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이우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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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의 제목을 보면서 슬쩍 웃음이 났다. 결국 누군가는 말하게 되어 있다는 생각에. 항상 그렇다. 우리는 뭔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피해가려고 한다. 누군가가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면 그것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우리의 뇌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고, 알고 있는 사실에 반론을 제시하는 걸 싫어한다는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려고 하면 기존의 것은 기를 쓰고 무너지지 않으려 한다. 거기에 타당성을 제시하거나 합당한 근거를 대라고 소리친다. 그런 면에서보면 이 책은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을까? 이미 우리는 평균이 무너져가는 세계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사실 많은 사람이 이 책의 주제를 외면해왔다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민중을 이끌어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열광적으로 표준화와 평준화를 외쳐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나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나만 그랬을까?  세상의 흐름과는 다르게 자꾸만 뒤처져가는 우리의 교육현실은 많은 사람이 한숨을 쉬게 만든다. 내가 학교다닐 때만해도 저렇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때만해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공부를 하고 기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었다. 언젠가부터 평준화교육이 시작되고 그 때부터 제 갈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청춘들이 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평준화와 표준화는 삶의 형태에 등급을 만들기 시작했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자던 국민교육헌장은 이미 정치하는 사람들이 밥말아먹은지 오래다.

 

따지고보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평균으로 비교되어진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다 그렇다. 남들이 '예스'라고 말할 때 나만 '노'를 하면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평균이 있다. 그 첫번째가 IQ테스트다. 나는 그 모든 항목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누가 만들어내는지 엄청나게 궁금했었다. 또 하나는 심리(성격)테스트다. 많은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물을 가지고 미리 짜놓은 틀에 맞추려고 하는 그런 시스템이 나는 정말 싫었었다. 단지 몇개의 문항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를 사람에게 넌 그런 사람이야, 라고 단정짓는 것과 뭐가 다른건지.... "오늘 학교에서 직업테스트를 했는데 저에게는 ㅇㅇㅇ 이 적합하데요" 고등학생이었을 때 아들이 했던 말이지만 지금의 아들은 그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만족스럽게. 그런 것만 봐도 평균의 종말은 벌써 와야 했다. 그래서 이제서야 저런 말을 들먹인다는 게 너무 늦은 감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는 개개인을 시스템에 맞추기보다 시스템을 개개인에 맞추게 됐다. (-27쪽)

평균주의는 우리의 사고가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제한된 패턴에 따르도록 유도한다. (-113쪽)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수많은 평균에 비교해 평가하도록 조장하며, 아니 강요하며 우리에게 그 정당성을 끝도 없이 제시하고 있다. (-114쪽)

평등한 접근권은 한가지 큰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 시스템이 실제로 잘 맞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똑같은 표준화된 시스템에 접하도록 함으로써 개개인의 기회를 평균적으로 최대화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점이다.(-267쪽)

몇 줄의 글귀를 빌려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더듬어본다. 평균이 어째서 불합리한지를 말하면서 저자는 이런 말도 했다. 평균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①학위가 아닌 자격증 수여, ②성적 대신 실력의 평가, ③학생들에게 교육 진로의 결정권 허용하기, 를 채택해야 한다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무서워진다. 좋은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좋은 제도를 어떻게 적용시키는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해도 사회시스템이 그것을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제대로 실력을 쌓고 그것을 평가해 줄만한 시스템이 없으면 그것 또한 아무 소용이 없다. 학생들에게 교육 진로의 결정권을 준다는 것도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교육시스템은 한번 자리잡으면 그것을 바꾸기위한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오죽하면 교육을 '百年大計' 라고 했을까? 100년이 아니라 10년도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지금처럼  '耳懸鈴鼻懸鈴' 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더 까마득하다.  /아이비생각


공교육의 목표는 계몽화가 아니다.
현재의 공교육은 가능한 한 많은 개개인들을
똑같은 안전 수준으로 강등히시고
표준화된 시민을 길러내고 훈련시키면서
반대 의견과 독창성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이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의 공교육이 내세우고 있는 목표다.

