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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실크로드를 찾아서
심형철 지음 / 포스트휴먼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가끔 우스개소리로 복권 맞으면 뭐할거냐고 묻는 때가 있다. 복권이라는 게 생각지도 않았던 돈이 굴러들어오는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물어보는 저의도 깔려 있을게다. 집을 살거야, 차를 살거야, 여행을 갈거야 등등등... 많은 대답들을 하지만 그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딱 두가지야.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전문적인 가이드를 하나 고용해서 유럽여행을 꼼꼼하게 다녀오는 것 그리고 돌아와서는 우리나라의 섬일주를 하고 싶어... 그러고나서 나는 다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살거야... 내가 그런 꿈을 꾸어온지도 꽤 오래됐다. 오죽했으면 남편의 꿈이 아내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은 걸로 바뀌었을까? 

마야문명의 흔적을 더듬으며 답사를 하고 싶다는 거와 잉카문명의 유적지인 마추피추를 다녀오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실크로드에 관한 나의 관심도는 적었었다. 
실크로드... 단순히 내륙 아시아를 횡단하는 고대 통상로로써 비단길이라고 불리워진다는 것과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은 동방에서 서방으로 간 대표적 상품이 중국산의 비단이었던 데에서 유래했다는 것, 또한 그길을 따라서 서방으로부터 보석이나 직물 등 불교, 이슬람교등이 동아시아에 전해졌다는 것.. 이런 정도외에는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과연 실크로드에 담긴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나름대로 기대를 하면서 책장을 펼쳐들었다. 이런 기행문의 글을 읽다보면 곁들여진 사진을 통해 함께 보여지는 간접적인 체험이 참 좋다. 역시 사진으로 다가오는 현장의 느낌들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한편으로는 조금 낯선 느낌을 떨쳐내지 못했다. 낯선 언어를 통해 쉽게 다가오지 않는 지명이라거나 일정에 쫓기는 듯한 긴박함이 느껴져 공연스레 내마음이 바빠지곤 했다. 실크로드의 출발지인 시안의 안정문에서부터 황하를 기반으로 조성되어져 있는 문명의 흔적들, 문화재를 도굴해 간 도굴꾼들의 이야기라거나 열강들의 문화재 빼앗아가기를 보면서 약소 국가의 서러움을 보기도 했다. 둔황의 막고굴이나 자오허 고성은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미꽈와 같이 이국땅에서 맛보는 별미의 음식들 또한 나를 자극하기도 하고 기후조건을 잘 몰라 고생하는 대목에서는 안타까움이 일기도 했다.

막막한   모래 구릉들이 파도처럼 끝없이 뻗어나간 사막의 중심에 섰다.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면 시간마저 정지한 듯하지만 발가락을 간질이는 모래의 움직임은 제법 빠르다. 그제야 발밑을 보면 죽은 듯, 숨을 멈춘 듯한 사막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치 정지한 듯 하지만 언제나 빠르게 흐르고 있는 인생같다. 혹시 먼 곳만을 보고 달려가다 문득 어딘가를 간질이는 느낌이 있어 돌아보면 황혼이 저만큼 와 있지는 않을까? <138쪽>
여행을 하면서 어떤 여행이 되었든간에 이런 상념에 한번쯤 젖어보지 않을 수 있을까? 한번쯤은 되돌아 보며 자기자신에 대해 회한을 느껴보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여행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가 너무도 넓고 깊은 까닭이리라. 군데 군데 녹아들어 있는 저자의 마음이 속깊이 다가왔다. 그 황량한 사막길에서조차 반갑게 만나질 수 있는 맑은 호수들처럼 우리네 인생길에서도 그와같은 쉼터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혼자만의 생각에 젖어보기도 했다.

전설적인 길 실크로드를 따라나선 길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많았다. 그 길을 따라 펼쳐지는 사람들의 생활상이라거나 그들의 풍습 혹은 그들이 겪어내야 했던 모든 일들을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사람사는 것은 어디나 똑같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어찌 똑같을 수가 있으랴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소개해주고 가는 저자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들을 만나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함께 웃어주며 함께 힘겨워했을 저자의 길이 어쩌면 행복하기도 했을거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면서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부러움을 어쩌지 못했다. 언젠가 자신이 가진 전재산을 처분하여 가족을 데리고 세계여행을 다녀왔다던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제 정신이야? 그때는 그렇게 말했었지만 그것은 아마도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투루판 동남쪽 지점에 높이 서 있다던 원추형 탑, 쑤꿍타의 모습은 너무나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벽돌로 쌓는 방법을 발전시켜 탑신을 마름모무늬, 물결무늬, 비스듬한 격자무늬, 꽃잎이 6장인 꽃무늬등 15종류의 기하학 무늬로 장식하였다는 쑤꿍타. 쑤꿍타의 기원과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왠지 씁쓸한 뒷맛을 남겨주었다. 우루무치에서 만나게 되는 깐스(마른 시신)이야기는 정말 신비로웠다. 시체전시관이라던 우루무치 박물관.. 미라와 비슷하긴 하지만 미라처럼 인공이 가미된 것이 아니라 완전 자연 상태에서 건조된 사람의 시체 깐스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느껴졌던 신비로움이라니...

