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18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 생각뿔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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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이 두 개의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내 학문은 거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보다 더 연구 실적이 뛰어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조화롭지 못하고, 독립적인 개체들이 모인 조직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성격상 이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옳다고 믿으면 오직 그 길로 갔다. 내가 인간의 이중성을 인지한 것은 내 안에 있는 도덕적 측면 때문이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두 가지 성격 가운데 어느 한쪽도 모두 나지만, 그것은 내가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서술할 기적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선과 악을 분리한다는 공상에 종종 빠져들고는 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각각 분리할 수있다면, 삶의 괴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악한 본성은 고상한 쌍둥이인 착한 본성의 야망과 양심의 가책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길을 가면 되고, 착한 본성은 악한 본성이 저지르는 짓에 대해 괴로워하거나 참회할 필요없이, 그에게 기쁨이 되는 일을 하면서 위로 향하면 된다. 이란성 쌍둥이가 의식 세계라는 자궁 안에서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은 인류에게 저주이다. 그렇다면 그 둘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을까? (-89, 90쪽) 

 

이 세상은 어쩔 수 없이 이분법적으로 되어 있는 것일까?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산이 있으면 바다가 있고, 물이 있으면 불이 있고, 행복이 있으면 불햏이 있고, 지옥이 있으면 천당도 있고, 善이 있으면 惡이 있고. 그렇다고해서 완전한 이분법도 아닌 듯 하다. 결과가 있으려면 원인이 있고 그 결과에 다다르기 위한 또 하나의 과정이 있을테니. 이 책은 늘 그런 고민을 하게 한다. 성선설일까? 성악설일까? 를.  인간의 본성을 선천적으로 선하다고 본 맹자와 인간의 본성은 원래부터 악하기 때문에 禮와 공부가 필요하다고 본 순자의 대립은 아주 오래되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인간의 성선설을 믿을지 성악설을 믿을지 이쯤에서 상당히 궁금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작품은 문제작임이 분명하다. 선과 악은 언제나 우리에게 대립을 불러온다. 그것도 인간의 본성이 어둠에 가깝다는 말과 함께. 그런 까닭으로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쪽에 무게를 두는 사람도 많다. 나처럼.  하이드는 창백하고 난쟁이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기형은 아니었지만 왠지 불구라는 인상을 주었다. 웃는 것조차 불쾌했다. 그는 거칠고 낮은, 째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25쪽) 이 책에서조차 인간의 본성은 어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제어하기 위해 그토록이나 많은 법과 규제가 필요한거라고. 또하나,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도 지나칠 수 없다. 이 작품은 분명 경계선안에 있다. 인간이 본디 선하다고 말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악하다고 말하지도 않는 까닭이다. 주인공 지킬박사 역시 겉으로 볼 때는 부와 명예를 갖춘 박사였지만 자신안에 내재된 본성에 대한 강한 호기심으로 또하나의 자신인 하이드를 만들어내게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적인 관념과 사회적인 규범을 벗어나 자신의 마음대로 살고 싶었던 욕망을 억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다는 말일까? 많은 사회적 규제와 도덕적인 관념으로 포장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야 하니 그것은 어쩌면 순자의 말처럼 인위적이거나 혹은 위선적으로 꾸며낸 모습일 것이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다. 책을 읽는 내내 조여오던 몰입도와 긴장감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명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지킬박사는 인간의 본성을 선과 악으로 분리하는 실험에 성공한다. 하지만 지킬박사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그는 또다른 자신의 분신 하이드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쾌락의 어두운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선과 악의 세계를 동시에 오갈 수 있었던 지킬박사가 행복했을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선한 것이라해서 모두 옳은 것도 아니며 악한 것이라해서 모두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선과 악이 완전한 균형을 이룰 수는 없겠지만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않기 위해 최소한의 양심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고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말하고 있다. 지킬로 사는 쪽을 선택한다면, 나는 오랫동안 숨겼지만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욕구를 포기하며 살아야 했다. 하이드로 산다면 지킬이 쌓아올린 명예와 이익을 포기하고 사람들의 경멸을 감내하며 외톨이로 지내야 했다. (102쪽) 는 지킬박사의 말처럼 어쩌면 이 작품은 우리가 지켜야 할 수많은 규율과 법제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우리는 누구나 일탈을 꿈꾸며 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궤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이드로써 죽음을 맞게 된 지킬박사가 자신이 선택했던 욕망과 일탈에는 그에 따른 대가와 결과가 있다고 하는 것만 보아도 우리의 욕망, 혹은 쾌락이 얼마나 큰 결과를 불러오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논쟁은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되고 평범한 것이다. 신의 뜻을 어겨 벌을 받는 죄인들도 이와 같은 유혹에 이끌려 주사위를 던진다. 