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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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78쪽)  이 물음은 우리에게도 많이 다가왔던 것이다. 그토록 사랑했으나 그 사람이 없이도 우리는 나머지 삶을 잘 살아낸다. 아무리 사랑했다해도 남은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머지 삶을 잘 살아간다해도 단언컨대,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거나 그 사람을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슬픔은 순간마다 밀려오기도 한다. 이 중단없는 새로 시작하기. 시시포스. 어느날 오후에 엄마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아침부터 그녀의 사진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던 그가 짧게 쓴 단상이다. (슬픔이 멈춘 것도 아닌데) 또 하나의 이름 모를 슬픔이 시작된다고. 잊은 것이 아니라 잠시 잊혀져 있었던 거라고. 함께 지냈던 순간들은 어떤 형태로든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다. 불쑥 찾아올 때마다 슬픔도 함께 찾아온다. 강하게 혹은 약하게. 추억이 되었든 기억이 되었든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했던 모든 것이 함께 사라지지 않는 까닭이다. 어떤 공간속에, 혹은 어떤 시간속에 기억과 슬픔은 함께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러다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책 속의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 - 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111쪽)  슬픔을 겪는 사람에게 흔하게 하는 말 중의 하나지만 어쩌겠는가, 저 말보다 더 적당한 말이 없어보이니.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그 슬픔도 엷어진다고. 그 때는 당장 어떻게 될 것처럼 펄펄 뛰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게 마련이다.  다른 것들에게 떠밀려 저만치로 밀려나서 색이 바래는 것이다.

 

바르트의 어머니 앙리에르 벵제는 1977년 10월 25일 사망했다. 그 다음 날부터 바르트는 <애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은 종이에 순간순간 찾아왔던 자신의 느낌을 적은 글이니 사실 처음부터 애도일기라고 하는 건 무리일 듯 하지만... 이 일기는 2년 뒤인 1979년 9월 15일에 끝난다. 그리고 1980년 2월 25일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일반적인 치료외의 심리적인 치료는 거부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사고사였던 바르트의 죽음이 혹시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만든 건 바로 이 말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216쪽)  바르트는 1915년에 태어나 전쟁으로 아버지를 일찍 잃고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대단한 의미였을 것이다. 어쩌면 또 하나의 자신이라고 여겼을 어머니의 죽음후에도 변함없이 여전한 자신의 일상에 대한 자괴감으로 괴로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런 것들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에게 찾아왔던 여러가지 감정이나 소소한 일상 중의 하나를 쪽지에 적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의 말로는 이것이 책으로 만들어지길 바라지 않았다고 하나 씁쓸하지만 이 일기의 문체속에는 문학적인 느낌이 가득하게 담겨있는 듯 하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 이라고 표현되어지는 것들조차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역시 표현되어지는 그 어떤 것일 뿐일까?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고나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이 한마디뿐이었다.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172쪽)  섣불리 말하지 말자. 누군가의 아픔을, 누군가의 슬픔을,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그 사람의 아픔과 슬픔, 고통을 똑같이 겪어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아픔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에.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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