너무 어렵고 생소하게 다가왔던 실크로드의 주변상황들.. 책의 말미에 있었던 부록을 통해  소수민족이라거나 그들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쉽게 알 수 있도록 다시한번 확인해 준 저자의 마음씀씀를 볼 수 있었다. 참으로 힘든 여정을 다녀온 저자에게 부러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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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다음날엔 햇빛 쏟아지길 바라며 참아왔던 고통이
찢겨져 버린 가지
될 때까지 묵묵히 지켜만 보던 벙어리
몰아치는 회오리 속에 지친 모습이 말해주는 가슴에 맺힌 응어리
여전히 가슴속에 쏟아지는 빛줄기

어린 가슴에도, 그 후로도 많은 세월을 살아낸 지금의 가슴에도 울컥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전투기 안에서 장병이 물었었다, 지금 가는 곳이 어디냐고.
그리고 그 장병은 또다시 말했었다. 우리는 지금 남쪽으로 가고 있다고.
그 참혹한 현장속에 있었던 그때의 그 장병들은 온전할까?
내 동포, 내 동생, 내 부모, 내 친구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그들의 가슴은 얼마나 황폐해졌을까?
아마도 온전한 정신으로는 살아낼 수 없었으리라.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인 그들의 그 아픔은 누가 어루만져 줄까?
며칠을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던 그 어머니의 가슴속에는
아마도 핏빛으로 물든 꽃한송이가 피었으리라.
사랑하는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는 끝까지 광주를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결코 잊어서는 안될 , 아니 잊을 수도 없는 뼈아픈 각인앞에서 잠시 눈물을 흘렸다.
이 영화를 만들어준 이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쩌면 차마 말하지 못한 진실이 더 있을수도 있겠다.

그들도 이 영화를 한번쯤은 봐주기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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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이화 지음 / 열림원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흩어진 것들을 한데 모아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각해 보았다. 더구나 우리가 살아왔던 기나긴 과거의 흔적을, 그야말로 방대하게 흩어져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우리의 역사를 단 한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일까 한번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역사학자라해도 그토록 커다란 덩어리를 어떻게? ... 내심 궁금했었다. 받아들었던 책은 생각보다 두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보았다. 인류의 발생부터? 아니 그렇게 먼거리에서부터 달려왔단 말이야? 도착지점은 1987년 6월항쟁이다. 너무 먼 길을 달려오느라 정말 힘들었을거란 생각을 했다. 책날개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저자의 모습. 평생 역사를 연구하면서 지역의식의 타파나 신분평등의 실현에 집중해 저술하셨다는 이력과 무엇보다 역사 대중화에 앞장서왔다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전 10부로 이어지는 책목록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고대국가,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 고려의 기상....이씨조선의 유교국가, 민중저항의 시대 그리고 나라의 멸망과 대한제국... 참으로 방대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내가 이많은 양의 지식을 한꺼번에 받아들일수 있을까?

우리의 역사를 통해 늘 아쉬웠던 점중에 하나가 바로 삼국통일이었다. 왜 신라였을까? 그토록 강대했던 고구려가 아니라 신라였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아쉬운 느낌으로 다가왔었는데 이 책을 통하여 삼국통일을 하게 되었던 신라의 힘의 원천이라거나 민족사적으로 또다른 역사적 의미를 우리에게 남겼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자만에 빠지고 내분이 잦은 상황하에서 인재양성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끝내는 삼국통일을 이루어냈지만 영토를 고구려의 옛땅을 거의 내어주고 반쪽 나라를 이루었다는 것, 뒤에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세웠지만 그들을 돕거나 선린관계를 맺지않고 오히려 적의 나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눈앞의 통일만을 위해 외세의 힘을 끌어들여 역사적인 폐단을 만들었기에 그 후로 우리나라는 많은 경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남의 힘을 빌리려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속에서 뼈있는 항변을 느낄 수가 있었다. 또한 당에 아부하기 위해 우리의 특수한 환경과 문화를 멀리하는 사대주의의 조짐이 이때부터 싹텄다고 한탄하고 있음이야 말해 무얼할까.

