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단편선 ㅣ 소담 클래식 8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기 전에 처음으로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에 대해 찾아 보았다.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나고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그의 아버지가 의사로 일하던 모스크바 빈민 병원이었는데, 그 병원의 환자들은 모두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었으며,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어린 도스토옙스키는 그들과 대화하기를 즐겼다는 말이 보인다. 그 때의 경험이 그에게는 문학적 자산이 되었다고 한다. 작가 역시도 평생을 가난에 시달렸다는 말을 보고 그의 첫 작품이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배경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그러나 가끔은 너무나 현실적인 문체에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이 책을 택하게 되었던 것은 <백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읽어본 기억이 없기도 하거니와 내용이 궁금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변해버린 까닭에 줄거리 속 두 남녀의 대화가 그다지 공감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작가에게 사랑에 관한 환상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생애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힘겨운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아마도 그가 꿈꾸던 유토피아를 그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모두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르치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페트라솁스키 서클에 출입하기 시작하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일로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게 되었지만.

​

학창 시절에는 세계문학전집을 읽지 않으면 안되는 줄 알았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읽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기를 시도해 봤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왜 그토록 세계문학전집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물론 재미있게 읽었던 책도 있었고, 다시 읽기를 시작하면서 의외의 재미를 느낀 책도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도스토옙스키는 톨스토이, 안톤 체호프, 이반 투르게네프와 함께 19세기 러시아의 문호로 일컬어진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 책에는 도스토옙스키의 단편 <백야>,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 <첫사랑>이 실려 있다. 다소 엉뚱한 상황 전개 속에서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은 문장과 내용들이 살짝 껄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까닭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과 작금의 사람들은 무엇이 다른가. 시대만 다를 뿐 사는 모습은 똑같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망설임은 스스로를 베는 가장 날카로운 칼이다 ㅣ 현자병법 1
항우 지음 / 블랙라벨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한지>를 읽은 건 오래 전의 일이다. 진시황이 죽고 폭정과 혼란이 계속되자 항우와 유방이 분연히 일어선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항우는 무력을 내세우고, 유방은 올바르게 인재를 등용했던 인물로 비춰진다. 결국 유방의 승리로 끝난다. 그 마지막 결전의 이야기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유래가 되었다. 항우가 해하에서 한나라 군대에 포위되자 한나라 측이 초나라 병사들의 고향 노래를 사방에서 부르게 했다는 심리전이다. 이 노래를 들은 초나라 병사들은 절망에 빠져 탈영이 늘었고, 항우도 이를 듣고 탄식하며 전세가 기울었음을 직감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이 바로 초나라의 항우다. 서초패왕西楚霸王은 항우가 스스로를 자칭했던 말이기도 하지만 항우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말이기도 하다. 요즘은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참 많다. 조조를 다시 보았고, 놀부를 다시 보았고, 계백을 다시 보기도 했던 것처럼. 그처럼 저자의 시선은 난세를 살아내야 했던 항우의 결단과 타협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자기계발로 받아들이고 있음이다. 누구보다 큰 뜻을 품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던 인물이라는 말도 보인다. 이 책은 그의 삶에서 드러난 과감한 결단력, 두려움을 압도하는 용기,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 자존감을 현대인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인생의 크기는 환경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기준에서 결정된다고. 그렇지만 시대는 많이 달라졌다. 어떤 기준보다 환경이 더욱 더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어서 그 말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은 듯 하다.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도덕을 강요한다. 친절해라, 양보해라, 둥글게 살아라, 누구도 미워하지 마라, 이 말들은 그 자체로는 아름답다. 그러나 이 말들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무형의 압력은, 사람을 한 마리 길들여진 초식동물로 만들어 버린다. 풀밭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누가 와도 도망갈 줄 모르고, 결국 자기 운명을 누군가의 손에 맡긴 채 끝나는 짐승. 그것이 군중의 도덕에 길든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다.(-99쪽)

​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타인의 잣대를 들이민다. 몇 살에 무엇을 이루어야 하고, 어떤 자리에 도달해야 성공이며, 어떤 모습으로 물러나야 품위 있는 퇴장이라고. 이 잣대들은 너무 촘촘해서, 우리가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우리의 선택을 대신 내려 버린다.(-205쪽)

