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노트'라는 것을 쓰기 시작한것이 지난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2010년 12월 22일...그렇게 적혀있다.   
속이 투명하게 비어있던 만년필에 파란색 잉크를 채워넣었던...  


 


 

 

이제 벌써 2월...너무 많이 밀려있어서 무엇부터 끄집어내야할지! 
제법 많이 들었던, 인상 깊었던 음반 몇개(?)를 골라와서 자리에 펼쳤다. 

 
먼저...양*님께 약속한바 있었던 '겨울에 듣기 좋을듯한 음반' 
-행동이 더뎌서 겨울의 끝자락...간신히 턱걸이를^^  

 

차고 날카로운 바람에 양쪽 볼과 손등이 꺼칠꺼칠해졌을때
크림 스튜처럼 살짝 느끼하면서 뜨뜻한걸 후룩 먹고 싶을때
몸과 마음을 은은하게 데우는 난로,촛불 같은것이 생각날때 

그럴 때 이 음반 어떨까? 싶어진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상한 연상법이 마구 발생되어서.... 

-문리버->티파니에서 아침을->오드리햅번->사브리나->라비앙로즈->에디트 피아프,
-스피크 소프틀리 러브->대부 ->말론 브란도->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비비안 리...

(이거 뭐 마인드맵도 아니고)...이런 삼천포의 늪에서 잠시간 허우적거려야 했다.

어디서나 자주 들어봤을 조금은 흔하고 또 유명한 곡들이지만... 
익숙한 식당,매번 같은 메뉴를 부르게 되듯 부담없는 마음으로 12월내내 열심히 들었다.  
이불 속에 꼬물꼬물 파고드는 기분으로 들으면 좋을듯하다.

 

두번째로는,  

버진 레이블 2cd 오리지널 리미티드 에디션, 
비온디의 사계 + 스타바트 마테르 (비발디) 

사계는 워낙 유명하지만 나는 오히려 사계의 그 유명세로 인해(?) 
비발디가 평가절하(??)되고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아름다운 곡들이 풍부한 비발디의 드넓은 바다를,    
너무 자주보고 익숙해진 탓에 흔하고 흔한 집앞 물가 보듯 바라보게 된다고 해야할지...  
물론 사계도 무척 아름답지만... (특별히 비온디의 사계 연주는 매우 특별하고 
충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것으로 알고 있다.)  

 

세번째로는,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슈만 관현악곡집 

 

 

 날짜순으로 따지면 이 음반이 제일 앞으로 와야한다. 
위에 언급된 12월 22일의 노트에 기록된 음반.  

코멘트의 일부를 소개하자면...
[나른하지만 잠으로 허비하기엔 너무 아까워서, 눈을 조금 더 크게 떠보는 평화로운 순간] 

괴테의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 를 읽고 싶게 만들었던, 
그 쓸쓸함, 조심스러움, 감내함, 이해함, 그리고 감사함... 이 다시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듣고 있는 솔 가베타의 첼로 협주곡집... 

포토샵 효과가 의심되지만 아무튼 아름다워보이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연주자 솔 가베타.

TV에서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 묘사될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엘가 협주곡 <Salut d'amour> 을 들으며...
(젊은 여성 연주자라 그렇게 생각되는 것인지?) 
지루하거나 축 쳐지지 않은, 안개가 걷힌 느낌의 첼로를 느껴본다. 

악기의 종류가 많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한동안 별로 듣고 싶지 않던 첼로소리가
-왠지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서...  -
다시 반갑게 다가온다. 모른척했어서 미안하다고 먼저 악수를 건내니 
괜찮다며 또 다시 나에게 악수를 건내는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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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1-02-0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노트를 쓰시는 군요! 멋지세요~~~.
저는 손으로 끄적거려 본게 어느 천년인가 싶어요!!
오랫만의 포스팅도 반갑지만 지름을 부르는지라 슬프기 그지없기도 하네요~~~~.ㅎㅎ
솔 가베타의 첼로 협주곡은 저도 꼭 들어봐야겠어요!!

hina 2011-02-09 16:33   좋아요 0 | URL
사실 음악노트라기보다는 그냥 애들 낙서...랑 꼭 같습니다^^;
제 서재글이 그런것처럼 막 갑자기 삼천포로도 빠지고...
참,저도 한동안 손으로 뭔가 끄적거리는걸 못(안)하고 있다가,
최근에야 만년필이 생겨서 열심히 써보고 있어요.사각사각...

