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대한 명상 - 살아있음을 느끼는 35가지 힐링아트
박다위.강영희 지음 / 아니무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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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아마도 많은 사람이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음직한 주제. 그러나 두려운 주제. 간혹, 아니 요즘 들어서는 자주 마주치는 말. 그래서인지 옛날보다는 소리로 들려오는 느낌이 그다지 강하게 다가오지 못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말. 그런데 사람은 왜 자살을 생각하는 것일까? 그 답은 오히려 너무나도 간단하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다쳐서. 마음에 생채기가 나서 아프니까. 그렇게 피가 나도록 아픈데 그 아픔을 아무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그래서 가끔씩은 아프다고 말하는데 아무도 그 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던 까닭에. 사람이 가장 힘겨워 하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빤한 답이 나를 기다린다. 바로 무관심이다. 무관심처럼 무섭고 두려운 건 없다던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 반대로 사람이 가장 행복해 할 때가 바로 관심을 갖고 너를 바라보고 있다는 그 시선과 마음을 느낄 때다. 그만큼 서로를 위해 다가서는 것, 서로에게 관심을 표현하며 스킨십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애정표현이라는 것이 꼭 남녀간의 사랑에서만 필요한 것 아니다. 사랑의 종류가 여럿이듯이 그렇게 우리에게 필요한 애정표현은 많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흔한 유행가의 가사처럼 우리는 살고 있는가? 사랑에 늘 목말라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마음은 외면해버리고 만다.

이 책을 보면서 힐링아트라는 말을 떠올린다. 마음을 치료하는 일을 힐링 healing 이라고 한다는데 그 치유를 위한 예술이 바로 힐링아트란다. 그런데 그것이 묘하게도 미술과 연관되어져 있다. 그림을 통해 사람의 마음에 얼만큼의 생채기가 있는지를 알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생채기가 생겨나게 되는 원인이 나를 두렵게 만든다.  찰나에 의한 것들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뱉어내는 한마디 말이나 행동... 얼마전 TV다큐프로를 통해 놀라운 걸 보았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마음속에 생채기를 안고 살아왔다면 그 엄마의 아이에게 똑같은 아픔을 준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아주 잠깐의,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의해 생채기가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상처'라는 말을 두고서 굳이 '생채기'라는 말을 쓴 것은 크게 다치는 것보다 그만큼 작은 것들이 우리를 더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엄마에게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오랜 아픔이 '아이구, 우리 딸~' 하며  팔을 벌려 안아주던 친정엄마의 애정표현으로 인해 너무나도 쉽게 치유되었던 것이다! 그런것만 보아도 우리에게는 관심을 보이는 것과 그것에 따른 애정표현이 얼만큼의 크기로 다가오는지를 알 수 있다.

29살 청춘의 자살충동.. 그러나 그다지 크게 다가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는 모든 것의 과도기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제 삶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나이.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느껴지는 나이가 아마도 그쯤이 아닐까 싶은데.... 그런 까닭에 힘들다. 그런 까닭에 주변의 관심과 사랑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이쯤되면 주변을 떠돌던 작은 사랑마져도 거두어간다. 홀로 설 때가 되었다는 이유로.  아마도 그래서 방황의 시기가 찾아오는 건 아닐까? 사실 책속의 그림을 통해서는 그다지 특별한 느낌을 전해받지 못했다. 전문가라면 그림속에서 무언가를 볼 수 있었겠지만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겨움을 그림속에 담아 이겨내려고 하는 의지만큼은 눈치챌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살이라는 괴물과 맞서 싸우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해서 이겨냈던 시간들은 뒤돌아볼 때마다 뿌듯할 것이다. 그림속에서 무언가를 두려워하던 자기 자신을 하나둘 죽여갈 때마다 실제의 자신안에서 살아움직이던 그 무엇.. 그것이 바로 젊음은 아니었을까?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았다는 말이 울림을 담고 있다. '죽고 싶다'라는 현재가 '죽고 싶었다'라는 과거가 된 당신은 이미 죽었답니다...라는 책띠의 말을 다시한번 바라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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