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과 마법의 별 1
데이브 배리.리들리 피어슨 지음, 공보경 옮김, 그렉 콜 삽화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원래 이 소설은 리들리 피어슨의 딸이 아빠한테 피터가 어떻게 해서 후크 선장을
만나게 되었느냐고 물어본 데서 탄생했다고 합니다....<옮긴이의 글>중에서

어떤 책을 읽으면서 혹은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전에 있었음직한 내용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처음 이 책의 카피를 보았을 때 우리가 이미 어린시절에 친구로 만들어버렸던 피터팬이
어떻게 날게 되었는지 알려준다는 말이 나를 너무나 궁금하게 했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 책을 썼길래?
어쩌면 재미 있을수도 있고 또 어쩌면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가 될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책표지에서 만난 반짝이는 별들의 모습과 날아오르는 작은 소년 피터의 모습이라니...
이 책은 한마디로 정말 재미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단 한번도 막힘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황당한 이야기일수도 있겠다는 나의 우려를 단숨에 없애주었으니 말이다.
무언가를 궁금해하는 아들녀석을 위해서 나는 작자처럼 이렇게 기발한 이야기를 떠올려
들려줄 수 있을까? 나는 진정 그런 엄마의 모습은 아니었다.

피터와 몰리, 그리고 피터팬과 웬디.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들이 정말로 신비로웠다.
그 상상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아이를 위한 동화이기 보다는 어른이 보아도 뭔가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심리를 갖게 해 주었다.
판타지적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내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고아소년 피터와 별가루를 지켜야하는 초보 별지킴이 몰리의 만남으로 모혐은 시작되고
소유하기만 한다면 엄청난 힘을 갖게 된다는 마법의 별가루는 결국 피터에게
날아다니는 능력과 영원한 소년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게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여기서 놓칠 수 없는 또하나의 진리가 있으니 어쩌면 너무나 단순하기만 한...
탐욕은 결코 그 엄청난 행운을 부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책 요소요소마다 숨겨진 교훈들은 참 많았다.
아이들이 읽든 어른이 읽든 그것을 찾아내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을까 싶다.

마법의 별가루로 인해 인어가 탄생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황홀했다.
돌고래와 대화를 하는 몰리의 모습이나
인어와 말없이 서로의 생각을 읽으며 대화를 나누는 피터의 모습은
이 책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터팬의 그 작고 이쁜 요정 팅커벨을 기억하는가?
네버랜드섬에 남기로 한 피터를 위해 몰리의 아빠 레오나드가 선물했던 요정.
작고 이쁜 새였으나 피터를 지켜주기 위하여 다시 요정으로 태어난 그 새가
피터팬에서는 팅커벨로 탄생되어 피터팬을 지켜주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이미 둔해진 내 머릿속의 상상력은 참으로 바빴다.
피터의 이야기와 피터팬의 이야기속을 왔다갔다 하느라고.
단숨에 읽어버린, 정말 가슴 설레이는 모험이었다.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은 중간중간에 끼워넣은 삽화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렇게 모두가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레오나드의 손에서 탄생되어진 요정 팅커벨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살며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정말 기가 막히게 그렸군! 하면서.
그 웃음을 내게 선사해 준 책을 아들녀석에게 꼭한번은 읽어줄 것이다.