나비님이 반겨주시니 너무 기쁜^^
솔 가베타의 연주(위 앨범)는 살짝 검색해보니
네이버 클래식음악에 1분 맛보기가 있군용!

양철나무꾼 2011-02-1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파란색 잉크의 또 다른 용도를 아는데 말이죠.
옛날에 하얘서 눈이 신 셔츠를 만들기 위해 파란색 잉크를 물에 한방울 떨어뜨린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 곳은 하늘이 잔뜩 흐려서 말이죠~
잉크를 풀어 해결될 것 같지 않고 은장도 같은 걸로 도려내야 할 것 같아요~

hina 2011-02-15 16:57   좋아요 0 | URL
오! 그런 용도가 있군요.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라
지금 엄청 신기해하고 있어요.
따지고보면 저 잉크색은 군청...에 가까워서 그럭저럭 괜찮지만,
아마도 파란색 잉크...라고 하면,
하얀 종이위에 쓴 글씨에 눈이 시릴것 같기도 하네요~

잔뜩 흐린 하늘, 은장도로 베어내면 좀 괜찮을까요?
오히려 서럽다며 울음이 후두둑 떨어지는건 아닐지..
 

참을수 없게 단정한 손목을 잡아챘다. 그 손목 만큼이나 단정하고 심플한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손목을 움켜진 손바닥 아래로 째깍째깍 맥박이 울었다. 어.하고 조금 놀란듯한,익숙하고도 설레는 목소리가 가깝게 맴돌았다.따뜻한 느낌과 함께 그는 의외로 힘 없이, 잡아 끈 실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평소엔 맡아보지 못한 시원하고 남자다운 스킨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긴,나와 그는 이렇게 가까이 마주쳐본적이 없었다. 어리둥절한 내색이었다. 또 잔잔한 시선이었지만 그러나 확실하게 당혹스러움과 질책의 마음을 전달하는듯 했다.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 정지한 채 한참을 노려보았다.아니.나만 노려보았다. 가만보니 그는 제법 침착했고, 내쪽이 오히려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전등스위치는 모두 내려가 있었으나, 전원이 켜진 채인 기계들로 인해서 실내가 작은 우주처럼 반짝거렸다.
...

입술이 따뜻해서 온몸이 가득찬듯 풍족한 느낌을 받았다.뺨위에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절묘한 타이밍에 뜨겁고 큰 손이 씻듯이 얼굴을 닦아주었다.만족스러웠다.내가 훗날 어떤 잠자리를 갖게 되더라도 누구와 키스를 하게 되더라도 이런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수 없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상'에 불과했으나 지금 놀랍게도 내 앞에 있고 또 나는 그를 안을수 있었다.
한번으로 만족할수 있을까 여러번 생각해보았는데, 결론적으로는 한번으로 족하겠구나라는 대답이 나왔다. 이걸로 되겠구나 라고.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있어서 내 손에 간지럽게 한가득 쥐어진다. 쓰다듬는다.그러나 여기에서 그만이라고 스스로에게 명령한다. 그의 입술이 잠시 멀어졌다가 숨을 뱉으며 귓가에 바짝 다가왔다. 소름이 끼쳤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나의 두 몸이 이런식으로 엮어진것에 대해 유감,그리고 감사.했다. 격려하듯이 나를 꽈악 안는 그,그리고 그의 몸이 완전하게 느껴졌다. 몹시도 탐나던 그것을 갖게 된 순간, 앞으로 잃어버릴 어떤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하나의 경험으로 인해,나는 살아났다가 그리고 영원히 그 안에서 죽어지기로 결심한다.

    

-올릴까 말까 고민을 좀 했지만, 지적 재산권 운운하기에 너무 허접한거라,그냥 누가 와서 보고 픽 웃고가라고 결국엔 올려두는 글.

약 3년 전의 판타지,망상되겠다. 나는 그때 무슨 생각으로 이런 유치한걸, 낯뜨거운걸(키스까지만이었으니 19금은 아니다.라고 외치고싶지만)썼을까. 오늘 문득, 내가 여기저기에 저질러놓은...미아가 된 '글'들을 떠올렸다.(그걸 무려 글이라고 할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떠올림이 이런 뻔뻔한 짓을 하게 만들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 이외의 누군가가 볼수있는 이런곳에 꺼내놓게 될줄은... 뭐 어떠랴.나의 정체를 알사람도 없는데.