나 역시 주사위를 던져야 할 때가 오자, 더 나은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전의 많은 사람처럼 결심을 지킬 힘이 부족했다. (-102쪽)  질서와 규율에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망을 얼만큼 억제할 수 있는가 묻고 있는 것만 같다. 마음의 고삐를 너무 오래도록 느슨하게 두어서는 안된다고. 이 책의 말처럼 하이드에게 지배당한 사람은 지킬 박사 하나로 충분하니까. /아이비생각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1850년 11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토목기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에든버러 공과대학에 입학했지만 몸이 약하고 문학에 흥미가 있었던 루이스는 법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다. 아버지와의 갈등과 점점 악화되는 건강으로 요양차 유럽여행을 떠났는데 그 때의 경험이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보물섬>이란 작품을 통해 작가로서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으나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창작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던 그는 1894년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 생각뿔의 미니북 시리즈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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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 단편선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21
오 헨리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 생각뿔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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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렴에 걸려 병원에 입원중이던 가난한 화가 존시. 의사는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하면서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면 살아날 가능성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있던 존시가 보고 있었던 것은 희망이 아니었다.  창밖에서 떨어지는 담쟁이덩굴의 잎을 세면서 그녀는 말한다. 저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고. 존시를 간호하던 친구 수는 출판사에 제출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이웃에 사는 노인 버만을 불러 모델로 삼는다. 버만 역시 가난한 화가로 근근이 삶을 이어가던 사람이었다.  다음 날 존시는 커튼을 열고 나뭇잎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한다. 간밤에 거센 비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나뭇잎이 다 떨어졌을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단 하나의 잎이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 마지막 남은 잎을 보면서 존시는 삶에 희망을 되찾고 의사에게서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버만이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 마지막 잎새는 버만이 존시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밤새도록 그린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라는 작품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거나 읽어보았을 작품이다. 남을 위한 배려와 희생정신을 그린 오 헨리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마지막 잎새> 못지않게 유명한 작품으로 <크리스마스 선물>도 있다. 크리스마스에 남편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던 아내는 자신의 긴 머리를 잘라 남편의 시계에 어울리는 시계줄을 산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의 긴머리에 어울리는 머리핀을 선물로 사기 위해 자신의 시계를 판다. 결국 두사람에게는 필요없는 선물이 되어버렸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커다란 선물이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오 헨리의 작품 대부분은 이렇듯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쓰여졌다. 가난한 사람들과 노숙인과 같은...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 모두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 <경찰관과 찬송가>에서는 추운 겨울을 감옥에서 편하게 보내기 위해 이런저런 사건을 일으키던 부랑자 소피가 일자리를 구해야겠다고 다짐하던 순간 거리를 배회한다는 이유로 경찰관에게 체포되는 모순을 그리고 있으며, <20년 후>에서는 한사람은 경찰로 한사람은 수배자로 20년 후에 다시 만나게 되는 두 친구의 모습을 그렸다. <추수감사절의 두 신사>에서는 추수감사절에는 누군가를 도와줘야 한다는 사회의 관습에 얽매여 거리의 부랑자를 그 날만큼은 배불리 먹도록 하기 위해 자신은 사흘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 굶어죽은 사람을 그리고 있다. 관습이란 굴레에 얽매인 사람들의 모습,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악습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백작과 결혼식 손님>, <메뉴판 위의 봄>, <가구가 딸린 셋방 >, <도시물을 먹은 사람 >, <카페 안의 세계주의자 >등도 주제는 비슷하다. 하지만 배경과 그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두 다르다.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의 심중을 어렵지않게 알아낼 수 있다. 작가의 시선은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그들을 관찰하면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냈다. 모두가 상점의 판매원처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거나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그럼에도 그들에게서 희망을 보며, 그들에게 사회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성공한 사람만이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눈을 돌리는 곳마다 이야깃거리가 있어요. 세상의 모든 일은 모두 작품의 소재가 됩니다.”오 헨리의 말이다.

