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대한 명상 - 살아있음을 느끼는 35가지 힐링아트
박다위.강영희 지음 / 아니무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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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아마도 많은 사람이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음직한 주제. 그러나 두려운 주제. 간혹, 아니 요즘 들어서는 자주 마주치는 말. 그래서인지 옛날보다는 소리로 들려오는 느낌이 그다지 강하게 다가오지 못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말. 그런데 사람은 왜 자살을 생각하는 것일까? 그 답은 오히려 너무나도 간단하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다쳐서. 마음에 생채기가 나서 아프니까. 그렇게 피가 나도록 아픈데 그 아픔을 아무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그래서 가끔씩은 아프다고 말하는데 아무도 그 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던 까닭에. 사람이 가장 힘겨워 하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빤한 답이 나를 기다린다. 바로 무관심이다. 무관심처럼 무섭고 두려운 건 없다던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 반대로 사람이 가장 행복해 할 때가 바로 관심을 갖고 너를 바라보고 있다는 그 시선과 마음을 느낄 때다. 그만큼 서로를 위해 다가서는 것, 서로에게 관심을 표현하며 스킨십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애정표현이라는 것이 꼭 남녀간의 사랑에서만 필요한 것 아니다. 사랑의 종류가 여럿이듯이 그렇게 우리에게 필요한 애정표현은 많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흔한 유행가의 가사처럼 우리는 살고 있는가? 사랑에 늘 목말라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마음은 외면해버리고 만다.

이 책을 보면서 힐링아트라는 말을 떠올린다. 마음을 치료하는 일을 힐링 healing 이라고 한다는데 그 치유를 위한 예술이 바로 힐링아트란다. 그런데 그것이 묘하게도 미술과 연관되어져 있다. 그림을 통해 사람의 마음에 얼만큼의 생채기가 있는지를 알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생채기가 생겨나게 되는 원인이 나를 두렵게 만든다.  찰나에 의한 것들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뱉어내는 한마디 말이나 행동... 얼마전 TV다큐프로를 통해 놀라운 걸 보았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마음속에 생채기를 안고 살아왔다면 그 엄마의 아이에게 똑같은 아픔을 준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아주 잠깐의,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의해 생채기가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상처'라는 말을 두고서 굳이 '생채기'라는 말을 쓴 것은 크게 다치는 것보다 그만큼 작은 것들이 우리를 더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엄마에게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오랜 아픔이 '아이구, 우리 딸~' 하며  팔을 벌려 안아주던 친정엄마의 애정표현으로 인해 너무나도 쉽게 치유되었던 것이다! 그런것만 보아도 우리에게는 관심을 보이는 것과 그것에 따른 애정표현이 얼만큼의 크기로 다가오는지를 알 수 있다.

29살 청춘의 자살충동.. 그러나 그다지 크게 다가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는 모든 것의 과도기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제 삶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나이.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느껴지는 나이가 아마도 그쯤이 아닐까 싶은데.... 그런 까닭에 힘들다. 그런 까닭에 주변의 관심과 사랑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이쯤되면 주변을 떠돌던 작은 사랑마져도 거두어간다. 홀로 설 때가 되었다는 이유로.  아마도 그래서 방황의 시기가 찾아오는 건 아닐까? 사실 책속의 그림을 통해서는 그다지 특별한 느낌을 전해받지 못했다. 전문가라면 그림속에서 무언가를 볼 수 있었겠지만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겨움을 그림속에 담아 이겨내려고 하는 의지만큼은 눈치챌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살이라는 괴물과 맞서 싸우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해서 이겨냈던 시간들은 뒤돌아볼 때마다 뿌듯할 것이다. 그림속에서 무언가를 두려워하던 자기 자신을 하나둘 죽여갈 때마다 실제의 자신안에서 살아움직이던 그 무엇.. 그것이 바로 젊음은 아니었을까?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았다는 말이 울림을 담고 있다. '죽고 싶다'라는 현재가 '죽고 싶었다'라는 과거가 된 당신은 이미 죽었답니다...라는 책띠의 말을 다시한번 바라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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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더 - 샌프란시스코에서 밴쿠버 섬까지 장인 목수들이 지은 집을 찾아다니다 로이드 칸의 셸터 시리즈 3