- 책소개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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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혁명 2030
사이먼 B. 버락 지음, 엄성수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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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자율주행차 사고, 운전자 사망... 뉴스에서 요란하게 다루고 있는 듯한 느낌에 눈길이 갔다.  예전에 영화인지 드라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부르면 저 혼자 알아서 나타나는 그런 차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로망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자율주행차라는 건 운전자가 탑승한 상태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차라고 하니 영화가 현실이 되는 건가?  뭐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많은 사람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을거라는 걸 예측하는 게 어렵지는 않겠다. 그러니 저렇게 크게 보도되는거겠지... 기대가 커서 실망도 크지 않았을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는 차를 좋아하나?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좋아하기는 커녕 차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SUV나 RV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다. 하이브리드가 어쩌구저쩌구해도 뭔 소리야? 했었다. 나한테 차는 그냥 차다. 좋고 나쁘고가 없고 그저 크고 작은 형태로 사람으로 치면 옷만 바꿔입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 눈길이 간 것은 어느날 남편이 했던 혼잣말이 떠올라서였다. 고장난 차 옆을 지나며 이렇게 말했었다. 차를 타고 다닐 줄만 알았지 차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어. 많은 사람이. 나도 그 중 한사람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 책 정말 어려웠다. 일단 차에 대한 용어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물론 뒤에 짧게나마 용어해설이 있긴 하지만 차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시피하니.... 그래서 한참동안 책과 씨름했다. 전기차의 역사에 대한 부분이 살짝 흥미롭기는 했지만.

 

자율주행차는 차치하고, 이 책은 전기자동차에 대해 말하고 있다.  휘발유가 아닌 전기로 움직이는 차. 전기차에 대한 말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말이다. 아직 많은 사람에게 환영받지는 못해도 여러가지 여건이 충족된다면 전기차를 타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 이 책은 미래자동차로 단연 으뜸인 게 전기자동차라고 말하고 있다. 환경적인 요인을 생각해서라도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렇게 멋진 자동차가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는 한숨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느낌도 든다.  민관이 서로 힘을 합쳐야만 전기자동차 시대가 도래할 거라고 말한다. 전기자동차가 가져올 산업의 변화가 무궁무진할 거라고 말하고 있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는 문제점도 해결될 거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류는 너무나 편하고 빠른 것만을 위해 달려왔다. 그 편하고 빠른 것을 위해 우리가 잃어야 했던 것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전기차라는 말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였다. 빅브라더의 시대를 예고했던 책. 그리고 우리는 이미 빅브라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디에도 없는 나라 Utopia 를 찾아서 달려 온 우리는 이미 dystopia 라는 나라를 만들어냈다고 나는 생각한다. 획일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전기가 끊어지면 모든 삶이 멈춰버릴 것만 같은 지금의 우리 생활은 항상 불안감을 조성한다. 편하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가 희생시켜야 할 것은 아마도 엄청날 것이다. 자유를 이야기하면서도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는 삶. 빨리 전기자동차의 세상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듯한 완강함이 느껴져 책을 읽는 동안 껄끄러웠다. 하지만 전기차에 대한 상식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쩌면 재미있을수도 있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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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매슈 설리번 지음, 유소영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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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  가볍게 책을 펼쳤다. 한 장, 두 장 책장을 넘기면서 여기까지만 읽어야지, 여기까지만 읽어야지... 하기를 몇 번. 그러나 나는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책을 쥔 손이 도무지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만큼이나 몰입도가 강했다는 말이다. 도저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그 다음엔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건데? 궁금증이 끝도없이 밀려왔다. 이렇게나 급하게 달려보는 손맛이 얼마만인지.... 짜임새도 독특했다. 분명 과거를 향해 가고 있는데도 나는 현실에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엉키며 순간마다 멋지게 조여드는 그 맛이라니! 그러다가 예상치 못했던 결말에 가슴이 아팠다. 결국,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던 그 때를 누가 기억해줄까?  힘겨운 세상을 버텨내고 싶었던 외로운 청년 조이의 그 아픔은 누가 위로해줄 수 있을까?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리디아는 책을 사러 오는 고객보다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편히 쉴 곳이 없어 서점을 마치 제집처럼 드나들던 그들. 그들을 그녀는 책개구리라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날 교도소에서 이제 막 출소했다던 청년 조이가 그녀가 일하는 서점에서 목을 매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조이의 주머니속에 어째서 리디아의 어릴 적 사진이 들어있었을까?  그 사건은 가슴 깊숙하게 묻어 두었던 그녀의 아픈 과거를 불러오게 된다. 사랑하는 남자에게조차 말 할 수 없었던 그녀의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리디아는 궁금했다. 조이가 왜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죽으면서 왜 그녀에게 유품을 남겼는지.

