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저넌에게 꽃을
다니엘 키스 지음, 김인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책을 평가하는 기준에 별이 다섯개밖에 없다는 게 오늘따라 싫다. 내가 무슨 전문 평론가는 아니지만 이 책은 정말이지 가슴속을 흥건하게 적셔주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아무래도 자연주의자인 모양이다. 이렇게 과학이나 어떤 인위적인 믿음에 반기(?)를 드는 듯한 느낌이 오는 글을 좋아하는 걸 보면 말이다. 과학조차도 인위적인 믿음이라고 생각할수밖에 없는 내가 너무 우습기도 하지만 왠지 무조건적인 믿음을 내세우는 광신도와 자신이 믿어 마땅한 그 무엇에 대한 열정으로 꽉 채워진 학자들의 믿음이 어쩌면 동일한 선상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오늘은 검사가 잇엇다. 나는 실패햇다고 생각하기 때무네 틀림업시 나를 써주지 안을 것 같다... 박사님은 생각한 것 하고 일어난 일을 자꾸자꾸 쓰라고 합니다 이제 생각나지 안키 때무네 쓸 것이 업서서 오늘은 여기서 그만 하겟다....안녕히 게세요 찰리 고든 이제 막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 꼬마의 말투로 시작되어지는 이 책을 펼쳐보면서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책을 통해 알게 되어 선택되어진 나의 두번째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찰리의 시선으로 책속 세상을 함께 거닐었다면 거짓말일까? 

앨저넌과 찰리.. 책속의 주인공은 둘이다. 내가 두명이라고 쓰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다. 앨저넌은 흰쥐이기 때문이다. 32살이지만 일곱살 어린아이 같은 지능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는 찰리.. 여기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IQ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흰쥐를 이용해 실험하는 인간의 자아도취현상 또한 그리 위대해 보이지 않는다. 일종의 조건반사라고 나는 보기 때문이다. 뜨거워지는 물을 느끼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 현상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곱살의 찰리가 서른 두살의 찰리로 변해가는 과정은 눈물겹다. 아니 눈물겹도록 처절하다. IQ가 얼마나 낮고 높은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과학이라는 초현실적인 자만심 앞에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돋보기를 쓰고 보는 것처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속의 찰리가 너무 불쌍하다. 이제 막 글쓰기를 배우는 아이처럼 세상을 대하던 찰리가 뇌수술을 받고 난 이후 IQ180의 천재가 되었지만 그가 마음속에서 하나 둘 잃어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나는 마음이 아팠다. 실험실에서 앨저넌을 처음 보았던 어린 찰리.. 그야말로 백치같았던 찰리가 어느 순간 천재가 되어 앨저넌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바라보며 자기 자신의 변화를 예측할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었다. 하지만 그 예상되는 변화를 받아들이며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를 묵묵히 인정하는 찰리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기회가 된 듯 하다.

찰리 고든이 백치인가 천재인가 하는 것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천재가 된 후에야 알게된 찰리가 자신을 천재로 만들어준 박사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뭐든지 해 주었지요,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만 빼고는.. 나를 위해 당신이 해준 것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나를 실험용 동물처럼 다룰 권리를 없다고...(276쪽)  적어도 빵가게에서 일하던 어린 찰리에게는 친구가 있었고 외로울 때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었으며 이렇게까지 고독하지는 않았었다고 천재찰리는 생각한다. 자신의 실제적 자아관념이 어린 찰리로 보여지며 끝내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는 상황에서조차 천재 찰리는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지금의 현실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게다. 아니 어쩌면 그런 것들을 포기한다는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수술의 후유증으로 정서적인 변화를 보여주던 앨저넌을 바라보면서 앨저넌이 겪고 있을 변화가 천재찰리에게는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천재찰리는 그 순간부터 자기 자신의 변화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자신을 체크하며 연구하는 아이러니다. 

