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분 후의 삶
권기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오래도록 지속되어져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항상 그렇게 무언가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혹은 그 무언가 때문에 수도없이 속을 태우며 발을 동동굴러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 것 같다. 아니 했을 것이다.  이 책속에는 열두가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것도 죽음의 바로 문턱까지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들려주었던 자신들의 이야기가. 맨처음 책표지를 보면서 내가 떠올렸던 것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 살아났던 주인공들이었다. 3일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날들을 죽음과 싸워가며 끝내는 살아냈던 사람들의 이미지가 이 책위에 오버랩되어져 왔다. 그들처럼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예고되어지지 않은 불행, 예측할 수 없었던 사고앞에서 그들이 내려야 했던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과연 어떤 의미로 그려져 있을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산위에서, 혹은 바다에서 그것도 아니면 하늘위에서 그들은 죽음의 사신을 보았다.
손짓하는 사신을 앞에 두고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맨처음엔 그동안 해주지 못했던 것들이 미안했고 그 다음은 잘 살아달라는 당부의 마음이 들었고 마지막엔 그들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모진 각오를 했었다고 그들은 한결같이 말하고 있었다.  가족! 그 무궁무진한 의미를 안고 있는 단어앞에서 그들앞에 웃으며 다가왔던 사신조차도 그냥 물러서야 했다는 말이다. 그것은 또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랑이었을 것이다. 가족은 사랑일테니까...

그 높디높은 산을 정복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그들에게도 사랑은 머물러 있었다. 나를 버리고 가라는 후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동료애는 그야말로 멋진 승리로 보여졌다.
등반후유증인 동상으로 썩어들어가는 발가락을 잘라내야 한다는 아픔을 딛고 일어서게 한 것도 손가락없이 산을 오르내리던 선배의 말한마디, 우리 장애인 산악회를 만들자... 내가 회장할테니 네가 부회장을 해라... 눈물나는 한마디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미더워했을 것이다.
거북이를 타고 인도양의 바닷물속에서 일곱시간만에 구조되었다던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동화를 보는 것 같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던 아내는 이렇게 말해주었었지.. 팔이 부러져도 좋고 다리가 없어져도 좋으니 사실대로만 말해주세요... 그리고 아내는 그렇게 가슴앓이를 했었다. 남편의 고통이 제것이었던 양.. 사랑, 그것의 실체가 이 책속에서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
소년이 가출을 하고 자신이 원했던 삶과는 다르게 살아야 했던, 세상을 너무 일찍 배워버린채 힘겨운 얼굴의 젊은이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다시 가다듬은 마음으로 많은 유혹을 이겨내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나왔지만 운명은 아직도 그를 비웃고 있었던 ... 하지만 그에게 다가왔던 비행기 사고는 그에게 절망이 아닌 또하나의 삶의 희망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비행기 사고가 났던 11시 23분과 사고후에 힘겹게 딸이 태어났던 시간 11시 23분..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선택했었던 것은 후자의 희망이었다는 점이 내게는 아주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그렇게 받아들였던 긍정적인 생각이 나는 사실 참으로 부럽기도 했다.

저자가 밀리 밝혀두었던 것처럼 몇몇의 이야기속에서는 종교적인 색채가 진하게 배여나온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없는것처럼 치부해버릴 수는 없었을 게다. 종교적인 힘이라는 것이 어쩌면 그들에게는 하나의 희망이었을지도 모를 일일테니까.
책장을 덮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록하던 저자의 그 때 그마음은 어땠을까? 이야기를 들으면서 실제적인 느낌이 전해져왔을까? 직접 겪은 이와 그것을 전해듣는 이의 느낌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이나 커다란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느낌을 생생하게 전해주기 위하여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은 채 솔직하게 써내려간 문체는 참 좋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화라는 게 그렇다. 전해주는 이의 말에 따라 듣는 이에게는 정말 다른 느낌으로 다가서는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속에서 느껴지던 열두가지의 느낌은 참으로 절절하게 다가왔다.

인생의 벽에 부딪혔을 때 해답은 자기 자신이 쥐고 있다. 인생의 벽에는 흐릿하고 불분명한 것들이 벽돌로 꽂혀 있다. 워낙 사적이고 미묘한 것들이어서 남들은 결코 설명해줄 수가 없다. 자신이 그걸 남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해답이 나온다 <92쪽>

일 분 후의 삶.... 과연 그 일분 후에 나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저들과 같이 극한상황에 한번도 빠져본 적이 없는 나는 그 일분 후의 삶에 대한 의미를 진정으로 느낄 수나 있으려는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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