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서커스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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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주귀고리 소녀》에 반해서 《버진 블루》를 읽었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트레이시 슈발리에라는 여자의 글재주에 푹 빠져들었었다. 한참을 기다린 것 같았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었던 것은 전작들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황홀한 것들을 다시한번 느껴보고 싶었던 까닭이기도 했다. 우연하게 《진주귀고리 소녀》를 영화로 보고 나서 어찌나 실망을 했던지... 항상 그렇다. 글이 주는 그 묘한 매력을 영화속에서 온전하게 찾는다는 게 무리라는 걸... 이 책이 나왔다는 소개글을 보았으면서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트레이시 슈발리에라는 작가의 작품이 주는 유혹감을 좀 더 느껴보고 싶어서였는지도 몰랐다. 책을 손에 쥐고 내가 느꼈던 설레임은 정말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 설레임을 점점 잊어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전작들에 비해 긴장감도 덜하고 녹아있는 감동 또한 그리 많지 않았다. 지식과 감동을 함께 전해 줄 수 있는 작가라는 말에 적극 동의를 표하던 나의 기대에 못미치는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1792년 3월 런던으로 이사오는 토머스 켈러웨이 가족의 이야기는 시작되어진다. 그의 아내 앤 켈러웨이와 딸 메이지, 그리고 아들 젬... 이렇게 네명의 가족이 엮어 갈 런던이야기.  그 이야기속에는 내가 읽어보았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분명하게 선이 그어지는 주제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다. 그 역사적인 배경속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번에는 그리 크게 와닿지 않았다는 말도 되겠지만 옮긴이의 말처럼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삶을 조명해 보고 싶었다면 그것 역시 그다지 밝게 혹은 분명하게 조명처리가 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차라리 윌리엄 블레이크라는 시인의 글을 통해 당시의 사회적인 풍자를 읽어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은 것 같다.  내가 읽어보았던 작품들에 비해 촘촘하게 느껴지는 그런 긴장감(손에서 책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그런...)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책장을 덮고 다시한번 제목에 눈을 돌려 보았다. 시인이라면 윌리엄 블레이크를 말할 것이고 서커스라면 필립 애스틀리를 말하는 걸거라는 생각을 한다. 책속에서 느껴지는 두사람의 정신세계는 어딘가 모르게 같으면서도 다른 듯한 느낌을 준다. 글속에서도 말했듯이 무형의 그 어떤 것에 꿈과 이상과 환상을 불어넣어 그 시대의 군중들에게 정신적인 지주로써 그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왠지 내게는 그리 크게 와닿지 않는 설정처럼 보여졌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생활속에서 두개의 쳇바퀴처럼 달라붙어 굴러가는 아이들 젬과 매기..  세상에 대한, 이성에 대한, 그리고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한컷 부풀대로 부푼 나이의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가 살아내고 있을 현실속의 시간들을 이해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시인과 그 아이들이 나누는 선문답같은 대화속에서 얼핏 얼핏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경험에 의해 버려지는 순수에 대한 욕망이었을까? 아니면 경험으로 인하여 버려질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만의 순수를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도시로 올라왔던 젬과 메이지가 도시속에 동화되어가며 잃어버리고 있던 것들이 오히려 도시에서만 자란 매기에게는 어떤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되어지는 것 같다.

" 강 이편과 저편 사이, 강 한복판에는 뭐가 있냐고 물으셨죠? 그 답은 세상이에요. 두 극단 사이에 놓인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에요"