 

조이가 유품으로 남긴 책들을 살펴보던 그녀의 눈에 작은 사각형으로 된 구멍이 보인다. 그 구멍만큼 짤려나간 글자들... 조이의 죽음은 그녀가 과거속으로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가게 하지만 그 기억은 그녀에게 아직은 열 수 없는 상자였다. 하지만 조이가 뚫어놓은 구멍속에서 쏟아져나온 글자들은 이제 제발 그 기억과 마주해달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녀는 20년 전 끔찍한 살인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친구의 집에서 파티를 하던 그날 밤, 한 남자가 망치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와 친구와 그녀의 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사라져버렸다. 그때 간신히 부엌까지 기어가 싱크대 안에 몸을 숨겼던 리디아는 그 모든 소리를 다 들었으며 싱크대의 문은 마지막까지 열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에게 안겨 그 집을 나왔다.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피투성이가 된 그 참혹한 광경을 보면서.

 

이 책,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인물과 또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은 좀처럼 미리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추리와 스릴러가 정당히 어우러져서 기가 막힌 반전을 불러왔다. 단언컨대 섣부른 예단은 오히려 당신을 한방 먹인다. 하지만 나는, 서점이라는 책의 배경이 너무 좋았다. 켜켜이 쌓인 책들에 둘러쌓였을 리디아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서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훈훈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서점직원들끼리의 살가운 대화들... 하지만 죽은 사람이 남기고 싶었던 말이 책의 뚫린 구멍속에서 쏟아져나왔을 때는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장치를? 기가 막히군! 도대체 그는 왜 이렇게 장난같은 유언을 남긴 것일까?  어쩌면 그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말은 몇마디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라고. 처절하리만치 외로웠던 그의 짧은 삶속에서 그가 원했던 건 단지 그것뿐이었다고.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하지만 세상은, 한사람의 목소리에는 귀기울이지 않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규칙과 잣대에 얽매인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외면하며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외롭고, 너무 아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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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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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북유럽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자연속에 펼쳐진 그야말로 전원풍의 주택을 떠올릴 수가 있고, 여러 매체를 통해 그들의 후생복지가 엄청나게 좋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행복지수에서도 단연 상위권일 수 밖에 없다. 북유럽은 마치 하나같다. 그들의 국기에서 색깔을 빼고 보면 십자가를 뉘어놓은 모양으로 똑같다. 거기다가 독일에 가면 북유럽대사관저라고 해서 한건물에 다섯나라의 대사관이 모두 들어가 있다고 한다. 여러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은 북유럽의 다섯나라. 그들은 서로가 얼마나 닮아 있다고 생각할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나라는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이다. 벌어들이는 돈의 반정도를 세금으로 내고 있지만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는 사람들이 바로 그쪽 사람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다지 큰 영토를 차지하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째서 그렇게까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있어서 북유럽이라는 말은 가장 먼저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여러종류의 신화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던 게 바로 북유럽신화인 까닭이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반지의 제왕'이나 '니벨룽겐의 반지', '토르' 등이 북유럽신화에서 탄생한 것이다. 두번째로 따라오는 말이 세계여행이다. 내가 가장 먼저 가고싶다고 생각했던 나라들이 북유럽의 나라들인데 그들의 복지정책이나 행복지수와는 상관없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던 까닭이다. 그런 풍경속에 스며든 그들 삶의 형태가 궁금하기도 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책의 제목은 그런 나에게 너무나도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이 책, 여행서 맞아? 여행서인데도 단 한장의 사진조차 없다!  '거의 미친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라는 말을 보니 여행서가 맞기는 한데 지금까지 보아왔던 여행서처럼 눈으로 보는 여행서가 아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여행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행, 그리고 걸어가는 여행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여행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  온전히 그들의 삶속에 녹아들 수 있는 여행이라면 걷는 여행일 것이다. 바로 그런 여행서인 듯 보여진다. 최소한 내가 가고 싶은 나라가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지, 어떤 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회인지를 알고 가야한다면 이 책이 제격일 듯 하다. 10년동안 북유럽에서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그곳을 답사하며 썼다는 말이 보인다.

