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박물관 산책 -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와 함께하는
이희수 지음 / 푸른숲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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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했다는 신화속의 미다스왕이 실제 인물이었다고? <벌거벗은 임금님>과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모델이었다고? 그런데 나는 왜 그저 신화속의 인물로만 생각했었던 거지? 여자들이 요란한 옷을 입고 현란하게 흔들어대는 belly dance 가 단순히 다이어트용이 아니라 하렘의 여인들이 술탄을 유혹하기 위해 추었던 춤이었다고? 그런 역사가 있는 춤일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세계최초의 카페가 터키에서 시작되었단다. 바로 이스탄불이 카페 기원의 도시였다는 말이다. 수도사들이 밤새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마시던 음료가 커피였는데, 모카 원두를 끓여 귀족과 지식인에게 파는 일반 카페가 1534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유럽보다도 훨씬 빨랐다는 말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이 충돌할 때, 지금의 레바논 지중해 해변에 페니키아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그런데 거대 제국들이 사용했다는 수많은 문자들을 제쳐두고 이 작은 나라의 문자가 오늘날 알파벳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일부 권력층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제국들의 문자와는 달리 먹고 살기 위해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문자체계를 만든 까닭이었다.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니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고자 했다는 세종대왕과 우리의 한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이슬람문화권인 터키의 여기저기에서 불교문화의 상징인 연꽃문양 장식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거였다. 진흙탕 속에서도 맑게 피어나는 꽃송이하며, 다른 꽃과는 달리 한 줄기에서 꽃이 지면 또 다른 줄기에서 꽃이 피어나는 까닭에 '영원'의 상징성을 갖는다는 꽃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무리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결국 내세를 상징한다던 연꽃문양의 시작이 불교하면 생각나는 인도도, 중국도 아닌 이집트였다는 것이 놀라웠다. 실제로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을 살펴보면 벽면이 온통 연꽃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하니 아무래도 죽기전에 가보고 싶은 곳 목록에 이집트를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아라베스크... 낯선 말은 아니다. 꽃이나 나무, 덩굴과 같은 식물형상에 기하학적인 아랍어 글꼴의 장식성을 더해 완성한 문양을 아라베스크라고 한다. 그런데 이 단순해보였던 말속에 참으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물론 같은 것을 두고도 서로의 문화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긴 하지만 그 의미를 각자의 문화에 맞게 해석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재미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종교적인 금기때문에 사람이나 동물을 형상화한 문양을 쓰지 않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서로 다른 의미에 대해 따져 물을 필요도 없다. 화려한 색의 단순한 문양이 반복성과 대칭 구도를 보여주고 있는 아라베스크 문양... 어디서부터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무늬의 반복과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내는 무한의 세계속에 신의 위대함을 담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 그런데 그 아라베스크 문양이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널리 쓰였단다. 궁궐이나 사찰의 화려한 단청문양으로, 청자나 백자같은 도자기에 그려지기도 했고, 전통 가옥의 문살에 쓰이기도 했던 '당초문'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그 원형이 바로 아라베스크라는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영원불변해야 하는 신의 의지를 표현했다는 아라베스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는 터키. 터키의 역사를 짚어보면 터키인의 조상이 훈족과 투르크족으로 우리의 역사책속에서 만나는 흉노와 돌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와는 이웃으로 지냈던 사이였다는 말인데 결국 중국에 밀려 아나톨리아 반도로 이주했다. 우리나라처럼 반도의 형상을 하고 있어 흑해, 에게해, 지중해에 둘러싸여 있으니 살기에 아주 적합한 땅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리적 여건으로 볼 때 여러 문화의 충돌을 짐작할 만 하지 않겠는가. 터키의 정식 국명은 터키 공화국이다. 공화국이란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여러 민족과 문화가 융합된 나라일 것이다. 앙카라,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플, 비잔틴제국, 파묵칼레, 카파도키아... 터키, 하면 떠오르는 말이 참 많다. 