" 바로 그거야. 두 극단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우리를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있게 하는 거란다. 우리 인간은 어떤 한가지 측면만이 아니라 그 반대 측면까지 갖고 있는 거야. 그 두가지 상극이 우리의 내면에서 섞이고 부딪치고 불꽃을 일으키지.  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도 있는거야. 평화만 있는 게 아니라 갈등도 있고. 순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도 있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삶의 교훈이란다. 그래야만 꽃한송이 속에서도 세상을 볼 수 있을 테니까."(247쪽)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는 어쩌면 처해진 현실을 버리고 무시할 수 없기에 꿈을 꾸고 그것에 대한 환상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젬과 매기처럼 함께 있음으로 해서 은연중에 서로에 대한 깊은 관심을 느껴가면서 그렇게 이 한세상을 살아내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약간의 실망감을 감추며 옮긴이의 말속에서 찾아낸 슈발리에의 말.. " 젬은 경험을 얻었고, 메이지는 순수를 잃었으며,매기는 순수를 되찾았다"... 소설의 내용을 요약했다는 이 짧은 말속에서 윌리엄 블레이크라는 시인의 삶을 조명했다던 말은 끝내 부정하고 말았다. 단지 이쪽(어른)도 아니고 저쪽(아이)도 아닌 채 육체와 정신의 모순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과 고민을 해야만 했을 청소년기의 이야기였다고만 기억되어질 것 같다. 시인의 말처럼 두 극단 사이의 긴장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가야 할 젬과 매기, 그리고 메이지의 미래가 밝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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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답사수첩 (스프링)
문화재청 지음, 이선종 사진 / 미술문화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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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들녀석의 체험학습으로 문화재 답사를 택하게 된 것은 평소 문화재 답사에 관한 관심이 많았던 까닭이기도 했지만 우리의 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나의 문화재 상식에 대해 일말의 부끄러움을 어찌 할 수 없던 차에 이 책을 만난 건 나에게 행운처럼 느껴졌다.
처음 받아 보았을 때는 간단한 수첩모양이었다는 게 좀 실망스럽긴 했지만 간단하게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는 그만이었다.




아들녀석에게 능에 대한 설명을 해 주면서도 늘상 그 용어를 몰라 어물쩡 넘어가기가 다반사였는데 이 책속에는 능에 관한 상설도가 그려져 있어 설명해주기에 수월했다.
아이에게 그냥 보라고 넘겨주기에는 이해하기 힘겨운 낱말들이었던 탓이다.

거기에 맞춰 능상설도에 대한 해설이 붙어 있어 참 좋았다. 언제였는지  아들녀석과 찾았던 선능에서 능 해설자를 만났던 기억이 났다. 설명이 덧붙여지지 않은 채 들려왔던 이름들은 너무나 낯설었었다. 물론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이 수첩을 보면서 내가 좋게 보았던 점의 하나가 왕릉 용어를 해설해 주었던 부분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음이다. 관람객들이 아주 쉽고 간편하게 조선 왕조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나온 책이라는 말처럼 어느정도는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을 듯 싶기도 하다.
아주 작은 책, 정말 수첩처럼 지니고 다니기에는 참 좋은 듯 하지만 종이의 재질을 좀 더 신경써 주었다면 더 좋았을거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답사를 갈 때마다 팜플릿을 얻기 위해서 일부러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순간을 생각하면 이 수첩 한권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왕릉 답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권쯤 가방에 넣고 다녀도 괜찮을 것 같다.
아주 듬직한 해설가와 동행하는 것처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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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종 2010-02-2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본 책자의 사진을 촬영했던, 이선종이라고 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역시 제작 전,후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생각에 동감하며 몇자 남겼습니다.

아이비 2010-02-21 14:08   좋아요 0 | URL
지금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책자들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램은 여전하지요 ^^*
항상 평안하시길요...
 
유성룡 - 설득과 통합의 리더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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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그가 인물이었던가?  이 책을 읽고 난 뒤 유성룡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이 황의 제자. 도체찰사로써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총체적인 지휘를 하였다.. 반상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인재를 볼 줄 알아 추천하였으며 이순신이나 권율등을 기용했으고, 천민 출신의 신충원과 같은 이에게도 출세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것.. 양반부터 노비까지 모두 군역의 의무를 지게 했던 속오군이나 토지 소유의 과다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했던 대동법을 실시했던 것이나, 서얼이나 천인들을 발탁해 그들을 면천시키고 벼슬을 주는 등, 그가 행했던 모든 것들이 양반사대부들의 기득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는 것..  결국 그는 선조에게서 버림을 받았으며 은근짜한 선조의 회유에도 흔들림없이 초야에 묻힌채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는 것...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유성룡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적었다. 단지 이순신의 뒷배경이 되어주었다는 것만이 뚜렷하게 부각되어질 뿐이었으니 달리 무엇이라고 할 말도 없는 듯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분연히 일어나던 화를 어쩌지 못했던 부분도 참 많았었다. 너무 엉뚱하게 그려져 있던 선조의 모습때문이었다.  현실을 외면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었던' 조정의 인물들이야 우리의 역사속에서는 너무 흔하다. 말해 무얼하랴.. 지금의 정치현실도 저와 같음을...  "중세 이후에 좋은 법과 제도가 모두 폐지되고 떨어져서, 사대부는 다만 문장의 화려함을 다듬고 헛된 말만 꾸미기에 힘쓸 뿐 세상을 다스릴 생각에는 조금도 뜻을 두지 않았습니다"라던 유성룡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조선의 역사속에서나 작금의 현실적인 정치배경속에서나 헛된 말만 꾸미고 세상 다스릴 생각에는 조금도 뜻을 두지 않은 것은 똑같이 보여진다는 말이다.