조만간 디즈니 사에서 이 소설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을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단다.
가뜩이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내게는 희소식이 아닐수가 없다.
또한 후속편으로 <피터팬과 그림자도둑>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책이 하루빨리 나오기를 바래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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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 결별과 부재의 슬픔을 다독이는 치유에세이
조앤 디디온 지음, 이은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피처 에디터:
문화,트렌드,인물,새로운 정보 등 잡지의 읽을 거리를 다루는 에디터.
새로운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캐치해서 전해야 하므로 세상의 모든 일에
오감을 열고 있어야 하며,감칠맛나는 글솜씨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 디디온의 직업이다.
일종의 기자와 칼럼리스트를 섞어놓은듯한 느낌이 든다.
정말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녀에게 예고없이 닥친 시련과 싸워나가는
일년의 과정을 사실 그대로 그렸다고 한다.
<상실>이란 제목에 이끌렸고 실제의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몇장을 읽으면서 내가 과연 그녀의 입장이라면 어떠했을까 싶었다.
크리스마스날 외동딸이 심각한 폐렴과 패혈성 쇼크로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
그리고 닷새 뒤 딸의 문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급성 중증 심장병으로 숨을 거둔다.
한꺼번에 이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둘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픔이 너무 갑작스레 찾아오면 그 아픔을 처음엔 느끼지 못하듯이
그녀 역시 처음의 슬픔을 느끼지 못한채 남편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작업실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나머지 신발들을 처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잠시 그곳에 서 있다 이유를 깨달았다.
그가 돌아오면 신발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루고 남편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으면서도 그녀의 마음은
남편의 부재를 인정할 수가 없었던 거다.
갑작스러운 이별앞에서 아닐거라고 고개를 저으며 부정을 하지만
이내 그녀곁을 떠도는 남편과의 시간들, 이미 지나가 추억이 되어버린 일들이
그녀에게 찾아와 인정해야만 한다고 되뇌이던 순간 그녀의 비통함이라니!
비통에 젖은 사람에게는 어느 누구도 무언가를 강요하면 안된다.
지나치게 감정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절대적으로 접근을 삼가야 한다. -- 주변 인물들은 '필요없다'는 말을 듣거나
환영을 받지 못하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지 말아야 한다.

이제 아픔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그녀는 힘겨워하지만 그렇게 있을수만은 없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딸이 아직 병원에 있는 까닭에.
병원으로 달려가 딸의 곁에 머물며 그녀는 끝도 없이 말한다.
괜찮아질거야. 엄마가 있잖니. 늘 곁에 있어줄께.
그리고 그녀는 딸의 병에 관한 전문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하고
그것에 관한 모든 정보를 찾아내 의사와의 원활한 소통을 꾀한다.
행여나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로 인하여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하여.
"엄마 언제 갈거야?"
드디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외동딸 퀸태나는 이렇게 물었다.
나는 함께 떠날 수 있을때까지 곁에 있을거라고 대답했다.
그아이는 다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슬픔과 비통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삶의 힘겨움은 그녀를 억누르고
언뜻언뜻 다가오는 두려움에 그녀는 몸을 사린다.
그럴때마다  곁에 두었던 책으로 자신을 추스리는 그녀의 강인함 앞에서
나였다면 과연 저렇게 의연하게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주 교묘하게 슬픔과 슬픔사이를 비켜다닌다.
나는 스스로를 동정하는 야생의 생물을 본 적이 없다.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죽은 조그만 새도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않을 것이다.- D.H. 로렌스

40년을 함께 부부로 지냈던 사람과 3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던 딸은
그녀에게 무엇을 남겨주었을까?
이제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시련들을 이겨냈다.
그리고 이 책을 쓰며 그녀가 겪었던 슬픔과 비통함이 어떤 것인지를,
그때의 기분이 어떠했는지를, 어떤 식으로 자신을 힘겹게 했는지를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것 같다.
우리는 곧잘 말한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아픈 것처럼.
그리고 그 아픔을 오직 나만이 갖고 있으며 나만이 알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어디 그런가? 속속들이 제 속을 다 드러내놓고 살지 않는 까닭에
오직 나혼자만이 아픔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책을 읽는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雪上加霜이란 말이 있다. 시련은 겹으로 온다고 했던가?
마지막으로 이 책을 번역하는 내내 막막함을 느꼈다던 역자후기를 읽으면서
과연 그 느낌이 제대로 전해진 것인지를 나는 내게 다시 물어야 했다. /아이비생각