역사속에 나타난 선조들의 생활상을 요목조목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참 좋았다. 고려시대의 훈요십조를 통해 역사적으로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었던 점을 읽으면서 풍수설에 따라 금강 남쪽 사람들에게는 벼슬을 주지 말라는 것은 지금의 지역주의와 별반 다를게 없어보였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지역주의를 있게 한 시작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신정권을 타도했지만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해 버린 고려가 원으로부터 배운것과 잃은 것들은 참으로 많았던 것 같다. 실제로도 현재의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들이 많이 보이는 까닭이다. 두루마기가 몽골말에서 유래되었다거나 귀에 거는 귀걸이, 뺨에 찍는 연지 따위가 모두 몽골 풍속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벼슬아치, 구실아치, 장사치 따위로 이치,저치와 양아치 등 단어밑에 붙여 쓰면서 비칭이었는데도 가장 많이 쓰였다는 '치'는  몽골 언어의 잔재로써 지금까지 남아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기도 했다. 목화나 화약이 들어왔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온돌방과 마루를 기본 골격으로 하여 추은 겨울에는 온돌방에서 자고 더운 여름에는 주로 마루에서 생활하였다거나 바깥의 더운 공기나 찬공기를 차단하고 직사광선의 막이 역할을 했다던 창호지를 사용한 점, 짚으로 지붕을 엮어 굼벵이로 하여금 모기같은 해충을 잡아먹도록 유도하고 흙벽으로 보온과 방한을 동시에 해결했다는 것 외에도 계절에 맞게 음식을 선택할 줄 알았던 지혜라거나 일상생활용품에 대한  조선시대의 의식주 생활사를 읽으며 우리 선조들의 탁월함에 다시한번 감탄하게 된다. 그런 의식주생활을 토대로 가내수공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상품의 유통이 이룩되었다고 한다. 전문성을 요구하는 수공업도 생겨나고 만든 물건을 팔아야 했기에 직업적 상인도 생기니 사람이 모여사는 곳에 유통의 발달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피해가고 싶거나 혹은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지금까지도 잊지않고 잘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당파싸움의 현장이다. 어쩌면 그리도 흉한 모습들을 하고 있는지, 어쩌면 그리도 지독한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지... 그 뒤를 연이어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민초들의 항변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여진다. 임꺽정, 장길산, 이인좌, 이연수등을 앞세운 의적들의 출몰이라거나 농민봉기, 동학혁명 따위의 일들말이다. 먼시대를 거슬러 올라와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백성들이 깨었다는 지금 현시대에서도 그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수가 없다. 업보일까?  알 수 없다.

혹시나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하여 천천히 읽었다. 많은 부분들이 다시보기의 기능을 하였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부분들만을 짚어주었을거란 믿음이 생겼다. 8.15 해방 그 자체가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도 아니었고, 식민지 질서의 청산도 아니었으며 결과적으로 볼 때 일본의 철수뿐이었다는 말은 참으로 아팠다. 그럴싸한 핑게로 일본의 식민주의를 그대로 영위하고자 했던 미국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을때는 왠지 심술이 나기도 했지만 사실인걸 어찌하겠는가.. 오죽했으면 '일제 때가 차라리 나았다'라고까지 탄식을 했을까?.. 올바른 역사의식이 필요하며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현재를 일으켜 세우는 진정한 힘이라는 말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필독서로 권장하고 싶다. 책표지의 말처럼 역사는 오늘의 우리 삶과 관계없는 묵은 이야기가 아닌 까닭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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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분 후의 삶
권기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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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오래도록 지속되어져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항상 그렇게 무언가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혹은 그 무언가 때문에 수도없이 속을 태우며 발을 동동굴러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 것 같다. 아니 했을 것이다.  이 책속에는 열두가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것도 죽음의 바로 문턱까지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들려주었던 자신들의 이야기가. 맨처음 책표지를 보면서 내가 떠올렸던 것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 살아났던 주인공들이었다. 3일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날들을 죽음과 싸워가며 끝내는 살아냈던 사람들의 이미지가 이 책위에 오버랩되어져 왔다. 그들처럼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예고되어지지 않은 불행, 예측할 수 없었던 사고앞에서 그들이 내려야 했던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과연 어떤 의미로 그려져 있을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산위에서, 혹은 바다에서 그것도 아니면 하늘위에서 그들은 죽음의 사신을 보았다.
손짓하는 사신을 앞에 두고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맨처음엔 그동안 해주지 못했던 것들이 미안했고 그 다음은 잘 살아달라는 당부의 마음이 들었고 마지막엔 그들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모진 각오를 했었다고 그들은 한결같이 말하고 있었다.  가족! 그 무궁무진한 의미를 안고 있는 단어앞에서 그들앞에 웃으며 다가왔던 사신조차도 그냥 물러서야 했다는 말이다. 그것은 또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랑이었을 것이다. 가족은 사랑일테니까...