로이드 칸 지음, 이한중 옮김 / 시골생활(도솔)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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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손에 받아든 순간을 솔직하게 말한다면 설레임이었다. 책표지에 나와 있는 사진속의 이미지만으로도 나의 기대지수는 100이었다. 설레임에 슬쩍 책을 훑어보았다. 멈추고 싶은 순간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그냥 책을 덮어버렸다. 아끼면서 봐야지, 하나 하나 뚫어질 것처럼 내 눈에 마음에 각인시켜야지 했다. 누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어디에 집을 지었는지를 아는 것보다 일단 하나의 자연으로써 살아가고 있을 그들의 삶이 내게는 유토피아일테니까. 사람이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진리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진리를 모른 척 외면하면서 산다. 그러니 저들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파랑과 초록의 땅!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책속에는 정말로 온통 파랑과 초록뿐이었다. 물과 나무가 있는 곳에 집을 짓는 빌더가 하는 말은 간단했다. 가장 좋은 집은 우리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나누지 않는 집이라고.... 그렇게 자연의 일부가 된 집에서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아무런 것도 첨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통나무를 도끼로 다듬어 만든 의자, 침대에 누워 머리맡으로 혹은 지붕을 뚫고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별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자연스럼움'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나무로 만든 빗물 홈통, 때로 지붕을 올린 오두막. 나무둥치가 그대로 기둥이 되고 창틀이 되는 집. 각진 모서리가 없는 집. 거대한 나무그루터기를 떡하니 받쳐놓은 문간. 그냥 생긴 그대로를 옮겨다가 탁자나 의자로 이용하기. 곡선으로 굽은 통나무를 그대로 이용한 계단이나 벤치. 휘어진 통나무 세줄기를 서로 맞붙인 다음 그 가운데 줄을 매달아 그네를 만든 건 또 어떤가! 독특한 모양을 한 집도 있다. 여성의 신체구조를 닮은 집이 있다면? 설사 정말 그럴것이라고 믿는다해도 도대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기둥 하나까지 모두가 여성의 몸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외설적인 상상을 하지는 말라! 사진을 보는 순간 집을 통해 에너지의 흐름, 생명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을 순간적으로 이해하게 될테니... 저마다 하나씩의 주제를 안고 있는 집이었다는 말이다.

집을 보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여기에 소개된 빌더들은 그냥 집을 지은게 아니었다. 집을 지어달라고 의뢰한 사람에 맞춰서, 그리고 집을 지어야 할 곳의 상황에 맞춰서 여러 각도로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멋지다고 찬사를 보냈던 것은 사람따로 집따로 생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을 아우를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생각했다는 거였다. 집을 만드는 재료 역시 자연에서 구했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사용했고 책의 서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집짓기, 먹을거리, 무엇이든 되도록 자기 힘으로 하기, 자연에 대한 존경, 해변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구해 쓰는 것) 그 과정을 즐겼다.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자연이 준 재료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 아닌가! 문득 우리의 한옥을 떠올리게 된다. 못질을 하지 않는 방법도 그렇거니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자연속에 하나로 어울어지게 만든 것이 우리의 전통가옥이니 내심 자긍심을 갖게 된다.

책을 보면서 문득 생각났던 말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그다지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집 안으로 들여온다. 더 많은 것을 들여놓고 싶어 더 큰 평수로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실제로 생활하는데 쓰여지는 것들은 많지 않다. 없어도 될 물건들을 자신의 욕심을 위해 채우고 채우고 또 채우며 살고 있는것이다. 그 욕심을 버릴 때 우리는 자연에게 한발짝 더 다가가는 것이 아닌지... 세상이 너무 직선적이기 때문에 둥그스름한 걸 만들고 싶었다는 빌더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기분이 가라앉지 않게 해 주는 집'에서 나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 나무에 커다란 열매처럼 매달려 있는 둥근나무집에는 밖이 훤히 보이는 커다란 창문도 있었다. 어찌보면 새집처럼 나무에 깃든 집이다. 그런 집에서 살면 날마다 새처럼 날아다니는 꿈을 꾸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엄지공주라도 되는 행복한 착각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다 한번씩 길을 떠날 때가 잇다. 이렇다하게 정해놓은 목적지없이 떠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정말 그럴까? 의심도 하면서.. 모르는 길을 달리면서 언뜻언뜻 스쳐지나는 집을 볼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 때가 있는데 대부분은 자연과 하나된 듯한 집이었음을 알게 된다. 통나무집, 흙집, 나무나 돌만을 이용해서 만든 집, 혹은 그 집 주변이 그냥 흙길로만 되어 있어도 그것은 감탄사를 뱉어내게 한다. 이제는 흔해진 휴양림이나 팬션을 가보라. 밀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하기 위해 지금은 빌라형태의 집이 많아지는 추세지만 처음에는 통나무를 이용하거나 흙을 이용한 '자연스러운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자연이며 '자연스러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삶의 형태를 살펴보면 아찔해진다. 있는 자연도 파괴해버리고 인공적인 자연을 내세우면서 친환경적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가관이다. 