 

오 헨리는 작가로서의 활동 기간에 무려 300여편의 단편 소설을 남겼다. 대부분의 작품이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가 활동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미국은 공업화와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수많은 발전을 이룩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어 서민들은 더욱 살기 힘들어지고 부를 가진 사람들도 정서적으로 피폐해졌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었다. 작품을 통해 이기적이고 잔인한 도시인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비판적인 시선을 함께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이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적은 돈으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소시민, 집 없이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들이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미국 단편 소설의 대가로 불리워지는 오 헨리의 생애를 보면 어릴 적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잃었으며 그 역시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폐결핵을 앓고 있어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알코올 의존증에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 대신 할머니와 숙부의 손에서 자라며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숙부의 약국일을 도왔다. 20살에 텍사스주로 넘어가 직공생활을 했으며 25살에 결혼을 한다. 하지만 아내 역시 폐결핵을 앓아 건강이 좋지 않았다. 예전에 잠시 근무했던 은행에서 공금횡령죄로 수배령이 떨어졌고, 후에 수감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본명 '윌리엄 시드니 포터'라는 이름 대신 '오 헨리'라는 필명으로 작가활동을 한다. 작품속에서 그의 험난했던 생을 보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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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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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78쪽)  이 물음은 우리에게도 많이 다가왔던 것이다. 그토록 사랑했으나 그 사람이 없이도 우리는 나머지 삶을 잘 살아낸다. 아무리 사랑했다해도 남은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머지 삶을 잘 살아간다해도 단언컨대,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거나 그 사람을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슬픔은 순간마다 밀려오기도 한다. 이 중단없는 새로 시작하기. 시시포스. 어느날 오후에 엄마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아침부터 그녀의 사진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던 그가 짧게 쓴 단상이다. (슬픔이 멈춘 것도 아닌데) 또 하나의 이름 모를 슬픔이 시작된다고. 잊은 것이 아니라 잠시 잊혀져 있었던 거라고. 함께 지냈던 순간들은 어떤 형태로든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다. 불쑥 찾아올 때마다 슬픔도 함께 찾아온다. 강하게 혹은 약하게. 추억이 되었든 기억이 되었든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했던 모든 것이 함께 사라지지 않는 까닭이다. 어떤 공간속에, 혹은 어떤 시간속에 기억과 슬픔은 함께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러다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책 속의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 - 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111쪽)  슬픔을 겪는 사람에게 흔하게 하는 말 중의 하나지만 어쩌겠는가, 저 말보다 더 적당한 말이 없어보이니.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그 슬픔도 엷어진다고. 그 때는 당장 어떻게 될 것처럼 펄펄 뛰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게 마련이다.  다른 것들에게 떠밀려 저만치로 밀려나서 색이 바래는 것이다.

 