​

그가 살았던 시대는 칼로 승부를 내는 시대였고,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시대의 무대장치가 바뀌었다고 해서 인간이 자신을 지키는 방식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망설임속에서 썩어가지 말 것, 남의 잣대에 자신을 맡기지 말 것,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 뒤에 무능을 숨기지 말 것, 패배할 지언정 변명하지 말 것. 이 모든 가르침은 칼이 없는 시대에도 그대로 살아 있다. 아니, 칼이 사라진 시대일수록 더욱 절실하게 살아 있다. 보이지 않는 칼날들이 우리의 일상을 더 촘촘히 베고 있기 때문이다. (-213쪽)

​

미움 받을 용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때가 있었다. 그만큼 자신만의 삶을 산다는 게 쉽지 않다는 말 일터다. 책을 읽고 정리를 해보니 저자가 보았던 항우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군중의 도덕이라는 망에 걸려 든다. 그 망을 찢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어떤 이는 튄다 하고, 어떤 이는 부럽다고도 한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군중의 도덕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원칙을 세우고 자신만의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말일 것이다. 주도권을 자신이 쥐는 삶의 태도를 배우라는 저자의 말은 여운이 길다. /아이비생각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골목길 시간여행 - 수채화로 길어 올린 추억의 풍경 ㅣ 여행길 그림책 2
최명옥 지음 / 인문산책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래의 이름이 ‘맑은 개울’이라는 청계천은 한양 사람들의 놀이터이자 빨래터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모습과는 판이한 청계천 판자촌을, 똥덩어리 떠다니던 청계천을 기억한다. 가리봉동의 쪽방촌만큼이나 서러웠던 곳이 청계천 주변으로 늘어섰던 판자촌이었을 것이다.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철거된 삼일고가도로도 기억속에 남아 있다. 그 시절에 유명했던 곳이 평화시장 끝자락의 헌책방 거리였으며 황학동 벼룩시장이었다. 그 황학동 벼룩시장이 지금의 동묘앞 서울풍물시장의 전신이다. 우리는 보통 지나간 것을 추억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다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오래전 어린 시절을 보냈던 달동네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을 반추하며 추억하기보다는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던 까닭이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옛날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겨울이면 연탄재를 하나씩 들고나와 깨뜨리며 언덕길을 내려와야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와 중학교는 다행이 남아 있었지만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렇듯 우리의 모든 것은 시간과 함께 변해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기에는 너무 빠른 듯 하다. 그래서 수많은 부작용도 생겨난다. 수채화로 길어 올린 추억의 풍경! 이 책이 시선을 잡았던 이유다. 답사를 다니면서 어렴풋하게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현재 연필화를 배우고 있다. 추억보다는 그림으로 표현해 낸 일상의 느낌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곳들을 많이 가 보았다. 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도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변화의 흐름앞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런지는 알 수 없다. 종로조차도 젊은 시절에 거닐었던 그 거리가 아닌데 하물며 다른 곳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성북동 북정마을, 홍제동 개미마을은 이상하리만큼 정겹게 느껴졌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레트로 감성이니 뭐니 하면서 새롭게 보고 있긴 하지만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에게는 많은 아픔이 느껴지는 장소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의 그림속에서 상투과자를 보고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센베이 과자, 상투 과자는 그 당시 참 고급스러운 과자였었는데... 지나간 시간들이 추억으로 간직될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아이비생각

​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오만한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옛 스승들이 이르시기를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신 것이다.

<보왕삼매론> -4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토지는 누구의 것인가 - 인구 감소 시대의 토지 문제와 활용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가라시 다카요시 지음, 윤재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토지는 누구의 것인가를 묻기 전에 더 궁금한 점은 토지는 언제부터 소유의 대상이 되었는가였다.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면서부터 토지가 소유의 개념을 가졌다는 게 이채롭게 다가왔다. 이 시대를 가리켜 저출산, 고령화 사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구 감소와 지방의 소멸을 염려한다. 책을 읽으면서 크게 다가왔던 기시감이 있었다. 이것은 단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작금昨今의 한국을 보았을 때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그러나 확실한 차이점은 있어 보인다. 일본은 그에 맞춰 법을 개정해가며 문제의 해결점을 찾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어떤가. 일본의 버블경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지 못한다. 일본처럼 우리도 빈집이 늘어나고, 지방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지방소멸 - 도쿄 일극집중이 초래하는 인구 급감>은 책 제목이다. 됴쿄를 서울로 바꾼다면 무엇 하나 달라질게 없다. 서울로, 서울로 부나방처럼 모여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이미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