여하간 끝내주는 시간이었다.  영화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집.. 그런 집이 실재한다는 것이 내게는 하나의 느낌표였고 감탄사였다. 이 책에서 소개한 많은 집을 보면서 아이쿠! 저런데서 어떻게 살아? 그저 잠시 머물다 오기에 좋은 집이겠지... 하는 마음이 앞선다면 책속에서 찾아낸 문구를 들려주고 싶다.
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회를 놓치는 것은 기회란 것이 작업복 차림이며 일처럼 보이지 때문이다. - 토머스 에디슨"
② 가뿐하게 살아야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③ 벗어날지니 벗어날지니 끝도없는 물욕에서 벗어날지니...
나는 생각한다. 물욕을 버린다면 우리의 삶은 가뿐해질 것이라고. 그리고 저렇게 멋진 집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올 것이라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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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문우답 - 인생보다 일상이 버거운 당신에게
백성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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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생보다 일상이 버거운 당신에게- 라는 소제목이 가슴 한켠을 싸아하게 한다. 멀리 내다볼 것도 없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나를 힘겹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않고 살아가는 사람 몇이나 될까?  내 것인데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게 바로 마음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중에서 아마도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늘 '마음공부'라는 말에 유혹을 당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하게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무슨 구도자도 아니고 이렇다할 철학책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상심의 평안을 바란다는 게 어쩌면 욕심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늘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말을 이 책에서 또 만나게 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나중에 알았다. 그 말이 불교 경전의 한 구절이라는 것을. 

나는 이렇다하게 내세울 종교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종교가 무엇인지 그 의미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따지고보면 형식만 다를 뿐 같은 뜻을 가진 것이 우리의 종교인데 잡아먹을 듯이 서로 으르렁대는 걸 이해할 수 없어 그랬던 것 같다. 서로가 내세우는 계율조차도 가만히 살펴보면 별반 다르지 않은데 그들은 행함보다 먼저 보여주기에만 급급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욕심이다. 모두가 제 욕심을 버리지 못하니 그렇게 힘겹다. 한발짝만 뒤로 물러서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인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어느샌가 내용은 없어져버리고 형식에만 치우쳐 진정한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게 우리네 종교의 현실인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part two '새롭게 깨어나기' 의 '되돌아보고 내려놓다' 편을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하게 된다.  '사리舍利를 만드는 사리事理' 부분과  '형식보다 핵심을 보다' 부분은 바로 그런 걸 콕 집어주고 있으니 너니 나니 할 것없이 다시한번 되돌아볼 일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 오른손도 모르게' 라는 말을 통해서 배운 것도 있다. 단순하게 받아들였던 그 한 구절의 의미가 다시금 내 안을 울린다. 남이 모르게 하라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는 그 뜻을 나는 이제사 알게 된다. 또한 사람의 마음에는 단 하나의 문이 있는데 문을 열수 있는 문고리는 안에 있으니 나 스스로 문을 열지 않으면 영원히 열리지 않는다는 것도 많이 들어왔던 말이긴 하다. 그러나 그 문고리를 잡고서 항상 망설였던 것도 나였다. 그러니 더이상 말해 무엇할까?  무심코 뱉어내던 '원래 그래!'라는 말, 그 말을 하면서 얼마나 나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원래부터’는 원래 없다, 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다시한번 다잡아보게 된다. 우리가 너무 쉽게 말하고 있는 '무소유' 라는 말도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현문우답'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무심코 읽게 되었던 신문 칼럼 하나.  칼럼을 읽으면서 마음 한쪽이 따스해졌던 기억을 떠올린다. 신문을 펼쳐 그 칼럼을 읽을 때마다 두근거리던 내 마음을 기억한다. 참 좋다! 참 좋다! 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었는지.... 스크랩을 하면서 종교기자라는 것도 있구나 했었다. 이렇게 종교를 대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마음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이렇게 편하게 알려주는 글도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 좋았던 글들이 묶여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소식을 듣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었다. 지금도 이 칼럼은 여전히 올라오고 있다.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을 말하면서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기자의 마음이 부럽기까지 하다. 불교다 카톨릭이다 기독교다 하는 식의 경계선은 기자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낮고 낮은 문지방에 불과할 뿐 아무런 걸림돌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름답다. 