 

덴마크 사람들은 나이, 계층, 세계관과 상관없이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는 재능을 가졌다. 포용력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불평등은 반감, 분노, 시기, 불신을 낳으므로 당연히 평등은 그 반대효과를 가져온다고 믿는 그들. 하지만 덴마크는 심하게 높은 세금으로 골치를 썩는 나라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온갖 방법으로 탈세를 한다. 덴마크사람들은 대출에 열광하는 만큼이나 저축을 싫어한다. 부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총기소지율이 높고, 서유럽에서 살인율이 제일 높으며, 폭음을 일삼는 술고래에 자살 애호가가 많기로 유명하다. 핀란드사람은 말 많은 사람을 불신한다. 그러니 좋은 말로 과묵하다.

아이슬란드는 도망자, 솔직히는 범죄자들이 살던 땅이다. 서부노르웨이에서 온 범법자들이 서쪽으로 오는 길에 데려온 스코틀랜드의 성 노예들과 함께 살았다. 그러나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1인당 책 구매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노르웨이에 살고 싶으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 - 추위와 어둠, 그리고 남녀평등.  그들은 사회적 결속, 평등, 동질성, 삶의 질이라는 면에서 덴마크인과 비슷하게 유리한 위치에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무서워하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거나 뽐내는 것을 싫어하며, 더 절제된 표현을 쓰고 겸손한 경향이 있다. 스웨덴사람들은 자신들의 예의범절을 자랑한다. 하지만 교양있는 사람의 품위와는 거리가 멀며, 온갖 성가진 형식과 격식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이혼율이 제일 높고, 1인가구수가 제일 많으며, 혼자사는 노인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다. 스웨덴 사람들은 서로 부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자기 문제를 혼자서 끌어안고 묵묵히 고통을 견딘다. 심지어 스웨덴 사람들은 술 한잔도 빚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 책은 좀 이상하다. 말하는 게 왠지 삐딱하다. 이건 이 나라를 칭찬하는거야, 비하하는거야? 시소를 타는 느낌이다. 책띠에 보면 미친듯이 웃긴다, 큰소리로 웃었다, 엄청나게 웃긴다 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나는 미친듯이 웃은 적이 없으며 큰소리로 웃은 적도 없다. 가끔 피식거렸을 뿐이다. 아마도 문화적인 차이때문일테지만. 그만큼 북유럽의 사람들은 전혀 즐거워보이지 않았다. 재미있는 부분도 많지 않았다. 나 지금 역사서를 읽고 있는거야? 묻고 싶을만큼.  우리가 많이 들었던 '휘게', '폴겔리', '라곰'이라는 말은 '느긋함', '아늑함', '유쾌함' 이라는 의미라고 한다는데 이 책을 통해 가장 강하게 다가왔던 느낌은 '느긋함'이 아니었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복지수는 왜 높은 걸까? 저자가 전문가의 말을 빌어 했던 말이 있다. 행복의 한 가지 열쇠는 삶의 자율성이다. 즉,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고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사치다. 바로 그 열쇠를 북유럽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이다. 진정하고 지속적인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삶의 주인이 되고, 자기 의지로 되고 싶은 사람이 되며, 그렇지 않다면 적절하게 경로를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의 울림이 크다. 북유럽의 나라들은 저마다 뺏고 빼앗기고 지배당하는 뼈아픈 고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저들이 진정한 자신들의 나라라는 형태를 갖춘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잣대에 의해 평가되고, 누군가를 평가하려고 하는 삶의 방식은 옳지 않아 보인다. 온갖 성가신 형식과 격식에 불과하다는 저들의 품위는 절대로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에 맞게 꾸려갈 뿐이다. 나도 거기로 가서 살고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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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단어 사용법 - 단어 하나 바꿨을 뿐인데...
송숙희 지음 / 유노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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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그까짓 단어 하나가 그렇게나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나라 속담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는 말이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단어 하나로 인해 엄청나게 차이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 책의 제목이 <마음을 움직이는 단어 사용법> 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단어가 따로 있다는 말일까? 있다!  "마음에 꽂히는 단어는 따로 있다" 라는 2장의 글을 읽어보면 "오호!" 라는 감탄사를 뱉어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 꽂히는 단어라는 게 참 그렇다. 결국은 나를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배려해주면 되는 말들이다.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주입시키려고 애쓰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단어를 고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것 좀 해봐!" 라거나 "이것도 해 주세요" 라는 말보다 "이것도 좀 해 주실수 있나요?" 라거나 "수고스럽지만 이것도 좀 해 주시면 정말 고마울거예요" 라고 말하는 게 듣는 입장에서 보면 훨씬 더 기분이 좋다. 명령하는 듯한 말투는 누구나에게 반발심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작가가 권하는 말이 재미있다. 홈쇼핑의 쇼호스트들이 하는 말을 잘 들어보라고 한다. 별 것 아닌 제품도 특별하게 만들어버리는, 그렇게해서 많은 사람이 그 제품을 사게 하는 그들의 말투를 한번 따라해보라고 한다. 음, 그럴수도 있겠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런 걸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건 철저하게 자신의 회사만을 위한 말투인 까닭이다. 거기에는 고객을 위한 마음이 '1'도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홈쇼핑의 번지르르한 말투에 속아서 물건을 샀던 기억이 한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나와 같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인간은 '사실'보다 '단어'에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언어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296쪽) 

