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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더 - 샌프란시스코에서 밴쿠버 섬까지 장인 목수들이 지은 집을 찾아다니다 ㅣ 로이드 칸의 셸터 시리즈 3
로이드 칸 지음, 이한중 옮김 / 시골생활(도솔)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손에 받아든 순간을 솔직하게 말한다면 설레임이었다. 책표지에 나와 있는 사진속의 이미지만으로도 나의 기대지수는 100이었다. 설레임에 슬쩍 책을 훑어보았다. 멈추고 싶은 순간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그냥 책을 덮어버렸다. 아끼면서 봐야지, 하나 하나 뚫어질 것처럼 내 눈에 마음에 각인시켜야지 했다. 누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어디에 집을 지었는지를 아는 것보다 일단 하나의 자연으로써 살아가고 있을 그들의 삶이 내게는 유토피아일테니까. 사람이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진리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진리를 모른 척 외면하면서 산다. 그러니 저들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파랑과 초록의 땅!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책속에는 정말로 온통 파랑과 초록뿐이었다. 물과 나무가 있는 곳에 집을 짓는 빌더가 하는 말은 간단했다. 가장 좋은 집은 우리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나누지 않는 집이라고.... 그렇게 자연의 일부가 된 집에서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아무런 것도 첨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통나무를 도끼로 다듬어 만든 의자, 침대에 누워 머리맡으로 혹은 지붕을 뚫고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별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자연스럼움'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나무로 만든 빗물 홈통, 때로 지붕을 올린 오두막. 나무둥치가 그대로 기둥이 되고 창틀이 되는 집. 각진 모서리가 없는 집. 거대한 나무그루터기를 떡하니 받쳐놓은 문간. 그냥 생긴 그대로를 옮겨다가 탁자나 의자로 이용하기. 곡선으로 굽은 통나무를 그대로 이용한 계단이나 벤치. 휘어진 통나무 세줄기를 서로 맞붙인 다음 그 가운데 줄을 매달아 그네를 만든 건 또 어떤가! 독특한 모양을 한 집도 있다. 여성의 신체구조를 닮은 집이 있다면? 설사 정말 그럴것이라고 믿는다해도 도대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기둥 하나까지 모두가 여성의 몸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외설적인 상상을 하지는 말라! 사진을 보는 순간 집을 통해 에너지의 흐름, 생명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을 순간적으로 이해하게 될테니... 저마다 하나씩의 주제를 안고 있는 집이었다는 말이다.
집을 보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여기에 소개된 빌더들은 그냥 집을 지은게 아니었다. 집을 지어달라고 의뢰한 사람에 맞춰서, 그리고 집을 지어야 할 곳의 상황에 맞춰서 여러 각도로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멋지다고 찬사를 보냈던 것은 사람따로 집따로 생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을 아우를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생각했다는 거였다. 집을 만드는 재료 역시 자연에서 구했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사용했고 책의 서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집짓기, 먹을거리, 무엇이든 되도록 자기 힘으로 하기, 자연에 대한 존경, 해변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구해 쓰는 것) 그 과정을 즐겼다.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자연이 준 재료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 아닌가! 문득 우리의 한옥을 떠올리게 된다. 못질을 하지 않는 방법도 그렇거니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자연속에 하나로 어울어지게 만든 것이 우리의 전통가옥이니 내심 자긍심을 갖게 된다.
책을 보면서 문득 생각났던 말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그다지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집 안으로 들여온다. 더 많은 것을 들여놓고 싶어 더 큰 평수로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실제로 생활하는데 쓰여지는 것들은 많지 않다. 없어도 될 물건들을 자신의 욕심을 위해 채우고 채우고 또 채우며 살고 있는것이다. 그 욕심을 버릴 때 우리는 자연에게 한발짝 더 다가가는 것이 아닌지... 세상이 너무 직선적이기 때문에 둥그스름한 걸 만들고 싶었다는 빌더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기분이 가라앉지 않게 해 주는 집'에서 나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 나무에 커다란 열매처럼 매달려 있는 둥근나무집에는 밖이 훤히 보이는 커다란 창문도 있었다. 어찌보면 새집처럼 나무에 깃든 집이다. 그런 집에서 살면 날마다 새처럼 날아다니는 꿈을 꾸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엄지공주라도 되는 행복한 착각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다 한번씩 길을 떠날 때가 잇다. 이렇다하게 정해놓은 목적지없이 떠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정말 그럴까? 의심도 하면서.. 모르는 길을 달리면서 언뜻언뜻 스쳐지나는 집을 볼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 때가 있는데 대부분은 자연과 하나된 듯한 집이었음을 알게 된다. 통나무집, 흙집, 나무나 돌만을 이용해서 만든 집, 혹은 그 집 주변이 그냥 흙길로만 되어 있어도 그것은 감탄사를 뱉어내게 한다. 이제는 흔해진 휴양림이나 팬션을 가보라. 밀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하기 위해 지금은 빌라형태의 집이 많아지는 추세지만 처음에는 통나무를 이용하거나 흙을 이용한 '자연스러운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자연이며 '자연스러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삶의 형태를 살펴보면 아찔해진다. 있는 자연도 파괴해버리고 인공적인 자연을 내세우면서 친환경적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가관이다.
여하간 끝내주는 시간이었다. 영화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집.. 그런 집이 실재한다는 것이 내게는 하나의 느낌표였고 감탄사였다. 이 책에서 소개한 많은 집을 보면서 아이쿠! 저런데서 어떻게 살아? 그저 잠시 머물다 오기에 좋은 집이겠지... 하는 마음이 앞선다면 책속에서 찾아낸 문구를 들려주고 싶다.
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회를 놓치는 것은 기회란 것이 작업복 차림이며 일처럼 보이지 때문이다. - 토머스 에디슨"
② 가뿐하게 살아야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③ 벗어날지니 벗어날지니 끝도없는 물욕에서 벗어날지니...
나는 생각한다. 물욕을 버린다면 우리의 삶은 가뿐해질 것이라고. 그리고 저렇게 멋진 집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올 것이라고...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