꼭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나라, 터키. 터키를 생각하면 공연스레 흐뭇해지는 감정이 인다. 첫째는 동서양의 문화가 함께 공존한다는 말 때문이고, 둘째는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여 서로의 종교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는 문화적인 특성때문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의미들이 공존하는 그곳, 그런 곳이라면 아무런 편견없이 둘러볼 만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터키는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다고 한다. 책의 여정을 따라 여러 박물관을 들러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어쩌면 나라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만 같은 터키. 책의 여정을 따라 가본 곳이 무려 17곳이나 된다. 성 소피아 박물관, 톱카프 궁전 박물관, 이스탄불 거리 박물관, 안탈리아 고고학 박물관, 괴레메 야외 박물관, 히타이트 현장 박물관, 이슬람 예술 박물관 등등...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궁전 박물관, 거리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현장 박물관, 야외 박물관처럼 이름이 저마다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얼마전 네팔을 강타한 지진으로 오랜 세월을 버텨낸 인류문화의 유산이 한순간에 붕괴된 모습을 보면서 무척이나 안타까웠었는데, 터키 역시 가는 곳마다 인류문명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으니 터키인들의 자긍심은 정말 대단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모든 문명은 터키에 빚을 지고 있다!.. 책표지에 써있는 말이다. 그만큼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유산이 가득하기도 할 것이다. 해도해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이야기들... 섞임과 공존이 함께 머무는 곳, 터키. 제대로 책을 낸다면 아마 시리즈물로 나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책속에 실린 사진을 통해 간접적인 답사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황홀한 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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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그림자놀이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소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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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때 문체반정이 있었다. 새로운 문체를 패관잡문이라 하여 배척하고 그 옛날의 글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쳤던 사건이다. 그런데 그 문체반정의 주된 인물이 왕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 일로 인하여 규장각이 생겨나고 그곳에서 옛 경전을 논하게 했다. 가만히 그 속을 들여다보면 왕권에 도전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경고가 들어있었다. 사실 당시의 패관소설이라는 것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하잘 것 없는 내용처럼 보여도 그 속에 담겨진 의미들은 꽤나 묵직했다. 현재의 잘못된 것을 타파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고 외치기도 했고, 뜻은 있으나 짜여진 틀에 맞춰지지 않아 그 뜻을 펼져볼 수 없었던 이들의 욕망이 그 속에서 꿈틀대기도 했다. 죽어지내야 했던 여인들의 속울음을 토해내기도 했고, 신분낮은 사람들의 신분상승 욕구가 은근슬쩍 그 패관잡문을 통해 세상으로 풀어져 나갔다. 그러니 왕으로써는 당연히 금지시킬 수 밖에... 어쩌면 세상의 변화를 이미 감지한 왕의 두려움이 그렇게 표현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세상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소설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세상속으로 나오지 못한 이야기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낯익은 이야기들이 많다. 구전소설, 혹은 전래동화, 그것도 아니면 민담이나 설화라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책을 읽으면서 이건 뭐지? 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튀어나와 내 앞에 줄을 서는 모양새가 왠지 껄끄럽기도 했다. 그 절절한 사랑을 만들어냈던 도미부인설화도 보이고, 북유럽신화와 살짝 섞어놓은 듯한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가 보인다. 어렸을 적 한번쯤은 갖고 싶어했던 도깨비감투 이야기도 보이고, 은근슬쩍 지나쳐가는 수로부인의 <헌화가>도 보인다. 무엇을 말하고자 함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어찌보면 주인공 조인서라는 날줄과 여러 설화들이 씨줄처럼 얽혀있는 것처럼도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주인공 조인서는 조인서대로,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따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이다. 많은 이야기와 같이 주인공 조인서가 쫓아가는 사건 역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져 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결론이 없다.