바르트의 어머니 앙리에르 벵제는 1977년 10월 25일 사망했다. 그 다음 날부터 바르트는 <애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은 종이에 순간순간 찾아왔던 자신의 느낌을 적은 글이니 사실 처음부터 애도일기라고 하는 건 무리일 듯 하지만... 이 일기는 2년 뒤인 1979년 9월 15일에 끝난다. 그리고 1980년 2월 25일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일반적인 치료외의 심리적인 치료는 거부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사고사였던 바르트의 죽음이 혹시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만든 건 바로 이 말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216쪽)  바르트는 1915년에 태어나 전쟁으로 아버지를 일찍 잃고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대단한 의미였을 것이다. 어쩌면 또 하나의 자신이라고 여겼을 어머니의 죽음후에도 변함없이 여전한 자신의 일상에 대한 자괴감으로 괴로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런 것들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에게 찾아왔던 여러가지 감정이나 소소한 일상 중의 하나를 쪽지에 적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의 말로는 이것이 책으로 만들어지길 바라지 않았다고 하나 씁쓸하지만 이 일기의 문체속에는 문학적인 느낌이 가득하게 담겨있는 듯 하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 이라고 표현되어지는 것들조차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역시 표현되어지는 그 어떤 것일 뿐일까?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고나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이 한마디뿐이었다.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172쪽)  섣불리 말하지 말자. 누군가의 아픔을, 누군가의 슬픔을,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그 사람의 아픔과 슬픔, 고통을 똑같이 겪어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아픔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에.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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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지나간다 - 스물네 개의 된소리 홑글자 이야기
구효서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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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히다. 말의 유희로 한바탕 놀고 난 듯한 느낌이다. 된소리 스물네 개로 만들어낸 스물네 개의 이야기에 피식거리며 웃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코끝이 찡한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아팠던 시절이었음이 분명한데도 슬쩍 웃어 넘겨버리고마는 그런 시대가. 그 아픔을 다 이야기하자면 어쩌면 삼백예순날 하고도 5일이 더 걸릴지 모르니까. 뻘, 깨, 빡, 뻥, 깡, 씨, 꿀, 쓰, 빵, 달, 깽, 찍, 땡, 뺨, 쓱, 꽃, 때, 쎄, 떼, 빡, 뼈, 뿌, 떡, 끝... 이 스물네 개의 된소리 홑글자를 나열해보는 것은 그 소리들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어서다. 어느 정도는 짐작했던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어쩌면 그리도 찰지고 맛나던지. 전기를 증기, 김치를 금치, 김을 짐이라고 하는 강화도 창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한번 음미해보고 싶은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소리가 아니다. "계속되던 것이 아주 갑자기 그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이다. 소리가 아닌 모양이라지 않은가. 모양. 그런데 그걸 글로 적자니 소리가 되고 만다. 그것도 아주 된소리. 뚝. 그러고보니 '하늘'도 아무 소리 없는데 글로 적으니 하늘이라는 소리가 된다. 이거 자꾸 재미있어진다. 무엇이든 종이에 글로 적으면 소리가 된다는 게 그렇다. 글은 말이고 말은 소리구나. 그러니까 모든 글은 소리. (-143,144쪽)  말 그대로 소리가 된 글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상당히 독특한 문장체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글에는 은유적 글이 있는가하면 미사여구 하나없이 있는 그대로의 말로 전해지는 글이 있다. 이 책에는 아름답게 꾸미고자 한 마음이 전혀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글로 소리낼 뿐. 뻘은 그대로 뻘이고, 깡은 그대로 깡이며 깽은 그대로 깽이다. 단지 그 말들이 1인칭 화자가 되어 그 때 그시절의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쑥쑥 빠져드는 뻘에서 게를 잡는 사람들, 늦은 하교길에 80명이 죽었다던 새기재에서 무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어린 효서에게 달려가고 싶어하는 깡, 달밤에 하릴없이 짓는다고 멋적은 주인에게 얻어맞은 개가 깽, 하고 소리를 낸다. 그 자리에서 떠날 수 없어서 많은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했던 꽃이 전해주는 새기재 이야기, 목 매달고 죽은 사람들이 길게 내밀었던 쎄는 '쎄가 빠진다'고 할 때의 '쎄'로 그 의미가 혀라는 것, 만신 할미의 굿이 끝나기만 바라며 목을 길게 빼고 있던 동네아이들에게 키 큰 아저씨들이 나눠주던 시루안의 떡, 밀고 밀리던 전쟁통에 한마을에 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에 의해 죽어갔던 사람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를 알고 있던 뼈, 다같이 어수선한 시절을 살아내고 있었음에도 공연스레 아이들의 '뺨'을 때리던 선생들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우리가 나이를 말할 때 종종 거론되는 58년 개띠가 있다. 1958년생. 개띠. 그 시절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강화도의 창말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이야기이기도 하고 작가의 유년시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958년 개띠는 전후세대다. 베이비붐세대다. 80만 명에서 100만 명이 태어났다는 말도 있다. 교육적으로는 '뺑뺑이'를 맨처음 시작한 세대이고, 7080의 통키타 문화를 만들어낸 세대이기도 하다. 10·26사건과 12·12사태를 거쳐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던 제5공화국을 무너뜨리며 6월항쟁을 쟁취했던 세대가 바로 그들이며 IMF로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직장을 떠나야만 했던 힘겨웠던 세대가 또한 그들이다. 반공과 방첩을 주제로 웅변대회를 했으며, 송충이를 잡거나 쥐꼬리를 잘라 학교에 제출해야 했던 아이들. 머리에 이가 있거나 뱃속의 회충과 싸우던 아이들. '콩나물시루'같았던 교실에서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공부했던 아이들. 그리고 양 어깨에 부모와 자식을 동시에 짊어져야만 하는 세대다. 낀세대, 그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 그들이 올 해로 회갑이라고 한다. 만만치않은 노후를 또다시 견뎌내야 할 세대로 자리잡을 것이다. 