<이 책은 슬픔과 비통에 관한 심리학처럼 정리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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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하루
마르탱 파주 지음, 이승재 옮김, 정택영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좀 황당하다.
뭐야?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거지?
사실 책은 그리 두껍지 않다. 거기에다가 그림도 많다.
그리 많지 않은 분량속에서 나는 정말이지 길을 잃고 헤매다 지쳐버린 듯 하다.
몇 장을 읽다가 다시 책표지 안쪽으로 돌아온다.
작가의 프로필을 읽기 위해서다.
마르탱 파주...1975년생.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과 엽기 발랄한 유머 감각으로...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 이 책을 만들어내서 프랑스 독자를 열광시켰다...
왜? 무엇때문에?
그들이 열광하였다는 말이 도무지 와닿지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뭐지? 왜 나는 이렇게 헤매고 있는거지?
이런 표현을 은유적이라고 말하기엔 좀 억지스럽지 않을까?
느닷없이 광고카피가 하나 생각났다.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뭐 그런 광고가 하나 있었다.

잠옷 입고 일하면 업무에 방해가 되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
그럼 왜 안되냐고요? 간단합니다. 잠옷을 입고 일을 하면
여전히 악몽을 꾸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입니다!<20쪽>
참으로 엉뚱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그런 거!
그렇게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나보다 하다가는 이내 또다시 길을 잃고 만다.
도대체 내가 느끼고 생각해야 할 부분은 어디쯤에 있을까?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고 눈을 부릅뜬다.
그래도 역시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사실 이 책은 오래전부터 나의 관심속에 있었다.
날마다 자살을 꿈꾸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광고글 때문에.
죽음을 다루는 작가들의 그 세계를 한번쯤은 비교해 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던 까닭에.
그러나 나는 무참히도 짓밟히고 말았다.
요즘 애들말처럼 이건 아니잖아! 였다.

그래도 가시밭길 헤치며 앞으로 앞으로 간다. 내가 가야 할 길이기에.
문득 이건 뭐지? 반가운 마음이 드는 길 하나를 만난다.
감정곤충을 말할 때는 아하 멋진 표현이군!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가장 아름다운 곤충은 가장 좋고, 흥겹고,지속적인 감정이다.
그 곤충들은 형형색색의 반짝이는 옷자락을 휘날리는 환상적인 나비처럼 화려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라는 표현을 하지 않는가.
가장 보기 흉한 곤충은 비열하고 못된 감정이다.
그것들은 남몰래 숨어서 바닥을 기어 다닌다.
그리고 발육 부진에다가 허약한 상태로 지내는 곤충은
불행한 감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항상 위축된 채로 살기 때문이다.<93쪽>
나는 차라리 그냥 여기서 멈추고 싶었다.
오랜만에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낸 듯 싶어서.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폐부 깊숙히 찾아낸 공기가 들어오는 것 같다.
남자와 여자들이 애완동물을 산책시킨다.
사무실에 애완동물을 데리고 출근하는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애완동물은 다름 아닌 억압,궤양,경쟁,두려움,식은땀,야망,복통
따위의 짐승들이다.
애완동물의 주인들은 녀석들을 줄로 잘 묶어서 마음대로 부리고 있었다.<97쪽>

이쯤에서 나는 다시 책표지의 작가 프로필로 되돌아간다.
평범한 유년기를 보낸 작가는 대학에서 심리학,언어학,철학,사회학,예술사,인류학 등을
전공했다.접시 닦기, 야간 경비원,기숙사 사감,페스티벌 안전요원등으로 일하며....
아하! 그래서 이토록 자신을 숨기는데 명수가 되었구먼?
나름대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철저하게 자신을 숨긴 이야기라고.
아니면 세대차이라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이 겪었던 느낌과 심리상태를 고스란히 옮겨 자전적인 성격이 있는 글이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숨겨놓은 책이다.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처럼 나 찾아봐라 하며서 요리죠리 피해다니는 느낌처럼.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내 수준이 얕은 것인지 작가의 수준이 너무 높은 것인지.
아니면 문화의 차이가 이토록 먼 것인지.
어찌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같기도 하다.
배배꼬인 꽈배기처럼 비틀린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왠지 나의 선택이 미워지는 순간
이 짧은 책을 읽는데 소요되었던 그 기나긴 시간들이 생각났다./아이비생각
 
