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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밴드왜건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받고나서 혼자 히죽거리며 웃는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됴코에서 활동하는 밴드의 이름이 왜건인가? 이런 생각을 했었던 까닭이다. 참 어이없게도... 그런데 우선적으로 생각되어지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속에서 그런 편견과 선입견으로 마주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거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만의 관념과 잣대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자의반 타의반이란 말도 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느정도의 위장색을 띤 채 보여지는 모습같아서 왠지 진실하게 보여지지 않으니 말이다. 이 책, 도쿄밴드왜건은 처음의 내 생각처럼 밴드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아주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속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한지붕 4대 일가족이 벌이는 끝없는 소동속에서 일년을 살아가는 이야기... 유머미스터리라고 되어 있다. 유머미스터리? 웃기는데 그 웃음이 미스터리란 말인가? 책장을 넘기고 봄,여름,가을,겨울을 함께 겪어내면서 나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
나는 제작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여기 머물러 가족들을 지켜본다우, 나와 함께 지켜보실라우? 할머니 유령이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다.
온화한 할머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족의 모습은 어떨까? 이야기속의 배경은 90여년 대대로 영업 중인 도쿄밴드왜건이란 헌책방이다. 언젠가 필요한 책이 있어서 다리품을 팔았던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린 헌책방들을 생각했다. 지금은 그나마도 몇몇개가 남아 있지만 그 옛날의 정취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헌책방들... 가끔씩 남편과 나누었던 우리의 대화를 떠올려 본다. 황학동이나 한번 갈까? 거긴 왜? 그냥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옛날 생각도 좀 해보고 그리고 잊혀져가는 우리의 옛정취도 한번 느껴보자고.. 아마도 지금의 젊은이들은 황학동엔 왜 가지? 할지도 모르겠다.
4대가 함께 생활을 하는 곳은 정말이지 번잡스러울거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고집스런 책방주인인 79세 할아버지 칸이치 영감을 맨위에 두고서 예순이라는 나이를 잊은 노랑머리 아들 가나토, 그는 젊은 시절에 로커였나나 뭐라나, 그 아들 가나토에게는 두아들 콘과 아오, 미혼모인 딸 아이코가 있다. 그런데 그 두 아들중 하나는 밖에서 낳아 데리고 온 아들이고 그런 상황이다보니 그 아들과 가나토의 대립은 뻔하게 보여진다. 그 외의 인물로는 증손자와 증손녀 그리고 이웃들이다. 지극히 자연스러울 것 같은 주인공들의 이력을 보면서 이야기의 짜임새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그 헌책방을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예외적인 손님들의 모습 또한 만만찮다.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는 신관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 부끄럼쟁이 영국인 화가 머독씨, 헌책 애호가 형사양반 한분이 등장하고, 노숙자 출신으로 가타토의 친구이자 아파트 관리인인 켄씨, 그리고 헌책을 살때마다 할아버지 칸이치에게 독후감을 써내야 하는 청년 사업가..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가족에 합류하는 손주며느리 후보 스즈미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등장인물이 한명씩 부각되어질 때마다 그가 안고 있는 삶의 이야기가 맛깔나게 펼쳐진다. 때로는 눈물도 자아내게 하고 때로는 웃음짓게 하기도 하면서... 이렇게 잔잔한 이야기속에서도 내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은 언제 어느곳에서라도 마주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공통적인 면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랑이다.
콘과 결혼을 함으로써 친정부모와 의절해야 했던 아미의 아픔은 친정어머니의 병으로 인하여 멋지게 마무리 되어졌지만 며느리 아미를 위하여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랑머리를 검게 물들였던 가나코의 며느리 사랑이라거나, 영국인이지만 일본이 좋아 일본에서 일본화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머독의 사랑은 아이코를 향한 혼자만의 짝사랑이지만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대학시절 교수와의 사랑으로 잉태되어진 딸을 혼자 키우며 살아가는 아이코에게 사랑이란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그런데 이 책이 정말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방식이 아닌가 싶다. 처음부터 술술 풀려지는 이야기라면 정말 밋밋하고 재미 없었을 구도를 미스터리라는 수법을 동원해서 이야기의 시작점을 잡아주면서 뭐지? 이번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의구심을 정말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고 있는 까닭이다. 성도착증 환자인줄 알았던 아파트 관리인이 사실은 오래전에 집을 떠났던 외할아버지였다거나, 스토커인줄 알았던 그림자가 아미의 친정동생이었다거나, 집안에서 물건들이 흩어지고 아이코의 캔바스가 칼로 찢기우는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은 자못 긴장감도 자아내게 되지만 그 결과는 되돌아보아도 가슴 찡하다.
전설의 로커 가나토의 관점은 오직 하나 '러브'다. 상처를 덮고 치유하는 건 말이지. 역시 러브라는 이름의 반창고라고.. 러브는 말이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거기 있는 거란다... 가나토의 말속에서 너무나도 커다란 느낌이 전해져 온다. 러브라는 이름의 반창고.... 정말 멋지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그런 것이 정말 이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
탈많고 말썽 많을 것 같은 대가족이었지만 가족 하나 하나가 서로를 감싸주며 위로해 주고 아픔을 보듬어주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거기에 헌책방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만들어내었던, 또하나의 사랑을 보태어주고 있으니 이 책속에는 온통 사랑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랑타령을 거부할 수가 없다. 아니 거부감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도대체 가족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속에서 내가 찾아내 먹어야 할 것들은 참 많아 보인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우리의 이야기속으로 한번 더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