 

2016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2년에 걸쳐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되었던 스물네 편의 글들을 모은 책이라는 말이 보인다.  연재 당시 된소리 홑글자들이 화자로 등장하는 독특한 내용과 형식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바 있다는데 나 역시 그 말에 공감하게 된다. 1957년 9월에 태어난 닭띠인데도 1958년 9월에 출생신고를 해서 58년생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는 작가의 유년시절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 때는 다 그랬다고 한다. 홍역이다 뭐다해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 아이가 많아 1년동안 잘 살아내면 그 때서야 출생신고를 했다고.  '빵'도 말하고 '쓱'도 말해서 제 글이 살짝 애니미즘 판타지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것도 같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또 어떻게 그 시절을 떠올릴까 싶네요.(-354쪽) 작가의 말이다. 그 시절은 그만큼 힘겨웠다는 말일게다. 삶은 하나의 경험이고, 추억이고, 기억이다. 그 하나의 경험과 추억이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그 하나의 기억이 한 시대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내 언니와 오빠들의 헛헛한 삶을 들여다 본 것 같아 공연스레 안스러움과 미안함이 느껴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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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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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선진국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대한민국은 아직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서지 못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덩치만 커다란 아이같다고 많은 지식인이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어떤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다른 나라보다 정치, 경제, 문화 따위의 발달이 앞선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나온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개발도상국이라고 배웠다. 개발이나 발전의 정도만으로 본다면 대한민국은 분명 후진국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성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말이 달라진다. 경제는 발전했을지 몰라도 정치적이나 문화적인 면을 따지고 들면 여전히 후진국쪽에 더 가깝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과도기의 아픔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정도를 넘어선 듯한 요즈음의 대한민국을 보면 상당히 혼란스럽다. 그 혼란스러움의 와중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다. 昨今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망망대해에서 배를 뜯어 고쳐야 하는 뱃사람과 같은 신세다. 우리에게는 부두로 가서 배를 분해하고 좋은 부품으로 다시 조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83쪽) 오스트리아의 과학철학자 오토 노이라트의 말이라고 한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그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암담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토 노이라트의 말처럼 많은 지식인이 존재함에도 (이 책을 쓴 저자도 고려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 지식인들이 올바른 길을 알려주고 있는데도, 그저 말에 그칠 뿐 받아들여지지 않는 까닭이다. 정치가 후진적이라서? 그렇지만 뉴스를 보면서 늘 느끼듯 대한민국보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정치도 매양 그렇다. 그러니 딱히 정치를 탓하기도 그렇고. 그렇다면 딱 한가지 뿐이다. 국민이다. 국민이 깨어있지 않다는 뜻일 터다. 모두를 위해,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나라. 너무나도 편협한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민낯. 이 책에서는 그런 우리의 민낯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국민이 변해야 할 때라고. 국민이 변하면 나라의 체계가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사회적인 약자나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위한 제도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아야 한다. (-216쪽) 는 말을 보면서 끼리끼리 문화에 익숙한 사회적인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거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듣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니 내 편 아니면 남의 편, 흑백 논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어울림의 미학을 잃어버린 나라. 제 이익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겠다고, 피하지 않고 함께 있겠다고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울컥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가 있다. 저자는 그런 상황의 실제적인 예를 많이 연구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많은 실례를 보면서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병들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모습을 뉴스를 통해 접하지만 이 책의 소제목처럼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240쪽)

"개개인이 무장을 해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원인을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해결책이 필요하니까요." (-250쪽) 

이 책에서는 사회적인 불안요소, 이를테면 고용 불안이나 소수자를 향한 차별등이 우리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밝히고 있다. 사회적인 불안요소의 원인을 발견하고 그것을 먼저 치유해야만 한다고. 사회가 개인의 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고.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다, 고 저자는 말한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복직문제라거나 세월호의 유가족 문제, 성소수자나 결혼이주민등의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이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고. 그러나 하나하나가 아닌 '우리'가 될 때, 서로의 존재가 연결될수록, 사회는 건강해질 수있다고.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배려속에 기쁨과 따스함이 존재한다고. 최첨단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병을 예측하고 치료하는 게 가능해진다고 해도, 사회의 변화 없이 개인은 건강해질 수 없다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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