부처별 행정의 조율이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더 심각한 것은 국가와 지자체 사이의 관계이다. 토지 관리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지자체는 평소에도 재정과 인력 부족에 시달려 왔으므로, 빈집 해체처럼 번거롭고 비용이 드는 귀찮은 일을 더는 떠넘기지 말아 달라는 것이 본심이다. 한편 국가는 빈집 · 불명토지 · 미등기 같은 문제는 모두 지역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 곧 지역의 문제이므로 본래 지자체가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서로 상대방 탓으로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91쪽) 이것 역시 한국도 복사하여 붙여넣기를 하듯이 똑같은 현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명확한 지방자치제를 펼치고 있는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대지 않아도 누구나 말 뿐인 지방자치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와 지방의 소멸, 대도시 집중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자본주의의 이익만 내세우고 있으면서 밝은 미래를 꿈꾼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저명한 생태학자의 말을 빌려 보더라도 살기 좋은 사회가 되지 않는 한 인구 감소를 줄이는 건 어렵다. 동물이 그럴진대 인간이라고 다를 건 없어 보인다. 이 책에서조차 그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지 않는 한 더 이상의 해결책은 없다고.

​

토지가 인류(생물)의 생존과 생산의 기반이며 자연환경의 일부로서 일상생활과 깊이 얽혀 있다는 점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104쪽)

도쿄 일극집중이 일어나는 까닭도 결국 도쿄 전역이 일본에서 가장 높은 용적률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며, 거꾸로 보자면 그렇게 높은 용적률이 매겨지는 까닭은 그만큼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용적률은 다름 아닌 '도시계획'으로 결정된다. 사권私權의 전형이라 일컬어지는 토지소유권이 사실은 무색투명하고 평등한 권리가 아니라, 이렇듯 도시계획에 따라 또렷이 등급이 갈리고 있다는 사실이 여기서 드러난다. 덧붙이자면, 거품경제와 정반대 방향에 놓인 토지의 방치 또한 이 용적률을 비롯한 도시계획의 손길로 --여러 정책을 짜 맞추는 방식으로-- 개방 가능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리하면 땅값이 다시 살아나고, 매매와 이용이 트인다. 곧 방치의 해소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179쪽)

​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권리'로서의 소유권을 인정했다고 한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공격을 당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일본에 천황이라는 권력 구조가 등장했고, 온 나라의 힘을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생각은 곧 토지의 국유화였던 까닭이라고 한다. 토지는 모두의 것이다,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토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토지는 도시계획에 따라 그 이용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도시가 온전히 지자체의 권한 아래에 놓여 주민의 처지에서 모든 플랜이 결정되고 실행된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주민의 처지에서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바라보지 않을까 싶다. '짓고 허물고 다시 짓는' 사고는 일본 뿐 만이 아니라 한국의 병폐도 된다. 그린벨트가 점점 무너져가고 있는 점도 일본과 한국은 똑같다. 이 책에서 바라본 해결점에 '전원도시'가 있었다. '전원도시'는 그저 풍경 좋은 것만 바라보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전원도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도시를 말한다. 어쩌면 그 좋은 제도조차 우리에게 닿기까지 많은 오류와 변질을 낳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