 

꽃그림자놀이... 이 제목이 주는 느낌은 참으로 묘하다. 어렸을 적에 실뜨기만큼이나 재미있었던 손가락 그림자놀이가 있었다. 불빛에 비춰진 손가락의 그림자가 여러가지 모습으로 벽에서 다시 태어나 이야기를 만들곤 했었다. 다시 묻게 된다.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그러다가 문득 짧은 생각이 스친다.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글로 태어날 수도 있다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혹은 말로 할 수 없어서 글로 다시 태어나야만 했던 그 절절함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 시대 소설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는 책표지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정조에게 변해가는 세상을 말하고 싶어했던 그들의 소리없는 외침처럼 우리가 드러내지 못한 이 시대의 수많은 고통과 아픔들이 소설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아직은 미약하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지 못하고 그저 시대의 흐름에만 발맞춘다면 주인공 조인서와 이야기들이 서로 얽히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테니... 왠지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아이비생각

 

소설은 일종의 그림자놀이예요. 현실이 실체를 드러낼 수 없으니, 대시 그림자로 보여주는 거지요. 실체가 없으면 그림자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림자는 실체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아요...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비추면서도, 때로는 의도하지 않았던 그림자만의 재미있는 세계가 펼쳐지니 말이에요.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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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잠으로의 여행 - 잠에 대한 놀라운 지식 프로젝트
캣 더프 지음, 서자영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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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그게 건강한 거다... 그게 행복한 삶이다.... 라는 말을 종종 듣거나 하지만 그렇게 따진다면 나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먹는 즐거움을 알지 못하니 잘 먹지 않고, 신경이 예민한 까닭인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그렇다면 싸기라도 잘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이 얼마나 불행한 삶이냐 말이다. (말해놓고 보니 왠지 서글퍼진다. 에효~) 그렇다면 나는 정말 불행한 사람일까? 생각해보니 그렇지도 않다. 앞서 말한 세가지를 모두 내 맘대로 하지는 못해도 나름대로는 행복하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그 세가지 중에서 가장 부러운 것이 잠을 잘자는 것이다.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잔다는 사람, 머리를 대기만 하면 잠에 빠져든다는 사람, 꿈도 꾸지 않고 잔다는 사람이 나는 진짜 진짜 부럽다. 그나마 자는 잠도 깊은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어김없이 날마다 꿈을 꾸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하니 그 꿈 또한 좋은 꿈일리가 없다. 개꿈이다. 그러니 날마다 아침이 곤혹스럽다. 늘 피곤함을 달고 사니 어쩌면 앞서 말한 세가지중의 두가지가 아주 당연하게 따라오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서로 다른 주제가 벽장에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내 머리에 정리되어 있다. 한 가지 생각을 그만두고 싶으면 그 서랍을 닫고 다른 서랍을 연다. 잠을 자고 싶을 때는 모든 서랍을 닫기만 하면 된다." 저 유명한 나폴레옹의 말이다. 애들말마따나 그야말로 능력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꼭 잠을 자야만 하는 것일까? 이 책을 빌어 말해보자면 많이 잔다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으며,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잠이라고 한다. 반드시 잠을 자야만 하는 것은 수면이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생산적인 활동이며, 가장 완벽하게 기억력과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해보니 시험 준비 시간과는 상관없이 잠을 더 많이 잔 쪽의 성적이 더 좋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공부한답시고 새벽녘까지 비몽사몽인 상태로 버티는 것이 얼마나 좋지 못한 행동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공감하게 된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다고해도 머리만 복잡할 뿐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었던 까닭이다.

 

우리는 흔히 잠을 말할 때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상태를 램수면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인 깊은 수면의 상태, 즉 서파 수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책을 통해 한번 짚어보자. 깊은 수면은 성장 호르몬을 나오게 하고, 뼈와 근육을 생성하며, 면역력을 강화한다. 지방을 연소하고 심장 혈관의 건강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서파 수면에서만 성장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에 깊은 잠이 적으면 성장호르몬의 수치가 낮아진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물론 유전적인 면도 없지않아 있겠지만 잘먹고 잘자는 아이들이 잘 크는 건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서파 수면의 양이 엄청나게 감소한다는데 우리의 생애주기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잠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말이다.

 