그 높디높은 산을 정복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그들에게도 사랑은 머물러 있었다. 나를 버리고 가라는 후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동료애는 그야말로 멋진 승리로 보여졌다.
등반후유증인 동상으로 썩어들어가는 발가락을 잘라내야 한다는 아픔을 딛고 일어서게 한 것도 손가락없이 산을 오르내리던 선배의 말한마디, 우리 장애인 산악회를 만들자... 내가 회장할테니 네가 부회장을 해라... 눈물나는 한마디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미더워했을 것이다.
거북이를 타고 인도양의 바닷물속에서 일곱시간만에 구조되었다던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동화를 보는 것 같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던 아내는 이렇게 말해주었었지.. 팔이 부러져도 좋고 다리가 없어져도 좋으니 사실대로만 말해주세요... 그리고 아내는 그렇게 가슴앓이를 했었다. 남편의 고통이 제것이었던 양.. 사랑, 그것의 실체가 이 책속에서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
소년이 가출을 하고 자신이 원했던 삶과는 다르게 살아야 했던, 세상을 너무 일찍 배워버린채 힘겨운 얼굴의 젊은이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다시 가다듬은 마음으로 많은 유혹을 이겨내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나왔지만 운명은 아직도 그를 비웃고 있었던 ... 하지만 그에게 다가왔던 비행기 사고는 그에게 절망이 아닌 또하나의 삶의 희망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비행기 사고가 났던 11시 23분과 사고후에 힘겹게 딸이 태어났던 시간 11시 23분..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선택했었던 것은 후자의 희망이었다는 점이 내게는 아주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그렇게 받아들였던 긍정적인 생각이 나는 사실 참으로 부럽기도 했다.

저자가 밀리 밝혀두었던 것처럼 몇몇의 이야기속에서는 종교적인 색채가 진하게 배여나온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없는것처럼 치부해버릴 수는 없었을 게다. 종교적인 힘이라는 것이 어쩌면 그들에게는 하나의 희망이었을지도 모를 일일테니까.
책장을 덮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록하던 저자의 그 때 그마음은 어땠을까? 이야기를 들으면서 실제적인 느낌이 전해져왔을까? 직접 겪은 이와 그것을 전해듣는 이의 느낌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이나 커다란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느낌을 생생하게 전해주기 위하여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은 채 솔직하게 써내려간 문체는 참 좋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화라는 게 그렇다. 전해주는 이의 말에 따라 듣는 이에게는 정말 다른 느낌으로 다가서는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속에서 느껴지던 열두가지의 느낌은 참으로 절절하게 다가왔다.

인생의 벽에 부딪혔을 때 해답은 자기 자신이 쥐고 있다. 인생의 벽에는 흐릿하고 불분명한 것들이 벽돌로 꽂혀 있다. 워낙 사적이고 미묘한 것들이어서 남들은 결코 설명해줄 수가 없다. 자신이 그걸 남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해답이 나온다 <92쪽>

일 분 후의 삶.... 과연 그 일분 후에 나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저들과 같이 극한상황에 한번도 빠져본 적이 없는 나는 그 일분 후의 삶에 대한 의미를 진정으로 느낄 수나 있으려는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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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밴드왜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받고나서 혼자 히죽거리며 웃는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됴코에서 활동하는 밴드의 이름이 왜건인가? 이런 생각을 했었던 까닭이다. 참 어이없게도... 그런데 우선적으로 생각되어지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속에서 그런 편견과 선입견으로 마주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거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만의 관념과 잣대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자의반 타의반이란 말도 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느정도의 위장색을 띤 채 보여지는 모습같아서 왠지 진실하게 보여지지 않으니 말이다. 이 책, 도쿄밴드왜건은 처음의 내 생각처럼 밴드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아주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속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한지붕 4대 일가족이 벌이는 끝없는 소동속에서 일년을 살아가는 이야기... 유머미스터리라고 되어 있다. 유머미스터리? 웃기는데 그 웃음이 미스터리란 말인가? 책장을 넘기고 봄,여름,가을,겨울을 함께 겪어내면서 나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