어울릴 줄 알고, 아우를 줄 아는 기자의 마음과 같이 우리의 종교도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칼럼을 읽으면서 나도 이것만큼은 기필코 실천해보리라 다짐했었던 글을 책속에서 다시 만난다. '사람을 살리는 꾸중의 법칙' 이다. 그 글을 읽으면서 백퍼센트 공감하는 마음이 들어 부끄러웠었다.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한번씩 읽어봐야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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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1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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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옥이라는 이름을 접하게 된 것은 고전읽기에 들어가면서 만났던 <최생원전>이나 <심생전>,<이홍전>이라는 작품때문이었다.  귀신을 바라보는 최생원을 통해 자신뜻을 밝혔다는 <최생원전>이나  요즘의 사랑에 대한 생각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해 주었던 <심생전>, 사기꾼의 이야기를 통해 변화하는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었던 <이홍전>은 모두가 눈 앞의 현실을 직시한 작품이었다. 시대가 그렇게 변화의 물결이 물려왔던 때이기도 했다. 안타까운 건 그의 글들은 친구인 김려의 문집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책이 그 김려와 이옥의 우정을 보여주면서 옥의 글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 배경을 말해주고 있다. '이옥'이라는 이름을 부르게 되면 뒤에 따라오는 '문체반정'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문체반정이라는 것이 정조의 한사람만의 뜻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 최대의 실수(?)를 문체반정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이옥과 더불어 <열하일기>를 썼던 박지원 역시 문체반정의 흐름속에서 뜻을 꺾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옥만큼은 미련하리만치 제 주장을 펼쳐 끝까지 정조의 미움을 받아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고난을 이겨내려 했던 이옥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서 어렴풋하게나마 볼 수 있는 듯 하다.

책속에 등장하는 이옥의 글들은 한번 읽으면 또 한번을 읽게 된다. 친구 김려의 말처럼 어쩌면 그리도 세세하게 잘 표현하고 있는지 마치 내가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친구 이옥과 담담하게 대화를 나누듯이 펼쳐가는 필체가 너무 좋았다.  이옥의 아들이 찾아와 아버지의 글을 던지듯이 주고 가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어지지만 글의 형식은 회고문같다. 자신의 지난날을 더듬으며 그 때 그렇게 친구를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김려의 변명과 회한이 가득하다. 글로써 친구를 만나고 글로써 친구를 잃으니 어찌 서글프지 않을까?  하지만 다시 글로써 친구를 찾으니 그것은 기쁨이다. 책 속에서 마주치는 이옥의 글과 김려의 글은 그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양반네들이 외면하고자 애썼던 백성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사실은 그것을 외면하려 문체반정이 있었던 것이다. 임금은 임금대로 벼슬아치는 벼슬아치대로 문체반정이 일어나야만 했던 이유를 품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속속들이 밝혀내는 글들이 좋을리가 없었을 건 뻔한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옥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글이 조선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얼만큼의 도움이 되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글로써 보여주고 있는 백성들의 삶에 대해서는 글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호흡이 부드러웠다. 막힘없는 그리고 걸림돌없는 멋진 흡인력을 가진 작품이 아닌가 싶다. 친구들과 함께 북한산 유람길을 떠나며 만들었다는 이옥의 글쓰기 규칙이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남들이 짓는 글이나 지어서는 안 되고 글 속의 사람이 되어야 하네. 좋은 경치를 보며 글을 짓는 게 아니라 글 속에 좋은 경치를 만들어 넣어야 하네...(-191쪽)  그 대목을 읽으며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라는 제목을 어렴풋하게 이해하게 된다. 멋진 친구의 친구는 역시 멋지다. 그리고 멋진 그들이 가는 곳 또한 멋지고, 멋진 그들이 만들어내는 글들이 어찌 아니 멋지겠는가 말이다. 김려와 이옥의 우정이 가슴속 깊이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책의 뒷부분에 해설이 있다. 이옥과 김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글로 보여진다. 그들이 왜 그토록이나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했는지, 그들의 우정이 왜 그토록이나 값진 것인지를 뒷받침해주는 시대적 배경을 말해준다는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뜻을 꺾지 않음으로써 겪어야 했을 그들의 마음고생을 보게 되었지만 값진 것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 그걸로 위안삼아야 할 것 같다. 이옥의 아들 이우태가 김려에게 들려주었던 글은 아버지 못지 않았다. 그만큼 백성들의 삶은 절절했다는 말일테다. 속속들이 들여아보아야만 보이는 백성들의 삶을 들춰낸 이우태의 글을 통해 관리의 올바른 자세를 한번 더 짚고 넘어간 부분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끝내는 친구와의 우정을 더 돈돈하게 만든 김려의 마음이 새삼스럽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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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할까 - 현대 성생활의 기원과 위험한 진실