양 한마리, 양 두마리.... 양도 많이 세어보았다. 몸이 피곤하지 않아서 그러는 거라고,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은거냐고 핀잔 아닌 핀잔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을. 그런 나를 안타까워하며 혈액순환에 좋다는 포도주를 사주기도 하고, 잠을 잘 자게 하는 책이라고 선물을 하던 지인도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지금은 아예 잠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기로 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면증이라는 말에는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책에서도 불면증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잠을 자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의 뇌는 잠을 잘 자는지 살펴보려고 계속 깨어있게 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으니 뇌가 반응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테지만 그렇게 되면 더더욱 잠을 못자게 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니 그거야말로 대단히 서글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수면의 양도 중요하지만 수면의 질을 먼저 따지고 싶다. 많이 잔다고 다 좋은 건 아닐테니. 조금을 자더라도 푹 잘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간을 수면시간으로 정해놓은 것처럼 차만 타면 잠을 청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이 잠깐의 잠이 내게는 그야말로 꿀잠이 되고 말았으니... '행복한 잠으로의 여행' 이라는 제목이 이런 나의 눈길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어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잠이란 게 도대체 어떤 것인지 다양한 잠의 얼굴을 보았을 뿐이다. 책표지에서 말하고 있듯이 잠의 과학, 잠의 문화, 잠의 비밀... 등과 같은. 知彼知己 百戰不殆 라 했는데 이제 잠에 대해 알았으니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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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아름다운 준비 - 유대인 랍비가 전하는
새러 데이비드슨.잘만 섀크터-샬로미 지음, 공경희 옮김 / 예문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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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랍비가 어쩌고~~ 하는 식의 말이 보이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우화다. 지독한 편견이지. 그래서 이 책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는 게 솔직한 말이기도 하고. 일단 대충 을 살펴보자면 이제 죽음을 바라보는 85세 유대인 랍비 잘만과 작가인 60대 중반의 새러가 2년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만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대화 형식이다. 인생을 뒤돌아볼 나이의 랍비와 인생을 논하는 철학의 한가운데에 선 작가의 만남이 어떠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다지 가볍진 않았을 터,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생에 관해 한가지 말해보자면 공자의 말을 들수가 있을 것 같다.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니 志學이라 하고, 20세는 한창 젊음이 무르익을 때니 弱冠 혹은 芳年이라 하고, 마음이 확고하게 다져져 움직이지 않는다는 30세는 而立, 40세를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하여 不惑이라 했다. 50세가 되면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긴다하여 知天命, 살만큼 살아 귀가 순해졌으니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60세를 耳順이라 했다. 그 밖에도 뜻대로 행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70세를 從이라 했으며, 하늘이 내려준 나이라 하여 100세를 上壽라 했다. 그런데 가끔 묻고 싶어진다. 공자는 무엇에 맞추어 저런 기준을 세웠던 것일까? 그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을 살지만 저대로만 산다면 그래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두개의 장면이 계속해서 머리속을 맴돌았다. 하나는 호스피스, 또하나는 죽음체험. 인생의 마지막을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호스피스라는 말이 우리 주변에 자리잡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듯 싶다. 아울러 그들의 일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삶과 죽음은 종이한장 차이라는 말이 있지만 태어남과 같이 왔던 죽음을 우리는 너무 잊고 사는 것 같다. 그저 먼 이야기처럼 여겨지는 것이 죽음인 까닭이다. 왠지 나에게만은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언젠가 스스로가 관속으로 들어가 어둠속에서 죽음을 체험해 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기사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사람이 그저 어두운 관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죽음이라는 말인가? 아니 죽음속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었었던가? 애들말마따나 능력자가 따로 없군, 했었다. 도대체 그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기에 그토록이나 어설픈 짓을 할 수 있었는지 한번쯤은 물어보고 싶었다는 게 내 솔직한 의견이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미리 유언장을 써보자는 말도 왠지 어설픈 하나의 상술로밖에는 다가오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지...

 