우선은 선조를 먼저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종의 후사가 없어 왕족의 예로써 왕위에 올랐던 이가 선조다. 선조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경로로든지 그리 많이 만날 수 없었던 듯 하다. 특별히 내세울만한 것이 없어서였을까? 인재를 등용할 줄 알았고 당쟁중에도 훈구파의 공격속에서 사림파의 사기를 북돋아줄 줄도 알았다고 기록에는 나와 있다. 선대의 숙제였던 종계변무(이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중국 명나라의 대명회전에는 이인임의 후계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것을 수정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를 바로잡기도 한 것이 또한 선조였다.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났다고 나와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다보면 선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만다. 어찌 저런 인물을 일국의 왕이라도 추대했으며 모시고 살았을까 싶기도 하다. 문득 요순시대의 선위 일화가 떠오른다. 나라를 다스릴만한 인재를 찾아내어 그 인재를 살뜰히 살며 진정한 군주로써의 면모를 갖추게 한 다음 비로소 왕의 자리를 주었다던 이야기.. 그 일화를 보면서 세습이 아닌 선위였기에 그토록 위대해보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제일먼저 피난의 짐을 쌌다던 왕, 선조.. 그 선조가 궁을 버리고 떠나자 화가 난 백성들은 배신감에 궁궐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단 한번도 맞서 싸워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던 왕, 선조.. 자신의 왕위 지키기에만 급급하여 세자책봉에도 그토록 힘겨워 했다던 왕,선조.. 그랬던 선조 곁에서 묵묵히 왕을 수호하며 자신의 뜻을 펼쳐나가던 유성룡의 이미지는 선조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문득 이런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한나라의 왕으로써 선조는 그렇게 옹졸하고 치졸한 모습밖에는 보여주지 못한 것이었을까? 내심 작가의 의중이 궁금해졌다. 역사는 힘있는 자의 붓으로 그려진다는 말이 있듯이 혹여라도 작가의 내면에 유성룡이란 인물에 대한 과신이 숨겨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토록 선조의 잘못된 점만 쏙쏙 뽑아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 의구심을 이유로 나는 이 글의 맨 처음에 유성룡, 그가 인물이었을까? 라고 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유성룡이 실시하고자 했던 많은 것들은 이미 앞선 선각자들에 의해 한번씩은 거론되어졌던 것임을 분명히 해야한다. 명마는 주인을 잘 만나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유성룡이란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해 선조의 모습이 변화되어진 것만 같이 느껴져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확실하게 다가왔던 것은 모든 법을 시행함에 있어서 미리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살펴볼 줄 알았다기 보다는 이미 벌어진 일에 급급하게 맞춰졌다는 점이다.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었던 지식층의 모순점은 언제 보아도 안타깝기만 하다. 앞서가는 사람이 살 수 없었던 조선시대의 사회상이 가슴 아플 뿐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생길정도로 남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던 조선의 시대상이 눈물날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누구의 후손인가.. 바로 그들의 후손이기에 어쩌면 지금의 우리들도 그런 속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묻고 싶어진다.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한권의 책으로 인해 나에게 얻어지는 것은 참으로 많다는 것이다. 조선사에 관한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었었고 그 책으로 인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겉으로만 얄팍하게 알고 있었던듯한 임진왜란의 역사적 배경과 유성룡이란 인물에 대해 알게 된 점 또한 기쁨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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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저넌에게 꽃을
다니엘 키스 지음, 김인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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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책을 평가하는 기준에 별이 다섯개밖에 없다는 게 오늘따라 싫다. 내가 무슨 전문 평론가는 아니지만 이 책은 정말이지 가슴속을 흥건하게 적셔주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아무래도 자연주의자인 모양이다. 이렇게 과학이나 어떤 인위적인 믿음에 반기(?)를 드는 듯한 느낌이 오는 글을 좋아하는 걸 보면 말이다. 과학조차도 인위적인 믿음이라고 생각할수밖에 없는 내가 너무 우습기도 하지만 왠지 무조건적인 믿음을 내세우는 광신도와 자신이 믿어 마땅한 그 무엇에 대한 열정으로 꽉 채워진 학자들의 믿음이 어쩌면 동일한 선상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오늘은 검사가 잇엇다. 나는 실패햇다고 생각하기 때무네 틀림업시 나를 써주지 안을 것 같다... 박사님은 생각한 것 하고 일어난 일을 자꾸자꾸 쓰라고 합니다 이제 생각나지 안키 때무네 쓸 것이 업서서 오늘은 여기서 그만 하겟다....안녕히 게세요 찰리 고든 이제 막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 꼬마의 말투로 시작되어지는 이 책을 펼쳐보면서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책을 통해 알게 되어 선택되어진 나의 두번째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찰리의 시선으로 책속 세상을 함께 거닐었다면 거짓말일까? 