서른 두살의 어른이 되어버린 찰리에게 어린찰리는 그가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던 아주 먼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보여주고 싶어한다. 태어남, 그리고 그에게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아니 어쩌면 집착의 끈으로 자신을 옭아매어버린 엄마의 모습. 동생 노마가 태어나고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은 채 공동시설로 들어가야 했던 찰리는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을 잃었다. 문득 나는 얼마전에 읽었던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가 생각났다. 지극히 평범한 부모로부터 다섯째 아이로 태어났던 벤도 저능아였었다. 찰리처럼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야 했던 벤이 어쩌면 찰리보다는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랑이 필요했던 시기에 벤에게는 이기적이지 않은 엄마의 보호가 있었던 까닭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싶어했던 엄마의 관심이 있었다. 시설에 버려졌으나 다시 가족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벤과 뇌수술로 천재가 되어 가족을 찾아갔던 찰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버림 받지 않고 가족곁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면 오히려 행복했을지도 모를 찰리가 다시 바보가 되어가는 그 여정속에는 정말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지금 타인의 마음에 대해 제멋대로 말하고 있어요. 당신이 뭘 알겠어요? 내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느끼며, '왜' 그렇게 느끼는지"(148쪽).. 찰리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 앨리스가 찰리를 향해 절규하며 뱉어냈던 이 말은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작가의 마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이 되어 있는지 알았다.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 찰리와는 달리 친구도 사귈 수 없고 타인과 타인의 문제를 생각해 줄 수도 없다. 그리고 자기자신 외에는 흥미가 없다. 거울과 마주한 그 오랫동안 나는 찰리의 눈을 통해 나 자신을 보고 내가 실제로 어떤 인간이 되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부끄러웠다.(280쪽)... 과학이, 우리가 믿고 싶어하고 끝없이 존경해마지 않는 과학의 힘이 우리를 점점 외로움의 늪으로 인도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끝없이 변화하고 싶고 그 변화에 기쁘게 순응하고 싶어하는 우리가 과연 나 자신에 대해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은 얼만큼이나 되는지.. 터럭만큼도 없을 우리 마음의 여유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천재찰리의 고독은 어쩌면 당연함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 할지라도 그것만큼은 당연시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박사에게 심리요법을 받던 천재찰리가 다시 어린 찰리로 돌아가면서 묻고 있다. 백치한테는 본능이 있을까요?...라고. 

어째서 나는 언제나 인생을 창문 너머로 들여다 보는 것일까? (328쪽)
이제는 시간이 없다고 느끼며 과거를 떠올리려 하지 않는 찰리가 자신이 써놓았던 논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단계가 되어 있을 때 인생에 대한 시점을 논한다는 건 서글프다. 이미 손에 쥐었던 것을 놓아버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불가항력적인 힘이 가해진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같은 뇌수술로 아주 똑똑한 천재쥐였던 앨저넌이 죽었을 때 나는 오, 하느님! 제발...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심정이었다. 제발 찰리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어쨋든 나는 과학을 위해 중요한 것을 발견한 최초의 바보인간인 것은 확실하다. 나는 무언가를 햇지만 그게 뭔지 생각나지 안는다.(344쪽) 그때가 오면 다시 시설로 되돌아가야 하는 그 때가 오면 혼자서 가고 싶다던 어린 찰리에게 환영같은 그림자로 보여지는 천재찰리.. 그 사람은 얼굴도 나하고 다르고 말투도 다르지만 나하고 달믄 것 같튼데 그래도 그 사람이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내가 창문에서 그 사람을 보고 잇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343쪽) 그래, 그래도 나는 친구를 찾아 떠나는 바보찰리가 더 좋다. 옛날에는 천재였지만 지금은 읽을 줄도 쓸줄도 모르는 바보천재를 아무도 상관하지 않은 곳을 가려고 하는 나의 찰리에게 박수를.. 그의 긴 여정이 너무 힘겹지 않기를.. 그의 마지막 말을 들려주고 싶다. 인간으로 살았으나 인간취급을 당해야 했던 그의 아픔을 함께 느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그의 여정에 터럭같은 마음 한자락 나눠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아이비생각


P.S. 니머 교수님한테 꼭 전해주세요. 사람이 선생님을 비웃어도 그러케 화를 내지 말라고요. 그러케 하면 선생님한테는 더 만은 친구가 생길 거니까. 남이 웃도록 내버려두면 친구를 만드는 것은 간단합니다. 나는 이제부터 갈 곳에서 친구를 만이 만들 생각입니다.

P.S. 어쩌다 우리 집을 지나갈 일이 잇으면 뒤뜰에 잇는 앨저넌의 무덤에 꼿을 바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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