어렸을적부터 (지나친)상상력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나는, 종종 남들은 모르는 나만 알고 키득댈수있는 어떤 판타지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저때...목소리가 끝내주는, 아주 성실하고 멋진, (마누라가 잘입혀서)늘 단정하고 깨끗한 차림이던 어떤 유부남을 흠모했다. 그는 내게 저런 불건전한 영감을 가져다주었지만... 사실은 실제로 저런 짓을 할사람도, 할수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아마 그런것들이 오히려 흠모의 심지에 불을 붙였을 것이다.) 잘 살아계시나? 본인의 방면에서는 워낙 뛰어나셨으니까 아마 여기저기서 활약하고 계실것 같다. 아무튼 나는 저때 하필,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게 되었었다. 달고 쓰게 읽혔던 책이다. 한줄 한줄 공감하며 외로운 짝사랑을 유난스럽게 위로했었다.푸하. 

아.이거 어쩐지 며칠뒤에 후회하고 지워버릴것 같다.아닐수도 있고.어쨌든 확실한건 나중에 나이를 좀 더 먹고 이런걸 다시 발견하게되면,어설픈 고딩때의 사진을 보듯,아마 재미있을것같다.또 쪽팔릴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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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8-27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저희 남편이 아니었을까요?^^

전여,내 남자가 바깥에 나가서도,
다른 사람들을 설레이게 하는 반짝반짝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꿈꾸는 건 '자~유~'잖아여~

hina 2010-08-27 12:54   좋아요 0 | URL
앗...그랬을수도 있었을까요?

어떤 유명하신 분의 동생의 남편님...이셨는데 그분은...
'내 남자'라고 호칭하시니,깊은 신뢰의 당당함이 부럽습니다^^
웃긴게 저는 정조없는 유부남은 또 매력이 없더라고요.
암튼...세상에 자유가 아닌게 그렇게 많은데,
꿈꾸는 것,상상하는 것은 자유라 정말 다행입니다~

비로그인 2010-08-28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픽션일까요? 팩션일까요?
후후..

hina 2010-08-29 21:15   좋아요 0 | URL
저 글과 당시 상황만을 놓고 대답을 해드리면 확실히 픽션이지요.
하지만,누군가를 동의없이 덮쳤(...)던 적이 딱 한번 있기는 합니다.
그건 저 글을 썼을 당시(2007년 6월)에서 또 3년전의 일이고요...
그러니까...어떤 기억과 경험의 소산물이랄수는 있겠습니다.
아무튼 뭘로 봐도,다분히 즉흥적이라는 것이 여실하네요-.-
 

지난주쯤 우연한(?) 기회로 내 인생의 '잘못 끼워진 첫단추'를 만났다. 이렇게 얘기해서 미안하지만,알면 서운하겠지만 이 이상의 정의가 불가능한 상대일것이다. 얼굴을 마주본 것이 아마도 약 8년만인것 같다.도통 종지부의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질 않는다.
아무튼 맛있게 밥도 먹고, 원래 커피숍같은데는 절대 가지 않는다고 지겹도록 얘기했던 그 첫단추의 자발적 제안으로, 커피숍에가서 커피도 마셨다.

나는 그 첫단추와 시간을 보내면서, 아마 두가지를 느꼈던것 같다.변화시키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어떤 것과 변하지 않도록 붙들어두려해도 변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
일종의 피해의식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첫단추와 대면,또 직면하고 나니 마음속 구석진방의 불이 비로소 탁 하고 꺼지는 것을 느꼈다. 꺼진 방(물론 그것을 알리없지만)을 마주하는 첫단추의 머릿속엔 무슨 생각이 들어있을까 궁금해졌지만 그런건 별로 중요한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무언가를 대하는 나의 생각을 정확히 알고 싶을때 (이를테면 내 마음을 스스로 시험하고 싶을때) 그 문제에 직면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것 같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고서라도...그런 이유로, 덥고 좀 지치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유익한 영향으로 남아줄거라는 확신마저 생겨났다. 착한 척 하려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좀 착해지고 싶었던 나도 이런것을 매번 떠올리게 된다. 원래 사람은 아무리 이타적으로 살려고 노력해도 결국엔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또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한 반경들을 넓혀가는 무엇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반발적으로 내가 오롯이 이타적으로 살아갈수 있을 어느 때를 소망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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