴, 내 살점같은 나의 책도 그런 '버려지는 책'이 된다면 무척 슬플것 같다는 생각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