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는 누구의 것인가 - 인구 감소 시대의 토지 문제와 활용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가라시 다카요시 지음, 윤재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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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는 누구의 것인가를 묻기 전에 더 궁금한 점은 토지는 언제부터 소유의 대상이 되었는가였다.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면서부터 토지가 소유의 개념을 가졌다는 게 이채롭게 다가왔다. 이 시대를 가리켜 저출산, 고령화 사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구 감소와 지방의 소멸을 염려한다. 책을 읽으면서 크게 다가왔던 기시감이 있었다. 이것은 단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작금昨今의 한국을 보았을 때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그러나 확실한 차이점은 있어 보인다. 일본은 그에 맞춰 법을 개정해가며 문제의 해결점을 찾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어떤가. 일본의 버블경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지 못한다. 일본처럼 우리도 빈집이 늘어나고, 지방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지방소멸 - 도쿄 일극집중이 초래하는 인구 급감>은 책 제목이다. 됴쿄를 서울로 바꾼다면 무엇 하나 달라질게 없다. 서울로, 서울로 부나방처럼 모여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이미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부처별 행정의 조율이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더 심각한 것은 국가와 지자체 사이의 관계이다. 토지 관리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지자체는 평소에도 재정과 인력 부족에 시달려 왔으므로, 빈집 해체처럼 번거롭고 비용이 드는 귀찮은 일을 더는 떠넘기지 말아 달라는 것이 본심이다. 한편 국가는 빈집 · 불명토지 · 미등기 같은 문제는 모두 지역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 곧 지역의 문제이므로 본래 지자체가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서로 상대방 탓으로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91쪽) 이것 역시 한국도 복사하여 붙여넣기를 하듯이 똑같은 현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명확한 지방자치제를 펼치고 있는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대지 않아도 누구나 말 뿐인 지방자치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와 지방의 소멸, 대도시 집중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자본주의의 이익만 내세우고 있으면서 밝은 미래를 꿈꾼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저명한 생태학자의 말을 빌려 보더라도 살기 좋은 사회가 되지 않는 한 인구 감소를 줄이는 건 어렵다. 동물이 그럴진대 인간이라고 다를 건 없어 보인다. 이 책에서조차 그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지 않는 한 더 이상의 해결책은 없다고.

토지가 인류(생물)의 생존과 생산의 기반이며 자연환경의 일부로서 일상생활과 깊이 얽혀 있다는 점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104쪽)

도쿄 일극집중이 일어나는 까닭도 결국 도쿄 전역이 일본에서 가장 높은 용적률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며, 거꾸로 보자면 그렇게 높은 용적률이 매겨지는 까닭은 그만큼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용적률은 다름 아닌 '도시계획'으로 결정된다. 사권私權의 전형이라 일컬어지는 토지소유권이 사실은 무색투명하고 평등한 권리가 아니라, 이렇듯 도시계획에 따라 또렷이 등급이 갈리고 있다는 사실이 여기서 드러난다. 덧붙이자면, 거품경제와 정반대 방향에 놓인 토지의 방치 또한 이 용적률을 비롯한 도시계획의 손길로 --여러 정책을 짜 맞추는 방식으로-- 개방 가능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리하면 땅값이 다시 살아나고, 매매와 이용이 트인다. 곧 방치의 해소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179쪽)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권리'로서의 소유권을 인정했다고 한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공격을 당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일본에 천황이라는 권력 구조가 등장했고, 온 나라의 힘을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생각은 곧 토지의 국유화였던 까닭이라고 한다. 토지는 모두의 것이다,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토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토지는 도시계획에 따라 그 이용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도시가 온전히 지자체의 권한 아래에 놓여 주민의 처지에서 모든 플랜이 결정되고 실행된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주민의 처지에서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바라보지 않을까 싶다. '짓고 허물고 다시 짓는' 사고는 일본 뿐 만이 아니라 한국의 병폐도 된다. 그린벨트가 점점 무너져가고 있는 점도 일본과 한국은 똑같다. 이 책에서 바라본 해결점에 '전원도시'가 있었다. '전원도시'는 그저 풍경 좋은 것만 바라보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전원도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도시를 말한다. 어쩌면 그 좋은 제도조차 우리에게 닿기까지 많은 오류와 변질을 낳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밑바탕은 '이윤' 획득을 좇는 경쟁이며, 진 자는 시장에서 물러나야 한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구 환경의 보전이나 빈곤의 해소처럼 당장의 '이윤'을 낳지 않는 일에는 누구도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러나 이윤도 끝내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사람은 이윤을 좇는 마음과 더불어 사로 돕는 도덕 위에서 살아왔다. 누구나 인권을 가지며,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사람은 홀로 살 수도, 홀로 죽을 수도 없다. 끝없이 이윤을 좇는 경쟁은 이러한 인류 보편의 도덕을 무너뜨리고, 사람을 이긴 자와 진 자로 갈라놓고 만다. 이것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334쪽) 처음에는 그저 궁금해서 일기 시작했던 책이 읽으면서 점점 마음이 숙연해졌다. 일본과 한국은 닮아도 너무 닮았다. 아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책 속에서조차 느껴진다. 일본의 도쿄집중과 한국의 서울집중은 결코 다른 모습이 아니었다. 토지 문제를 생각하면서 시작되었던 문제는 우리 삶의 일상으로까지 파고 들었다. 일극집중은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눈을 떼지 못했던 문장 하나를 가슴에 품는다. 우리에게는 '마음의 흑자'가 필요하다.(-361쪽) /아이비생각

서로 의논하고 자료를 모아 가는 결 속에서, 새삼 또렷이 짚게 된 것이 있다. 도중에 무심코 흘러나온 한마디가 사고의 자라남에 큰 보탬이 된다는 것, 디지털만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진정으로 맺어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현대총유의 뿌리인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신의 두터운 어우러짐---은 '연의 공유(緣の共有)'에서 비로소 자라난다는 것이었다.(-377쪽 역자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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