인생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난 단지 아가미가 달린 인간일 뿐이다 -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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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르한 파묵은 진짜 이야기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지적인 게임,꿈처럼 아름다운 세계,가히 마법이다.
매우 지적이다. 그럼에도 아주 재미있게 읽힌다
....등등
이 책을 평한 글들이다. 정말 그럴까? 정말 그랬을까?
몇번을 생각해봐도 나는 잘 모르겠다.
오르한 파묵이란 이름보다도 하얀성이라는 제목을 먼저 알게 된 책.
그러고나서 노벨문학상 후보에 우리의 작가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오르한 파묵이란 사람에게 넘겨줘버리고 말았다는 소식속에서
나는 이 책의 작자를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터키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았던 듯 하다.
딱히 이것이다,라고 기억나는 책이 없는 걸보면.
그것도 아니면 나의 책읽기 수준이 아주 바닥일테다.아마도.
저토록 수많은 격찬을 받은 책이라면 어떤 책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이 책의 제목에 이끌려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던 듯 하다.
하얀성...
그 성은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그 성에는 과연 누가 살까?
왜 하필이면 하얀성일까?

처음부터 결정된 인생은 없다는 것을.
모든 이야기는 실상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았을 때,
우연히 경험했던 것들이 실상은 필연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18쪽>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안개속을 헤매고 있었다.
마치도 거울의 방에 들어앉아 마주보이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불행하게도 그 마주보이는 누군가는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을 똑같이 따라하기만 하고
내가 그속에 동화되어가는 것인지, 그가 내 속에 동화되어가는 것인지 조차를 알지 못한다.
마주보이는 그 존재가 나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채
마치도 타인을 대하듯 내 자신과 이야기를 하며 화를 내고 웃기도 하며 대화를 나누지만
결국 들리는 것은 메아리처럼 되돌아 오는 목소리뿐.
우연히도 같은 외모를 한 채 한사람은 노예로 한사람은 주인으로써 마주친 두사람.
그러나 같음을 인정하기까지 그들은 오랜 시간을 허비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동화되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사실상 서로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인양 그렇게 받아들인다.
떠나야 할 사람은 남고, 남아야 할 사람은 떠나버리는 인생의 아이러니.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들은 되묻고 있다. 과연 그가 정말 나였을까?

우리가 누구이며,무엇을 원하며,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느냐에 관한 자기 성찰적인 소설이라고
옮긴이는 말하고 있지만 정말 난해한 책임엔 분명하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마다 나는 책장을 덮고 책표지의 그림을 한참씩 쳐다보곤 했다.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표지그림의 제목이다.
성위의 정사각형을 빙돌아가는 두 줄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나란히 걷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마주보며 걸어가고 있다.
몇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그 다음엔 또 몇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그런 그림.
그러니 그 두줄의 사람들은 제각각의 길에서 올라가기와 내려가기를 번복하고 있다.
그림속에 나를 집어넣고는 걸어보게 했지만 답답한 심정을 어쩌지 못하고
그안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멍하니 시선만 빼앗기고 말았다.
 
"우리는 우리를 잘 알고 있을까,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아야 해"<227쪽>
"사람이 누구라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했던 것과 앞으로 해야 할 것이지요"<229쪽>

물음과 대답이 한자리에 공존하면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 거울의 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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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하멜른
케이스 매퀸.애덤 매퀸 지음, 이지오 옮김, 오석균 감수 / 가치창조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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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앤딩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해피앤딩.
그러나 그 전형적인 해피앤딩으로 끝나기 위해서 겪어야 할 수많은 힘겨움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감정들로부터의 탈출....
그런 것들을 이겨냈기에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해피앤딩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주인공 역시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더 이상 눈물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마음은 평온해졌다고.
이어서 어떤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는데, 무척 생소하고 낯설어서
그것이 행복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한참이 걸렸다고.
이 책은 흥미진진하다. 빨려들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낄만큼.
그리고는 끝내 울컥하고 올라오는 그 무엇을 안겨주고 간다.