나는 제작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여기 머물러 가족들을 지켜본다우, 나와 함께 지켜보실라우? 할머니 유령이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다.
온화한 할머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족의 모습은 어떨까? 이야기속의 배경은 90여년 대대로 영업 중인 도쿄밴드왜건이란 헌책방이다. 언젠가 필요한 책이 있어서 다리품을 팔았던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린 헌책방들을 생각했다. 지금은 그나마도 몇몇개가 남아 있지만 그 옛날의 정취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헌책방들... 가끔씩 남편과 나누었던 우리의 대화를 떠올려 본다. 황학동이나 한번 갈까? 거긴 왜? 그냥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옛날 생각도 좀 해보고 그리고 잊혀져가는 우리의 옛정취도 한번 느껴보자고.. 아마도 지금의 젊은이들은 황학동엔 왜 가지? 할지도 모르겠다.

4대가 함께 생활을 하는 곳은 정말이지 번잡스러울거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고집스런 책방주인인 79세 할아버지 칸이치 영감을 맨위에 두고서 예순이라는 나이를 잊은 노랑머리 아들 가나토, 그는 젊은 시절에 로커였나나 뭐라나, 그 아들 가나토에게는 두아들 콘과 아오, 미혼모인 딸 아이코가 있다. 그런데 그 두 아들중 하나는 밖에서 낳아 데리고 온 아들이고 그런 상황이다보니 그 아들과 가나토의 대립은 뻔하게 보여진다. 그 외의 인물로는 증손자와 증손녀 그리고 이웃들이다. 지극히 자연스러울 것 같은 주인공들의 이력을 보면서 이야기의 짜임새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그 헌책방을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예외적인 손님들의 모습 또한 만만찮다.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는 신관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 부끄럼쟁이 영국인 화가 머독씨, 헌책 애호가 형사양반 한분이 등장하고, 노숙자 출신으로 가타토의 친구이자 아파트 관리인인 켄씨, 그리고 헌책을 살때마다 할아버지 칸이치에게 독후감을 써내야 하는 청년 사업가..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가족에 합류하는 손주며느리 후보 스즈미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등장인물이 한명씩 부각되어질 때마다 그가 안고 있는 삶의 이야기가 맛깔나게 펼쳐진다. 때로는 눈물도 자아내게 하고 때로는 웃음짓게 하기도 하면서... 이렇게 잔잔한 이야기속에서도 내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은 언제 어느곳에서라도 마주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공통적인 면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랑이다.
콘과 결혼을 함으로써 친정부모와 의절해야 했던 아미의 아픔은 친정어머니의 병으로 인하여 멋지게 마무리 되어졌지만 며느리 아미를 위하여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랑머리를 검게 물들였던 가나코의 며느리 사랑이라거나, 영국인이지만 일본이 좋아 일본에서 일본화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머독의 사랑은 아이코를 향한 혼자만의 짝사랑이지만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대학시절 교수와의 사랑으로 잉태되어진 딸을 혼자 키우며 살아가는 아이코에게 사랑이란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그런데 이 책이 정말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방식이 아닌가 싶다. 처음부터 술술 풀려지는 이야기라면 정말 밋밋하고 재미 없었을 구도를 미스터리라는 수법을 동원해서 이야기의 시작점을 잡아주면서 뭐지? 이번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의구심을 정말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고 있는 까닭이다. 성도착증 환자인줄 알았던 아파트 관리인이 사실은 오래전에 집을 떠났던 외할아버지였다거나, 스토커인줄 알았던 그림자가 아미의 친정동생이었다거나, 집안에서 물건들이 흩어지고 아이코의 캔바스가 칼로 찢기우는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은 자못 긴장감도 자아내게 되지만 그 결과는 되돌아보아도 가슴 찡하다.

전설의 로커 가나토의 관점은 오직 하나 '러브'다.  상처를 덮고 치유하는 건 말이지. 역시 러브라는 이름의 반창고라고.. 러브는 말이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거기 있는 거란다... 가나토의 말속에서 너무나도 커다란 느낌이 전해져 온다. 러브라는 이름의 반창고.... 정말 멋지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그런 것이 정말 이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

탈많고 말썽 많을 것 같은 대가족이었지만 가족 하나 하나가 서로를 감싸주며 위로해 주고 아픔을 보듬어주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거기에 헌책방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만들어내었던, 또하나의 사랑을 보태어주고 있으니 이 책속에는 온통 사랑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랑타령을 거부할 수가 없다. 아니 거부감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도대체 가족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속에서 내가 찾아내 먹어야 할 것들은 참 많아 보인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우리의 이야기속으로 한번 더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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