앨저넌과 찰리.. 책속의 주인공은 둘이다. 내가 두명이라고 쓰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다. 앨저넌은 흰쥐이기 때문이다. 32살이지만 일곱살 어린아이 같은 지능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는 찰리.. 여기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IQ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흰쥐를 이용해 실험하는 인간의 자아도취현상 또한 그리 위대해 보이지 않는다. 일종의 조건반사라고 나는 보기 때문이다. 뜨거워지는 물을 느끼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 현상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곱살의 찰리가 서른 두살의 찰리로 변해가는 과정은 눈물겹다. 아니 눈물겹도록 처절하다. IQ가 얼마나 낮고 높은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과학이라는 초현실적인 자만심 앞에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돋보기를 쓰고 보는 것처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속의 찰리가 너무 불쌍하다. 이제 막 글쓰기를 배우는 아이처럼 세상을 대하던 찰리가 뇌수술을 받고 난 이후 IQ180의 천재가 되었지만 그가 마음속에서 하나 둘 잃어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나는 마음이 아팠다. 실험실에서 앨저넌을 처음 보았던 어린 찰리.. 그야말로 백치같았던 찰리가 어느 순간 천재가 되어 앨저넌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바라보며 자기 자신의 변화를 예측할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었다. 하지만 그 예상되는 변화를 받아들이며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를 묵묵히 인정하는 찰리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기회가 된 듯 하다.

찰리 고든이 백치인가 천재인가 하는 것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천재가 된 후에야 알게된 찰리가 자신을 천재로 만들어준 박사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뭐든지 해 주었지요,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만 빼고는.. 나를 위해 당신이 해준 것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나를 실험용 동물처럼 다룰 권리를 없다고...(276쪽)  적어도 빵가게에서 일하던 어린 찰리에게는 친구가 있었고 외로울 때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었으며 이렇게까지 고독하지는 않았었다고 천재찰리는 생각한다. 자신의 실제적 자아관념이 어린 찰리로 보여지며 끝내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는 상황에서조차 천재 찰리는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지금의 현실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게다. 아니 어쩌면 그런 것들을 포기한다는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수술의 후유증으로 정서적인 변화를 보여주던 앨저넌을 바라보면서 앨저넌이 겪고 있을 변화가 천재찰리에게는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천재찰리는 그 순간부터 자기 자신의 변화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자신을 체크하며 연구하는 아이러니다. 

서른 두살의 어른이 되어버린 찰리에게 어린찰리는 그가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던 아주 먼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보여주고 싶어한다. 태어남, 그리고 그에게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아니 어쩌면 집착의 끈으로 자신을 옭아매어버린 엄마의 모습. 동생 노마가 태어나고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은 채 공동시설로 들어가야 했던 찰리는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을 잃었다. 문득 나는 얼마전에 읽었던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가 생각났다. 지극히 평범한 부모로부터 다섯째 아이로 태어났던 벤도 저능아였었다. 찰리처럼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야 했던 벤이 어쩌면 찰리보다는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랑이 필요했던 시기에 벤에게는 이기적이지 않은 엄마의 보호가 있었던 까닭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싶어했던 엄마의 관심이 있었다. 시설에 버려졌으나 다시 가족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벤과 뇌수술로 천재가 되어 가족을 찾아갔던 찰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버림 받지 않고 가족곁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면 오히려 행복했을지도 모를 찰리가 다시 바보가 되어가는 그 여정속에는 정말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지금 타인의 마음에 대해 제멋대로 말하고 있어요. 당신이 뭘 알겠어요? 내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느끼며, '왜' 그렇게 느끼는지"(148쪽).. 찰리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 앨리스가 찰리를 향해 절규하며 뱉어냈던 이 말은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작가의 마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이 되어 있는지 알았다.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 찰리와는 달리 친구도 사귈 수 없고 타인과 타인의 문제를 생각해 줄 수도 없다. 그리고 자기자신 외에는 흥미가 없다. 거울과 마주한 그 오랫동안 나는 찰리의 눈을 통해 나 자신을 보고 내가 실제로 어떤 인간이 되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부끄러웠다.(280쪽)... 과학이, 우리가 믿고 싶어하고 끝없이 존경해마지 않는 과학의 힘이 우리를 점점 외로움의 늪으로 인도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끝없이 변화하고 싶고 그 변화에 기쁘게 순응하고 싶어하는 우리가 과연 나 자신에 대해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은 얼만큼이나 되는지.. 터럭만큼도 없을 우리 마음의 여유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천재찰리의 고독은 어쩌면 당연함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 할지라도 그것만큼은 당연시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박사에게 심리요법을 받던 천재찰리가 다시 어린 찰리로 돌아가면서 묻고 있다. 백치한테는 본능이 있을까요?...라고. 