하멜른에 쥐떼가 나타났다.
그 쥐떼를 몰아내기 위해 정의와 자비를 상징하는 다색의 바지를 입고 나타난 도제 요하네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은 이미 하멜른에서 일어났던 하나의 사건이다.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쥐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권력에 의존하여 자행되어지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아직은 어린 도제 두명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하멜른이라는 도시에 이미 머물렀던 안셀름과 그 안셀름으로 인하여 도제가 된 요하네스.
어찌보면 안셀름과 요하네스는 동일체다.
우리의 내면속에 존재하는 善과 惡을 그렇게 나누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惡은 항상 善보다 한발 앞선다. 그리고는 뒤따라 오는 善을 방해한다.
그러면 그 善은 아파하고 힘들어하면서도 그 惡을 이기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분신인 그 惡과 하나가 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이리라.
요하네스와 안셀름의 가슴속에 자리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그들의 惡을 키운다.
자신을 부정했던 부유한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채 떠나야 했던 안셀름과
자신에게 한없이 나약한 모습만을 보여주며 모든 일에 대해 포기만을 일삼던 아버지를
사랑으로 다시 만나는 요하네스.
어찌보면 구도는 뻔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둘의 내면세계를 꾸밈없이 진실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피리부는 사나이의 이야기는 접어야 한다.
이 책은 이미 그 이야기에서 멀리 떨어져나와 또하나의 성을 만들고 있는 까닭이다.
옛날 옛날에 어쩌구 저쩌구로 시작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사실인듯도 싶은 배경들이 끝내는 나를 사로잡아버리고 말았다.
이 책에서는 6월 22일 요하네스가 하멜른에 도착하던 날부터
6월 26일 하멜른이 평화로운 마을로 되돌아오기까지의 긴박했던 5일간을 다루고 있다.
그 5일동안이라는 시간을 빌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마치 퍼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게 느껴진다.
아니 내가 찾아내기 전에 벌써 내 앞에 와 서있곤 한다.
요하네스가 아버지를 용서하는 대목에서 나는 하마터면 눈물이 날뻔했다.
"아버지,이제 충분히 오랫동안 당신께 화를 낸 것 같습니다.당신을 용서합니다."

이 책에서 등장하고 있는 두개의 세상이 참으로 신비롭다.
피리속 세상과 현실에 머무는 세상.
피리속 세상에서 우리는 과거를 만난다. 나를 아프게 하고 나를 힘겹게 했던 과거.
어쩌면 그 과거들이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지탱해주는 하나의 버팀목이기도 하겠지만
그 버팀목하나만으로 버텨내기에는 현실속 세상의 물결이 너무 센지도 모르겠다.
원리원칙대로만 살아지는 것이 正道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는 내가 속한 것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니 나를 제외한 타인의 세상도 인정해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실이 아닌 피리속 세상에서 겉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만나는 요하네스와 안셀름의 모습에서
어른을 향한 원망으로 가득찼던 그들의 상처를 보았다.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하여 너무나 아파하던 두 영혼의 서글픔을 보았다.
책을 읽는내내 너무나 가슴이 아파왔다. 그건 아니라고, 그래서는 안되는거라고.
이 책에서는 안셀름을 따라갔던 아이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다.
아이들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희망이요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자는 묻고 있다. 정의는 무엇이고 자비는 무엇인가를.
물론 그 판단의 몫은 책을 읽은 나에게 돌아오겠지만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싶진 않다.
동화였지만, 그것도 이미 알고 있었던 어린시절의 동화속 이야기였지만
내게는 가슴으로 읽혀진 책이 아닌가 싶다.
옮긴이의 말처럼 나도 한동안은 피리속세상에서 살아질 것 같다.
만들어 낸 이야기에 불과하겠지만 왠지 곁에 머무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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