자본주의 사회의 밑바탕은 '이윤' 획득을 좇는 경쟁이며, 진 자는 시장에서 물러나야 한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구 환경의 보전이나 빈곤의 해소처럼 당장의 '이윤'을 낳지 않는 일에는 누구도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러나 이윤도 끝내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사람은 이윤을 좇는 마음과 더불어 사로 돕는 도덕 위에서 살아왔다. 누구나 인권을 가지며,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사람은 홀로 살 수도, 홀로 죽을 수도 없다. 끝없이 이윤을 좇는 경쟁은 이러한 인류 보편의 도덕을 무너뜨리고, 사람을 이긴 자와 진 자로 갈라놓고 만다. 이것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334쪽) 처음에는 그저 궁금해서 일기 시작했던 책이 읽으면서 점점 마음이 숙연해졌다. 일본과 한국은 닮아도 너무 닮았다. 아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책 속에서조차 느껴진다. 일본의 도쿄집중과 한국의 서울집중은 결코 다른 모습이 아니었다. 토지 문제를 생각하면서 시작되었던 문제는 우리 삶의 일상으로까지 파고 들었다. 일극집중은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눈을 떼지 못했던 문장 하나를 가슴에 품는다. 우리에게는 '마음의 흑자'가 필요하다.(-361쪽) /아이비생각

​

서로 의논하고 자료를 모아 가는 결 속에서, 새삼 또렷이 짚게 된 것이 있다. 도중에 무심코 흘러나온 한마디가 사고의 자라남에 큰 보탬이 된다는 것, 디지털만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진정으로 맺어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현대총유의 뿌리인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신의 두터운 어우러짐---은 '연의 공유(緣の共有)'에서 비로소 자라난다는 것이었다.(-377쪽 역자후기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나쁜 뉴스와 헤어질 결심 - 민주시민을 위한 뉴스 리터러시 교양 참고서
김성재 지음 / 싱긋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Literacy라는 말이 보인다. 쉽게 말하면 문해력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굳이 영어로 이야기하는 건 왜일까? 깨어있는 민주시민을 위한 교양 참고서라 한다. '사실, 공정, 균형을 잃어버린 한국 언론의 민낯' 이라는 말도 보인다. 그런데 대한민국 언론만 그럴까? 아닐 것이다. 다만 잘못된 뉴스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묻느냐의 차이일 뿐. 대한민국에서 잘못된 것들이 언론만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본다. 나는 뉴스를 보고 있는가? 그 뉴스를 믿고 있는가? 솔직하게 말한다면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이고, 편파적이고, 편향적이고... 이게 내가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점이다. 우선 제목부터가 그렇다. 어떻게 하면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일까를 먼저 생각하는 듯 하다. 쉽게 말하면 낚시성 제목이 너무 많다. 좀 더 중요한 사안을 앞세우지 못하는 점도 있다. 그저 관심을 끌 만 한, 혹은 일부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사안이 항상 먼저 뜬다. 네이버도 마찬가지다. 나쁜 뉴스와 헤어질 결심을 하라고? 이건 마치 기업은 강 건너 불구경인데 소비자 개인들에게만 환경을 생각하라고 외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

우리나라 여러 주류언론이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식의 보도를 해온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정권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말바꾸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는 것이다. ---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많은 시민들이 언론이 '두 개의 혓바닥'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고 위안이다.(-137쪽) 정말 그럴까? 이쯤에서 저자의 이력이 궁금해진다. 저자는 경제학과 언론학을 공부했다. 기자 생활도 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나랏일을 많이 했다고 나온다. 늘 고민하는 것이 언론개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잘 알지 않을까? 정치가 언론에게 막중한 책임을 묻는다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걸. 하지만 정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 그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입이.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연합뉴스가 '국가기간통신사'라는 걸. 정부로부터 연간 300억 원대의 보조금을 받아 운영된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지정됐다는 말도 보인다. 연합뉴스는 정부나 기업체, 다른 언론사들로부터 구독료를 받고 뉴스를 판매하기 때문에 '언론의 언론', '뉴스 도매상'이라고도 불린다는데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다. 국민을 위한 공영언론이라기보다는 정권을 위한 관영언론이라는 비판이 많았다는데 솔직하게 말해보자. 그럴려고 세금 부어가면서 만든 거 아닌가?

​

언론의 자유? 개같은 소리다. 모두가 이익 앞에서 무너지는 자본주의시대를 살면서 孤高하게 살라고 하면 그게 바로 탁상공론이다. 이토록이나 첨단기술로 만들어지는 산업 시대에 나쁜 뉴스를 걸러내지 못한다고? 정치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데 무엇인들 달라질 수 있을까? 문득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책을 읽는 내내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 읽고 나니 묻고 싶어진다. 이 책은 공정한가? 편향적이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