어째서 나는 언제나 인생을 창문 너머로 들여다 보는 것일까? (328쪽)
이제는 시간이 없다고 느끼며 과거를 떠올리려 하지 않는 찰리가 자신이 써놓았던 논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단계가 되어 있을 때 인생에 대한 시점을 논한다는 건 서글프다. 이미 손에 쥐었던 것을 놓아버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불가항력적인 힘이 가해진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같은 뇌수술로 아주 똑똑한 천재쥐였던 앨저넌이 죽었을 때 나는 오, 하느님! 제발...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심정이었다. 제발 찰리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어쨋든 나는 과학을 위해 중요한 것을 발견한 최초의 바보인간인 것은 확실하다. 나는 무언가를 햇지만 그게 뭔지 생각나지 안는다.(344쪽) 그때가 오면 다시 시설로 되돌아가야 하는 그 때가 오면 혼자서 가고 싶다던 어린 찰리에게 환영같은 그림자로 보여지는 천재찰리.. 그 사람은 얼굴도 나하고 다르고 말투도 다르지만 나하고 달믄 것 같튼데 그래도 그 사람이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내가 창문에서 그 사람을 보고 잇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343쪽) 그래, 그래도 나는 친구를 찾아 떠나는 바보찰리가 더 좋다. 옛날에는 천재였지만 지금은 읽을 줄도 쓸줄도 모르는 바보천재를 아무도 상관하지 않은 곳을 가려고 하는 나의 찰리에게 박수를.. 그의 긴 여정이 너무 힘겹지 않기를.. 그의 마지막 말을 들려주고 싶다. 인간으로 살았으나 인간취급을 당해야 했던 그의 아픔을 함께 느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그의 여정에 터럭같은 마음 한자락 나눠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아이비생각


P.S. 니머 교수님한테 꼭 전해주세요. 사람이 선생님을 비웃어도 그러케 화를 내지 말라고요. 그러케 하면 선생님한테는 더 만은 친구가 생길 거니까. 남이 웃도록 내버려두면 친구를 만드는 것은 간단합니다. 나는 이제부터 갈 곳에서 친구를 만이 만들 생각입니다.

P.S. 어쩌다 우리 집을 지나갈 일이 잇으면 뒤뜰에 잇는 앨저넌의 무덤에 꼿을 바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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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촬영법 Outdoor Books 10
송기엽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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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동안을 산에 오르면서 자연의 숨결을 제대로 느꼈던 때가 얼만큼이나 될까 생각해 보았다. 아주 오래전 산악회 동료들과 점봉산을 오르던 길에 만났던 얼레지의 향연을 나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얼레지 군락지를 지나면서 행여나 한송이라도 밟을까 모두들 얼마나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었는지... 계절별로 다른 모습을 하는 산이 좋아서, 작년 모습과 올 해의 느낌이 또 달라서 산을 오를 때마다 나름 작은 설레임을 느끼곤 했었지만 철마다 피어나는 꽃송이들이나 봄이면 연초록으로부터 시작되어 짙은 녹음으로까지 번져가는 그 초록의 변화무쌍함이 경이로워서 갈 때마다 나는 환호성이었다. 산을 내려오면 들길을 따라 쭈욱 나를 따라오던 들꽃들은 또 어떠했었는지... 그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자연을 내안에 품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풀 한포기, 꽃 한송이가 왜 그리도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졌었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들 하나하나마다 간직하고 있었을 이름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던거다. 뒤늦게 디카를 소장하게 되었던 그 순간의 환희를 말해 무엇할까마는 나는 지금도 무작정 디카 들이대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  그렇다고 내가 사진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사진에 관한 책을 단 한권도 따로이 본 적이 없으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나는 사진에 관해서는 정말 문외한이라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그저 이쁘고 좋아서 그런 시간을 갖고자 하는 것 뿐이다. 그것들을 바라보고 잠시 마음을 빼앗겨보는 그 순간이 그저 황홀할 뿐이다. 그러던 중 내눈에 띄는 꽃과 풀의 이름이 궁금해 미칠지경이 되었을 때 내게 온 이 책은 마치도 구세주와 같았다고나 할까?  산을 오르거나 들길을 걷다보면 흔하게 마주치는 작은 꽃들이 서로 비슷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각각의 이름을 갖고 있있었는데도 내 눈에 다름이 느껴질 여유가 없었던 듯 한데 이 책을 만나게 됨으로써 비로서 동의나물이나 양지꽃이나 애기똥풀의 차이를 이제는 조금 알 수도 있으려니 한다.