그러니 단어 하나하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막연히 알고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모순되게도 저 문장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아팠다. '사실'보다 '단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건 그다지 아름다워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인 것을...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사실'을 확인하기보다는 그 '사실'을 감싸고 있는 말이 우선적으로 우리의 감성을 지배해버리고 마는 현실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 더구나  자극적인 말만을 찾아헤매는 매체라면 더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모든 걸 직접 다 보고 들을 수 없으니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우리 삶의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말은 오븐에서 나와야지 냉장고에서 나와서는 안된다" (195쪽) 

차가운 말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이다. 누구나 긍정적이고 친근한 표현을 좋아한다.

인정! 인정!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옛말이 있다. 단지 말만 잘하면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진심이 들어가 있는 말이라면 당연히 상대방의 마음에 깊숙히 파고든다. '기왕이면 다홍치마' 라고 어차피 해야 말이라면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을 해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라는 말처럼 상대방이 들어서 기분 좋다면, 그리고 나에게 좀 더 친근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말이라면 그것처럼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일상생활속에서, 혹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필요할 여러가지 말을 다루고 있다. 왜 내 말은 먹히지 않을까? 왜 내 글은 통하지 않는거지? 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라면 매혹적인 책임엔 분명해보인다. 하지만 '적당함'이 필요할 것 같다. 일상생활속에서 마치 비지니스를 하는 것처럼 말을 한다면 그것은 통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내가 본 결론은 이렇다. 나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배려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상대방이 내게 맞춰주기를 원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맞춰준다면 그런 마음이 진실된 말로 표현되어 나오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반성한다. 나 역시 내가 맞춰주기보다는 내게 맞춰주기를 원했던 사람중의 하나였기에.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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