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이화 지음 / 열림원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흩어진 것들을 한데 모아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각해 보았다. 더구나 우리가 살아왔던 기나긴 과거의 흔적을, 그야말로 방대하게 흩어져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우리의 역사를 단 한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일까 한번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역사학자라해도 그토록 커다란 덩어리를 어떻게? ... 내심 궁금했었다. 받아들었던 책은 생각보다 두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보았다. 인류의 발생부터? 아니 그렇게 먼거리에서부터 달려왔단 말이야? 도착지점은 1987년 6월항쟁이다. 너무 먼 길을 달려오느라 정말 힘들었을거란 생각을 했다. 책날개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저자의 모습. 평생 역사를 연구하면서 지역의식의 타파나 신분평등의 실현에 집중해 저술하셨다는 이력과 무엇보다 역사 대중화에 앞장서왔다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전 10부로 이어지는 책목록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고대국가,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 고려의 기상....이씨조선의 유교국가, 민중저항의 시대 그리고 나라의 멸망과 대한제국... 참으로 방대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내가 이많은 양의 지식을 한꺼번에 받아들일수 있을까?

우리의 역사를 통해 늘 아쉬웠던 점중에 하나가 바로 삼국통일이었다. 왜 신라였을까? 그토록 강대했던 고구려가 아니라 신라였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아쉬운 느낌으로 다가왔었는데 이 책을 통하여 삼국통일을 하게 되었던 신라의 힘의 원천이라거나 민족사적으로 또다른 역사적 의미를 우리에게 남겼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자만에 빠지고 내분이 잦은 상황하에서 인재양성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끝내는 삼국통일을 이루어냈지만 영토를 고구려의 옛땅을 거의 내어주고 반쪽 나라를 이루었다는 것, 뒤에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세웠지만 그들을 돕거나 선린관계를 맺지않고 오히려 적의 나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눈앞의 통일만을 위해 외세의 힘을 끌어들여 역사적인 폐단을 만들었기에 그 후로 우리나라는 많은 경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남의 힘을 빌리려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속에서 뼈있는 항변을 느낄 수가 있었다. 또한 당에 아부하기 위해 우리의 특수한 환경과 문화를 멀리하는 사대주의의 조짐이 이때부터 싹텄다고 한탄하고 있음이야 말해 무얼할까.

역사속에 나타난 선조들의 생활상을 요목조목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참 좋았다. 고려시대의 훈요십조를 통해 역사적으로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었던 점을 읽으면서 풍수설에 따라 금강 남쪽 사람들에게는 벼슬을 주지 말라는 것은 지금의 지역주의와 별반 다를게 없어보였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지역주의를 있게 한 시작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신정권을 타도했지만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해 버린 고려가 원으로부터 배운것과 잃은 것들은 참으로 많았던 것 같다. 실제로도 현재의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들이 많이 보이는 까닭이다. 두루마기가 몽골말에서 유래되었다거나 귀에 거는 귀걸이, 뺨에 찍는 연지 따위가 모두 몽골 풍속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벼슬아치, 구실아치, 장사치 따위로 이치,저치와 양아치 등 단어밑에 붙여 쓰면서 비칭이었는데도 가장 많이 쓰였다는 '치'는  몽골 언어의 잔재로써 지금까지 남아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기도 했다. 목화나 화약이 들어왔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온돌방과 마루를 기본 골격으로 하여 추은 겨울에는 온돌방에서 자고 더운 여름에는 주로 마루에서 생활하였다거나 바깥의 더운 공기나 찬공기를 차단하고 직사광선의 막이 역할을 했다던 창호지를 사용한 점, 짚으로 지붕을 엮어 굼벵이로 하여금 모기같은 해충을 잡아먹도록 유도하고 흙벽으로 보온과 방한을 동시에 해결했다는 것 외에도 계절에 맞게 음식을 선택할 줄 알았던 지혜라거나 일상생활용품에 대한  조선시대의 의식주 생활사를 읽으며 우리 선조들의 탁월함에 다시한번 감탄하게 된다. 그런 의식주생활을 토대로 가내수공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상품의 유통이 이룩되었다고 한다. 전문성을 요구하는 수공업도 생겨나고 만든 물건을 팔아야 했기에 직업적 상인도 생기니 사람이 모여사는 곳에 유통의 발달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피해가고 싶거나 혹은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지금까지도 잊지않고 잘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당파싸움의 현장이다. 어쩌면 그리도 흉한 모습들을 하고 있는지, 어쩌면 그리도 지독한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지... 그 뒤를 연이어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민초들의 항변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여진다. 임꺽정, 장길산, 이인좌, 이연수등을 앞세운 의적들의 출몰이라거나 농민봉기, 동학혁명 따위의 일들말이다. 먼시대를 거슬러 올라와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백성들이 깨었다는 지금 현시대에서도 그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수가 없다. 업보일까?  알 수 없다.

혹시나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하여 천천히 읽었다. 많은 부분들이 다시보기의 기능을 하였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부분들만을 짚어주었을거란 믿음이 생겼다. 8.15 해방 그 자체가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도 아니었고, 식민지 질서의 청산도 아니었으며 결과적으로 볼 때 일본의 철수뿐이었다는 말은 참으로 아팠다. 그럴싸한 핑게로 일본의 식민주의를 그대로 영위하고자 했던 미국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을때는 왠지 심술이 나기도 했지만 사실인걸 어찌하겠는가.. 오죽했으면 '일제 때가 차라리 나았다'라고까지 탄식을 했을까?.. 올바른 역사의식이 필요하며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현재를 일으켜 세우는 진정한 힘이라는 말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필독서로 권장하고 싶다. 책표지의 말처럼 역사는 오늘의 우리 삶과 관계없는 묵은 이야기가 아닌 까닭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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