책속에는 사진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지만 그 사진을 어떻게 자연과 조화시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더 많다. 일단은 꽃에 대한 정보부터 훓어보기로 했다. 참 많기도 하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별로 피는 꽃이 다르고 아침에 피고 저녁에 피는 모습 또한 달랐다. 날씨에 따라 흐린 날, 맑은 날, 비오는 날, 눈오는 날이면 제각각 때에 맞춰 피어나는 꽃이 달랐고 산에 피고 들에 피니 그 모습 또한 달랐다. 그런가하면 큰 꽃,작은 꽃, 따로 피고 모여피고.... 나는 언제쯤이면 이 많은 꽃들과 인사나누게 될까 하는 욕심이 앞섰다. 그런 꽃들을 어떻게 찍어야 좀 더 이쁘고 멋지게 그리고 저마다의 특성을 살려 제대로 찍어 사진에 담아 낼 수 있는지까지도 이 책의 저자는 잘 말해주고 있다.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가장 욕심이 났던 것은 접사였다. 초근접 촬영편을 보면서 나도 제대로 된 카메라 장비와 사진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났다. 디카여서 편한 것도 있지만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던 점들이 많았던 까닭이기도 하다. 사진의 구도를 설명하는 부분과 주제와 부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가에 대한 부분이 나올 때는 아주 외울 작정으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난 주 일요일 청계산에 올랐을 때 산능선에 피어있던  좀비비추의 모습을 한번 찍어보았다. 물론 책에서 배운대로 구도에 신경을 써보았지만 역시 많이 부족하다. 이 꽃은 사실 산에 갈 때마다 여러번 보았던 기억이 있지만 이 책을 통해서야 이름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면 꽃이 서운하려나?  아카시아 향내를 맡으며 내려오던 하산길의 애기똥풀을 내내 양지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책자가  간편하게 소지할 수 있도록 작게 나온 탓인지 내 욕심만큼 많은 꽃을 알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책이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아마도 내가 외출할 때마다 가방속에서 늘상 나와 함께 해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인덕원역쪽으로 하산을 하였던 탓에 역 근처의 화훼단지를 거쳐야 했다. 와, 그 많은 꽃들이 나를 반기며 웃고 있는데 그 유혹을 어찌 모른 척 할까?  많은 꽃들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이 책속에 배웠던 내용들이 자꾸만 나를 망설이게 했다. 그야말로 어설픈 도둑이 된 것 같았다고나 할까? 이름도 모르는 꽃들의 화장한 얼굴이 너무 고와서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었다.  그 중 환상적인 빛깔로 나의 혼을 쏙 빼놓았던 꽃수국과 이름을 아직 알지 못한 꽃송이들을 아직은 부족한 솜씨겠지만 여기에 잠시 소개해 볼까 한다.



오래전에 마이크로 코스모스란 영화가 있었다. 아주 작고 미세한 세상을 카메라에 담아 정말 놀라운 장면들을 보여주었던 영화였다. 너무 좋아서 바로 비디오를 구입, 지금은 보고 싶을 때마다 한번씩 보고 있지만 역시 볼 때마다 눈이 커지고 가슴이 설레인다. 그 아름다움을 좀 더 많이 알고 싶고 좀 더 많이 배워보고 싶다. 나중에라도 시간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느정도의 여유가 생겨난다면 제대로 된 카메라 장비를 구입하여 자유롭게 자연속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고 싶다.  물론 사진찍기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해야하리라.. 작은 책, 정말 가방안에 쏙 들어갈만큼 작은 책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큰 것을 안겨준 책이었다. 이렇게 글을 쓰며 다시한번 책을 펼쳐보고 있으려니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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