책을 읽으면서 마음속에 들어왔던 부분이 있어 메모해보았다. 첫번째, 병들어 죽을 것 같았던 아들을 위해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던 다윗은 아들이 죽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일어나 시편을 지으러 갔다. 사람들이 놀라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살아있는 동안에는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기도했지만 이제 죽었으니 내가 할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는 다윗의 일화가 의미심장하다. 공감 백퍼센트! 두번째, 큰 병인줄 알고 병원을 찾아갔지만 그저 전형적인 내이염증세일 뿐이라는 말에 의아했다는 작가 새러에게 의사는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 모두 포격을 당하고 있지요. 방향을 잃고,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워야 하니까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당신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입니까?" 내이염을 이겨내기위해 그녀가 들어야 했던 말은 딱 한마디였다. '놓아도 괜찮아.', '놓으셔도 괜찮아요.'...가만히 생각해보면 작가 새러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를 돌아보면 그 말이 곧 우리를 향한 말이라는 걸 금새 알 수 있으니.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용서하기! 내가 해를 입힌 사람과 나에게 해를 입힌 사람, 그리고 나 자신을 용서해야 할... 물론 쉽진 않을테지만 이 역시 내려놓기의 일환이다. 감사 산책하기! 규칙적으로든 즉흥적으로든 감사가 습관이 될때까지... 이 역시 쉽진 않을터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내려놓기가 필요하다. 이렇든 저렇든 내 인생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내려놓기!' 뿐... 늘 우리곁에 머무는 말인데도 늘 말로써만 존재하는 의미. 내려놓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것들을 버리자니 너무 아까워 버릴 수가 없다. 내가 어떻게해서 얻은 것인데! 굳이 랍비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법정 스님께서 돌아가신 후 남은 것이 뭐가 있었는가 한번 생각해보자. 채우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면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말씀도 하셨다.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것도,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준비하는 것도 사실은 내 안에 있음이니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볼 일이 아닐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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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누가 듣는가 - 제1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동효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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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은 이렇게 제목만으로는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는 책이 시선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거기다가 ㅇㅇ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면 한번쯤 읽어보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고 만다. 책을 펼쳐서 가장 먼저 찾아보았던 것이 심사평이었다. 작가의 이력부터 찾아보았던 보통때와는 다르게 수상작이 된 이유부터가 궁금했던 까닭이다. '진정성'이란 말이 보였다. 소설적 장치들이 없다는 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미사여구가 없다는 건 날 것으로 먹는 것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어서.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시간을 책과 글에 빠졌을 법한 작가의 이력이 한눈에 들어왔다. 자전적인 냄새도 풀풀 풍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실감나게 그려낼 수가 없지, 싶어서. 그러나 모든 건 속까지 들춰봐야 안다.

 

80년대의 특징을 말하자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데모현장이다. LP판으로 음악을 틀어주던 음악다방도 꽤나 유행했던 시절이었고,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거나 '안녕하세요, 김기덕입니다'와 같은 라디오 방송을 열심히 들었으며, 사랑하는 연인들을 안타깝게 하던 통금이 해제되었고, 일본색이 남아있었던 아이들의 교복이 자율화되었고, 소니 워크맨 하나 갖고 싶다는 소망을 가슴속에 품어보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5공화국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올림픽이 개최되었으나 그 영향으로 많은 사람이 도심주변으로 쫓겨나야 하는 모순도 발생했다.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던 시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느닷없이 웬 80년대 타령이냐고? 맞다. 이 책의 배경이 바로 그 시대를 담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니 어느정도는 미리 짐작해 볼 수 있는 분위기로 그저 평범한 한 남자의 삶을 그리고 있다. 벗어나고 싶었던 집에 살았던 한 남자의 어린 시절과 그 남자의 학창시절을 거쳐서,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그리고 다시 돌아온 그자리....

 

그다지 돌이켜보고 싶지 않았을 기억을 꺼내며 주인공의 삶을 따라간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청춘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았던 7,80년대의 기억들은 내게도 추억이라는 달콤한 말로 다가오지 않는 까닭이다. 지나간 것은 모두가 아름답다고? 그런 말은 그렇게 쉽게 하는 게 아니다. 성장소설을 읽는 것처럼 주인공이 살아내는 삶의 여정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자신의 꺾여진 욕망을 어쩌지 못한 채 현실을 부정하며 술로 달래는 아버지와, 어떻게든 삶의 고리를 연결시켜보고자 했던 어머니의 어긋난 사랑은 하나뿐인 자식에게 예리한 칼날처럼 가슴속에 박혀버리고 말았다. 그 아픔을 끌어안고 자신의 삶과 부딪쳐야 했던 주인공의 정서는 보여지는 것처럼 아주 당연한 수순일 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마지막에 보여준 어머니의 일기는 뭔가 알 수 없는 뭉클함에 젖어들게 한다. 누군가는 말해줘야만 할 것 같아서, 라는 어머니의 고백이 없었다면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를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 했다

 

그 노래를 들었던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겠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사랑에 아파하고 삶에 대해 고민했던 사람이라면. 그 노래가 어떤 노래가 되었든 저마다의 기억속에 자리하고 있을 노래 한구절이 궁금해진다.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있을 노래 한구절. 나는 그 시절에 어떤 노래를 들었던가. 책을 덮자 문득 뒷표지의 말이 가슴속을 파고 든다. 모두가 다 알지만 나만 모르는 비밀, 삶에는 언제나 그런 것이 숨겨져 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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