크리스토퍼 라이언 & 카실다 제타 지음, 김해식 옮김 / 행복포럼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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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여자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수다의 공통분모가 되는 소재가 있다.  시어머니 또는 시집에 관한 이야기, TV드라마나 연예인 이야기,  성에 관한 이야기등이 그런 것들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서 그런게 아닐까 싶은데 그 이면에는 어느정도의 과시욕이나 위안이 목적인 경우도 더러는 있다. 그런데 내가 마지막으로 예를 들었던 성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두가지로 나뉜다. 아무렇지도 않게 성을 이야기하거나, 표나게 내숭을 떨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이다. 나 어릴적에는 성에 관한 교육을 지금처럼 받지 못했다. 금기시되어 있는 이야기처럼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그 말들이 지금은 어디를 가도 마주친다. 그만큼 개방적이라는 말인지 아니면 성문화가 그렇게 변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가끔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았다는 아들녀석의 말을 듣다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때 '아우성'이라는 강의가 크게 논쟁거리로 떠올랐었다. 구성애라는 강사의 말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던 나는 지금도 성에 관한 한은 덮어놓고 숨길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언제였는지 언론지상에서 섹스리스 부부가 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성생활에 냉담해지는 부부가 늘고 있다는 말인데 그 원인이 각박한 현실때문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너무나도 많은 스트레스와 심리적인 위축감 등, 바쁜 생활로 인해 부부가 오붓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도 없을뿐만 아니라 감정마져도 찌든다는 말이다. 그런가하면 성생활을 등한시한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는 부부들도 있다. 그만큼 성이라는 것이 결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모양이다. 성격차이로 이혼하는 부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성적인 문제가 더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말이 들리기도 한다. 성...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길래 그토록이나 많은 상처와 위안을 주기도 하는 것일까? 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하는 것일까? 듣기좋은 말로 서로 사랑하는데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그리고 또 남자와 여자는 왜 성에 대한 관점이나 생리가 다른 것일까?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도 궁금했던 것들을 이 책을 통해 알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이야기들에 대해 거침없이 반격을 가하고 있다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반격에 대한 근거를 충분하게 제시해주고 있다는 것도. 그런데 너무 많은 걸 늘어놓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알고 싶었던 것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지 않고 그 결론에 도달하는 길을 보여주고 있는 까닭도 있겠지만, 너무 먼 과거로부터 달려와야 했기에 솔직히 힘들었다. 아주 오래된 고대인들의 문화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너무나도 흡사한 유인원들의 생활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많은 예를 제시해주고 있다. 수렵이나 채집생활을 하며 이동했던 시절과 집단생활을 해야 했던 시절, 그리고 인간이 농사를 짓게 되면서부터 달라지는 생활패턴에 따라 여자와 남자, 암컷과 수컷의 반응 또한 달라진다는 것이다. 필요에 의해서 달라지는 많은 것들... 머리는 좀 아프지만 책을 읽으면서 놀라움이 생겨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려운 이야기지만 어느정도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결혼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성문제의 크기는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똑같이 성에 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만들어낸다. 끝도없이 제기되는 정조관념, 일부일처제나 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에 관한 것들, 요즘 부쩍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중년 남성들의 젊은 여성을 향한 애정관, 어째서 동성애는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여성과 남성이 느끼는 성적 오르가슴에 대한 것들을 장장 5장에 걸쳐 길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명이라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는 그리 좋은 것만도 아니라는 것, 우리의 모든 순간들은 이미 만들어진 어떤 틀에 넣어져 짜맞추어진 듯이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게해서 우리는 타성에 젖은채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우습지도 않게 머리속을 꽉 채워버리고 말았다.  그럼으로해서 편집되어지기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책을 써내고 있는거라고...

조금 장황스럽기는 했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어진 것인지 이해를 하는 많은 도움이 된 듯 하다. 자신의 본성을 문명이라는 거대한 괴물에게 밟힌 채 제대로 드러내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 혹은 세상을 지배하는 몇몇의 두뇌들에 의해 만들어진 틀에 끼워져 많은 것이 희생되어지고 있다는 것. 다시 떠오르는 그 한마디를 되새긴다. 진화는 인간의 편리성에 의해 달라지는 변화과정일 뿐이라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문명의 형태는 진화일까?  사람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퇴화되는 것일까?  책을 덮으면서 나는 愚問을 앞에 둔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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